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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57화 (5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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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꽂혔는지 사내 연애, 사내 연애 하고 중얼거린다. 엘리베이터에 타서도 이런다.

“우리 사내새끼 둘이니까 사내 연애죠.”

너무 구려. 구려도 너무 구려. 그런데 저딴 농담을 뱉는 얼굴이 너무 고퀄이다. 승규나 형민이었으면 당장 얼굴을 찌푸렸을 텐데 채원우한테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얼굴이 위트다.

계속 시시덕거리며 싱거운 장난이나 치다 보니 금세 본청 로비였다. 로비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헌터 및 가이드로 어수선했다. 오늘은 그래도 견학 팀은 없는 모양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외부 공개가 있어서 원래는 더 붐비는데.

“오늘은 그냥 형이랑 방에만 있고 싶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없으니 채원우가 로비에서 비비적거려도 그냥 뒀다.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을 치우려는데 갑자기 채원우의 머리통 무게가 사라졌다.

“채 헌터. 보기 좋습니다?”

박석호였다.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약……했나? 가이딩 보조 약물을 잘 배합하면 마약처럼 쓰일 수 있다는 주의를 들은 적이 있다. 주의인지 어드바이스인지, 시팔, 지금은 모르겠지만 어딘가 이상한 건 분명했다.

출근 시간 끝물이라서 서둘러 지나가는 직장인들은 이쪽엔 시선도 주지 않았다. 정말로 멘탈이 세서가 아니라 헌터끼리 싸우는 경우가 은근히 있기 때문일 거다.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채원우도 같은 생각인지 나를 뒤로 밀어냈다. 나는 순순히 밀려나며 민의수를 찾았다. 그녀가 있으면 박석호에게 제동이라도 걸어줄 텐데 하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헌터만 부른 상황이긴 했다. 젠장. 안 되는데.

“내 친구 죽이고 잠이 잘 오디?”

박석호가 거친 콧김을 뿜으며 덤벼들었다. 채원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룰대로 한 건데.”

“넌 융통성도 없냐? 동정심도 안 들어?”

“그럼 거기서 그냥 둘까. 그쪽 가이드나 내 가이드하고 함께 묻히게?”

“네가 어떻게든 할 수 있잖아!”

“그게 무슨…….”

채원우가 신인 줄 아나. 어이가 없어서 끼어들려는데 채원우가 팔로 막았다. 돌아본 채원우의 옆모습이 굳어 있었다.

“너는 우리랑 다르잖아. 너는…… 너 사실 던전 공략도 제대로 안 한 거 아니야? 혹시 네가 던전 쪽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게 진짜였던 거 아니냐고.”

저게 뚫린 입이라고 다인 줄 아나. 직장 동료라는 예우도 끝났다. 대번에 저 새끼 이 새끼 소리가 나왔다.

“말이 심한 것 아닙니까?”

박석호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진짜 뭔가 맛이 간 게 분명했다.

“박석호 헌터, 혹시 약물 오남용했어요? 사칙에 따르면…….”

“그래, 그놈의 룰에 따르면 내 친구는 죽어야 하지! 의수를 지키지 못하면 나도 죽어야 해. 그때도 채원우 헌터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죽여줄 것에 감사해야 하나? 나는 지금 저…… 태연한 낯짝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올라!”

순간 박석호가 주머니에 꽂고 있던 손을 앞으로 뻗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났다. 조금만 늦게 몸을 돌렸으면 배에 칼이 꽂혔을 거다. 총은 구하기 어려워도 칼은 아니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못 물러요.”

박석호의 손목을 틀어쥔 채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박석호는 코웃음을 치며 징계 따위를 무서워할 것 같냐고 했다. 나는 목소리를 더 낮추어서 속삭였다.

“아니. 그거 말고, 네 뒤통수.”

슬슬 사람들의 이목이 몰렸다. 당연했다. 박석호의 뒤에 종유석을 뚝 떼어낸 것처럼 생긴 물스크류가 있었으니까. 뾰족한 끝이 점점 더 첨예하게 날이 갈려, 그대로 꽂히면 뒤통수에 커다란 구멍이 나게 생겼다.

그 때 박석호가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계산을 안 했을 것 같아? 나는 채원우 저 새끼가 흐트러진 꼴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리고 박석호가 손을 놓았다. 칼이 허공에 떠오르고 그게 무수한 숫자로 늘어났다.

“형.”

채원우가 나를 불렀다. 물에는 한계가 있었다. 쪼갤수록 내구도만 떨어질 뿐이었다. 물방울을 무수하게 나눌 수야 있지만 그러면 칼을 막을 순 없었을 거다.

손목이 잡아당겨졌고 나는 고갤 돌아봤다. 채원우의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수에 넘어갔다.

“하, 하하. 잡았다.”

채원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진압대가 나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통증 대신 겨우 막은 칼이 보였다. 박석호의 능력에도 단점은 있었다. 그 역시 물건을 복제하면 할수록 그 크기가 작아지는 듯했다.

그런데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은 뭐지.

다시 고갤 앞으로 돌렸을 때, 채원우의 뒤로 날아드는 작은 칼이 보였다. 잡혔던 손목을 틀어 채원우를 잡고 내 뒤로 당겼다. 뒤늦게 칼을 감싸는 수막이 보였다. 수막은 얇아서 오히려 그게 칼 모양처럼 보였다.

