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61화 (6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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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우리, 임무를 갔다 와서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었다. 막상 생각나는 영화가 없었다. 뒤늦게 핸드폰을 꺼내서 검색하니 재개봉한 고전 영화가 눈에 띄었다. 코미디와 호러를 적절하게 섞은 영화였다.

호러라니, 겨울에 재개봉한 영화치고는 타이밍이 안 좋다고 생각했지만 채원우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을 거다. 채원우가 경험하고 마주하는 현실에 비해서는 너무나 조잡해서 웃기기만 한 내용일 테니까.

나는 영화 제목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며 드디어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채원우가 있는 방 앞에 섰다. 발치만 내려다보고 있던 고갤 들기 위해서 목에 힘을 주어야 했다.

“형……?”

나를 발견한 채원우가 안쪽에서 움직이는 인기척이 났다. 그 순간 나는 눈시울이 뜨겁고 목구멍에서 불덩어리 같은 게 올라와서 고갤 들 수 없어졌다. 그대로 이마를 유리문에 쿵 기대고 어깰 떨기 시작했다.

“형. 형, 왜 그래요? 왜 울어요.”

“……흑.”

“누가 울렸어요? 네? 나 좀 봐봐요. 아파서 그래요? 치료는 받았어요?”

울지 말라고, 머저리 같은 새끼야. 등신아. 울지 마. 네가 뭐라고 울어.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도저히 끝나지 않는, 비고란을 채우지 못한 채원우가 겪은 자세한 괴로움 같은 게 파도가 되어서 나를 덮쳤다. 어느새 손끝으로 문을 긁고 있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형…….”

채원우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변성기가 올 듯 말 듯하던 그 맹숭맹숭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목소리 때문에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다.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 때면 이대로 숨을 쉬지 않아서 가족들 곁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현실이 너무 끔찍해서 이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이 영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였으면 하는 상황은 내 현실이었고 돌고래와 달리 사람은 스스로 숨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말 한번 더럽게 많던 애를 만났다. 죽고 싶단 생각뿐이던 그때 어렴풋이 새로 하기 시작한 생각이 ‘얘는 대체 왜 헌터청에 있지?’, ‘몇 살인데 여기에 있지?’였을 거다.

새로 생각하는 게 늘어날수록 가족들 곁으로 가고 싶단 생각의 수는 줄어들었다. 형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해서 그걸 떠올리느라 하루 내내 가족 생각을 안 한 적이 있다.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해서 내가 무슨 색을 좋아했었는지 떠올리느라 밤을 샌 적이 있다.

다 네 생각이었던 거다. 네가 날 살려서 여기까지 온 거다.

“형……. 미안해요. 저 때문에 다쳐서. 제 능력이…….”

“원우야.”

나는 거친 손등으로 눈가를 훔쳐내고 고갤 들었다. 나 때문에 말이 끊긴 채원우가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유리는 내가 뱉은 숨결 때문에 뽀얗게 된 것 말고는 깨끗했다. 너무 깨끗해서 마치 우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 위에 입을 맞췄다. 이전의 나라면 부끄럽고 꼴사나운 염병짓이라고 할 만한 짓거리였다.

뿌연 입김 위에 내 입술 자국이 남았다. 나는 거만하게 명령했다.

“거기서 여기에 입 맞춰봐.”

어리둥절해 하던 채원우는 그래도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턱을 조금 틀어서 입 맞추는 게 이렇게 하면 우리의 입술 모양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걸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기억한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입술 자국과 없어지고 있는 입술 자국이 겹쳐졌다. 나는 씩 웃으며 평가했다.

“100점.”

“…….”

“나머지는 나와서 하자.”

채원우는 나타나선 갑자기 질질 짜고 그다음엔 또 갑자기 닭살 돋는 짓을 하는 나에게 의문을 품지 않았다. 나와서 하자고 하니 고갤 끄덕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채원우의 이런 맹목적인 모습이 이상했다.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나사 빠진 애인 줄 알기도 했다. 이제는 그냥 이게 채원우라는 걸 안다.

지금 기분으로는 꽉 안아주고 싶은데 유리가 있으니 힘들겠지. 대신 나는 유리 너머 채원우의 코 부분을 어림짐작해 톡톡 건드리고 말했다.

“형이 강 책임한테 사기 치고 왔어.”

“잘했어요. 돈 빼앗았어요?”

“아니. 돈은 돈 많이 번 파트너 있어서 필요 없고 다른 걸 훔쳤지. 강 책임 이제 팀장이래.”

“그래요? 괜찮아요. 반년쯤 있으면 다시 강등될 거예요.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맞아. 그래서 오락가락하는 건지 아니면 오락가락해서 그런 건진 모르겠다.”

“형.”

살살 웃던 채원우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감이 왔지만 잠자코 고갤 끄덕였다.

“보고 싶어요. 보고 있는데도.”

“아마 내가 홀로그램이라 그럴걸. 여기로 직접 내려오면 안 된다고 했거든.”

“아, 진짜요? 그래서 운 거예요? 형 좀 전에 울었거든요. 해킹당한 거 같아요.”

