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우리는 차나 커피 대신 술을 마셨다. 승규는 주당이었다. 나처럼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안 취하니까 마시는 놈이었다. 승규의 가족 모두 주당으로 소문났었는데. 할머님조차 온갖 담금주를 섭렵하시기로 유명했다.
그랬던 할머님이 술을 끊고 술 대신 종교에 중독되기 시작한 것도 던전 브레이크 이후였다. 아들과 며느리를 잃고 손주 하나 남은 이후로는 술 한 방울도 입술에 대지 않고 오로지 신앙에 관련된 곳만 다니신다고 한다.
“살다 보니까 여기도 괜찮아. 이쪽은 오히려 덜 터지고 있다더라. 던전 수맥이 고갈된 모양이지.”
“그래……?”
승규가 어딘지 떨떠름한 반응을 했다. 그 모습에 왠지 불안해졌다. 헌터청을 나온 이후로는 당연히 던전에 대한 최신 극비 정보들을 얻을 수 없었고, 더해서 뉴스는 일부러 기피하는 처지라 요즘 돌아가는 꼴을 몰랐다. 어쩐지 찝찝한데.
“무슨 일 있어?”
태연하게 묻고 있지만 가슴이 쿵쿵 뛰었다. 혹시 헌터청의 전력이 확 감소했대? 헌터청에서 가장 강한 헌터한테 무슨 일이 생기거나 했대? 등등…….
“네가 어디 가서 말할 친구 하나 없는 인맥 빈곤한 성격 파탄자니까 말해 주는 건데.”
이 새끼 뭐야. 칭찬이야 욕이야?
“요즘 던전이 사라지질 않는다.”
“뭐? 시청역처럼?”
“어. 시청역 다음엔 용산역 광장이었고, 지방에서도 그런 소식들이 속속들이 올라오나 봐. 불안함이 여간 높아진 게 아니야. 헌터청도 요즘처럼 욕 많이 먹을 때가 없을 거다. 그런데 뾰족한 수가 없는 거지. 게다가 이게 사라지지는 않는데, 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야. 그냥 동굴처럼…… 그곳에 있어.”
“그냥 있다고……?”
“건드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그래서 주변에 헌터들이 배속되어서 교대 근무하는 정도야. 이게 화산이긴 화산인데, 터지는 놈인지 쉬는 놈인지 죽은 놈인지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아.”
“…….”
이상한 이야기긴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반년쯤 지나면 그곳에 던전이 있다는 사실에도 적응하며 살게 될 거다. 만약 그게 죽거나 쉬는 화산이기만 하면.
“그거 말고 다른 소식은 없고?”
이미 안에 들어가 봤던 당사자로서, 휴화산에 한 표 던진다. 바로 옆을 지나갈 때조차 가만히 있던 몬스터들이 그 증거였다. 다만 건드리면 터지겠지.
건드리지 않으면 문제되지 않을 던전보다, 다른 문제가 나에겐 더 중요했다.
“다른 문제? 없는데.”
하지만 승규는 눈치라곤 쥐약에 쓸래도 쓸 데가 없는 새끼였다.
“아! 맞다!”
“뭐, 뭔데. 빨리 말해 봐.”
“형민이 보너스 탔대. 새끼……. 그만둘 줄 알았는데 갑자기 영웅 심리라도 생겼나. 열심히 일하더라. 요즘엔 철도 들어서 말수도 좀…….”
“안 궁금해. 안 궁금해.”
아오, 짜증 나. 내가 벌떡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하니 뒤에서 오징어 좀 가져오라고 난리다. 하지만 난 동해에 던전이 터져 그 안에서 크라켄이 나오는 걸 실시간으로 본 이후로는 오징어라면 입에도 대지 않는다.
나는 승규가 못 먹는 아주 매운 볶음라면이나 끓이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나 오늘 자고 간다!’ 하는 천연덕스러운 소리나 들렸다.
보일러를 틀고 거실에 이불을 폈다. 나란히 누워서 자니까 어렸을 때가 생각나지 않냐는 소리가 나왔다. 물론 내가 아니라 김승규가 한 말이었다.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건 우리 사이에 암묵적으로 금기시된 일이었다. 당황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 김승규도 바로 당황하여 분위기는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싸해졌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란 걸 알아서 내가 대신 수습해 줬다.
“우리 중학교 1학년 때 지었던 아파트 아직 잘 남아 있더라.”
곧 승규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색하고 뒷맛은 씁쓸했지만, 웃음은 웃음이었다.
나이만 먹고 몸만 자랐지 여전히 과거나 떠올리는 나와 김승규는 결국 마당으로 나왔다. 테라스에서 각자 담배를 피웠다. 어차피 취하지도 않는다며 술은 안 마시겠다고 하는 승규의 말술 기질에 질리고 말았다.
“사실 요즘엔 할머니랑 옛날얘기 좀 해. 나도 나이 들었나 봐.”
“그 이야기 할머님 앞에서 해봐라. 욕먹지.”
“그렇긴 한데. 근데…… 벌써 10년이다. 10년도 넘었어. 그러다 보니까 말해도 괜찮더라고.”
“아예 잊히는 건 아니잖아.”
“어. 솔직히 아직도 생생해. 특히 던전 브레이크보다 옛날일수록 생생해. 그래서 자꾸만 얘기하게 돼. 그때 기억들이 다 존나 좋거든.”
악바리처럼 살았다. 솔직히 승규가 에이전시 같은 걸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영부영 등신처럼 시간만 흘려보내며 살았을 거다. 내가 일을 하게 하고 어떻게든 움직이게 한 건 김승규였다. 그러니까 내가 유서를 늘 얘한테 쓴 거겠지.
“나 사실 그동안 유서 수신인 너로 써왔다.”
