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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시는 안 하려고요.”
“잘 생각했어.”
“결정적으로 정떨어진 건, 제가 파트너 형을 잃은 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다른 사람하고 가이딩 매칭을 시작하고, 신입 헌터들의 가이딩을 맡긴 때부터일 거예요.”
타코를 야무지게 싸던 형민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삽시간에 커다란 눈이 축축해졌다. 저 마음을 아주 잘 안다. 내 감정, 내가 상실한 사람의 존재 자체, 그 모든 걸 무시당한 채 마구 사용되는 프로그램의 일부처럼 느껴지지.
“그래도 그 덕에 사람들을 구하잖아.”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판에 박힌 교과서적 대답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다. 초반에는 스펙이니 뭐니 해도 나름 그런 쪽으로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던 형민의 반짝거리던 눈도 지금은 팍삭 식어서는 빛을 잃고 말았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구나, 자식.
“우리가 사람들을 구하면요.”
형민은 모히토 흉내를 낸 에이드를 술이라도 된 양 들이켜고는 진짜 취한 것처럼 불콰해져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는 누가 구해요?”
“알아서 구해야지.”
재수 없나? 하지만 의도한 말이었다. 나는 일부러 차갑게 굴었다. 형민은 울적해 보였다. 결국 손을 들어서 술을 시켰다. 나만 안 취하면 되고 나한테 술 냄새만 안 나면 되는 거라서 형민이 마시는 건 그냥 두었다. 오히려 좀 취하는 게 수월할 거다.
“가이드가 되고 나서는 잘 취하지도 않아요.”
형민이 투덜거렸다. 잘 알지. 나도 가이드니까. 가성비 안 좋은 주당들이 된 거다. 이런 우리보다 배나 잘 마시는 김승규는 대체 간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흥미로운 헛소리를 가설마냥 세워봤다. 던전이 터진 이후, 사실 사람들은 다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헌터와 가이드는 개중 가장 적응을 잘한 거고.
형민은 학교를 다닐 적에 과학을 잘 못했다면서 모르겠다고 했지만, 곧 ‘돌연변이 초능력자 같은 거죠?’ 하고 나름 이해를 했다.
우리끼리 이해를 한다고 뭐 달라지는 건 없지만.
나는 형민의 얼굴이 적당히 발그스름해졌을 때 떠봤다.
“너희 작은아버지 기자시라며?”
“네. 어! 그러고 보니까 여기 근처에서 근무하세요.”
“작은아버지도 너처럼 동안이셔?”
“네. 완전 동안이죠.”
형민은 킥킥대고 웃었다. 볼이 빨그스름하니 진짜 고등학생 정도밖에 안 되어 보였다. 그것도 갓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어려 보인다.
조금 캐냈을 뿐인데 형민은 가족 신문이라도 만들 때처럼 아주 자세하고 상세히 작은아버지에 대해 늘어놓았다.
“특종 진짜 잘 터트리셨어요. 지금은 데스크에 계시지만, 아직도 현장 욕심 많으시고요. 감이 진짜 좋으세요. 이게 되는 껀덕지다, 아니다.”
그런 작은아버지를 가졌지만, 형민이는 이게 어떤 건덕지인지도 구분을 못 했다. 나로서는 이름만 알면 될 일이었다. 더 캐물을 필요도 없었고 형민이가 여기에 더 연루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마시던 에이드까지 내밀었다. 그러자 형민이가 나름 진지하게 거절했다.
“원우 형 생각나서 못 마시겠어요.”
“엉? 그게 뭔 소리야. 너 채원우 좋아하냐?”
“아뇨. 채원우 헌터가 형을 너무 좋아해서 간접 키스도 안 될 것 같아요.”
“간접 키이스~?!”
나는 심히 유치한 단어에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뭔, 초등학생이냐?! 왜? 내 혈액형도 물어보지 그랬어……!
하지만 형민이는 진지해 보였다. 심지어 금방 울적함을 극복하더니 자기 인생 플랜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물어본 게 아니다. 궁금해 한 적도 없었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느니, 노동법이랑 인권법에 대해 더 공부해 볼 생각이니 어쩌니 하는데, 헌터청에서 뭔가 각성하고 온 모양이긴 했다. 그런데 헌터를 비롯한 이능력자들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아직 인권의 영역에 넣냐 안 넣냐 논란이 많아서……. 됐다. 뭐, 그 새끼들 하는 꼴을 보면 당연하지.
“형. 이거는 정말 비밀인데요.”
“비밀이면 말하지 마.”
“아뇨.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고갤 기울이는 형민의 표정이 비장했다. 이거 멕시칸 타코 집에서 들어도 되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다행히도 타이밍 좋게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소리가 무척 커졌다. 때마침 단체 손님들도 우르르 들어왔다. 정말 청력이 좋다 하더라도 우리가 속닥거리는 내용이 무엇인지까지 알 수는 없을 거다.
“헬리오스가 철수하긴 했는데, 사실상 그 안의 직원은 대부분 헌터청에 흡수되었다는 소문이 있어요.”
“…….”
“장난 아니죠? 저희 작은아버지가 이거 조사하려다가 외압이…….”
“뭔 도시 괴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나는 형민의 이마를 검지로 밀어냈다. 그리고 남아 있던 술을 들이켰다. 술 냄새를 풍기지 않겠다는 계획이 무너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몫의 맥주도 시켰다.
“우씨. 진짜인데.”
“진짜겠지. 그런 썰이 있다는 게. 넌 그런 음모론을 믿냐?”
“그래도요…….”
