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81화 (8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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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요 앞에 알바 시작했는데 거기서 팔더라고요. 제가 편돌이 경력이 좀 되는데 신기해서. 한 대 드릴까요?”

“어어? 나를? 아니, 그랬으면 해서 말을 건 건 아닌데 말이에요.”

“상관없어요. 많이 피우세요. 이거만 다 피우면 안 피울 거 같아서요.”

박선행 씨는 화색이 되어서 담배를 받아 들었다. 나는 재떨이를 핑계로 문 쪽으로 움직였다. 재떨이, 재떨이, 하면서 부산떠는 척 부스의 문을 잠갔다.

“그냥 여기에 버리면 돼. 쓰레기통이 아니라 재떨이지 뭐.”

“예에. 그럼.”

나는 여전히 뭉개지는 발음으로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그리고 꾸벅이며 담배를 비벼 껐다.

문도 잠겼고 여기에는 우리밖에 없고 밖에도 아무도 없다. 나는 담배를 하나 더 피우기 위해 바람을 등진 척 섰다. 부스 안에 무슨 바람이 있다고. 그렇게 박선행 씨와 옆이면서 마주 본 위치에 서서 속셈을 드러냈다.

“헌터청 내부 커넥션 조사, 아직 하세요?”

박선행 씨의 눈빛과 표정이 단번에 바뀌었다. 드문 담배 메이커 동지를 만났다는 기쁨에서 번뜩거리는 본능을 지닌 기자로.

“헌터청을 건드릴 순 없어요. 아래를 건드셔야죠. 무너뜨릴 순 없어도 단 하나 정도는 뺄 수 있게.”

“……뭡니까. 목적은 뭐고 누가 보냈습니까.”

“목적은 개인적인 거고 보낸 건 전데요.”

나는 싱긋 웃었다. 이제 보니 형민이랑 눈썹이 좀 닮으셨네.

“개인적인 이유로 움직이는 거라고요.”

“……사람들은 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움직이긴 하죠. 그걸 누가 이용하냐가 문제고.”

“이용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기자님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거라면 모를까.”

“나를 말입니까?”

“일단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야죠. 헌터청과 이미 망한 기업을 엮어봐야 잠깐 반짝하고 말아요. 다른 것도 있어야 썸네일이 나오지 않겠어요?”

나는 어느새 탄 부분만 길어진 박선행 씨의 담배를 빼앗아 대신 털어줬다. 그리고 그의 손에 다시 꽂아주며 중얼거렸다.

“못 믿겠다면 무시하셔도 좋아요. 저도 박 기자님 다 믿는 거 아니니까요.”

* * *

나오는 길에 칼바람이 불었다. 나조차도 너무 춥단 생각에 절로 몸을 웅크리게 되었다.

안 그래도 지하철을 애용하지 않았는데 시청역 던전 이후로는 더더욱 기피하게 됐다. 좀 더 떨어진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타이밍도 안 좋게 직전에 버스가 떠나서 한참 기다려야 했다.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왔던 길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니 검은색 SUV 차량이 한 대 보였다. 조수석으로 가서 창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었다.

“선팅을 이 정도로 하면 법으로 걸리는 건 둘째치고, 앞이 보이긴 해요?”

당연히 대답이 없었다. 손을 펴서 햇빛을 가리듯 눈을 가리고 안쪽을 들여다봤다. 어렴풋한 사람 인영만 겨우 보였다.

“그리고 요즘도 이렇게 대놓고 수상한 차로 미행을 하네. 헌터청이 보낸 거예요? 아무리 독립성과 자율성이 주어진 국가 기관이라 해도 이러면 쓰나. 나 이제 일반 국민인데.”

그제야 차문이 벌컥 열렸다. 하마터면 높은 코가 깨질 뻔했다. 뒤로 밀려나자 한 덩치 하는 남자 둘이 내렸다. 다행히도 경호원같이 대놓고 ‘나 무슨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는 복장은 아니었다. 그 둘이 나를 잡아 누르려 하길래 뒤로 싹 돌았다. 손을 뒤로 돌려 알아서 차문을 열었다.

“나 데리러 온 거죠? 알아서 갈게요. 우리 힘쓸 필요 없잖아요.”

천천히 몸을 숙여 뒷걸음질로 들어갔다. 일단 한 발을 얹고 몸을 돌리는 순간 목에 주삿바늘이 꽂혔다.

헌터청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을 확률: 91%, 나를 쫓아올 확률: 전자가 실행되었을 경우 100%로 예상했었다. 뒤에서 머리를 쳐서 의식을 잃게 하거나 클로로포름으로 마취되는 것까지도 각오했는데, 목에 꽂힌 약은 뭐지?

당연한 불쾌감에 팔을 뒤로 돌려 치려는 순간 머리에 거센 충격이 이어졌다. 아씨, 세 개나 맞았네. 어디 자리라도 구해서 점집이라도 차려야 하나.

암전하는 시야 속에 정신만 멍하게 살아 있었다. 미리 눕혀둔 시트에 날 짐짝처럼 던지는 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안전벨트도 매준다. 도로교통법을 이렇게 지키는 놈들이 선팅을 저따위로 해?

곧 문이 닫혔다. 손가락이라도 까딱해 보려고 했지만 안 됐다. 곧 두 사람이 차에 탔다.

“깼어?”

“아니. 확실히 잠들어 있어.”

“돈도 톡톡히 받아갔다면서 왜 저 지랄인지 모르겠다. 비밀 엄수 계약서는 왜 쓴 거래?”