승규는 대놓고 얼굴을 구겼다. 하긴. 유서 같은 걸 받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
“근데 이제 너한테 안 쓸라고. 유산 떠넘기자니 네가 내가 바라는 대로 잘 쓸까도 모르겠고.”
“이 새끼가 나를 아주 그냥 쓰레기로 보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싶은 사람이 생겼거든.”
날씨가 추워서 이만 담배를 껐다. 팔짱을 껴서 옆구리로 손을 밀어 넣었다. 테라스에는 나무로 된 난간이 있었는데 거기에 다리를 올리고 캄캄한 밤을 구경하는 맛이 제법이었다.
“나 채원우 헌터랑 연애 같은 거 한 것 같다.”
“연애를 한 거면 한 거지 한 것 같은 건 또 뭐냐. 그것도 연애 같은 걸.”
“모든 게 처음이라 잘 모르겠어서 그래.”
의외로 연애 활동을 꾸준히, 왕성하게 해온 승규는 이게 무슨 헛소리냐 하는 눈으로 나를 봤다.
“너 동정이었어?”
이렇게 핀트 나간 소리나 해대는 놈이 어떻게 연애를 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띨빡하고 소신 없는 게 취향인 사람도 있겠지?
“동정은 아닌데, 뭐, 좋아하는 사람하고…… 그, 내 의지대로. 비즈니스가 아니라…… 감정 담아서 한 건 처음이지?”
난해한 어떤 두루뭉술한 걸 설명하듯이 허공에 손을 허우적댔다. 근데 얜 왜 이렇게 자세하게 캐물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닫았다. 그러자 승규가 징그럽게 붙어대며 더 말해 보라 재촉했다.
“더 말할 것도 없어. 채원우가 너무 강했고 헌터청은 노동청이랑 인권위에 뒤지게 처맞아야 하고 나는 돈 받고 나른 게 전부야.”
“네가 제일 쓰레기잖아?!”
“자세히 말하긴 싫지만, 제일 쓰레기는 내가 아니야. 강 팀장이라고 있어. 매드 사이언티스트.”
“와. 그런 게 진짜 있구나. 그럴 줄 알았어, 씨발. 꼭 세상이 망하면 그렇게 대가리 어딘가 돌아 있는 놈 하나 나온다니까. 너무 똑똑해서 미친 게 분명해. 아니면 박사 학위를 한 네 개쯤 따다가 미친 거지.”
“그게 그 말 아냐? 아무튼. 채원우가 위약금을 엄청 많이 줘서 그린존에 충분히 갈 수 있었는데 그 돈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고.”
“…….”
“걔가 없는 집이라니 싫었어. 나도 모르게 걔랑 내내 같이 살 거라고 생각했나 봐.”
“네 이런 모습 처음 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날이 추웠다. 밤에 청승맞은 이야기를 하며 감성에 젖어 드는 건 딱 질색이었다. 일기장에나 썼다가 아침이 되면 불태울 내용을 지껄이고 있었다. 그것도 김승규한테.
자리에 일어나서 문으로 향했다. 잠이나 자려는 내 뒤에 대고 승규가 녀석답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로 날 불러 세웠다.
“백겸아, 채원우 요즘 유명해.”
“……걘 원래 유명했어.”
“아니. 이름이 자주 나와. 그런데 그 이유는 몰라. 바깥에 함구하고 있는 것 같아.”
“그것도……. 걘 원래 그렇게 비밀이 많았고.”
“그런데 헌터청에 요즘 아슬아슬한 헌터가 있다는 이야기도 같이 나와.”
“…….”
“약을 때려 붓고 있대.”
채원우일 거다. 주어 없는 소문과 내용 없는 소문이 딱 맞아떨어져서 한 마리의 말이 되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까진 아니고 여기까진 온 거다. 하필 내 귀에.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비밀 보장 서약까지 하고 나왔다. 채원우에게 술에 취했다 치고 전화도 걸어봤지만 응답은 없었다. 며칠 후엔 번호도 바뀌었다. 헌터청에 찾아갈 수 없고, 헌터청은 더는 나를 가이드로 사용하지 않을 거다.
아니, 내가 할 수 없다. 아무리 채원우가 보고 싶어도 걔를 보겠다고, 다른 사람의 가이드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채원우에게 그 꼴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분명 오래 잡고 있던 문고리가 미지근해야 마땅한데, 내내 얼음장처럼 느껴졌다.
약을 때려 붓고 있다고? 아슬아슬하다고?
“악! 미친놈아!”
두 번째 담배를 물던 승규가 놀라서 꺅 소릴 질렀다. 내가 현관문에 대고 머리를 쾅 부딪쳤기 때문이다.
* * *
옆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도 상관없었다. 잠들 생각이 없었다. 나는 헌터청에 나온 이후로 3개월간 접하지 못해 밀린 정보를 미친 듯이 흡수하는 중이었다.
뉴스는 물론이고 동영상 플랫폼이나 SNS를 마구 뒤지고 있었다. 눈이 시려워 안경을 쓰고도 멈출 수 없었다. 때로는 찌라시가 그럴싸한 정보를 담고 있을 때도 있어서, 황색지의 헛소리도 모두 읽었다.
하지만 채원우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던전에 대한 소문, 헌터청의 숨겨진 배후에 대한 음모론 등등과 비교하면 헌터 한 명은 가치도 없게 느껴질 거다. 그 하나가 폭주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한 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승규를 두고 방으로 향했다. 전 주인이 두고 간 자개장롱 안에서 가방을 꺼냈다. 가방 안에는 자물쇠가 걸린 상자가 있었다. 자물쇠는 또 다른 곳에 숨겨두어서 부엌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찬장 가장 안쪽에서 열쇠를 가져와선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채원우에 대한 기밀 정보가 적힌 서류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