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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빛이라곤 없는 눈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채원우의 앳된 모습이 보였다. 2년 전쯤 찍은 사진일까? 증명사진이라기보단 머그샷 같았다.
“영입 일자…….”
첫 번째 단계부터 난관이었다. 나는 거기서 마우스 스크롤을 몇 번이고 깔짝였다. 영입 일자가…… 무척이나 옛날이었다. 내 경력과 거의 흡사했다. 채원우와 나의 나이 차를 떠올리면 채원우는 나이가 숫자 두 자리에 돌입한 순간부터 이곳에 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게 헌터청 영입 일자라는 거였다. 비고란에 쓰여 있는 말은 나를 더욱 바스라지게 했다.
<담당자 강윤엽의 구조로 입청. 헌터 발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어 격리 후 훈련 시작.>
강윤엽은 강 팀장의 이름이었다. 강 팀장이 데려왔다고? 당황스러운 정보였다. 생각보다 강 팀장과 채원우의 인연이 깊어 보였다.
비고란은 몇 번 더 이어졌다. 헌터로 발현시키는 기술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그 세부적인 프로젝트 내용에 강 팀장이 준 권한으로도 접근할 수 있었다.
이 정도를 바란 게 아니었는데, 강 팀장이 이렇게까지 큰 접근 권한을 줄 줄 몰랐다. 다 알아보고 어쩌란 거지? 보고도 채원우를 이전처럼 대할 수 있는지 어디 해보라는 건가?
속이 무참히 꼬였다. 배를 감싸 쥔 채 끙끙대면서도 계속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차 협동 전투 테스트 : 실패>
<1차 가이딩 매치 : 실패>
<개인 전투 능력 : 우수>
<회복 능력 : 우수(속도 테스트 불필요)>
이후로도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다. 개인 기록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패라고 적혀 있었다. 그저 결과만 적혀 있는 이 프로젝트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특히 헌터청의 수립 초기 단계를 떠올리면…….
헬리오스는 헌터 업계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악명 높았다. 부작용도 없는 효과 좋은 진통제인 척 마약을 팔던 놈들이 아닌가.
나는 채원우를 떠올렸다. 지금의 채원우가 아니라 그때의 채원우를. 곧 고작 두 장의 사진 속 채원우의 표정이 연상되었다. 한 번이라도 웃어본 적은 있을까?
영화관도 가지 못하고 그저 이곳에서 자란 채원우. 채원우의 대부분의 기억은 헌터청에서 만든 것들뿐일 거다. 추억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그리고 중간에 이르렀다. 나는 거기서 스크롤을 멈추었다.
<협동 전투 테스트 중 폭주 발생. 사망 6인, 부상 2인. 3개월간의 개인 훈련 후 임무 재투입 예정.>
이때 채원우의 나이가…… 열넷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인 나이가 고작.
그리고 이후 처치라곤 개인 훈련을 한 뒤 다시 던전에 들여보낸다는 것. 바로 이 해를 기억한다. 잊을 수 없는 숫자 네 자리였다. 이 해에 나는 파트너를 잃었다. 채원우의 ‘개인 훈련’ 기간과 내 봉사 기간이 겹쳤던 거다.
그때의 채원우를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눈의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 당연히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목소리와 대화 내용은 드문드문이나마 기억이 났다.
‘형은 아플 때 어떻게 해요?’
‘밤에 가끔 무서운 꿈을 꿔요. 이거요, 형한테만 말하는 거예요.’
‘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제가 잘못한 거 같아요. 눈을 떴을 때 빨간색밖에 안 보였어요. 그리고 기억이 안 나요.’
‘형이랑 얘기하면 좋아요. 정말로 제가 안 보여요? 그런데도 저를 볼 때 눈이…… 눈이 막 안 떨려서 좋아요. 내일도 볼 수 있어요? 내일도 만나면 안 돼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거짓말로 대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걸 알고 있던 거다. 내가 한 건 별 게 아니었다. 당연한 것들뿐이었다. 채원우를 모르고 눈도 안 보이니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채원우라는 걸 아는 그때의 소년에게 유독 마음을 열었던 이유는, 내 동생 또래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고 가끔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해서 부담이 없었다. 가이딩이 안 되는 것 같으니 포옹해 보자거나 사기꾼이라거나 자신과 전속 계약을 맺자는 과잉 흥분한 상태의 헌터들 사이에서 유일한 위안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가 가장 엉망일 때 만났었어.
나는 깍지를 꼈다.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이마를 괴었다. 입술을 씹다가 스크롤을 더 내렸다.
<개인 활동 중 가이딩 반응에 상호 작용을 보임. 가이딩 테스트 재개.>
이후로 한동안 멈췄던 가이딩 테스트가 재개되었다.
페어를 맺고 장기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가이드와도 상호 작용이 이루어진다. 그런 경우에는 장기 계약이 오히려 헌터청에 도움이 된다. 둘 다 묶어둘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오직 단 한 명의 가이드에게만 반응하는 헌터는 양날의 검이다. 사실 독에 더 가깝다. 그 한 명이 사라질 경우 헌터는 세상과의 끈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실감을 느끼고 폭주하게 될 테니까. 막을 예비 가이드조차 없는 거다.
