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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55화 (5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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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걸 보니 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바로 결단이 내려집니까? 저기 누워 있는 사람이 당신이 될 수 있고 내가 될 수 있습니다! 동생이 죽은 겁니다! 채원우 헌터, 양백겸 가이드가 저렇게 되었다면 버틸 수…….”

“그런 말 하지 마.”

“으윽……!”

고치처럼 폭주가 진행 중인 헌터를 막고 있던 물막의 일부가 떨어져 나왔다. 그것이 박석호를 맞추었다. 빠르지 않아 다칠 정도는 아닌데, 안에 든 돌조각 때문에 살짝 피가 났다.

“너…….”

박석호가 시근덕거리며 채원우를 노려봤다. 팽팽한 침묵이 지나갔다. 아주 찰나지만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 찰나 사이로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냥…… 갈래……. 그냥…… 그만둘……. 이만 보내……줘…….”

쓰러진 헌터가 하는 말이었다. 울 힘도 없으면서 헐떡이며 애원하고 있었다. 저게 무슨 말인지, 무엇을 그만두겠다는지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없을 거다.

헌터청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에 비슷한 기관이 존재하고, 없는 경우는 회사들이 길드를 세워 헌터들을 사적으로 운용한다. 블랙 컴퍼니도 있고 독재자가 말 그대로 군대처럼 다루는 곳도 있었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건 본인만 깎아먹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저 마음을 아는 걸 어떡해.

“흐…….”

나는 터지려는 감정을 막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집으로……. 명우랑…….”

명우는 아마도 동생일 것이다. 나는 채원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곤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를 지나치며 장전된 총을 빼앗았다.

시간이 없었고 규칙대로 한 채원우가 다시금 살인마 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다. 내가 해야겠다. 아니, 나밖에 못 할 일 같았다.

“형! 위험해요!”

매뉴얼이라며 무감한 목소리로 읊던 채원우와 다른 사람 같았다. 채원우는 마구 흔들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웠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폭주 후 사망하면 전사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불명예로 찍힌다. 하지만 폭주하기 전에 사망하면 전사자로 대우받는다. 적어도 집으로 갈 수는 있을 거다.

“나는 이게 맞다고 봐요.”

“양백겸 씨!”

박석호가 외쳤다. 그사이 총을 쥔 손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그래도 바꿔 쥐지 않았다. 한 발로 끝내자.

그 때 엎드려 있던 헌터가 천천히 시선만 나에게 겨우 올렸다. 눈이…… 웃었다. 입술이 달싹였다. 이미 파괴가 회복의 속도를 이겨서 입술도 너덜너덜했다.

하지만 무어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고맙다고 했을 거다. 나도 그럴 테니까.

“양백겸 가이드!”

박석호가 외쳤다. 나는 무시하고 제대로 겨눈 뒤 입술을 축였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그 때 뒤에서 안겼다. 뻗어 나온 손이 총을 쥔 내 손을 감쌌다. 그러고는 섬세하게 손가락을 움직여선 방아쇠에서 내 손가락을 빼냈다. 들어간 건 내 것이 아니라 채원우의 것이었다.

“형까지 그런 기분 느낄 필요 없어요.”

중얼거린 채원우가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른다고 생각했다. 아주…… 아주 느리게. 그리고 순식간에 원래 속도로 돌아갔다.

그땐 이미 총알이 두 개로 복제된 후였다. 하나는 원래 가야 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고 하나는 내 쪽, 혹은 내 뒤의 채원우를 향하고 있었다.

피할 수 있을 리가. 아니.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러면 채원우가 맞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헉, 허억…….”

그 순간 눈앞에서 총알이 멈췄다. 두 개 중 하나는 제 목적지로 향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채원우가 공회전 끝에 천천히 느려지는 총알을 잡아 아래로 떨어뜨렸다.

헌터의 몸 위를 덮고 있던 고치가 없어져 있었다. 그 물막은 총알을 막는 데 사용되었다. 채원우의 반사 속도와 제 몸보다 더 자유롭게 운용하는 능력이 아니었다면 나는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다리가 풀려 아래로 그대로 주저앉았다. 채원우는 내가 앉을 때까지 옆구리를 받쳐 주다가 휙 돌아섰다.

“미쳤어?”

아주 낮고 음산한 목소리였다. 나는 채원우가 저런 목소리를 내는 걸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도 네 가이드를 데리고 협박 한번 해볼까? 아니지. 이건 위협이었어. 살인 미수라고.”

“아니, 아니. 나는 그럴 생각까진…….”

박석호는 혼란스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갑자기 든 생각에 빈 채취통을 들어 여전히 허공을 떠다니는 연기를 담았다. 그사이에도 손이 벌벌 떨렸다.

“지금 위협하는 건 너지.”

박석호가 꿋꿋이 대답했다. 나는 힘없이 채원우를 불렀다.

“됐습니다. 그만하세요. 여기서 뭘 싸웁니까. 어서 공략팀이나…….”

“형.”

“네?”

