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채원우는 마치 처음 키스할 때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내 입술이 닿고 혀를 넣자마자 고갤 틀며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질 거다. 첫 키스 때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진다는 건 대부분이 과장이다. 하지만 가이드와 흥분한 헌터의 키스는 분명히 폭죽이 터졌다. 혹은 화약이 터지는 걸지도 모르고.
화약이든 핵이든 폭죽이든 뭐면 어떠냐. 나는 이거로 채원우를 살리고, 채원우는 이걸 위해 나를 살리러 왔는데.
채원우의 축축한 손이 내 허리를 감쌌다. 나는 허벅지를 채원우의 다리 사이에 넣어 녀석을 꾹 눌렀다. 그러자 채원우의 거친 호흡이 내 입안을 채웠다.
유리창을 짚지 않은 채원우의 남은 손은 내 뒤통수에 있었다. 그 손에 내 시계도 있었고. 채원우의 온몸에서 경고음이 났다. 하나는 내 시계에서 나는 심장 박동 상승 경고고 하나는 한참 전부터 나던 채원우의 불안정도 경고였다.
뭐든 호러 판타지에 잘 어울리는 불길한 소리였다. 우리는 그걸 배경음악 삼아 재회를 만끽했다. 아직 공략을 시도조차 못 한 전투의 한가운데여도, 서로의 생존을 기뻐할 잠깐 정도는 주어지지 않겠나.
* * *
“다 다른 곳으로 던져진 것 같아요. 플랫폼에 들어와 있던 차량 수가 최대 네 대, 최소 한 대라고 보면 페어 세 쌍으로 들어왔으니 최대의 경우 가이드를 모두 차량 속에 몰아넣은 걸 수도 있고요.”
“파트너 가이드가 없어지면 사이가 좋든 안 좋든 헌터들은 초조해지게 마련이고…….”
채원우가 고갤 끄덕였다. 채원우의 입술이 터져 있었다.
“그 가정대로 더 나아가 보면 헌터들은 몬스터들이 마구잡이로 출몰하는 통로 구역에 따로 떨어진 상태로, 이성을 잃어 능력을 마구 쓰다가 폭주하고.”
채원우가 바닥에 끄적거리던 손을 들어 펑, 소리를 냈다.
“쇼크사하는 거죠.”
“……이게 던전이 구상한 작전이라고 생각해요?”
“…….”
“지나치게 영리하지 않습니까. 이후로도 던전이 이런 식으로 전략을 세워 대응한다면 공략 가능성이 낮아져요. 게다가 민간인도 인질로 잡혀 있고요.”
채원우는 인질 부분에선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성장하고 있는 거라면 그럴 수 있죠. 아니면 다른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 던전이 유독 예민하게 구는 걸 수도 있고. 알을 지킨다거나 새끼를 치는 중이라거나…….”
“던전이 알을 낳거나 새끼를 친다고요? 아, 제발. 끔찍한 소리는 충분하거든요.”
나는 머리를 싸매며 마구잡이로 고갤 흔들었다. 안 그래도 저 뒤로 보이는 몬스터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다.
“일단 사람들은 여기에 두고 바깥으로 나가요. 다른 사람들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래야 하나…….”
“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채원우의 손을 끌었다. 채원우는 못 이기는 기색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저 피도 이제 지워요. 사람들 기절하겠네.”
“기절한 상태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아요?”
“채원우 씨 은근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못되게 구네요.”
“못된 게 아니라 관심이 없는 건데요. 그리고 은근히 아니고 대놓곤데요.”
말 그대로 어린애처럼 투덜거린 채원우가 유리창을 닦아냈다.
나는 남에게 대놓고 무심하게 군다는 채원우를 두고 칸을 건너갔다. 한껏 긴장한 기색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차량이 사라지는 일이 없다는 걸 안 사람들은 나를 보곤 조금이나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음. 일단 시간을 두고 지켜봤는데 차량이 더 사라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구역은 준 보스급 몬스터 하나만 나타나는 곳이라 그 하나를 없애서 위협이 더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지나치게 어려운 말은 하지 않았다.
“플랫폼과 통로에는 몬스터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니, 차량 안에서 공략팀을 기다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 같이 다니면 안 되는 거예요……?”
에이. 뭘 모르시는 소리 하시네. 나는 상냥하게 웃었다.
“네. 안 됩니다. 전투를 하면서 여러분 모두를 보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며 전투 자체도 거친 방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도리어 휘말리실 수 있습니다. 가장 안전하신 건 차량 안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다가 또 몬스터가 나타나면요……?”
“음. 그럼 최대한 빨리 구하러 오겠습니다.”
그럴 일이 없으니 좀 성의 없이 대꾸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초조했다. 빨리 나가서 공략팀이 들어올 길을 만들어놔야 했으니까.
다시 몸을 돌리는 내 뒤로 ‘무책임해……’ 하는 힘 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다 들립니다, 다 들려요. 그래도 못 들은 척하고 아무렇지 않게 칸을 넘어왔다.
“가요.”
채원우는 그사이에 피가 말라붙은 손을 닦고 이마도 지혈한 모양이었다. 나는 고갤 끄덕이며 뒤를 돌아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채원우가 먼저 너덜너덜해진 차량에서 플랫폼으로 다릴 뻗어 건너갔다. 전선이 이리저리 튀며 전기가 통하고 있고 모서리가 뾰족해서 조심해야 했다. 조심히 건너고 나니 안개처럼 정체 모를 연기가 자욱한 플랫폼이 드러났다.
