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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66화 (6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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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 나 몸 안 좋아서 조퇴했어. 아냐. 멀지 않으니까 걸어갈게.’

―무슨 걸어온다고 그래. 됐어. 데리러 갈게. 이것 봐. 어디 안 가길 잘했지.

너머로 아빠가 ‘왜? 백겸이 많이 안 좋대?’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겨우 교문을 벗어나서 정류장까지 도착했다. 거의 몸을 끌다시피 했다. 정류장에서는 헛구역질을 했다.

너무 어지러워서 그런지 눈앞에 반짝이는 무지개색의 먼지가 자꾸만 보였다. 손을 내저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게 던전이 터지기 직전의 자기장 기운 같은 거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걸 알아보는 사람은 일정 수준 이상의 이능력자들뿐이었다. 이제는 던전 알림까지 맡은 기상청에,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은 이능력자들이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필…… 우리가 첫 번째만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는 이렇게까지 나쁘게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집은 학교와 가까웠고,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붙어 있었다. 핸드폰을 내지 않았는지 동생이 문자를 보냈다.

―형조퇴한다며? 부럽다 나두할래

어지러워서 몇 번이나 읽었다. 그 끝에 겨우 썼다.

―까불지말고공부나해폰내라

그게 다였다.

부모님 차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겨우 손을 흔들었다. 앞 유리창 안쪽으로 선글라스를 낀 부모님이 계셨다. 날 병원에 데려다주고 뒤늦게라도 데이트를 가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알콩달콩한 모습을 나는 늘 닭살이라고 놀렸지만, 사실은 아주 좋아했다. 이상적인 가족이 있다면 우리가 아닐까, 감히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10미터쯤으로 가까워졌을까. 부모님은 스쿨존에, 나는 정류장에, 동생은 뒤의 중학교에 있었다. 던전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터졌다. 규모는 두 학교를 모두 삼키다 못해 운동장을 넘어 도로와 바로 앞 아파트의 단지 하나를 삼킬 정도로 컸다.

안에서 바깥으로 밀어내는 방식의 던전이었다. 흡수해서 변형시키거나 그냥 삼켜 던전 내에 두는 게 아니라, 충격파 같은 것으로 밀어내는.

내가 산 이유는 그때의 열이 발현열이었기 때문이다. 급속도로 변형되며 강화된 신체 구조 때문에 살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비극인 이유는 다른 가족들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만 괴물이었고 그들은 사람이었다.

고갤 들면 부모님이 보였다. 눈은 마주칠 수 없었다. 부모님은 계속 눈을 감고 계셨으니까. 동생의 모습은 아예 보지도 못했다. 구조까지 이틀이 걸렸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에 겨우 그 사건 파일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던전 규모 : 초대형, 던전 등급 : B->

고작, 비 마이너스.

* * *

12월 26일부터 1월 1일까지의 시간만큼 불성실하게 보내는 시기가 있을까.

거저로 주어진 시간도 아니고 달력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인류의 역사만큼 함께한 6일인데도 불구하고 이때가 되면 늘 낯설어 허둥지둥하곤 했다.

까딱 정신 안 차리면 금세 내년이 되고 올해를 돌이켜 보자니 아직 근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고……. 크리스마스의 여운은 분명 남았는데 크리스마스트리는 꼴 보기 싫고 그렇다고 미리 해피 뉴 이어를 즐기고 있자니 남은 올해한테 미안하고.

게다가 참 신기하게도 이즈음에는 그 징글맞던 던전도 조용했다. 작게 터졌다가 금방 사라지는 자잘자잘한 던전 몇 개 정도? 그래서 매해 이 시기가 되면 헌터청에선 이런 토론이 시작되었다.

던전에도 신이 있다면 그건…….

“당연히 하나님이지. 크리스마스 딱 챙기는 거 봐. 25일 기점으로 발생이 준다니까.”

“야. 예수 크리스마스에 안 태어났대. 지금 태어나서 거기 어디야 말…… 말…….”

“구유. 거기서 주무셨으면 입 돌아가셨지.”

“너 잘 안다?”

“나 이래 봬도 옛날엔 주일학교 1등이었어.”

실없고 영양가 없고 헛소리가 태반인 토론. 이 시기에 아주 딱 맞았다.

주말은 피해 오시는 부처님의 석가탄신일을 생각해 보라며, 이 시기에 던전이 쉬는 것도 부처님의 자애로운 마음 덕분이라는 소수의 주장도 있었다. 소수지만, 석가탄신일의 멋진 날짜 배치 이력 덕에 지지자들이 제법 코어했다.

게다가 정말 신기하게도 석가탄신일 때 역시 큰 던전이 터진 적은 없었단 사실도 힘을 보탰다. 반대파들은 ‘그렇다고 한 번도 출동을 안 한 건 아니잖아?’ 하고 비아냥댔다.

“양 가이드. 어떻게 생각해?”

무리 중 누군가가 갑자기 내게 화살을 돌렸다. 휴게실 중 가장 큰 중앙 휴게실에서 나는 와플과 해시브라운과 메밀전병, 그리고 머핀을 터는 중이었다.

헌터들을 사람보다 재물 취급하는 헌터청이라 하더라도 먹는 것에만큼은 야박하게 굴 수 없다는 모토가 있는 덕에 중앙 휴게실은 늘 호텔 조식 뷔페 버금가는 음식을 공급하고 있었다. 오히려 숙소 식당보다 나을 지경이었다.

