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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68화 (6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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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우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명상인지 잠든 건지 모를 침묵을 유지했다. 도시락도 먹지 않았다. 창백하고 초조해 보여서 함부로 깨울 수가 없었다. 시청역으로 2차 지원을 나온단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랬다.

나는 잘생긴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포도당 사탕을 꺼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걸 채원우의 마른 입술 사이로 밀어 넣었다. 갑자기 들어온 단맛에 채원우가 눈을 떴다.

“배고프면 집중력 떨어져요.”

채원우는 혀를 내밀어 혀끝에 올라간 걸 슬쩍 확인했다가 다시 말아 넣었다. 우물거리며 빠는 모습이 순해 보였다. 순한데도 여기서 가장 위험한 게 채원우였다.

나는 그 간극이 견딜 수 없이 좋았다. 내내 좋아한다 정도로 치부하던 감정을 제대로 바라본 이후로 나는 속절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은 채원우가 아니라 나였다.

오히려 채원우는 날이 갈수록 침착해지고 속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한 해를 지나며 나이를 한 살 먹어서 변했다고 하기에는, 사실 별것 아닌 날짜 변화로 이렇게까지 빨리 변하나 싶어 설득력이 떨어졌다.

가만히 사탕을 빨던 채원우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손을 주머니에 꽂고 1,700만 원짜리 척추 수술을 하게 만들 자세로 있더니 갑자기 중얼거렸다.

“……아요.”

“네?”

하필 저쪽에서 결계에 특화된 헌터들이 터뜨린 폭발음 때문에 그 소릴 듣지 못했다. 작게 꺅 소리가 들렸다. 지원 나온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곧 눈앞이 반짝반짝해졌다. 작게 빛나는 반짝이 같은 것들로 던전이 열렸단 걸 알 수 있었다.

“A1팀 진입 대기합니다.”

굵직한 목소리가 집합을 알렸다. 헌터와 가이드들은 양치도 못 했다며 투덜거리기도 하고 밥을 덜 먹었다고 토를 달면서도 말은 잘 들었다.

헌터들은 벌떡 일어나선 방독면을 썼다. 헌터에게만 영향을 끼쳐 흡입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성을 약하게 만든다는 연기를 막기 위해서였다.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가이드들도 방독면을 썼다.

채원우는 던전 공략에 호전적이었다. 적극적으로 맨 앞에 나서는 타입이었다. 늘 흘러넘칠 것처럼 대단한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래서 나 역시 당연히 맨 앞줄에 서려는 때였다.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원우가 방독면을 탈처럼 머리 위에 걸친 채 내 소매를 잡았다.

“왜 그래요?”

대답이 없었다. 그사이 다른 이들이 줄을 섰다.

후속 작업이고 안에서 읽히는 몬스터들의 기척이 매우 느려 전투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서 후방을 전담하던 팀들이 많이 나왔다. 전방을 담당하는 우리와는 처음 하는 협공이었다.

그들은 채원우와 나를 흘끗 보더니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자신들이 투입되는 만큼 어렵지 않은 일일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채원우가 워낙 강한 만큼, 그리고 채원우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며 덩달아 신뢰가 높아져 나는 전투에 조금 과감해지고 있었다. 어쩐지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섰달까.

“얼른 가요. 맨 앞줄로 들어가야 일찍 나오잖아요.”

“들어가기 싫어요.”

뭐?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채원우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채원우는 어린애처럼 내 소매를 잡고 작게 중얼거렸다.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형.”

“그 뒤에 뭐 하냐!”

후방팀 팀장이 인원을 체크하다가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같은 팀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좀 야박하게 구는 감이 있었다. 나는 채원우를 잡아끌었다. 어거지로 일으킨 채원우에게 바짝 붙어 서서 물었다.

“왜 그래, 원우야. 느낌이 안 좋아?”

“…….”

“말을 해야 알지.”

말을 하면 알게 되겠지만, 또 내가 안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던전 공략은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그런 체험 학습이 아니었다.

채원우는 헌터청의 자원이었고 한 명이서 최소 열 명의 몫은 하는 믿음직한 보루였다. 후방팀 역시 그걸 알고 있을 거다. 알고 있는 만큼 채원우가 미적거리는 게 신경이 쓰일 테다. 쉬지 않고 던전으로 향하고 있지만, 발걸음이 느린 게 여실히 느껴졌다.

“……제 가치와 유용성은, 제 존재 의미는 던전을 공략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냐에 있어요. 그렇죠?”

채원우가 흔들리는 시선으로 물었다. 그건 오직 채원우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헌터청이 실시하는 교육의 시작은 늘 ‘우리는 던전과 던전 내의 몬스터로부터 국민을 지킨다. 국민들이 던전으로부터 멀어져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자부심이다’로 시작했다.

“헌터라면…… 그렇죠. 아무래도.”

입술을 꾹 다문 채원우가 고갤 들었다. 결심이 선 표정이었다. 나는 차게 식은 채원우의 손을 잡았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다.

“뭐 하는 건데? 얼른 들어가야 한다니까.”

당장에라도 팀장은 우리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이동할 때부터 전방팀들은 하여튼 건방지고 재수가 없다는 둥, 후방팀의 진정한 힘을 보여준다는 둥 쓸데없는 일로 우릴 벼르고 있던 사람이었다.

“가요.”

아주 잠깐이지만 거세게 흔들렸던 것 같은 채원우가 나를 잡고 끌었다. 갑자기 평소의 덤덤한 채원우로 돌아온 거다. 하지만,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낯선 벽이 느껴졌다.

