소설리스트

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84화 (8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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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이제 가라.”

나는 담배를 물며 승규를 내보냈다.

“이대로 보낸다고? 밥 한 끼 없이?”

“할머님이 훨씬 요리 잘하시는데 내 밥이 먹고 싶어?”

“너 김치볶음밥 잘해.”

“그럼 교통비로 그거만 해줄게.”

“계란도 넣어줘.”

승규가 더는 서류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려 하지 않아서 나는 집에 들이기로 했다.

승규한테 말한 위치는 실제 묻은 위치와 조금 달랐다. 실제로는 무너진 건물터에 묻었지만, 승규한테는 옛날부터 귀신이 나온다고 유명했던 닭을 키우던 축사 뒤쪽에 묻었다고 했다. 승규는 그래서 내가 멍청한 게 아니냐 생각했을 거다. 굳이 거기까지 가서? 그 똥밭을 팠다고?

“아, 버터로 볶아라!”

들어오자마자 집 주인처럼 벌렁 누워서 티비를 켜는 김승규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날 빼내느라 고생한 게 사실이라 특별히 봐주기로 했다.

버터를 잘라서 팬에 올리고 녹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채원우에 대한 기억이 가져온 여운 때문에 아직 얼떨떨했다.

그 어린 녀석이 맹랑하게 여기서 내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도 있겠지만, 사실은 너무 어이가 없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약속이어서 그랬을 거다.

나는 조용히 손목을 돌렸다. 손목 안쪽은 아주 깨끗했다. 일반인보다 우수한 치유 능력은 흉터에도 통했다. 손목을 세 번 그었고 세 번 다 살았다. 아마 손목을 잘라도 살았을 거라고 날 치료하던 군의관이 우스갯소리로 말했었다.

그 말이 결국엔 맞네. 심장이 뚫리고도 살았으니까.

누릇하게 타는 냄새가 났다. 정신을 차리고 팬을 보니 버터가 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서둘러 김치와 햄을 넣었다. 고춧가루도 넣고 하여튼 바쁘게 볶아냈다. 우리 둘 다 취향이 약간 눌은밥이라서 마지막에는 밥을 넓게 펼쳐서 약불로 가볍게 태웠다.

그걸 가지고 승규에게 가니 내가 자주 본다는 시사 채널을 보고 있었다. 지금은 불안정지수가 높아진 나라에서 관리를 하지 못해 사사로이 활동하는 헌터에 대한 문제점과, 그들이 보호하는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시민들의 입장은 이랬다. 어차피 군인들도 힘이 없는데 비록 돈을 많이 빼앗기긴 해도 진짜로 자기들을 보호해 주는 헌터가 낫다고.

“저러다가 전쟁 나는 거 아냐.”

승규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손에서는 리모컨을 놓지 않은 채였다.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다가 한국에서는 거의 일어날 확률이 없는 일에 시선이 빼앗긴 모양이었다.

“헌터들끼리 전쟁 나면 말 그대로 괴물들 싸움인데. 그렇지 않냐.”

무심코 동의를 구하기 위함인지 내 쪽으로 고갤 돌렸던 승규가 정색하고 빠르게 사과했다.

“미안.”

“뭐 어때. 그냥 존나 센 괴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런 일에 일일이 상처받는 건 하수나 할 짓이다. 사회 통념과 편견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뇌에 힘을 주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저질러버리고 마니까.

“근데 빨리 먹어. 안 그러면 내가 다 먹을 거다.”

사실 이미 피자 치즈는 거의 다 먹긴 했다. 너무 맛있어서 그만.

승규는 뒤늦게 와구와구 퍼먹었다. 간밤에 하룻밤 신세진 호텔 THE 구치소가 너무 불편했는지 몸이 뻐근했다. 어깰 풀다가 주머니에 진동이 느껴져 확인했다.

<※속보! 정부가 곧 던전 공략을 포기하기로 결정!

*덩달아 헌터도 사유화?

날뛰는 이능력자들을 방조하는 무능력한 정부?

*던전의 사유지화? 던전까지 집값에 방조하나~~~~~~~~

(화남) 대한민국 큰일이 낫네요~~~~~~

*어찌 이런 사태가 이 뒤에는 헬리오스?!

*헌터청장은 이런 걸 모르는 척하면서도 당당하게 국민 앞에 서는가?

(혹시 북한에서 내린 지령인가? 북쪽 수괴와 관련이 없는지 확실히 규명!)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동영상은 꼭 청취하시고 전파해 주세요!!

https://……>

“뭐야?”

“가짜 뉴스.”

심지어 내가 등록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채팅방을 나가기 전에 차단하려는데 갑자기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형민이 보여줬던 박선행 씨의 프로필 사진 속 그 안경이다. 모양과 색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평범한 안경으로 바꿨지만, 분명 이런 안경을 쓰고 프로필 사진을 찍었었다. 안경만이 덩그러니 있는 사진이 의미심장했다.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승규는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근데 이거 진짜 맛있다. 너 나중에 식당 차려라.”

의심의 이응도 하지 않았다. 승규가 오랜만에 좋게 보였다.

* * *

승규가 집에 갈 때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시간은 또 왜 이렇게 더럽게 안 흐르는지,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결국에는 꼴사납게 체하고 말았다.

“지가 만들어놓고 체하면 억울하지 않냐.”

내 말이.

“참어.”

