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저 혼자 여기로 왔다는 말씀이시죠?”
거듭 확인하며 인이어를 두드렸다. 기분 나쁜 노이즈만 들렸다.
“응. 우리 구하러 온 거지……?”
기대감에 빛나는 눈빛 속에는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서, 누가 봐도 인질처럼 끌려온 놈조차도 유일한 희망, 영웅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어디 가서 외모로 불이익을 본 적은 없었다. 홍보물 사진을 찍을 때 배운 대로 ‘신뢰감 있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지만.
“네. 공략 작업이 들어간 상태입니다.”
다만 아주 옛날처럼 느껴지는 초기 상황만 알려드렸다. 공략 작업에 들어온 선발대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좆같죠. 할 수는 없으니까.
이미 말로 들었지만 그래도 확인할 겸 비상 레버도 내려보고 기관실과 연락도 시도해 봤다. 모두 불통이었다.
나는 전투계 헌터도 아니었고 치료계 헌터도 아니었다. 헌터가 없으면 몸이 일반인에 비해 조금 더 튼튼할 뿐인 가이드에 불과했다. 내가 이 차량 안에 갇혀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일은 거의 없을 거다.
그런데도 이 암담한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이 계속 피어났다. 채원우가 올 거라는 믿음. 내가 어디에 있든 채원우는 그 예측할 수 없는 순발력과 엄청난 능력을 통해 나타날 거라는 믿음.
던전 브레이크 역사 전부와 거의 함께한 내 적잖은 경력에서 이런 믿음을 가진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파트너와 떨어지게 되는 경우도 드물었지만, 그 드문 와중에서도 혼자 남게 되면 하던 생각은 늘 단 하나. 버려지겠구나, 밖에 없었으니까. 헌터는 가이드가 없으면 분리불안이 일어나지만, 가이드는 고유명사가 아니므로 언제든 다른 이로 대체될 수 있었으니까.
“일단 부상자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다치신 분 있으십니까?”
몇몇이 손을 들었다. 차량이 급하게 멈춘 바람에 넘어지고 부딪치는 바람에 타박상이 생긴 사람과 손잡이를 잡고 버티느라 손목 인대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었다. 일단 모아서 구급 키트 안에 든 내용물로 처치를 해주었다.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요……?”
방독면이 필요한 거냐고 묻던 앳된 학생이 물었다. 교복 치마를 입어 무릎과 정강이가 쓸리며 피가 보였다. 꽤나 아플 텐데도 의연히 버티고 있었다. 소독약을 뿌리고 밴드를 붙여주며 웃고 말았다.
구체적인 시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시간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더 큰 절망을 느낄 테니까.
“중학생이에요?”
대신 나는 말을 돌렸다. 비겁하단 소릴 들어도 상관없다. 나는 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배움도 짧고 사람들 속에 어울려 산 경험도 짧은 내게 완벽함에 가까운 능숙함은 없었다.
“내년에 고등학교 입학해요…….”
훌쩍이며 대답하는 소리에 나는 가족사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생활을 기대하며 활짝 웃고 있던 내 얼굴은 던전이 터진 이후 몇 년이나 사진에서 보았지만 늘 낯설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고등학교 입학식 갈 수 있을 거예요.”
언제 구해질 거란 말 대신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 난 못 갔지만 너는 갈 수 있을 거야. 내가 가게 해줄게.
하지만 어떻게?
그 순간 엄청난 진동이 울렸다. 지진이라 치더라도 강도가 6은 되는 지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흔들림이었다.
사람들이 각기 비명을 지르며 의자와 손잡이 등을 잡고 버텼다. 나도 치료하고 있던 학생을 위로 덮어 가리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버텼다. 학생에게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숫자를 세고 있었다.
“22, 23, 24…….”
뭐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나, 뭔가 다른 게 있나? 한껏 긴장한 채로 기다렸다. 그리고 읊조리던 숫자가 63이 되었을 때, 진동이 멈췄다.
“……지금 숫자 센 거, 뭐예요?”
살인마를 피해 숨기라도 한 양 목소리를 낮춰서 물어봤다. 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곳에서만은 이 학생이 나보다 선배였다.
“차량이 하나씩 먹히고 있어요. 1분 동안…….”
“먹힌……다고요?”
“내가 봤어요. 8량 차였는데, 지금은 네 칸밖에 안 남았을 거예요. 여, 여기는 뒤에서 두 번째 칸이고요.”
그래서 기관차랑 연결이 되지 않았던 거다. 나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웃음이 나서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정말 즐겁거나 재미있어서 웃은 건 당연히, 절대로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난이도 때문에.
어쩌면 최초의 등급 외 던전이 될 수도 있겠군. 나가면 강 책임에게 하나 더 부탁해야겠다. 그린존의 집 한 채라든가. 살아 나가기만 한다면 말이야.
“이제 어떡하죠?”