“나는 적어도 저 팔에 구멍 하나는 내야 그만할 것 같은데요.”

“뭐……?”

그러나 박석호도 헌터였다. 그가 아는 정보로는 채원우와 자신은 등급도 똑같았다. 오히려 채원우가 만들어내는 걸 복사하면 이길 수도 있겠다 믿는 것 같았다. 이물질을 넣지 않아도 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 몇 번이나 해서 요령이 생겼을 테니까.

하지만, 그냥, 싸우지 말고…….

“그만해. 그만.”

민의수도 박석호를 말렸다. 하지만 평소라면 말을 들었을 두 헌터가 듣질 않았다. 서로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바닥이 덜덜 떨렸다. 채원우는 총알을 막는 데 쓰였던 물을 천천히 제 뒤로 펼쳤다. 펼쳐졌던 물에서 종유석처럼 뾰족하게 산이 생기더니 그 모양대로 작게 잘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어 스크류 모양이 유지되는 물 나사였다. 저게 어딘가에 박힐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채원우 헌터. 심합니다. 그만합시다.”

인상을 찌푸리며 채원우를 말렸다. 멀리 있어서 먹히지 않는 걸까. 나는 무릎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다리가 풀린 탓에 서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무릎을 쥐고 헐떡이는 순간 민의수의 악 소리가 들렸다. 홱 돌아보니 박석호가 땀을 흘리며 복제한 것들로 물나사들을 막고 있었다.

“채원우!”

당황해서 손을 뻗었다. 채원우에게 달려가 뒤로 당기기라도 하려는 순간이었다. 박석호의 팔 옆을 채원우가 만든 위협적인 물조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스쳤을 뿐인데도 상처가 크고 피가 많이 났다. 그걸 보자 채원우의 무기들이 아래로 조금 기세를 숙였다.

내가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로 채원우의 경계가 무너졌다. 조금 흐트러진 틈을 타서 박석호가 직접 덤벼들려 하는 순간, 그 역시 민의수의 손에 잡혔다.

“석호야!”

민의수가 외치며 옆을 가리켰다. 폭주 직전이었다. 채원우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

물로 숨통이 막힌 그는 발버둥 치며 마지막으로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큰 폭발일 게 분명했다. 몸을 옆으로 웅크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폭발은 이어지지 않았다.

“형. 끝났어요.”

채원우가 나를 뒤에서부터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끝났어요.”

결국 채원우가 마무리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기적이게도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박석호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대단한 우정을 지녔던 것 같지는 않다. 조금 전의 언쟁을 보면 박석호는 자신도 저렇게 ‘처리’될 게 두려웠던 모양이다.

“너……!”

이미 늦은 일인데도 박석호는 미련을 가지고 분노해 채원우에게 달려들려 했다. 늦은 일에 저렇게 분개하는 것만 보아도 헌터가 사람인 건 분명했다.

채원우는 대응하지 않았다. 나는 채원우가 그토록 초연한 이유를 곧 알게 됐다.

―A존 공략 완료. 진입한다.

진동이 절정으로 달하더니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는 막이 깨지더니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과 군인들이 밀려 들어왔다.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가 인이어로 깨끗하게 들렸다. 더는 지직거리지 않았다.

들어온 군인들은 헌터의 죽음 먼저 확인했다. 폭주의 위험성이 없어졌단 걸 보고한 뒤 우리를 향해 돌아봤다.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나는 이상한 불길함에 채원우의 어깨를 밀며 일어나려 했다. 그 순간 선두에 선 남자가 장총을 들더니 채원우를 겨냥했다. 채원우뿐만 아니라 나와 민의수, 박석호에게도.

―진압합니다.

“아…….”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피하라고 말해야 하는데, 하는 순간 총 끝에서 바늘이 나왔다. 총알이 아니었다. 바늘이 채원우의 몸에 꽂혔고 폭주 단계에 돌입하려던 채원우는 눈을 감더니 뒤로 쓰러졌다.

“이 개…….”

멈춘 건 좋았는데, 사람을 짐승 다루듯이, 짐승에게나 쓸 마취제를…….

할 말도 할 욕도 많은데 나도 한계였다. 나 역시 팔에 꽂힌 바늘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공략은 어떻게 했고 대체 왜 결계가 생겼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부상자 가이드 둘, 사망자 가이드 하나, 헌터 하나.

그렇게 보고하는 사람 뒤에 선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몸을 굽혔다. 가물가물한 정신 속에 채원우가 움찔하며 내 손을 잡았다. 마치 안심하라는 것처럼.

* * *

헌터청에 도착하자마자 소독약이 줄줄 뿌려졌다.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와선 우리를 옆으로 빼냈다. 채원우와 나는 분리되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헌터는 헌터대로 가이드는 가이드대로.

헌터들에게는 더 독한 약을 썼는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정신이 든 상태였다면 꽤 난리가 났을 거다.

우리도 상태가 좋진 않았다. 부축을 받아 끌려가는 중이었다. 바닥에 연신 발등이 쓸렸다. 가물거리던 정신은 다시 암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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