음. 내가 그 정도로 냉혈한으로 보이진 않을 텐데. 객쩍어서 머릴 긁적였다. 얼른 말하지 않으면 농담이라는 말이 진짜로 늦어지게 되겠다.

“농담입니다. 채 헌터한테는 진짜로 장난을 못 치겠어요. 매번 속아 넘어가니까요.”

“진짜요? 아, 놀래라. 저는 제가 형을 너무 보고 싶어 해서 또 환상을 보나 했어요.”

“또? 나를 되게 보고 싶어 했나 봐요.”

노력했는데, 씁쓸한 미소가 티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속도 모르고 채원우는 고갤 끄덕였다. 헌터를 여럿 죽였다는 헌터 살인마에 몬스터는 손으로 찢는 내 사랑스러운 괴물은 이토록 순수했다.

채원우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냥 보면 미니멀리즘에 미래 지향적인 카페처럼 생긴 평범한 내부였다. 새카만 머리카락에 흰 피부를 가진 채원우는 이 격리실에서 유독 도드라졌다. 도드라지게 예뻤다.

“형. 진짜로요. 진짜로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죽인 것도 아닌데요, 뭐.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아마도 채원우 헌터가 더 아파했을 것 같네요.”

“네. 저 정말 아팠어요. 그런데도 스스로 가슴을 찌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형…….”

“에이. 정말로 그렇게 하진 말고…….”

채원우와 내 목소리가 겹쳤다. 서로 동시에 말을 하느라 오디오가 맞물렸다. 둘 다 동시에 입을 닫고 한참 응시하다가 씩 웃었다. 그 때 내내 놀고 있느라 시간도 체크 안 하고 있는 줄 알았던 담당이 멀리서 소리쳤다.

“30분 지났어요!”

“네. 나갑니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채원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채원우가 눈썹을 찌푸렸다.

“30분밖에 안 주는 거래요?”

“이것도 길게 주는 거라던데요.”

“너무 짧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얼른 나가서 형 옆에 있고 싶어요.”

“그러게요. 언제 나옵니까?”

채원우는 내가 꼬박꼬박 하고 있는 존대에 토를 달지 않았다. 저기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가 보다,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채원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평소와 달리 답이 느렸다.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에 부디 별일 아니기를 바랐다. 너무 짧은 격리기간이라 기억할 필요도 없다가 내가 물어봐서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있다든지, 뭐 그런 상황이면 좋겠는데.

“30분 다 됐다니까요. 더는 양해 못 해드려요.”

하지만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데리러 들어온 사람 때문에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반걸음 뗐다가 손을 뻗어 유리문을 두드렸다. 묵직하고 탁한 소리에 채원우가 천천히 나를 시선으로 좇았다.

“나오면 우리 공포 영화 보러 가요.”

“호러 코미디.”

“맞아요. 호러 코미디.”

“좋아요. 빨리 보고 싶다.”

채원우가 활짝 웃었고 그제야 나도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손을 흔들었다. 몸이 보이지 않게 되어도 손을 뻗어서 흔들었다. 보이지 않아도 채원우는 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을 게 뻔했다.

들어올 때와 달리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채원우가 곧 나올 테니 이것도, 저것도 해야지. 김칫국을 진하게 끓여 마시며 티켓도 예약했다.

하지만 멋대로 예약한 티켓을 연기하고, 연기하고, 취소하고 또 연기하다 끝내 영화가 내려갈 때까지 채원우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덧 크리스마스였다.

* * *

로비에 트리가 세워졌다. 나는 그 모습을 냉담한 눈으로 보며 연기를 뱉었다. 백화점에나 어울릴 법한 커다랗고 화려한 트리는 제조업도 아닌데 올 한 해에도 높은 수출액을 기록하며 위엄을 떨친 헌터청의 높은 위상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이게 사기업이냐, 공공기관이냐.”

사회의 쓴맛을 나누어 피고 있던 누군가가 투덜거렸고 나도 동감했다. 손가락 부분이 잘린 장갑을 끼고 벌벌 떨면서도 담배는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애연가가 아닌데도 이러고 있는 상황에, 크리스마스가 달가울 리 없었다. 최근 나는 모든 게 재떨이의 재처럼 보였다. 회색으로 우중충하단 말이었다.

12월 초에 격리실에 들어간 채원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젠 면회도 되지 않았다. 당연했다. 아무도 허가증을 내주지 않았다.

팀장이 된 강윤엽은 여기저기 다니느라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팀장이니 이제 일개 외주 가이드와 하하호호 담소 나눌 급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한 가지 사유였다. 이래서 선심 쓰듯 그날 허가증을 준 거구만.

나는 밤마다 강윤엽 이름 석 자를 씹어 발기듯이 씹어대며 술을 마셨다. 졸지에 고무신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여기선 두부인가? 무엇이든 좆같았다. 전역일도 출소일도 없는 애인을 기다리는 꼴이니.

“어흐. 추워. 날씨는 왜 이래.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그레이네, 그레이.”

마침 또 한 무리가 나왔다. 무리의 반은 떨어져 부지 내에서 바깥까지만 운영되는 버스를 기다리러 가고 소수의 흡연자들이 이쪽으로 향했다.

우중충해서 기분만 다운되는 하늘을 보며 나는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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