한 명이 울기 시작했다. 눈물은 전염성이 강했다. 애써 버티고 있던 학생조차 턱을 파르르 떨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다들 소리는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리 내어서 우셔도 된다고 했다. 열차 칸을 잡아먹는 건 아무래도 소리로 발동하는 건 아닐 거다. 소리였다면 진작에 이 열차는 끝이 났어야 했다.
“이제 어떡해요? 왜 아무것도 안 해요? 저희, 저희 구하러 오신 거 아니에요?”
“맞아요! 저, 저희는 기다렸는데……. 헌터 아니에요? 헌터면 싸워야죠!”
아이고, 소리 내서 울어도 된다고 했을 뿐이지 소리 지르시란 말은 아니었는데. 나는 쓰게 웃었다.
저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사실은 나도 나 자신에게 저렇게 말하고 있었다. 헌터청 소속이잖아. 계약 관계여도 지금은 헌터청 소속인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왜 아무것도 못 해, 등신아.
“제 파트너가 있습니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자신이 없었다. 언제 구해질 거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처럼, 확신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해야 하니까. 나야 채원우가 나를 찾을 거라고 믿지만 이 사람들에게 채원우는 낯선 헌터 1에 불과하니까.
“그 파트너가 찾아올 겁니다.”
“어, 어어, 어떻게요?”
뭐. 그냥 감이고 느낌이지만.
“우린 괴물이거든요. 괴물끼린 알아봐요.”
뒤쪽에 서 있던 몇 명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헌터와 가이드가 괴물과 괴물 짝꿍, 혹은 똑같은 괴물로 불리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찔리라고 한 말은 아니지만, 찔렸다면 그건 당신들 잘못입니다.
나는 개의치 않고 시계를 확인했다. 소용도 없는 GPS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중 최악인 사실은 점 두 개가 언젠가부터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다. 누군가 죽었다. 이기적이어도 나는 제발 그게 채원우만은 아니길 바랐다.
그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다. 아이디어라고 하기에는 미친 소리에 가까웠지만, 1분이라면 걸어볼 만했다. 치료 후에 조깅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하곤 했지만 사실 내가 더 자신 있는 건 단거리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시 차량이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신 분 계십니까?”
“저, 저요……. 제가 봤습니다.”
중후한 인상의 아저씨가 손을 드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히 물었다. 그러는 와중에 손목시계에 손을 대고 음량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내 인이어뿐만 아니라 내 파트너의 인이어로도 신호가 갈 것이다. 음량을 높이며 센서 감도도 높였으니까 조금 있다가 내 심장 박동이 급격히 치솟으면 신호가 갈 거다. 혹시라도 채원우가 가까이 있다면, 이쪽으로 오겠지.
“커다란…… 거머리 같은 게 차량째로 씹어먹더라구요. 속도가 엄청 빨랐고 입안의 이빨은 믹서기처럼 문 것을 갈아댔어요…….”
생각보다 더 자세한 정보였다. 큰 도움이 되겠다. 나는 허리에 챙긴 무기 몇 개를 체크했다. 이번에는 난이도가 높을 걸 미리 예상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챙겨 왔다. 그중에 전기가 흐르는 진압봉이 있었다.
“다들 여기서 모여 계세요.”
그 말에 사람들은 더욱 가운데로 모였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나 했더니 한 칸 한 칸 먹히면서 끝 차로 몰려든 것 같았다.
나는 진압봉을 손에 들고 앞 칸으로 향했다. 벌써부터 심장이 뛰려고 해서 곤란했다.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큰 심장 박동은 지금이 아니라 조금 후에 필요했다.
“어디 가세요……?”
조금 전 치료를 도와줬던 학생이 물었다. 애써 웃어 보이면서 대답했다.
“그냥 확인차요. 다녀오겠습니다.”
“……저기요!”
잡는 소리에 돌아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한 발 앞으로 나온 학생이 보였다. 기도할 때처럼 두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가족들이 있을 때는 나도 교회를 다녔었다. 잠깐인데다 신실하지도 않았다. 그냥 부모님이 다니시니까 쫓아갔던 거지. 저 학생이 기도를 하려는 의도로 모은 손인지 아니면 절박해서 그냥 잡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아멘, 하고 중얼거렸다.
* * *
버튼을 열고 문을 열었다. 아직 갈 공간이 더 남아 있었다. 나는 서서히 끝까지 걸었다. 심장 박동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도록 일부러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더는 나아갈 곳이 없고, 오로지 암흑만 있는 칸에 도착했다.
문도 남아 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연결 부위까지만 뜯어 먹는 모양이었다. 문에 작게 난 창문 너머로 보니 까마득한 어둠밖에 없었다. 철로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아찔해져서 자리에 앉았다.
“후우…….”
손깍지를 끼고 몸을 웅크렸다. 링 위에 올라가기 직전의 격투기 선수처럼.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아서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지만, 심호흡밖에는 할 게 없었다.
진압봉은 1m까지 길어진다. 차량의 높이는 그래도 2m까지는 되지 않을 거다. 좌석의 맨 끝자리에 앉은 나는 사람들이 팔을 걸치곤 하는 곳에 기댔다. 시선으로 높이를 가늠했다.
“차라리 빨리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