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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59화 (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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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이라는 건 사실 우리에게 정확히 들어맞는 용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영창이라고 했다. 군 소속은 아닌데다 거의 쓰지 않지만 일단 부여받은 계급이란 게 있고 그게 군법에서 착안한 계급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급속 치료의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한 약을 모두 맞자마자 링거 바늘을 뽑고 튀어나왔다. 영창은 지하에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더 철저한 보안을 거쳐야 했다. 통행증만이 아니라 허가서가 필요했다.

허가서를 위해서, 나는 강 책임, 아니, 이제는 팀장이 된 인간의 사무실 앞에 섰다.

“접니다.”

어차피 내가 왔을 걸 알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내가 왔음을 알렸다.

“저요, 양백겸 가이드.”

“들어와요.”

언제나처럼 발랄한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렸다. 나는 여전히 조금은 뻐근한 가슴에 짧게 숨을 몰아쉬고 문을 열었다.

안쪽엔 파일을 산더미같이 쌓아두고 읽는 강 팀장이 보였다. 나는 그게 우리가 끝내 공략을 실패한 던전에 대한 데이터라는 걸 눈치챘다. 강 팀장의 표정이 신나 보였기 때문이다.

“공략 실패라니. 이건 처음이지?”

“…….”

“헌터청의 명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위에서 말이 많더라고. 아래에서는 이제 누굴 믿냐며 불평이고.”

“위는 알겠는데 아래는 누굽니까?”

강 팀장이 파일 너머로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래면, 그냥 일반 시민입니까? 헌터청은 그 위에 있고요?”

“그렇지. 당연한 일에 그렇게 발끈하지 마, 양 가이드. 쉽게 생각하라고. 보호가 필요한 객체와 보호하는 주체 중 누가 더 위에 속하는지. 누가 더 절박한지.”

강 팀장은 사람의 심리를 아주 잘 알았다. 첫 번째 던전 브레이크의 희생 지역 출신인 나를 알고도 일부러 저렇게 말하는 거다. 그의 말대로 우린 절박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절박함을 느끼기도 전에 죽었다.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하지만 살아남은 나는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절박했다. 특히 지금은 강 팀장의 협조가 필요했다.

“채원우 헌터가 갇혀 있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헌터끼리 물의를 일으켰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지.”

“면회는 되지 않습니까? 중범죄를 일으킨 건 아니지 않습니까.”

“중범죄를 일으킨 건 아니지만 그런 이력이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않나?”

나는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강 팀장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한층 더 서늘하고 더 미친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지?

일단 지금으로선 초조한 건 나였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고분고분하게 나가기로 했다. 뒷짐을 지고 있는 손을 초조하게 튕겼다.

“던전 공략이 예상보다 훨씬 쉽지 않았고 하마터면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여간해선 성공해서 나올 수 없는 미션이었어요. 실제로 일부는 실패한 임무였고요.”

“그렇지. 양 가이드는 지금 실패한 임무를 나한테 들이미는 건가?”

“데이터는 수집해서 왔다는 뜻입니다. 공략 포인트가 없었습니다.”

“그 정도는 여기 보고서에도 있는데.”

강 팀장이 파일을 자신의 입술에 톡톡 두드렸다. 당연히 저 보고서에도 쓰여 있을 내용인 건 알았다. 하지만 나는 손에 꼽도록 많은 던전 투입 경험이 있는 가이드였다. 그리고 조금 건방진 소리일 수 있지만, 명확한 사실 한 가지를 말하자면 나는 던전 내 상황 파악이 빨랐다. 감이 좋다는 건 당연하고.

“제 생각에는 공략 포인트가 특정 지형에서 몬스터로 확장된 뒤 이번 던전을 통해 시간 제한이라는 조건이 추가될 가능성을 열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양 가이드의 말에 따르자면 일정 시간 안에 공략을 하지 않으면.”

“에스퍼를 이용해 지형을 해금하거나 특정 몬스터를 죽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겠죠.”

“그래. 그러니까 일정 시간 안에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공략의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이 말인가? 그 근거는?”

“구획이 있었고, 그 구획의 몬스터를 죽이면 더는 위협의 요소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던전과 다르게 대량의 몬스터가 나타나 한꺼번에 공격하는 웨이브도 없이 일정 수를 제거하거나 특정 몬스터를 죽이면 구획의 공략이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구획으로는 외부인이 다른 조치 없이도 오갈 수 있어 현재 민간인도 이용할 수 있는 평범한 역사로 돌아온 것에 반해, 전투팀이 들어가지 못한 깊은 구획은 아예 열리지 않는 걸 보면 제 가설이 맞을 것 같은데요.”

“…….”

“과학적인 근거는 몰라도 직접 뼈가 빠개지고 살이 터지도록 구른 입장에서 보면 말입니다.”

“말에 뼈가 있네, 양 가이드.”

“네. 아무래도 제가 처음 제시했던 질문 하나 정도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원래는 말이지, 이렇게 중간 변경이 안 되는데.”

강 팀장은 말끝을 끌며 몸을 돌렸다. 의자가 빙글 돌았다. 파일을 내려놓고 깍지를 낀 덕에 강 팀장의 손이 보였다. 손에 흉터가 빼곡했다. 언제 생긴 거지? 하마터면 표정으로 드러낼 뻔했다가 간신히 숨긴 손을 움찔거리는 정도로 끝냈다.