“한글을 못 읽나 보지. 가이드들 멍청해서 이용해 먹기 좋단 얘기 못 들어봤어?”

“아니. 가이드만 잡아두면 헌터들 이용하기 좋단 이야긴 들어봤는데.”

저딴 편견에 가득 찬 개소리를 농담이랍시고 낄낄대고 자빠졌다.

가이들만 잡아두면 헌터들을 이용하기 좋다는 건 반만 맞았다. 유대감이 깊이 쌓인 페어가 아닌 이상 가이드는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약물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안정화 수치가 40퍼센트에 불과해도 헌터나 에스퍼는 더 나은 가이드를 만날 때까지 버틸 수 있으니까.

채원우가 특이한 케이스였을 뿐이다……. 걘 진짜로 나 없으면 안 되니까.

차가 출발하는 순간 그 움직임이 지진처럼 크게 느껴졌다. 뇌가 훅 쏠리는 기분이었다. 메슥거림과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멀미약을 먹은 것처럼 저항할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이 감기는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디로 오래?”

“그…….”

그래서 어디로 간다고?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들어도 해석하지 못했을 거다. 갑자기 멀미가 미친 듯이 난다. 대체 무슨 약을 놓은 거야. 마취약 맞아? 이미 몸에 힘이 쭉 빠져 있었지만, 이제는 정신도 혓바닥도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약효 도는 모양인데?”

“조심해. 가이드 중 손꼽히는 놈이야.”

“헌터도 아닌데 뭘 조심까지야.”

“헌터청 소속 헌터 수준은 아니어도 사설 길드 소속 헌터 정도는 된다니까?!”

“그거 어차피 자경단 수준 아니야?”

“스파이더맨도 배트맨도 자경단이거든?”

“뭐래, 씹덕이.”

나를 두고 저들끼리 말도 많다. 차라리 목적이 있으면 빨리 이루고 어디다 버리든 하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토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만큼 매스꺼웠다.

“자. 여기 보세요옹.”

“보여야 보지.”

“어라. 말 잘하는데.”

“잘하긴. 혓바닥에 벌침 맞은 것처럼 발음 새는구만.”

내 발음 가지고 별 망언을 다하네. 애써 눈동자에 힘을 주는데도 1초 만에 초점이 풀렸다. 내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 안 보고 싶었다. 안 봐도 뻔한데, 그러니까 안 볼래.

“양백겸 씨, 기밀 서류 가지고 있죠?”

“음.”

“가지고 있는 거 알아요. 유출했습니까? 누구한테 했어요?”

“안 했는데…….”

“다 아는 사이끼리 이러지 마시고.”

“그쪽 모르는데…….”

“그 말이 아니잖아요.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잉. 헌터청에서 출력해 간 서류 어디 있습니까? 대답할 필요 없어요. 그냥 고개만 끄덕이거나 저으면 됩니다. 양백겸 씨 집에 있어요?”

그 순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조종되듯 고개가 끄덕여졌다! 속으로 경악을 했다. 아마 엄청 느린 속도로…….

“음. 좋아요. 그럼 다음 질문인데, 그거 누구한테 건네줄 생각이었어요?”

“토…….”

“토요일? 토요일에 건네줄 생각이란 말입니까?”

“토…….”

“토요 가요제?”

“토할 것 같…….”

“어어!”

나를 향해 돌아보고 있던 조수석의 남자가 옆을 마구 쳐댔다. ‘세워! 세워!’ 하는 소리에 나는 더욱 실감 나게 구역질을 시작했다. 웩웩대는 소리에 사색이 되어서는 ‘나 비위 약하다고!’ 하며 비명을 지르던 연약한 요원께서 차에서 뛰어내렸다.

곧이어 정차했고 요원이 내가 있는 쪽 문을 열었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가…… 뛰어내렸다……라고 생각했고 안타깝게도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앞으로 고꾸라지며 안전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머리를.

“이런 씨발. 좆됐다.”

내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간 요원은 골이 징징 울려서 말 그대로 정신줄을 놓기 직전의 나를 질질 끌더니 길가에 던져 두었다. 꽤나 그럴싸하게 길가에 앉혀두고는 차에 있던 손소독제까지 나한테 뿌렸다. 옷이 축축해지며 알코올 냄새가 싸하게 올라왔다.

“야, 가. 집 주소 알지?”

차는 바로 사라져 버렸다. 개새끼들이. 한국인끼리 정 없이 구네. 나는 욕을 씨부렁댔지만 전원이 꺼진 양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엔 알코올 냄새만 엄청나게 났고.

곧 인기척이 났다. 학원 앞이었던 모양이다.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며 오늘 시험이 어쨌니 저쨌니 숙제가 많니 적니 하다가…… 너무 미안하게도 내 꼴을 발견해 버렸다.

“아악!”

애들이 연쇄적으로 소릴 질렀다. 이해한다. 나라도 소리 지르겠다. 눈은 감고 시체처럼 늘어져 앉아선 알코올 냄새를 풀풀 풍기는 잘생긴…….

“야, 저거 너 미래.”

“아니거든. 니 미래.”

너무하네…….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어른보다 나았다. 곧 애들이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여보세요. 여기요,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나는 부디 아이들이 누른 번호가 119이길 바랐다. 그것만을 바라며 내 인생 가장 추한 꼴로 기절하고 말았다.

* * *

또 그곳이다. 복도, 긴 벤치. 끝과 끝에 채원우와 내가 앉아 있던.

평소에는 기억을 꿈으로 보는 건데도 불구하고 내 몸 안에 내가 들어가서 내가 조종하는 느낌이 났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의식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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