승규는 자신의 할머니 말투가 되어서는 라이터로 바늘을 달구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팔꿈치부터 열심히 주물렀다. 헌터청에 있는 동안 그렇게 똑똑하다는 연구원들한테도 물어봤는데 분명 손 따는 건 효과가 없다고 했다. 그래 놓고 자기들도 돌아가며 손 따준 거, 다 안다. 그리고 진짜로 이거 효과 있다니까.

“참어라.”

“몇 번 말해. 심장도 뚫려봤는데. 그냥 찔러.”

“그러네. 심장 뚫리는 것보단 아무래도 덜 아프지.”

불에 달궈서 소독한 바늘이 엄지손가락에 야무지게 구멍을 냈다. 검붉은색 피가 구슬처럼 올라왔다. 그렇게 몇 번 더 찔렀다. 알코올 솜으로 손가락을 닦았다. 고마운데 이러다간 승규가 돌아가지 않고 눌러붙어 자게 생겼다. 핸드폰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그 때 마침 승규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님이신 것 같았다. 걸쭉한 욕설이 들렸다. 교회 다니시면서 욕 끊으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승규는 알았다고, 알았다고 하고 통화를 종료하더니 귀를 문질렀다.

“누가 두릅 따먹었대.”

“두릅을? 그런 것도 키우셔?”

“어. 이사 가면 애써 키운 호박이랑 두릅이랑 파 어쩌냐고 난리셔.”

“그냥 이쪽으로 모셔. 사시던 곳이기도 하고 전원주택 많아졌어.”

“그럴까 봐. 이거 볼래?”

승규가 화면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경고 문구가 찍혀 있었다.

<출소 후 유일한 낙. 두룹 따먹지 마시오. 먹으면 죽음. 지난주에도 한 놈 주님 곁으로 감.>

“와우. 이걸 보고도 먹는 놈이 있네.”

“동물 아닐까 싶다. 하여튼 나는 가봐야겠다. 밥 잘 먹었고. 두부라도 사 왔어야 했나 싶네.”

취하지 않고도 주취자가 된 신기한 일이 일어났을 뿐이지 범죄자가 된 것도 아닌데. 승규를 내보내며 두부는 다음에 사달라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멀어지는 차를 보며 진짠데, 하고 중얼거렸다. 범죄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현관문을 굳게 잠그고 핸드폰을 꺼냈다. 링크를 눌러 들어가니 채원우와 보고 마구 웃어댔던 조악한 영상이 나왔다. 여전히 문화회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에서 만든 것 같은 퀄리티였다. 원색, 원색, 그리고 또 원색이었다.

박선행 씨가 이런 걸 보낸 이유가 분명히 따로 있을 거다. 나는 고작 20초 봤다고 피곤해지는 눈을 비비며 앉았다.

―여러분, 그동안 이 채널을 보신 분들이라면 이제는 모두 아실 겁니다. 우리는 종말이 다가오고 있어요. 그러나 종말이 뭐다? 뭐다?

뭐, 라기보다 모, 에 가까운 발음이었다. 전자음이 귀에 거슬렸다.

―오히려 축복이지요. 던전은 새로운 계시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는 문을 얻은 것입니다. 헌터청은 바로 이 사실을 알고 우리를 통제하는 겁니다. 들어갈 수 없게!

“와. 진짜 미친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이미지와 한 프레임 프레임마다 별처럼 번쩍거리는 이미지에 진짜로 머리가 아팠다.

그러다가 눈에 거슬리는 걸 느꼈다. 그냥 반짝임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10초 전으로 돌아갔다. 한 번으로는 기시감을 밝혀낼 수 없었다. 더 많이, 더 여러 번, 더 자세히 봐야 했다.

“이게 뭐야…….”

어디서 또 무단으로 긁어온 사진이거나 이런 걸 믿는 사람들 사진인 줄 알았는데, 마구잡이로 팝업되는 이미지 속에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작은 화면으로는 부족했다. 노트북을 켰다. 켜지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겨우 다시 영상을 켜 내가 발견한 시점으로 타임라인을 옮기니 그곳에 분명히 내가 아는 얼굴이 있었다. 낯익은 수준이 아니었다.

“강 팀장…….”

강 팀장이 그곳에 있었다. 사진은 명함처럼 보였다. 겨우 강 팀장이라고 알아볼 수 있었고 글자도 겨우 일부만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화면 속에 너무 많은 정보가 있었다. 정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절대 알아볼 수 없었다.

명함 속 내용은, 헬리오스 한국 지부장, 그리고 내가 익히 아는 성 강 씨가 아니라 채 씨가 그곳에 있었다.

* * *

채 씨가 그렇게 흔했나?

인터넷에 채 씨를 검색했다. 던전 발생 전과 후의 숫자가 달랐다.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연히 내 주변에 있던 채 씨가 연관이 있을 거라고 확신할 정도도 아니었다. 또 그렇다고 ‘우연이겠지’ 하고 핸드폰 덮고 잘 정도도 아니었다.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박선행 씨가 보낸 연락이 신경 쓰이면서도 피곤해 머리만 대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젠 아니었다. 오늘도 날밤을 까게 생겼다.

팽팽 돌아가는 머리가 시간도 모르고 아드레날린을 뿜어댔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어도 멀미가 느껴질 정도로 뇌가 활동했다. 담배를 피우고 따뜻한 물에 손가락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씻고 나왔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을 노려보다가 이미 한참 늦은 시간인 걸 알면서도 답장을 보냈다.

<이제 저도 던전의 은혜를 믿습니다. 종말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말이 오기 전에 고백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뵙고 싶습니다.

P.S 화면이 너무 번쩍거리네요. 색을 조금만 부드럽게 사용하시는 게 어떠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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