딜을 할 때였다. 지금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으로 보여야 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 할 제안치고는 지나치게 연민에 찬 데다 구질구질하게 굴어야 했지만.

“우리 사이니까 특별히 들어줄게. 우리 백겸이 말대로 워낙 던전 난이도가 거지 같기도 했고. 아, 던전 등급 말이야. 재조정 중인데 이제껏 없던 케이스라 시간이 좀 걸리나 봐. 미분류야.”

그건 궁금한 게 아니고.

“채원우에 대한 데이터 접근권을 주십시오.”

“그건 질문이 아닌데, 양 가이드.”

“애초에 소원권도 아니고 질문권으로 다녀오기엔 너무 끔찍했던 곳이었거든요.”

싫으면 말라는 태도지만 여기서 을은 철저하게 나였다. 논쟁의 여지 없이 나였다. 나는 초조함은 등 뒤로 숨긴 채 뻣뻣하게 턱을 들었다. 건방지면서도 아쉬울 것 하나 없다는 태도로 보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씩 웃던 강 팀장은 내가 한 위장이 무색하도록 싱겁게 대꾸했다.

“좋아.”

진짜로?

멍청하게 되묻지 않기 위해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영리한데? 그러면 헌터청의 채 헌터 귀속 기간도 알 수 있지.”

“…….”

“그런데 본인에게 직접 묻겠다던 정의로운 양 가이드는 어디 가셨고?”

“본인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직접 캐묻는 게 배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지금까지 채원우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약간이라도 나올 여지가 있을 때마다 보였던 반응이 어땠는데. 그때마다 채원우는 침대 아래에 괴물이 산다고 믿는 어린애처럼 굴었다. 구석에 웅크려 숨어서 어둠에서 시선을 피하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응시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떨었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 애에게 직접 물을 순 없었다.

“그러면 아예 모르는 게 낫지 않겠어?”

강 팀장이 내 속을 엿본 것처럼 하필 가장 켕기는 질문을 했다. 나는 이번만큼은 참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궁금한데 어떡합니까?”

내 말에 강 팀장이 박장대소했다. 내가 비교적 이렇게 당당하게 굴 수 있는 건 헌터청에 속해 있다지만, 그래도 어쨌든 내 신변의 최종 결정은 소속 에이전시 쪽에 있어서일 거다.

강 팀장의 목숨을 위협한 것도 아니니 위약금이나 계약 연장 정도가 돌아올 텐데, 그 둘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강 팀장은 건방진 놈들을 좋아한다.

“좋아. 좋아, 좋아. 내가 이래서 백겸이 좋아해.”

봐봐. 이렇다니까.

책상 쪽으로 몸을 돌린 강 팀장이 서랍을 마구 뒤졌다. 온갖 더러운 것들이 막 나왔다. 먹고 뭉쳐 둔 게 분명한 햄버거 껍질과 언제 흘린 건지 모를 감자튀김 같은 거……. 그리고 마침내 USB 하나가 나왔다.

강 팀장은 그걸 연거푸 뒤집어가며 꽂다가 겨우 컴퓨터와 연결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코드를 마구 친 뒤, USB를 내게 던졌다.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걸 받아냈다.

“보안 코드야. 연결하면 이제 접근할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주셔야겠는데요.”

나는 더 뻔뻔하게 굴었다. 당연하다. 이제 나는 좀 사기를 쳐야 하니까.

강 팀장이 ‘하나 더?’ 하고 의아하게 되물었다. 나는 입술을 혀로 축였다.

“채원우에 대한 접근권이라고 했잖습니까. 정보만이 아니라 실제 접근권도 주셔야죠.”

“허?”

“영창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허가서 좀 써주십쇼.”

나는 뻔뻔하고 강 팀장은 어이가 없어 보였다. 통쾌했다. 보통은 반대였기 때문이다. 가슴이 뿌듯할 정도로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아, 이 모습을 채원우가 봤어야 했는데. 형 멋있지?

* * *

자료 열람실부터 들렀다. 지하 격리실(aka.영창)과는 정반대에 있는 곳이니까 가는 길에 들렀다는 핑계도 쓸 수 없었다. 오로지 내가 채원우가 궁금해 견딜 수 없어서 갔다고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자료 열람실은 늘 그렇듯이 텅텅 비어 있었다. 구석에서 후드티를 덮고 얼굴을 모두 가린 채 코를 고는 남자 말고는.

문에서 가장 먼 끝줄에 가 자릴 잡았다. 입이 바싹 말랐다. 헌터 정보 열람창으로 들어갔다. 애초에 그 메뉴부터 정보 권한의 늪이었다.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 들어간 뒤 채원우를 검색했다. 그토록 지겹게 본 접근 권한이 없다는 창이 떴다. 그제야 강 팀장에게서 빼앗은 USB를 꽂았다.

코드가 읽히고 패스워드에 자동으로 입력이 완료되었다. 더럽게 긴 패스워드였다. 그리고 드디어 창이 켜졌을 땐, 그토록 기다렸던 것과 다르게 화면을 볼 수 없었다.

“하아…….”

일단 깍지 낀 손으로 눈을 덮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의자에 깊게 몸을 파묻고 몇 번이고 빙빙 돌았다. 그 뒤에야 겨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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