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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69화 (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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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그 꼴을 놓치지 않고 비아냥댔다. 저 사람이 행동대장, 뭐 그런 건가 보다.

“어딜 가요? 한 번 당해보니까 여기가 무서운가 봅니다? 아니 뭔, 이런 에덴동산 같은 곳에서 그렇게 처발렸어요.”

그러자 말려야 할 팀장이 끼어들었다. 조소하면서 ‘그러게. 무서워?’라고 묻는 거다. 장난하나. 지금 놀리려고 우리 불러다 놨어? 유경험자로 길잡이를 해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네. 무서워서 그래요.”

그런데 한바탕 맞붙어보려는 내 호승심을 팍삭 꺾은 건 채원우였다. 채원우는 자존심도 없는 것처럼 대답하고 나를 입구 쪽으로 끌었다. 정말로 여기를 나가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여기서 그냥 간다고요? 임무는 어쩌고요.”

힘이 어찌나 센지 나는 엄살을 부리거나 약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힘도 못 쓰고 끌려갔다. 답답해서 이놈의 망할 방독면을 슬쩍 올리고 ‘채원우!’ 하고 부르니 흘끗 보고는 손끝으로 내려주는 게 전부였다.

“사이좋게 격리실이나 가요, 형. 여기보단 나을 거 같아요.”

“그게 무슨…….”

“아아악!”

그 순간 엄청난 비명이 터졌다. 발이 꼬이도록 뒷걸음질로 끌려가다 멈춰 섰다. 채원우는 잠깐만 멈추고 다시 발걸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채원우의 팔을 풀어냈다.

코앞에서 엄청난 피와 함께 팔꿈치 아래가 사라진 남자가 보였다. 동그랗게 말려 귀엽기까지 하던 몬스터가 히죽 웃었다. 눈도, 코도, 귀도 없는 얼굴엔 커다란 이빨이 가득한 입뿐이었다.

“뭐, 뭐 한 거야, 저 멍청한 새끼가.”

분명히 능력을 썼을 거다. 아니면 채취를 하겠다며 칼을 들이댔거나.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몽롱하게 바캉스나 온 것처럼 굴던 모두가 일제히 전열을 갖췄다. 채원우와 나는 마땅히 맨 앞에 서야만 했다. 그런데 한참 달려갔다가 돌아보니 채원우가 우뚝 서선 오지 않고 있었다.

“……채원우?”

“모든 헌터들은 전투에 참여한다!”

이어 마이크로 따라야만 하는 명령이 떨어지는데 채원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너 왜 그래. 살피고 싶었는데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빌어먹을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형!”

채원우가 드디어 움직인다 싶었을 때 옆구리로 엄청난 충격이 왔다. 무엇인지 확인도 하기 전에 칼을 들어 앞을 밀어냈다. 팔을 교차해서 머리를 가리고 칼날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한 뒤 손목을 까딱였다.

눈을 겨우 떴을 땐 동그란 몬스터가 이를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힘이 더럽게 셌다. 이빨 모양은 초식 동물의 것처럼 넙적하고 뭉툭한 사각 모양인데, 빌어먹을.

“으…… 으윽.”

이대로 가다간 내 팔에 기도가 눌려 죽겠다 싶을 때 갑자기 위가 가벼워졌다.

채원우가 보였다. 긴 다리로 저 엄청나게 무거운 것을 축구공처럼 차버린 뒤 허벅지 건벨트에서 총을 들어 정확하게 사격했다. 푸들푸들 떨던 그것은 한 방을 더 맞고 죽었다.

확인 사살도 필요가 없었다. 총알을 낭비하는 일도 없이 깔끔했다.

“괜찮아요?”

빠르게 내뱉은 채원우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나는 멍한 정신을 일깨웠다.

“놀랐어요? 일어나요, 형.”

놀랐다. 하지만 놀란 건 갑자기 바뀐 이곳 때문이 아니었다. 뒤에서 흙이 물처럼 흘러 몬스터를 압사시키고 풀을 허공에 뿌려 칼날처럼 바꾸어 공격하고 있는 것에도 놀라지 않았다. 내가 당황한 건, 채원우가 총을 쓴 걸 처음 봤기 때문이다.

“일어나요.”

채원우가 억지로 나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땅에 대고 발사했다. 두더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은 흙더미 아래로 거푸 한 발을 더 쐈다.

“지하로 다니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잡아끌고 움직이며 채원우가 읊조렸다. 나는 당황한 머릿속과 별개로 내 무기를 챙겼다. 한 손에는 너클형으로 손가락에 끼울 수 있는 칼을 들고 다른 손엔 총을 챙겼다. 이러면 양손을 모두 쉽게 쓸 수 있으니까.

“속도도 빨라졌고, 아마 땅속에 숨어 있는 게 더 많을 거예요. 흙을 뒤집는 데 유용한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나는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채원우에게 물었다.

“너 왜 능력 안 써.”

헌터와 에스퍼가 가이드를 챙기는 이유는, 가이드가 없으면 신체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신체가 망가지지 않게끔 헌터와 가이드는 서로 오랜 시간 유대감을 쌓는다. 그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채원우가 나를 챙기고 있는 모습은 비효율적인 상황일 거다. 하지만 나는 채원우가 이토록 비효율적으로 구는 이유를 알았다. 아는데, 다만 내가 궁금한 건, 왜 네가 능력을 쓰지 않는 건지, 왜 내가 너에게 필요하지 않게끔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순간 뒷골이 오싹해서 손을 휘두르며 몸을 돌렸다. 포자처럼 엷은 털을 가져 더욱 솜털 같은 몬스터가 기괴한 소릴 지르며 뒤로 떨어졌다. 조금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총을 쏘았다. 정확하게 두 발.

“왜. 채원우, 왜…….”

