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채원우가 훅, 입김을 불었다. 연기가 포륵 올라왔다. 괜히 속이 쓰려서 불을 켜겠단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사이 온도가 좀 올라갔는지 훈훈한 기운이 느껴졌다.
“형. 가지 마요.”
“…….”
“안 켜도 돼요.”
“케이크 안 먹어?”
“조금 있다가요.”
“…….”
“중간 중간 먹을 수도 있고요.”
손목을 잡아끄는 힘이 별로 세지도 않았는데 나는 천천히 무너졌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채원우의 입술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채원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금방 낫고 잘 낫는 헌터인데도 불구하고 남은 흉터들이 있다. 손으로 그 흉터들을 더듬으며 몇 살에 생겼을까 생각하는 걸 그만두려 애썼다.
몸이 기울었다. 바닥에는 카펫을 깔았다. 채원우의 소식이 끊겼던 기간 동안 충동구매로 샀던 거다.
던전이 터진 이래로 짐을 늘린 적이 없다. 언제든 쉽게 떠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채원우가 없는 사이에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늘었다.
그래도 카펫만큼은 쓸데없는 소비가 아니었지. 이렇게 부드럽고 푹신하니 말이다.
* * *
“한계 테스트였어요. 극한의 상황을 설정해서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재는 거요.”
허공으로 손을 뻗어 보고 있으니 채원우가 그 손을 감싸 쥐었다. 나는 그 테스트가 언제를 말하는 건지 어렵지 않게 추측했다. 채원우가 헌터 살인마라고 불리게 된 그날일 거다. 열네 살의 그날.
“일주일이 계획이었고 잘 버틴다 싶으면 열흘까지도 늘릴 생각이었다고 해요. 저 때문에 나흘 만에 끝났지만.”
“네가 죽을 것 같았어?”
“전 괜찮았어요. 그런데 다른 헌터들이 상태가 안 좋았어요. 환각을 보는 사람과 능력을 제어하는 능력을 잃어 누출? 유출? 줄줄 새는 걸 뭐라고 하죠. 물 같은 게 줄줄…….”
“누수?”
“맞아요. 능력이 누수되는 사람도 있었고요. 당시 사용되던 가이딩 약물은 불안정했고 리바운드도 심했거든요. 아, 그거 테스트도 목적에 있었어요.”
“넌 어땠는데. 너도 그 약 먹었어?”
“전 그냥 나무 위에서 자고 있었어요. 사흘 정도는 배고픔도, 갈증도 어렵지 않게 참을 수 있거든요.”
그건 정말…… 사람의 한계를 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배고픔은 몰라도 갈증은. 하지만 채원우는 정말 어렵지 않게 했을 거다. 사람의 한계라는 게 채원우에게는 다른 범위로 적용되는 것 같으니까.
한겨울이 되며 해가 늦게 떠서 새벽인 시간인데도 아주 캄캄했다. 채원우의 흰 손가락이 얼핏얼핏 보이는 게 아니면 그곳에 내 손이 있다는 것도 낯설게 느껴졌을 거다.
채원우의 손은 컸고 아주 예뻤다. 손만 보면 꽃 같은 걸 만지고 사는 게 어울릴 것 같은데. 정작 채원우는 내내 피만 만지고 살았다.
“집단 광기 같은 게 아니었나 싶어요. 그땐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아무튼 제가 제일 어려서 만만하게 보였나 봐요. 제게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고 그 사람들도 본인들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것 같았지만, 일단 전 반격했어요.”
“…….”
“그게 다예요.”
채원우의 말에서 죄책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잘못된 일이란 것도 나중에 누군가 집요하게 비난했기 때문에 알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나에게 말하기 싫었던 건 남들이 비난하니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테고.
나는 채원우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아예 다리까지 채원우의 다리 사이에 밀어 넣었다. 덩굴과 나무처럼 엉켰다.
“말 안 해줘도 괜찮았어.”
“하지만 형이 알았잖아요. 궁금했던 거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했어. 직접 들을 생각이었는데 네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나쁜 짓이라는 걸 깨달았거든. 뒤에서 쥐새끼마냥 캐물었지.”
“강 팀장한테요?”
“어. 그래서 싫어?”
“아뇨. 좋아요. 강 팀장한테 캐묻는 형은 싫은데 뭐, 계속 숨길 수도 없고. 차라리 형이 알아본 게 나아요. 만약 누가 그냥 지껄여서 알게 된 일이었으면, 전 진짜로 영창에 있었을 거예요.”
돌아보니 싱긋 웃고 있는 채원우가 보였다. 눈웃음은 참 싱그럽고 좋은데 눈빛이 살벌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얘도 정상은 아니긴 했다. 헌터들이 다 약간은 미쳐 있다곤 하지만…….
“아 참. 박석호 헌터는 괜찮아?”
“그 사람은 왜 걱정해요?”
볼멘소리를 해도 하나도 안 불쌍했다. 이력을 알고 나니까 채원우보다 베테랑은 없겠다 싶어서. 채원우는 거의 헌터청의 산 역사나 다름없었다.
“아니, 내가 그 사람 걱정한 줄 알아? 너 아예 빨간 줄 그어질까 봐 그러는 거지.”
코웃음을 치자 채원우가 대놓고 말을 돌렸다. 손을 내 가슴으로 내려 지분댔다. 뚫렸던 곳을 손바닥으로 둥글게 둥글렸다. 정작 뚫렸을 때의 고통은 떠오르지 않는데 치료할 때의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손바닥의 무게가 한결 더 가벼워졌다.