맞지 않는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생기듯 맞지 않는 가이딩을 받을 경우 아주 괴롭다. 그 실험이 재개되었고 또다시 무수한 실패의 기록이 채원우에게 남았다. 미치지 않고 버틴 것이 대단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타임라인이 작년까지 이르렀을 때였다.
<적합 가이드 1인 : 양백겸, 현재 계약 중. 계약 완료 후 본 헌터와 매칭 예정.>
우리의 만남은 아주 옛날부터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다만 나는 몰랐고 채원우는 알았을 거란 게 차이점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어차피 정해져 있던 답 하나를 부정하기 위해 시행된 무수한 실험 끝에 채원우는 약에 절여져 있었던 거다.
나는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떠올릴 것도 별로 없었다. 목소리와 말투로만 듣기에는 그저 고만고만한 나이대와 같으려니 생각한 게 전부였다. 고만고만한 나이대의 예시로는 동생이 있었다. 동생은 잘 웃고 장난기도 많은 쾌활한 전형적인 남자애였다.
그런데 사진 속의 채원우를 보니 아니었다. 오로지 실험 이력으로 증명할 수 있는 채원우의 삶 역시 빛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모든 창을 닫고 천천히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이대로 액체가 되고 싶었다. 액체가 되어서 채원우가 부르는 대로 얼마든지 날아가고 싶어졌다.
“어떻게 참았지.”
이제야 채원우가 처음부터 보였던 집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유일하게 맞는 가이드여서 놓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이후에는? 몰랐는데 이게 사랑인 것 같다던 채원우의 절박한 눈빛이 떠올랐다.
어떻게 사랑이 될 때까지 견딜 수 있었을까. 나였으면 처음 본 순간부터 내 곁에만 두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썼을 거다. 이미 미쳐 있었을 테니까. 채원우는 아주 많이 참아왔으면서도 또 인내한 거다. 애새끼는 나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뜨거운 숨이 나왔다. 몇 번이고 깊은숨을 내쉰 뒤에야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는데 또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몇 년을 기다린 너도 있는데 내가 편하기만 한 이 의자에서 하염없이 감상에 젖어 있을 수는 없었다.
* * *
지하로 내려오자 핸드폰을 하고 있던 담당자가 보였다. 진짜 감옥이나 영창도 아니고, 말 그대로 당번에 불과한 일이라 이 정도는 업무 태만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 사람이 차는 일은 무척 드물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채원우는 상당히 드문 일을 해낸 거다.
“면회 오셨습니까?”
어차피 안에 있는 사람이라곤 한 명밖에 없으니까 누굴 보러 왔냐는 질문 같은 것도 필요 없었다. 고갤 끄덕이며 내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가이드 통행증과 허가서를 내밀었다. 강 팀장이 서명을 휘갈긴 서류 위에 확인증을 새로 붙인 담당이 고갤 끄덕였다.
“30분 면회 가능하시네요.”
“그것밖에 안 됩니까?”
“충분하죠. 보통은 5분 내지 10분이에요.”
여기가 카페도 아니고, 30분 이상 필요할 일이 뭐가 있냐는 뉘앙스였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나도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감시 카메라도 있고 사람도 있는 곳에서 채원우와 입술을 비비고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헌터와 가이드 앞에서는 가이딩 중이라는 핑계라도 대겠지만, 민간인들의 눈에는 그저 갑자기 몸이 달아 엉겨 붙는 발정 난 놈들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란 것도 알았다.
“복도 끝에 있습니다.”
그리고 유리문이 열렸다. 혹시라도 금속을 다룰 줄 아는 헌터가 나올까 싶어서 플라스틱과 유리로만 만든 문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금속을 다룬다는, 현대 사회에 한해서 가히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헌터는 나오지 않았다.
긴 복도를 걸어가면서,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점점 두근거리는 나 자신을 느꼈다. 긴장감 때문인지 아니면 채원우가 보고 싶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분위기는 그다지 삼엄하지 않았다. 흰 복도였고 생각보다 춥지도 않았다. 유리로 만들어진 문 너머는 텅 비어 있었다. 빈방이 이렇게 많은데 애를 굳이 맨 끝 방에 넣어야 했나 싶었다.
심하게 조용해서 오히려 이명이 들릴 지경이었다. 안쪽까지 들어오니 휴대폰에서 나오던 소리도 아예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끝에 이르렀을 때는 긴장이 되어서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잠시 망설였다.
숨을 고르는 동안 머릿속에는 채원우의 단출한 인생 타임라인이 엔딩 크레딧처럼 올라가고 있었다. 여기에 진짜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말 별것 없네, 하고 넘길 만큼 재미없는 타임라인 말이다.
채원우에게 그 타임라인을 작성하라고 해보면 어떻게 나올까. 감히 예상하는데 채원우는 올해를 공들여서 쓸 거다. 그전에는 고작해야 ‘헌터청에 들어오다’, ‘형을 만나다’ 정도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