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채원우가 다녀간 이후로 불면증이 찾아왔다. 첫 번째 파트너를 잃은 이후로 처음이었다. 밤이 길어지고 그 긴 시간을 잡생각으로 채우다 보니 묻어두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건 당연했다.
첫 번째 파트너를 잃고 PTSD에 시달릴 때도 들었던 말이 규칙적인 생활의 중요성이었다. 특히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는 것을 굉장히 강조했었는데, 오랜만에 수면 패턴이 엉망이 되니 그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죽은 파트너의 모습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이후의 일이 떠오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으면 거기에 꽂힌 사람처럼 내내 그 생각만 했다.
다시는 보지 말자던 채원우의 협박은 일단 본인이나 지켜야 옳았다. 채원우가 끊임없이 내 기억 속에 떠오르는 건 내가 원해서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두 번째로 괴롭고, 가족을 잃었을 때보다 더 큰 절망을 했을 때 네가 있었으니까.
‘양백겸 가이드.’
파트너를 잃고 심리 상담을 받던 그때 나는 가이드라는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에 치를 떨었다. 내가 고집스럽게 시선을 떨구고 있으면 상담사는 다시 부드럽게 불렀다.
‘백겸 씨?’
스스로 입을 다물었던 시기니 대답을 하는 건 아니었다. 꺼멓게 죽은 시선을 올리면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였다.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점점 돌아오고 있는데도 심리적 상태에 따라서 매번 달라졌다.
사실 내 감각이 비상하게 좋아졌다는 것에도 여전히 적응을 못 하던 때였다. 내 몸에도 적응이 안 된 상태로, 살기 위해 가이드로 활동했다. 그리고 겨우 가족의 죽음에 적응하려던 차에 파트너가 죽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절망이 나를 덮쳐서 떠오르지도 못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시력도 잃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고.
내 모습이 얼마나 엉망이었을지 어림짐작이 된다. 돌이켜 보면 채원우가 그때 내 모습을 보고도 반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채원우의 눈이 안타까울 정도로 낮거나. 혹시 심미안이 대단했나? 당시 꼴이 엉망이긴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괜찮잖아.
낮이었으면 이딴 생각을 하며 주의를 돌려 삽질을 그만뒀을 텐데 새벽에는 그렇지 못했다. 새벽이야말로 삽질의 성수기였다. 깊은 생각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특효약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사상가나 철학자는 못 될 모양이었다. 다시 과거로 빨려들어 갔다.
‘요즘 잠은 잘 자요?’
당연히 못 자지. 그딴 걸 왜 물어.
‘극단적인 충동은 얼마나 들어요?’
자주 든다. 특히 밤과 아침에 가장 심했다. 계절성 우울증이 아니라 시간성 우울증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새로 관심이 가거나 하는 것도 없구요.’
그 순간 아주 흐리게 어린애가 떠올랐다. 어린애라기보다 청소년이겠지. 변성기의 초입인지 앳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였고 팔다리가 길었다. 한참 자랄 때일 텐데 이미 키가 꽤 컸다.
기억하는 건 실루엣뿐, 얼굴은 잘 모르겠다. 그때 컨디션이 좋았어도 기억하지 못했을 거다. 사람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은 지 꽤 되었으니까.
개개인에 따른 안정화 수치를 데이터 베이스화하는 실험, 명목상 봉사에 참여한 지 어느덧 3개월이 되었는데도 기억하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매일 잡는 손들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그 애의 목소리와 체형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저는 백겸 씨가 좋아하는 게 생겼으면 좋겠어요. 많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하나만 있어도 좋아요. 그게 음식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지요.’
나는 고개를 내저었던 것 같다. 사람은 지겨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고 그 후 처음으로 애착이 생긴 사람까지 죽고 나니 겁쟁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겁쟁이긴 해도 비겁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둘 중 뭐가 더 낫고 뭐가 더 찌질한 건진 모르겠지만. 더는 괴롭고 싶지 않아서 아무도 좋아하지 않겠다는 건, 내 나름의 생존 본능이자 보호 본능이었다.
상담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기억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다. 오히려 채원우에 대한 기억은 점점 선명해졌다. 아직 다 기억나는 건 아닌데도.
상담실을 나와서 다시 실험실로 향했을 때. 벤치에 앉아 대기하는 동안 이대로 세상이 멸망하거나 내 심장이 멎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그럴 때면 어김없이 가벼운 발소리가 났다. 다가와서 끝자리에 앉아선 아무 말도 안 걸고 곁에 있기만 했다.
우리는 벤치의 끝과 끝 자리에 있었고 나는 한 번도 고갤 돌려 너를 보지 않았는데도, 이제는 그게 채원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날은 그 기억이 맞나 아리송했다. 아니면 많은 날들 중 하나인데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때의 기억은 노상 흐릿했다. 하루하루로 기억하지 않고 엉망으로 뭉갠 찰흙 덩어리처럼 그때, 그 기간, 이라는 느낌으로 어렴풋했다.
그렇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채원우가 내게 다가왔다.
‘형. 왜 울어요?’
그렇게 묻길래 내가 우는 줄 알았다. 나는 벽에 몸을 주르륵 기대며 입을 꾹 다물었다. 속으로는 생각했겠지. 내 인생이 거지 같아서. 어쩜 이렇게 상실밖에 없을 수 있나 싶어서.
‘여기 있는 게 괴로워요?’
그럼 넌 여기 있는 게 좋겠냐? 내 꼴은 엉망이었고 채원우는 말투나 목소리가 어느 모로 보아도 귀한 집의 철없는 도련님 같았다.
사실 새끼 헌터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체험학습 하러 온 국회의원 아들이나 헌터청 직원 아들인 거 아냐? 하는 삐딱한 의심은 매일매일 솟아났다. 적어도 그런 의심을 할 때만은 죽고 싶단 생각을 안 했지만.