“저요?”

나는 양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내려놓고 손을 번쩍 들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처럼 손등을 보이게 하자 소매가 스르르 내려갔다. 안 그래도 이제는 나보다 큰데, 심지어 박시한 옷을 좋아해서 더 큰 채원우의 옷이었다. 품은 잘 맞는데 소매가 길었다.

주르륵 내려가는 옷자락 아래로 내 손목이 드러났다.

“전 저 살려주는 신 편 듭니다.”

축성받은 묵주, 번개 맞은 나무로 만들었다는 염주, 심지어 터키에서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는 악마의 눈알 팔찌. 뭐, 하여튼 신성하다는 건 다 걸었다.

채원우처럼 아예 인간관계에 담을 쌓고 살진 않은 터라 몇 번 말도 섞고 밥도 같이 먹은 헌터들이 나를 향해 질린 눈빛을 보냈다. 속으로 미친놈, 하고 있을 거다. 나도 속으로 낭만주의자들, 하고 냉소했다. 헌터들이 뭔 신을 믿니.

“그럼 너는.”

나에게 말을 건 넉살 좋고 뒤끝 길지 않은 헌터가 이번엔 내 뒤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떡볶이를 가득 퍼 담고 있던 채원우가 눈을 끔벅였다. 이미 입에 핫도그를 문 채였다.

채원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내가 눈가를 찡긋거렸다. 최대한 젠틀하게 대답해 보라는 눈빛인데 애먼 해석이나 안 했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우리 둘 사이의 주파수가 좀 맞은 모양인지 채원우 역시 접시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저는 백겸이 형 믿어요.”

“…….”

“…….”

이 분위기 어쩔 건데.

채원우의 낮은 사회성과 지랄맞은 솔직함 때문에 징그러운 애정표현이라는 결과물이 나와버렸다. 우리를 향해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던 헌터들이 일제히 동태 눈깔이 되어서는 몸을 돌렸다. 지금껏 다양한 방식의 무시나 거절을 당해 왔지만 지금처럼 나까지 수치스러운 경험은 처음이었다.

“제가 틀린 말 했어요?”

정작 채원우는 핫도그를 한입 더 씹으며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잠깐 생각하던 나는 어깰 으쓱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채원우의 손을 당겨 반만 남은 핫도그에 케첩을 마저 뿌렸다.

“손 하나 남죠?”

“네.”

“그럼 내 핫도그도.”

“설탕?”

“설탕 많이 케첩 없이.”

내 말만 듣고 나만 믿는다는 채원우는 순종적으로 내 커스텀에 따랐다. 우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헌터 무리를 향해 사근사근 인사까지 하고 방으로 향했다.

“맛있겠다~.”

채원우가 신나게 외치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뭐 어떠냐 싶었고.

* * *

TV를 들였다. 우리는 소파에 누워서 게으르게 시간을 보냈다. 언제 출동할지 모르는 긴장 상태로 사는 게 일상이다 보니, TV를 보며 이렇게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난 이상함을 애써 무시했다. 남들에게는 주말의 평범한 한 풍경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이게 바로 비정상적이고 비일상적인 특별한 행위였으니까.

게다가 채원우를 위해서라도 나는 이 의도한 연극을 계속할 의향이 있었다. 연속극 안에 들어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던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내는 거다.

채원우는 졸고 있었다. 최근 채원우는 자주 졸았다. 크리스마스 이후로 고작 사흘이 지났지만 이런 행동 패턴이 생긴 건 어쩌면 더 옛날 일일지도 모른다. 격리실 안에 혼자 있을 때부터 이랬을지도 모르지.

꽃 없는 화병 속의 물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내 허리에 감겨 있던 채원우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러자 수면이 잠잠해졌다. 그러나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커피 테이블에 둔 물잔이 흔들렸다. 이번에는 몸을 돌려 채원우를 마주 안았다.

그렇게 다른 곳 물이 요동치면 나는 채원우와 더욱 맞붙었다. 끝내 채원우에게 키스해야 할 상황이 되면, 채원우는 온몸이 덜덜 떨리도록 힘을 준 채로, 자고 있던 건 전혀 모른단 것처럼 배시시 웃었다. 반쯤 감긴 졸음에 겨운 눈으로.

“형. 제가 그렇게 좋아요?”

그 물음에 나는 조금 슬퍼졌다.

채원우는 크리스마스 이후로 그토록 자신의 세 번째 팔처럼 다루던 능력을 쓰지 않았다. 불을 끌 때도 직접 움직였다. 하지만 잠이 들면 이런 상황이 되었다.

넘치는 능력이 바깥으로 흐르려 하고 채원우는 그걸 억누르듯 이를 빠득빠득 갈며 온몸으로 버틴다. 그러나 끝내 조금씩 흐르고만 그걸 훔쳐 닦았다.

혹시라도 무엇인가 깨지거나 끝내 물이 엎어지면 빠르게 치운 뒤 채원우를 깨웠다.

채원우는 종종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났다. 사실 이럴 때가 더 많았다. 악몽을 꾸는 게 분명하나 무슨 꿈인지 묻지 않았다. 채원우의 삶에는 악몽이 될 만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았으니까.

그냥 안쓰러웠다. 대체 왜 이렇게 참고 있나 싶어서. 이젠 내가 옆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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