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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58화 (5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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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파트너 형은 안 무사하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온갖 걱정이 소거되었다. 폭풍이 가라앉고 조용해졌다. 너무 고요한 머릿속 때문에 이명이 들릴 지경이었다.

    “이번 던전에서 헌터만 셋이 죽었어요. 선발대에서 하나, 후발대에서 둘.”

    “…….”

    “가이드는 둘이 죽었어요. 죽은 헌터 중 하나는 가이드가 죽어서 폭주할까 봐 사살되었다고 들었어요.”

    안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능력도 알았다. 폭발이었다. 박형민은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미안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나는, 고통스러운 결정이지만 그 헌터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하 3층 깊이였고 남자는 다행히도 이성이 강한 타입인지 바로 폭주하지는 않았지만 곧 터질 예정이었다. 생매장을 당할 수는 없으니 제거한다. 그런 단순한 결론을 내린 나는 아주 끔찍한 놈이었다.

    “형. 저 파트너가 없어요.”

    박형민이 입술을 달싹였다. 저 얼굴이 낯이 익었다. 말라서 갈라진 입술과 텅 빈 눈동자. 나도 저런 얼굴을 했던 적이 있어서 불쾌한 기시감이 들었다. 결국 시선을 피했다. 어떠한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헌터들은요, 잘 안 죽는 거 아니에요?”

    “…….”

    “분명 엄청 세고 몬스터들도 막 죽이고……. 상처도 빨리 낫고 더 빠르고 더 멀리 보는 사람들 아니냐고요. 괴,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른데 왜 죽어요?”

    형민이는 어린애처럼 굴었다. 훌쩍거리며 횡설수설했다. 프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처음으로 파트너를 잃었을 때처럼 똑같이 어수룩하게 절망하고 바보같이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시선을 떨구었다. 나는 헌터에 대한 선입견이 채 생기기도 전에 이 바닥에 들어왔다. 지금 들어온 박형민은 세간에서 헌터와 가이드에 대해 떠드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체득한 다음 들어왔을 거다.

    바깥에서 헌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 과연 끝나긴 할까 비웃게 되는 던전이 모조리 공략된 이후에는, 저 괴물들이 우리를 공격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들어와서 보면 깨닫는다. 헌터들은 별다르지 않다. 분명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고 남들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고 덜 지치며 멀리 볼 수 있고 잘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몬스터를 죽이고 나면 다음 끼니로 고기를 먹지 못하고 상담실은 예약이 매일 꽉꽉 차 있으며 동료를 잃어 고통스러워하며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이곳에 남아 있는 건, 바깥에 나가는 순간 정말로 괴물이 되니까. 그나마 이곳에선 모두 같은 괴물이라 특별할 것도 없으니까.

    나는 바로 그 평범한 괴물 중 하나를 잃어 우는 박형민을 보며 낮게 깐 목소리로 충고했다.

    “형민아. 이 일 그만둬.”

    “뭐라고요……?”

    위로도 아니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대뜸 하는 말에 형민은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하지만 나 말고 누가 이런 말을 해주겠어.

    “지금이라도 그만둬. 다행이다. 에이전시에 먼저 가입해서.”

    “형. 지금은 그런 말 할 때 아니잖아요.”

    “아니야. 지금이 이런 말을 할 때고 네가 떠날 때야.”

    담배가 고팠다. 하지만 폐에 구멍이 뚫린 걸 막은 직후에 담배를 피우는 게 안 좋다는 것쯤은 알았다. 나는 빈 주머니를 괜히 더듬거렸다. 채원우는 어디에 있을까.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래도 형민이가 먼저 채원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 보니 적어도 죽진 않은 모양이다.

    “헌터들을 위해 울게 되면 더는 돌이킬 수 없어. 여기서 정을 떼고 돌아가, 형민아. 너는 이 일이 급하지도 않잖아.”

    “……형은 그래서 여길 다니는 거예요? 계속?”

    “아니. 나 집 사려고 다니는 건데. 나 파트너들하고 사이 안 좋았던 적이 더 많았어.”

    지금까지 나는 아주 잘해 왔다. 비록 첫 번째 파트너를 잃고 흔들린 적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다음 파트너로 쓰레기를 만나서 정을 완전히 뗐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면 생명 수당이 적다는 이유로 계약을 파기했다.

    그런 식으로 떠돌아다니다가, 그런 식으로 잘해 오다가, 나는 이제 끝났다. 끝장의 길로 직접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갈 수는 없다.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채원우뿐이었다. 박형민에게 조언하는 와중에도 나는 어서 이 대화가 끝나고 내가 모르는 정보를 수집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박형민의 파트너에 대한 유감조차 없었다. 여러모로 나는 최악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만둬. 다른 방법으로도 돈은 벌 수 있을 거야. 차라리 구조팀으로 빠져도 좋고.”

    “형…….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었어요. 타이밍이 안 좋다구요. 형한테 실망…….”

    “내 파트너가 죽었을 때 나는 실어증에 걸렸었어.”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미숙했던 과거를 고백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비웃음이 나온다. 실어증이라니. 나약한 애새끼는 나였다.

    “그래도 계약 기간은 반년이 남아 있었고 당시에는 헌터청도 초기라서 쓸모가 반으로 줄어든 가이드라도 어떻게든 써먹었어야 했지. 급속 치료도 없어서 깁스와 붕대를 온몸에 두르고 말도 못 하는 채로 나는 매일 대여섯 명의 헌터들을 가이딩해야 했어.”