“그리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걸 그냥 막 떠들어? 날 뭘 믿고? 그리고 그런 널 뭘 믿고 작은아버지께서 진짜일 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이야기를 하셨겠냐?”
“어어……. 그런가?”
“어. 너 속은 거야. 옛날부터 작은아버지한테 많이 속았지?”
형민은 말솜씨만 번드르르한 사짜 점쟁이에게 홀린 것처럼 벙 찐 표정을 했다. 이 숭악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려고……. 승규네 할머니와 거의 똑같은 혀 차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딴 헛소리 믿지 마라.”
치즈가 다 굳은 감자튀김을 먹으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형민이 작게 박수를 쳤다.
“형은 진짜 대단하네요. 진짜요. 전 이런 거 들으면 다 속아 넘어가거든요.”
“돈 관계에 엮이지만 마……. 아, 보증도 서주지 말고.”
태연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것처럼 떨렸다. 이것과 내가 가진 패를 잘만 엮는다면 시간을 벌고 잠시라도 주의를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많이도 아니다. 잠시만 돌릴 정도면 되는데…….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어? 엄마다.”
형민이 중얼거렸다. 여보세요, 하고 명랑하게 전화 받는 소리에 나는 시선을 내렸다. 벌써 거의 다 비운 맥주잔 너머로 굴곡된 손가락이 보였다. 형민의 어머니는 나온 지 꽤 되었다는데 어디냐는 소리부터 왜 연락을 안 하냐는 걱정 섞인 짜증을 아들에게 털어내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을 볼에서 떼고 어디 가세요? 하는 형민에게 그저 화장실을 가리켰다.
화장실 대신 카운터에 가서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을 끝내고 자리에 돌아오니 형민은 ‘어어, 알았어. 들어간다니까.’ 하며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저, 가야 할 것 같아요.”
통화를 끝내자마자 머쓱한 표정을 하며 양해를 구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계산 내가 했어.”
“형이요? 에이, 왜 그러셨어요! 제가 퇴직 턱 내는 거라니까요!”
“됐어. 내가 낸댔잖아. 난 친구 만나기로 해서 여기서 시간 좀 때우려고. 잘됐다. 너도 얼른 들어가.”
“헐. 이중 약속 잡으신 거예요? 매너 없다.”
“정확히는 이중 약속은 아니지. 너랑 약속 잡은 적은 없으니까. 얼른 가줄래?”
“알았어요! 다음에 연락해요!”
꽃밭 그 자체인 형민이 나를 와락 껴안고는 손을 붕붕 흔들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붙임성이 좋은 애였다. 나는 잠깐 얼이 빠졌다가 손을 마주 흔들어줬다.
* * *
일간지로 시작해서 방송까지 손을 뻗은 언론사. 나는 까마득하게 높은 빌딩을 올려보다가 막연히 그 앞 화단에서 기다렸다.
흡연 부스가 보이는 곳이었다. 손에는 평소에 피지 않던 담배가 들려 있었다. 안에 들어가서 두어 개비 정도 연달아 피었다. 독특한 인삼 냄새 같은 게 나고, 내가 평소에 피던 것보다 조금 더 독하기도 해서 기침이 났다. 그것도 두 개비째에서는 더는 그러지 않았지만.
그리고 다시 구석진 화단에서 기다렸다. 멍하니 들여다보는 핸드폰 화면엔 형민의 작은아버지 사진이 떠 있었다. 인터넷이란 참 신기하고 무섭다. 찾으면 안 나오는 게 없으니.
박형민의 작은아버지, 박선행. 사진 속 그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피로해 보였다. 형민과 다르게 깐깐한 인상이었고. 나는 닳도록 그 사진을 보며 오가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며 우르르 몰려와 있던 인파가 한 번 지나가고 나니 한가해졌다. 조금 더 기다리자 목에 건 사원증을 앞주머니에 쑤셔 넣은, 피곤해 보이는 박선행 씨가 눈에 띄었다. 좀 더 피곤하고 깐깐해 보이는 것 말고는 사진과 다른 게 거의 없었다.
‘동안 집안이네.’
그리고 나는 약간의 운을 바라며 타이밍을 기다렸다.
형민이 이것저것 떠든 덕에 박선행 씨가 담배는 꼭 두 개비를 연달아 피우는 걸 알았다. 그것도 주변에서 잘 피우지 않는 독특한 담배를. 약간의 운은 여기서 필요했다. 그 담배가 마침 딱 떨어져야만 한다.
박선행 씨가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우고 재떨이에 비빌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장 박동은 도리어 침착했다. 부스를 열고 고갤 드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며 빈 담뱃갑을 구기는 박선행 씨가 보였다.
‘감사합니다……!’
속으로 환희를 삼켰다. 겉으로는 모르는 척, 남남인 척 굴었고.
박선행 씨 옆으로 가서 담뱃갑을 꺼냈다. 일부러 만지작거려서 평소에도 들고 다녔던 것처럼 구긴 상태였다.
박선행 씨는 옆에서 부스럭거리니까 자연히 내게 시선을 주었다가 자신이 피우던 담배와 똑같은 걸 보고 눈을 멈췄다.
“……젊은 친구들은 잘 안 피우는 건데.”
나는 일부러 눈꺼풀에 힘을 빼고 발음을 뭉개며 되물었다.
“예에?”
“아, 아니요. 그건 젊은 친구들이 잘 안 피우는 거라서 신기해서.”
“아, 이거요?”
매가리 없는 눈빛을 고수한 채 손목에도 힘을 빼고 털레털레 흔들었다. 박선행 씨의 경계심은 당연히 녹아 사라지다 못해 문드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