“방독면은요?”
“그러는 네 방독면은요.”
“숨차고 거슬려서 벗었어요.”
“뭐. 나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그럼…… 가볼까요.”
“형이 있으니까 조금 전하고 달라요.”
채원우는 한결 산뜻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조금 전에도 같이 있었는데 뭐가 다르냐고 투덜거리려다가 말고 물었다.
“뭐가 다른데요?”
“형 없이 여길 걸을 땐 답답하고 지루하고 끔찍했거든요.”
“음.”
“그런데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조용하고 좋아요. 산책하는 것 같아요.”
“뭐……. 긍정적이니 좋네요.”
안개를 낀 부둣가를 산책한다고 여겨도 좋긴 하지. 다만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하는 사람들 대신 달려드는 몬스터가 있고 귀여운 강아지들 대신에 광견병에 걸린 것처럼 거품을 무는 몬스터 이빨이 있을 뿐이지만.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나는 이곳이 가본 적도 없는 영국이라고 상상하고 걷기로 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채원우가 지나왔다는 길목은 깨끗했다. 한껏 긴장한 게 무색하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고 고요했다. 채원우와 나는 나란히 탐조등을 켰다. 그래도 가시거리는 2m가 채 안 됐다.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서 반대쪽으로 가는 전철이 들어서는 플랫폼으로 입장했다. 서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목표를 가진 게 분명했다. 또 다른 차량이 있는지 확인한다, 가이드와 헌터를 찾는다, 그 후 이 안개 미로를 파훼한다.
불안감이 없을 리 없었다.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 불확실성에 대한 말 한마디라도 하면 모든 일이 어그러질 것처럼 우린 조심했다. 아닌가. 채원우는 괜찮고 나만 무서운 건가.
나는 플랫폼으로 건너온 이후로 내 손을 한시도 놓지 않고 꽉 잡고 있는 채원우를 흘끗 올려봤다. 고글을 쓰고 있는 채원우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있었다.
“흐아암.”
별로 안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졸립니까?”
내가 기가 차서 물으니 채원우는 어깰 으쓱이고 말았다.
“졸린데 어떡해요. 한껏 폭주하다가 진정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으니까. 식곤증? 같은 거 와요.”
“몬스터를 잡아먹은 것도 아니면서 무슨 식곤증입니까…….”
“그건 됐고요. 우리 둘만 있는데 자꾸 존댓말 할 거예요?”
“채원우.”
“네.”
“쉿.”
나는 조잘대는 채원우의 입을 막았다. 고갤 숙이며 몸을 웅크리자 채원우도 같이 웅크렸다. 긴장한 기색이 없는 걸 보면서 나는 확신했다. 내가 느낀 걸 채원우는 한참 전부터 느끼고 있었을 거란 걸.
당연했다. 헌터는 가이드보다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설령 이곳이 미지수 던전으로 헌터와 가이드에게 버프 혜택이 주어지지 않아도 기본적 육체 능력이 그러했다.
내가 채원우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채원우가 눈을 사르르 접으며 웃었다. 미워할 수가 없었다.
“오고 있어요.”
채원우가 고갤 끄덕였다.
아주 커다란 것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느리게 푸득대며 다가오는 것에 우린 더욱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조심히 고갤 들자 익룡처럼 생긴 몬스터가 사람을 발로 쥐고 가는 게 보였다.
“…….”
그 인영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 복장. 저 낯익은 복장은 분명 헌터청 소속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저걸 본 순간 사라진 점 두 개를 떠올릴 수 있었다. 헌터나 가이드의 시체일 게 분명했다.
익룡형 몬스터가 멀어져서 내 귀에 더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채원우의 입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가이드였어요, 헌터였어요?”
가이드와 헌터는 팔 부분에 수놓아진 표식이 달랐다. 나는 몰라도 채원우는 보았을 것 같았다. 나보다 시력이 좋으니까. 던전 안에서의 채원우는 오히려 던전 밖보다 활력이 돌았다.
“팔이 떨어져 있었는데, 이렇게…….”
그때 장면을 떠올리고 있는지 목소리가 조금 몽롱했다. 손날로 어깨를 툭툭 치는 모습에 나는 설마, 설마 하며 사색이 되었다.
“여기부터 잘려 있었거든요. 근데 옷이 뜯겨나가서 표식을 못 봤어요.”
“…….”
나는 웃을 수도 없었다. 우리가 언제고 다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단 걸 알고는 있었다. 알고 있으니까 더 그런 말을 피하는데 이놈의 자식이……!
잠깐 분위기가 무척 가라앉았다. 채원우는, 우리 원우는, 얼굴만 꽃인 줄 알았는데 종종 머릿속도 막무가내 꽃밭인 내 파트너는 찬물을 끼얹어놓고 평소처럼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 있을 뿐이다. 긴 속눈썹이 예뻐서 속 터진다.
욕설이 겨우겨우 침묵을 깼다.
“젠장…….”
“파트너가 누군지 몰라도, 아직 남아 있는 나머지 점 하나가 파트너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