채원우가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파요?”
“아니. 사실 다칠 때도 안 아팠어. 아픈 건 급속 치료할 때였지.”
“그거 진짜 아프죠. 찢어지거나 베였을 때 지져서 살을 막는 방식에서 착안했대요.”
“아, 씨발. 진짜 헌터청 사람들 다 변태 아니냐?”
채원우는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채원우가 잠자리에서 아주 집요한 걸 떠올리며 떨떠름하게 마주 웃었다. 그래. 얘도 변태는 변태지…….
“무서웠어요.”
다시 상처가 있었던 부분을 둥글리는데 이번에는 손바닥이 아니라 손끝으로 가만가만 원을 그렸다. 닿을 듯 말 듯 조심스레 건드리는 그 손길이 간지럽기도 하고, 귓속으로 쏟아지는 채원우의 목소리가 감미롭기도 해서 달콤한 숨이 새어 나왔다.
“형을 다치게 해서. 형이 나 때문에 죽을까 봐.”
“엄밀히 말하자면 네가 아니라 박석호 때문에 다친 건데.”
“……형. 그건 제 실수였어요.”
“그래도 그렇게 만든 건 박석호 헌터야, 채원우. 허튼 생각하지 마.”
채원우가 내 가슴 위로 팔을 가로질러 뒀다. 그러곤 고갤 기울였다. 어깨에 붙은 부드러운 볼의 촉감에 절로 손이 움직였다. 채원우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이 작은 머리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도 나는 알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그냥 막 만났을 때처럼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생각만 하고 있으면 좋겠다. 새삼 나이 한 살 먹고 생일이 생겼다고 갑자기 철이 들지는 말았으면.
“언제라도 내가 형을 다치게 할까 봐 무서워요.”
“내가 그렇게 쉽게 다치겠냐고요. 나도 프로인데.”
“형. 프로들도 쉽게 죽어요.”
‘내 손에’라는 말이 생략된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건 허풍도 과장도 아니었다. 채원우는 정말로 내가 본 그 어느 헌터보다 강했고 , 능력은 섬세하게 갈고 닦을수록 무궁무진하게 발전했다. 어디까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서 나조차도 가끔은 소름 돋는 설렘과 공포를 느끼곤 했다.
“나는 형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게 날 무섭게 해요.”
“…….”
“지금까지 나는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마음, 뭔지 나도 알아. 널 만나고 알았어. 무서운 건 많았지만 그래도 잃고 싶지 않은 건 없었는데.
잃을 게 생겼다는 건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뜻이었다. 뒤를 돌아보면 허점이 생기고 생각이 많아진다. 그게 나를 자꾸만 바꿨다. 하지 않을 선택, 하지 않을 생각을 하게 하고 끝내 날 움직이니까.
“이제는 매일매일 무서워요. 던전에 가면 놀이터에서 노는 것처럼 즐거웠는데 그곳이 전쟁터라는 걸 이제는 알겠어요. 한 번도 이해한 적 없던 말들이 이해가 돼요. 마치 지금까진 외국 말만 들어왔던 양.”
채원우의 모든 말이 고백이었다. 나는 채원우의 손을 잡고 움직여 내 심장 위로 옮겼다.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심장 뛰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사실, 생각이 많은 와중에도 슬슬 잠이 오고 있었다. 추운 곳을 오래 돌아다닌 뒤 몸을 몇 번이고 섞고 채원우의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채원우의 몸에선 달콤한 냄새가 났다. 서로의 몸을 곁들여 먹은 케이크는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맛은 끝내줬다. 몸도 마음도 배가 불렀다.
“네가 준 목걸이 덕에 멈춰도 한 번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데 대체 뭐가 무서워.”
결국 말끝을 뭉개며 하품을 했다. 채원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했나? 그래도 그만큼 너도 가볍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건데.
“형. 형은 내가 얼마나…….”
어떻게든 뒤엣말까지 듣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누가 정신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끌고 가는 것만 같았다. 그대로 훅 꺼지듯 잠들었다.
* * *
오랜만에 던전이 터지던 날의 꿈을 꿨다. 이제는 하도 경험해 시큰둥한 그냥 그런 던전 말고, 태어나서 처음 겪는 던전의 경험.
그때 나는 조퇴를 하는 길이었다. 몸이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으슬으슬 춥다 싶더니만 결국 점심시간쯤엔 열이 절절 끓어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굳이 보건 선생님의 허락이 없어도 됐다. 담임 선생님이 조퇴증을 끊어줘, 그걸 받는 와중에도 손이 두세 개로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조퇴증을 받고 허리를 숙이려니 담임 선생님이 질색하며 말렸다.
‘이대로 허리 숙였다간 그대로 바닥에 머리 박을 거 같으니까 그냥 가라.’
오래된 학교였고 바닥은 돌로 되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그대로 고꾸라져 머리를 박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때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겠지.
부모님은 식당을 하셨고 몇 안 되는 휴업일을 빼고는 그곳을 떠나신 적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 쉬셨고 나와 동생이 학교를 다니게 된 이후로는 두 분이서 월요일마다 데이트를 다녀오셨다.
그날은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집에 계셨다. 첫째 아들이 몸이 안 좋은데다 어쩐지 느낌이 안 좋아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비극은 나 때문이었나?
이게 꿈이란 걸 알면서도 눈물이 났다. 멈출 수 없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결말로 부지런히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