    “…….”

    “지금 너는 이런 취급을 받지 않을 거야. 그 이유는 우리의 권리가 새삼 인지되어서가 아니야. 급속 치료가 생겼고, 상담사는 빠듯하긴 해도 어떻게든 널 위한 시간을 비울 테고, 가이드도 이제는 인력난 수준은 아니라서야.”

    “…….”

    “형민아. 여기는 만화 속 히어로 세계가 아니야. 나라면 지금 그만둘 거 같다.”

    고갤 푹 숙인 덕에 박형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60초를 셌다. 마음을 수습할 때까지 더 기다려주고 싶지만 이제는 정말로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초조하고 궁금해서 몸이 달았다. 열이 올라서, 얇게 막아둔 폐의 구멍이 다시 터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박형민.”

    나는 겨우 60초를 세고는 불렀다. 음색에서 초조함이 노골적으로 묻어났다.

    “내 파트너는 어디 있어?”

    지금까지 한껏 조언을 한 주제에 나는 그와 반대로 걷고 있었다. 아무리 바보라도 눈치챌 거다. 멋진 척 번드르르한 조언을 한 저 새끼는 오히려 이 헌터청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걸.

    오랜 시간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페어 사이에는 이런 말도 있다. 우리가 서로의 인질이라고. 바보 같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년 파트너를 바꿔왔다. 재수 없게 굴었고 오로지 일이라고 못 박았다.

    채원우에게도 똑같이 할 생각이었고 어느 정도는 내 계획대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계약서를 갱신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채원우에게 묶여 있었다. 내가 자진해서 묶은 매듭이 너무 단단하고 채원우는 커다란 블랙홀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네가 아는, 던전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이야기해 줘.”

    초조함에 마른 입술을 축였다. 박형민은 꺼멓게 죽은 눈을 하고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너무 작은 목소리라 한껏 집중해야 했다.

    “던전은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된 커다란 미로와 같았다고 해요. 몬스터를 소탕하거나 일정한 미션을 수행하면 문이 열려 다른 구획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식이었고요.”

    우리에게 주어졌던 미션이란 차량을 삼키는 거머리를 소탕하는 것이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했다.

    “방이 열리면 공략팀과 구조팀이 들어올 수 있게 되었고요. 구조팀은 차량 속의 승객들을 구했고, 공략팀은 당연하지만 공략 포인트를 찾아다녔고요. 우리 팀은 각자 다른 방에 있다가 구해졌어요. 정작 전투팀이 못 나간 이유는…… 플레이어가 모든 방을 끝내기 전까진 나갈 수 없는 게 아닐까 추측하더라고요……. 저는…… 던전이 그렇게까지 복잡해질 수 있나 모르겠지만요…….”

    더러운 방식이었다. 끔찍했다. 마치 우리를 말로 사용하는 보드게임처럼 들렸다. 나는 손을 모아 입술에 대고 고갤 까딱였다. 더 이야기해 보라는 거였다.

    “제 파트너 형은…… 저를 구하러 왔다가 차량을 삼키는 몬스터 때문에 죽었어요. 형을 씹다가 거머리도 턱이 부서져 죽었지만…….”

    그리고 박형민은 정면으로 그 모습을 봐야 했을 거다. 봤을 거다. 파트너가 몬스터에게 반쯤 갈린 채 죽은 것을. 나도 모르게 마른세수를 했다.

    “아……. 형 파트너 물어봤었죠. 채원우 헌터는 지금 만날 수 없어요.”

    “뭐?”

    절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왔다. 그래도 정신이 다른 곳으로 빠진 박형민은 반응하지 않았다. 느릿느릿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지금 격리실에 있어요.”

    “로비에서 있던 일 때문에?! 야, 그건 정당방…….”

    “다른 헌터와의 사이에서 있던 일 때문이 아니라.”

    형민인 머뭇거렸다. 그 머뭇거림이 불길해서 재촉했다. 대체 뭐냐고 다그치는 내 시선을 피하면서 고백했다.

    “파트너 가이드에게 피해를 입혔다고요.”

    “미치겠네.”

    평소에는 결과값만 생각하던 헌터청이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새삼 인권이라는 개념이라도 재수강했나.

    채원우는 그러면 내가 어떻게 됐는지도 듣지 못한 채로 가이드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 하나만 알고 있는 건가? 최악이다. 그 애의 마음이 어떨지……. 시큰거리는 눈을 감고 한숨을 연신 쉬었다. 조금 진정한 다음, 다시 눈을 뜨고 던전 상태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공략은 끝났고? 방법은 뭐래?”

    “방법이요? 모르죠.”

    “모른다고?”

    “네. 몰라요. 공략이 안 끝났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저희가 해방한 방 구획들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요, 아닌 부분 일부는 남아 있어요.”

    박형민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얼빠진 아마추어처럼 구는 게 이번에는 나였다. 멍하니 ‘왜? 어쩌다가?’만 묻고 있는 나에게 형민이 대답했다.

    “공략 포인트를 찾지 못했대요. 파훼법을 모르니까 어쩔 수 없죠……. 결계를 설치해 두고 접근을 막으며 감시하는 거로 잠정…….”

    이명이 들렸다. 삐― 하는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채원우. 채원우가 보고 싶었다. 나사 빠진 소릴 하고 엄청난 일들을 별것 아닌 것처럼 시큰둥하게 대하는 채원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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