‘그러면…….’
나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어떻게 납득을 한다. 신기한 애였다. 어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보자…… 하는데 갑자기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어린 채원우의 입술은 뻐끔거리는데 쿵쿵거리는 소리 때문에 하나도 안 들렸다.
곧 세상이 흔들리며 눈을 떴다.
꿈이었다. 술을 마시고 차도 마시고 별 난리를 피우고 채원우 생각이나 하다가, 잠든 줄도 모른 채 까무룩 기절한 거다. 너무 깊이 생각하던 게 꿈으로 나타나는 건 그렇게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특이한 건 이 꼭두새벽부터 찾아와 남의 대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는 걸 말하겠지.
후드티를 뒤집어쓰며 중문을 열었다. 여차하면 한 대 날릴 생각으로 주먹을 쥐었다. 헌터가 아닌 이상 내가 이길 테고, 어디 레드존까지 경찰이 얼마나 빨리 오는지 경험하게 해주는 것도 좋겠다. 털 때는 좋았겠지만 네가 털릴 땐 아닐 거란다.
“누구세요.”
말투만으로는 ‘어떤 무뢰한 손님 새끼십니까?’였을 거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벌컥 여니 눈물범벅이 된 승규가 보였다. 이미 한참 울었는지 붕어 눈꺼풀이 다 되어 있다. 오랜만에 본 친구의 아주 못난 모습에 당황해선 할 말을 잃은 사이, 김승규는 허락도 받지 않고 나를 밀치며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들어오면서 다짜고짜 흐어엉, 우는 놈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나 확인하니 아침 7시 21분이었다. 내가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일렀다.
승규는 내가 누워 있던 이불에 엎어져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다. 하나도 안 귀엽고 짜증은 났다. 나는 다가가서 쪼그려 앉아 김승규의 머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아니. 건져 올렸다고 할까?
회색 베개 커버에 눈물 콧물 자국이 그대로 찍혔다. 진짜……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너 뭐 하냐?”
“나 차였어.”
승규에게는 꽤 오래 만난 애인이 있었다. 잘 만나는 줄 알았는데…….
“나 차였다구. 친구야. 사랑? 그런 거 다 부질없다.”
“전처럼 그냥 싸운 거 아냐?”
“아니야. 이번에는 진짜야. 내가 이미 사흘 밤낮으로 빌고 전화도 했는데…… 어제부로 차단됐어.”
이번 한 번만 베개를 엉망으로 만드는 걸 허락해 주기로 했다. 좀 진정이 될 때까지 나도 잠이나 깨고 세수나 하고 와야겠다.
내가 발치로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며 세수하고 머리 감고 양치하고, 아침맞이 담배를 태우고 드립 커피까지 내리는 동안 승규의 울음소리가 점점 멎어갔다.
내가 두 잔의 드립 커피를 내려 김승규에게 내밀 때쯤엔 눈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 있었다. 코도 꽉 막혔는지 목소리가 먹먹해져 알아먹기가 힘들었다.
“할머니 말대로 사랑은 자해야.”
“……할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어.”
“…….”
인터넷에서 본 말 같은데……. 일단 우는 애가 그렇다고 하니까 흘려넘기자.
“사랑은…… 자해다…….”
귓등으로 흘리며 커피를 홀짝였다. 꿈은 생생한데 채원우가 했던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게 찝찝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내내 벤치 끝에 앉아 있던 게 전부인 줄 알았던 기억에서 처음으로 다른 걸 보았는데.
“미안. 내가 깨웠냐.”
“빨리도 물어본다. 네가 이불 빨래하고 가.”
“왜? 오줌 쌌어?”
“오줌은 네가 눈, 코, 입으로 내 베개에다 싼 거 같은데.”
나는 짜증스럽게 일갈하고 잔을 비웠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요란하게 쾅쾅대던 소리 말곤 기억나지 않는다. 채원우가 뭐라고 말했었지?
“네가 너답지 않게 굴었던 게 이해가 돼.”
승규가 여전히 코가 막힌 채 중얼거렸다.
“나도 나답지 않게 구질구질하게 굴고 싶어. 빌어도 좋고 무릎 꿇어도 좋으니까…….”
“승규야. 너 전 애인한테도 그랬어.”
“…….”
“너 지금 아주 너답다.”
개수통에 컵을 넣었다. 그래도 하나 있는 친구다. 해줄 수 있는 게 많진 않아도, 막힌 코라도 뚫리게 아주 매운 콩나물국이나 할까 싶다. 냉장고에서 콩나물과 다시마육수팩을 꺼냈다. 다 마신 컵을 아슬아슬하게 손가락에 걸고 멍하니 있던 승규가 나를 불렀다.
“백겸아.”
“엉.”
“형민이 작은 아부지 기자이신 거 아냐.”
“…….”
국간장과 액젓을 꺼내려던 손이 멈췄다.
“데스크급이셔. 네가 갖고 있는 자료, 좋아하실 거야.”
필요한 것을 꺼내고 찬장을 닫았다. 그러고 보니 고춧가루도 필요했다. 다진 마늘도. 씨발, 필요한 게 왜 이렇게 많아. 하나하나 챙기던 손이 떨렸다. 나는 결국 냉장고를 쾅 닫았다.
“예전에 헌터청과 헬리오스 사이의 커넥션 조사하다가 엎으셨대.”
“나한테 그걸 왜 말하는데?”
미친놈이냐며 화를 낼 때는 언제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손이 벌벌 떨렸다. 눈물 콧물이 쏙 빠지고 정신이 바짝 들 만큼 얼얼한 국이 필요한 건 쟤가 아니라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