“네가 죽인 거야.”

박석호의 킬킬대는 소리가 들렸다. 칼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다가, 사라졌고, 채원우의 수막은 그 찰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칼 모양 그대로 내 가슴에 박혔다.

“……아.”

하필이면 정확하게 왼쪽 가슴.

심장이 찔리니 아픔보다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더 크게 났다.

피가 엄청나게 솟았다. 수가 너무 많아 컨트롤이 둔화된 채원우의 칼은 피에 섞여 사라졌다. 가슴을 덮었지만 손 너머로 피가 줄줄 샜다. 예리한 만큼 깊이 들어간 거다.

괜히 나답지 않게 배웅이나 나왔다. 그냥 방에서 알몸으로 뒹굴고 있을 걸.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그리고 큰 문제 없을 거라고 해야 하는데.

“형!”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 이어 내 몸이 아래로 무너졌다. 채원우가 받쳐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바닥에 부딪쳤더라도 하나도 안 아팠을 걸.

낮아진 시야 속에 진압되어 깔린 박석호가 보였다. 미친놈보다 걱정인 건 채원우였다. 박석호 뒤로 진압대가 바로 마취총을 들고 오는 게 보였다. 던전 안보다 헌터청 안에서 이 꼴이 난 데에 장점은 있네.

“나 아직 안 죽어요.”

색색대는 소리밖에 안 나오는데 채원우의 귀에 들리기나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말하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네가 나 살릴 거잖아.”

죽음은 처음인데 무서웠다. 나는 내 목에 걸린 채원우의 목걸이를 떠올렸다. 처음 목걸이를 주었을 때 채원우는 이런 상황이 올 줄 알고 있었을까? 나를 껴안고 세상이 멸망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는 덩치만 큰 어린애가 안쓰러웠다. 곧 눈이 감기고 몸이 차갑게 식었다. 너무나 추웠다.

곧 채원우 헌터, 하는 외침이 들렸다. 하지 말아요, 그러면 안 됩니다, 하는 절박한 외침도 들렸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곧 완전히 암전이 되었고, 하나도 아프지 않고 춥지도 않았다. 너무 편안했다.

곧 초록빛 섬광이 눈앞에 터지며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살아났다.

* * *

“아, 아파……. 아파……!”

입술이 멋대로 움직였다. 신음이 끙끙 나왔다. 잠깐 정신이 들었다가 레이저 기계처럼 보이는 것이 내 가슴 위에서 이리저리 오가는 걸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급속 치료인 게 분명했다.

기절하자, 기절하자. 차라리 기절하는 게 낫다. 제발 기절하자.

“어때. 많이 아파?”

“……윽, 으윽.”

강 책임이 물었다. 그는 고글을 쓰고 있었다.

“죽는 게 나을 정도야?”

이 변태 자식……!

나는 겨우 눈을 떴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었다. 꼴사나운 짓이라고 생각해도 불가항력이었다. 불로 가슴을 지지는 것만 같았다.

“개똥밭을 굴러도…… 사는 게 낫지.”

“그래. 다행이야. 운 좋게 살아남아서. 심장을 맞고도 살아남네?”

의뭉스러운 말투인데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찝찝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헌터청 안이라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소중한 인재를 잃을 뻔했다니까.”

강 책임은 활짝 웃었다. 그러더니 다시 내 환부로 고갤 돌리곤 이랬다.

“아, 나 팀장으로 승진했어. 다시.”

다시라고? 팀장이었던 적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비명도 나오지 않는 엄청난 통증에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기절했거든.

* * *

어째 올해는 유독 많이 다치는 것 같다. 사주라도 볼 걸 그랬나? 내가 올해 삼재였던가?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병동의 천장을 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부상이랄 게 가슴에 구멍 좀 뚫렸던 것뿐이니까 오늘 안에는 퇴원할 수 있지 않을까.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연히 손이 가슴으로 향했다. 이제는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고 체인만 달랑거리는 목걸이가 손에 걸렸다.

“……결국 이렇게 쓰였네.”

허망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 번 되살아났다는 데 의미가 있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던 죽음의 체험에서 끌어올려졌으니 허망한 게 아니라 엄청난 기적이었다. 기적 중에서도 기적. 애초에 가치를 따질 수도 없고 매물도 없어 대강 추정해 말했다는 100억이라는 가치가 싸게 느껴질 정도다.

채원우의 물 때문에 죽었긴 했지만, 채원우 덕분에 살았다. 당연히 원망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실수였고 살았으면 됐지, 뭐.

“그거 군번줄이에요?”

기운이 쪽 빠진 익숙한 목소리에 고갤 돌리니 형민이 보였다. 나와 달리 링거 주사를 옆에 걸고 있었다. 팩이 한 개도 아니고 세 개였다. 색도 모두 달랐다. 형민의 표정은 초췌했다. 길어야 한나절 지났을 텐데 5년은 지난 것처럼 보였다.

“박형민……? 너 많이 다쳤어? 너 설마.”

선발대가 우리였다. 실패하고 나왔으니 아무런 대처도 안 할 수 없을 거다. 두 번째로 들어간 공략팀. 박형민의 팀인 게 분명했다.

“전 괜찮아요.”

전, 이라고 한다. 그럼 또 누가 다쳤단 거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 마지막 기억으로는 채원우는 무탈했다. 늘 그랬듯이 나만 다쳤었는데, 혹시 그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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