헐떡이며 돌아보자 채원우는 분재처럼 굽어 자란 나무를 밟고 허공에 뛰어오르고 있었다. 대번에 허공에서 푸득거리고 있던 것 하나를 칼로 찍자, 그것이 아래로 떨어졌다. 칼을 쓴다. 채원우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본 채원우가 흔들리는 시선을 하더니 나를 당겨 자신의 뒤로 숨겼다. 내 허리만 한 파도가 거기에 있었다. 정확히는 축축한 흙이었다. 양옆으로 파도처럼 밀어내 아래에 숨어 있는 둥지를 발견한 거다.

서로 대화를 할 필요도 없이, 드러난 둥지를 향해 가이드들은 사격했고 헌터들은 능력을 연계하여 둥지를 쪼개고 쪼갰다. 팔을 다친 헌터조차 바로 조금 전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둥지를 조각조각 냈다.

그리고 채원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걸 눈치챈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도 채원우는 그저 온갖 능력이 난무하는 둥지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뒤로 숨기고. 그러나 내 몸에는 손가락 하나도 갖다 대지 않은 채로.

“너 왜 능력을 안 써……?”

“…….”

“안 쓰는 거야, 아니면 못 쓰는 거야.”

“…….”

“채원우!”

채원우가 나를 돌아봤다.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기 시작한 둥지 때문에 매캐한 연기와 재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채원우의 얼굴이 넘실대는 불 때문에 빨갛게 물들어 보였다.

“못 쓰겠어.”

이런 목소리는 처음 듣는다. 이토록 맥없고 텅 빈 목소리는.

“형 앞에서 못 쓰겠어요. 그냥… 다른 사람들도 형 앞에서 안 썼으면 좋겠어.”

“그게, 그게…… 그게 무슨 말이야.”

“몬스터로부터 지켜줄 수 있어. 그런데 헌터로부터 형을 지킬 수 있을지를 모르겠어……. 내가 형을 죽일 것 같아요. 그것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아.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채원우의 눈이 반짝였다. 그게 불 때문에 그러는 건지 아니면 눈물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얼굴을 구겼다. 울 것처럼 구겼다가 소릴 질렀다.

“미친 새끼야!”

우리는 이어 마이크를 사용하고 있다. 대화가 녹음되진 않지만 수신된다. 수신한 사람이 녹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녹음할 수 있다. 나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럼 네게 가이드가 왜 필요한데……!”

“…….”

“그러면 누가, 누가 우리를 붙어 있게 두겠냐고……!”

나는 확신했다. 누군가 우리의 대화를 이미 녹음하고 있을 거라고. 둥지를 태우고 있는 팀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나는 부디 자기장 이상으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수신 상태가 좋지 않길 바랐다. 그럴 확률이 한 자릿수에 가까운 걸 알면서도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기적이란 건 결국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불린다는 걸 알면서도.

“미안해요. 미안해, 형. 그런데 눈만 감으면 내가 형을 죽이는 꿈만 꿔…….”

매일 그런 꿈만 꾼다며, 채원우는 울었다. 어린애처럼.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그 얼굴로, 내가 혼자 피식대며 멋대로 상상했던 그 얼굴과 똑같이 예쁘게 울었다.

너는 씨발, 그 말을 무슨 던전 안에서 몬스터 둥지를 태우는 상황에서 하냐고, 나는 실없는 타박조차 할 수 없었다. 상대를 잃는 게 두려워 겁쟁이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이제는 나도 알았기 때문이었다.

* * *

분위기는 처참했다. 채원우와 나는 붙어 앉았으면서도 대화 하나 없었다. 모두가 이쪽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 역력했다. 괜한 희망조차 없어졌다. 채원우가 한 말을 들은 게 분명했다.

채원우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곧은 목선과 옆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어떤 말을 듣든 무슨 대우를 받든 마음대로 굴던 나는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는 멍청이가 되어 있었다.

채원우가 무슨 마음으로 한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다. 채원우가 별종이라거나 이런 경우가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실행하지만 대부분 졸고 있는 심리 연수에서도 이런 예시가 간간이 나오니까.

보통은 파트너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사이가 나빠지거나, 헌터가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전투를 피할 경우였다. 너무 좋아서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경우가 낯설 뿐이었다. 아무리 치고받고 싸워도 잘만 임무를 수행해 왔던 나한테도 처음이고.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서 그런 거다. 단순히 직장 동료였다면, 아무리 아니꼽고 더러워도 사감을 가지지 않겠다 마음먹을 수 있었다. 공과 사를 구별할 수 있었다. 다치더라도 내가 다치는 게 아니면 상관없다는 태도로 뻗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소중해서라면…….

나는 채원우의 손을 잡았다. 아닌 척해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전투가 끝났는데도 흥분하지 않고 열도 없는 채원우의 손을 잡고 있으니 서글펐다.

너는 아직 어렸다. 다 자란 줄 알았는데 어렸다. 그리고 나 역시 닳고 닳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착각이고 교만이었다.

일 때문에, 의미를 두지 않는 키스와 잠자리는 얼마든지 해왔으면서. 정말 좋아서, 내가 원해서 했던 관계는 처음이었으니까 사실 나도 더럽게 서툰 초심자밖에 안 됐는데. 나 역시 열일곱 살에 멈춰 있었다.

채원우는 내가 견고하게 세운 벽을 부드럽게 부수고 들어왔으면서 이제는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바꿔야지. 뭘 어떡해.”

귀에 꽂히는 내용이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인 건 분명했다. 채원우에게도 들릴 게 분명한데, 채원우는 내 손에 잡혀 있을 뿐 돌아보지 않았다.

“쓸모없지.”

다른 말도 분명 했는데 저 네 글자가 유독 귀에 콕 박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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