“원우야.”

채원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도망갈까?”

그 순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툭 튀어나왔다. 심지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도망친다 하더라도 어디로 간다고. 갈 곳은 있고? 현금을 인출해도 기록이 남는다. 모든 곳에 CCTV가 있다. 한 번이라도 통화를 하거나, 아니, 핸드폰을 켜기만 해도 우리의 위치가 나타난다.

채원우는 강제로 벌려 열어둔 던전의 입구로 발을 내디뎠다. 한 발은 던전 속 세계에 놓은 채 나를 돌아보았다.

“형. 도망가고 싶어요?”

그 소리는 마치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보내주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 속에 ‘함께’라는 말은 없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뒤에서 팀장이 나를 밀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던전으로 밀려 들어왔다. 채원우가 내가 머리 위로 걸쳐 뒀던 방독면을 내렸다. 그 뒤로 자신의 것 또한 내렸다. 갑갑한 호흡과 함께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니 던전의 세상이 펼쳐졌다.

“세상에…….”

분명히 이곳은 시청역이라는 콘크리트 건물을 기반 삼아 만들어진 환경이어야 했는데……. 이 아름다운 숲은 뭐지?

정성을 들여 관리한 것 같은 낙원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미묘하게 현실의 것과 다르지만 사과, 배, 바나나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열매와 느릿느릿 기어 다니는 몬스터들. 그리고 부옇게 펼쳐진 연기까지.

“누가 방독면을 벗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 소리에 손이 움찔했다. 나도 모르게 방독면을 벗을 뻔한 거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믿을 수 없어서, 어딘가에 홀린 것처럼 말이다.

“말도 안 돼.”

한참 뒤에야 이 말이 내가 뱉은 소리란 걸 알았다.

“꿈이거나 내가 미친 게 분명해.”

몽롱했다. 연기 때문이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풍경 때문이었다. 청량리역 광장이나 광화문 광장에서 던전이야말로 진짜 구원의 증표이며, 우리는 종말을 맞이해 낙원으로 가게 될 거라고 외쳐 대던 사람들의 말이 사실 맞았나 하는 미친 생각을 잠시라도 할 정도였다.

뒤를 돌아보니 던전 입구를 벌려놓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 너머는 분명 우중충한 회색빛의 시청역 지하가 맞았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안쪽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것 봐.”

몬스터가 공격하지 않는다며 여길 보라는 사람들 천지였다. 그러나 나는 이 너무나 이상적인 풍경이 찝찝했다. 꿀통에 빠진 줄 알았더니 식충 식물이었다는, 그런 결과가 나올까 봐 무서웠다.

“아무것에도 손대지 마요.”

채원우도 나와 같은 걸 느꼈는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손을 잡았다. 한 번 서로를 잃어버린 적이 있는 던전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이것들도 가까이에서 보니 귀여운데?”

털이 복슬복슬한 공처럼 보이는 몬스터에게 다가간 누군가가 말했다. 방독면을 써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함부로 손을 뻗었다.

그 낙천적이고 정신 빠진 행동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말려야 한다. 팀장이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는데, 그 역시 이 상황에 홀려 있었다.

“잠깐……!”

말리려 소리를 지르는 순간 그 동그란 공 같은 몬스터에게 손끝이 닿았다.

순간 심장도 호흡도 멈추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평온했다. 몬스터는 움찔하다가 옆으로 슬금슬금 피했다.

“어쭈. 이것 봐라.”

오기가 생긴 건지 재미가 붙은 건지 그가 몬스터에게 더 달라붙었다. 한 번은 기적이라고 쳐도 기적이 연달아 두 번 일어날 일은 없었다.

나는 채원우가 물을 이용해서 남자의 손을 쳐낼 줄 알았다. 그런데 채원우는 내 손을 세게 움켜쥘 뿐이었다. 남자는 이번엔 검지가 아니라 펼친 손을 뻗었다.

“안 만지는 게 낫지 않습니까?”

결국 내가 나섰다. 채원우의 손을 잡은 채로 한 걸음 나서니 남자가 우리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우리가 맞잡은 손이었다.

“손은 왜 잡고 있는 겁니까? 무섭습니까?”

“그게 아니라, 조심하자는 겁니다.”

“맞다. 그쪽은 여기 들어왔었죠? 우리는 후방팀이라 모르겠는데. 고전 좀 했다면서요? 어쩌면 말입니다. 이 던전은 우리처럼 부드럽게 공략하는 팀이 더 맞는 걸지도 모르죠.”

그렇게 말한 남자가 돌을 주워 올렸다. 잡고 있던 돌이 작게 조각이 났다. 조각난 건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처럼 조약돌 집합이 되었다.

남자가 조약돌들을 허공으로 던졌다가 잡았다. 그 순간 채원우가 움찔 내 손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 남자가 다시 잡아챈 돌들은 이번엔 굵은 모래가 되었다. 그걸 손바닥으로 탁탁 터니 아주 가는 모래가 되어서는 그의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흘렀다.

저 사람은 만진 것을 여러 번에 걸쳐 작은 입자로 만드는 게 특기인 모양이다. 독특했다.

“펑펑 터뜨리고 쏟아낸다고 능사가 아니거든. 그쪽 능력이 뭐랬더라. 물풍선 터뜨리기? 카트라이더 아이템 중에도 그런 게 있거든. 그 게임 알아요?”

“……가요.”

채원우가 손을 당겼다. 평소라면 청순한 눈빛으로 엿을 먹였을 텐데 무슨 일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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