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여기서 꽤나 잔뼈가 굵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도 고작 세 번째 겪는 심각한 분위기였다. 첫 번째 개방형 던전, 코드 레드 때는 파트너를 잃었다.
“…….”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자연히 옆에 앉은 채원우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투명한 고글을 목에 걸고 어차피 방수의 의미가 없을 만큼 흠뻑 젖을 반다나에 방검 장갑을 끼는 채원우는 덤덤해 보였다.
그게 차라리 나았다. 죽었던 파트너는 나를 달래느라 오히려 자기는 하나도 겁 안 먹은 척하며 애를 쓰고 있었거든.
내 시선을 느낀 채원우가 나를 바라봤다.
“형. 무서워요?”
수송 트럭은 군용이라는 용도에 걸맞게 시끄럽고 불편했다. 그런데도 나는 채원우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솔직한 대답을 원해요?”
“아뇨. 형이 무섭다고 하면 내가 걱정될 것 같아요.”
“그럼 거짓말 좀 치죠, 뭐. 안 무섭습니다.”
“좋아요. 걱정 말아요. 내가 지켜줄 테니까요.”
채원우는 검은색 헬멧을 쓰다가 또다시 나를 돌아봤다. 그러곤 내 목을 톡 쳤다. 반다나 너머로 채원우의 손가락이 느껴졌다.
“그리고 여차하면 한 번은 세이브해 줄 테니까요.”
이게 목숨 반 개에서 하나 값은 되는 걸 아는 모양이다. 그걸 채원우는 내게 넘겨준 거다. 이 순간 목걸이를 돌려주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둘 중 하나가 희생하는 게 결코 좋은 엔딩이 아니라는 걸. 굳이 생존 가능성을 비교하자면 물론 나보다 채원우가 높았다. 나는 일단 사는 데 욕심을 내기로 했다. 그다음 문제를 위해서.
통제된 거리로 인해 도로 아무 데나 주차해도 됐다. 우리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내렸다. 그리고 던전에서 발생하는 자기장과 팽창과 침식을 막느라 설치해 둔 기계에서 뿜어내는 자기장으로 인해 생긴 오로라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기가 핀란드나 그린란드였다면 순수하게 감탄만 했을 텐데.
나는 조금 아찔함을 느꼈다. 코드 레드의 날에도 오로라는 아름다웠다. 보랏빛이었고 상황에 맞지 않게 나를 비롯한 풋내기 가이드와 헌터들은 그걸 보며 혀를 내둘렀었다.
거기서 살아남은 애들이 몇 명이었더라.
“채원우 씨.”
나는 시청 위로 무지개처럼 드리운 오로라에서 시선을 떼며 채원우의 손을 잡았다. 채원우의 손이 움찔하고 떨렸다. 손가락이 드러나는 장갑인 터라 우리는 일부의 체온만 공유할 수 있었다.
채원우의 손은 뜨거웠다. 하지만 이후 있을 일에 비하면, 지금 채원우의 온도는 아주 정상이었다.
“죽지 말아요.”
뜨거워도 상관없으니까 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체온이야 식혀줄 수 있고 쇼크야 막아줄 수 있으니까 그냥 좀 살아서 돌아가면 좋겠다.
그간 가이드가 없었을 채원우 헌터는 압니까? 가이드보다 헌터의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은걸. 능력 개방 중 가이드를 잃은 헌터에 대한 현장의 처분은 혹시 알아요? 모르는 게 나으니까 그냥 몸 건강히 우리 둘 다 돌아가면 좋겠네요.
할 말은 많지만 시간은 없었다. 곧 삐이이이 하는 이명이 들렸다. 시청 정문에서 퍼덕거리며 익룡처럼 생긴 몬스터가 나왔다가 결계에 막혀 몸이 찢어졌다. 감상은 사치였다.
“각 팀, 지시받은 입구를 통해 역사로 진입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략해야 한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임무에 최선을 다해주길.”
지 목숨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긴. 나는 투덜거리면서 채원우의 뒤에 섰다. 고글을 끼고 반다나를 올렸다. 채원우가 고갤 좌우로 꺾으며 뚜둑 소리를 내는 게 보였다. 심장 뛰는 소리가 요란해서 손목에 찬 시계가 연달아 경고를 보냈다. 진입이었다.
* * *
지하 시청역은 커다랗고 복잡하다. 환승하러 가는 거리도 꽤 되는데 2호선과 1호선 역사끼리도 거리가 있었다. 채원우와 나는 2호선 쪽을 맡게 되었다.
계단을 내려오니 가장 먼저 보인 건 정체를 모를 연기였다. 이미 탐지 카메라를 이용해 연기가 깔려 있단 걸 알아서 우리는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였다.
급하게 한 약식 분석에서는 독성이 없다고 했지만, 모를 일이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독성일 수도 있고 증상이 나중에 나타날 수도 있는 거였으니까.
꽤 많은 인원이 공략에 참여했지만, 막막했다. 출퇴근 시간은 아니었어도 평소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던전에 휘말린 차량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통로에 왜 아무도 없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귀에 연결한 인이어로 그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들렸다. 가까이 있는데도 다른 층에 있는 것처럼 전파 상태가 안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 저 말이 더욱 무서웠다. 통로에 아무도 없다는 건 뭔가 이상한 거다. 한 명도 없을 리가 없다…….
“혹시 특수 구조팀 먼저 왔다 간 거 아냐?”
그 불안감 가득한 물음에는 나와 채원우를 포함해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렇게 말한 본인도 알고 있을 거다. 그냥, 너무 무서우니까 어떻게든 희망 회로를 돌리려 한 거지.
특수 구조팀은 각 팀별로 몇 명씩 차출되거나 지원을 받는 형태로 채워진 헌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절대로 선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게 그들의 실력이나 능력이 떨어져서라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인명 구조. 전투와 함께 진행할 수 없는 임무였다. 그러니까 선발대인 우리도 들어오지 않은 던전에 먼저 들어왔을 리가 없는데…….
“어어, 잠깐…… 자……. 여기……!”
뒤이어서 삐이이이, 하며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엄청난 기계음이 들렸다.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노이즈에 모두가 귀를 싸맸다.
아니, 모두인가?
연기는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허리를 세운 사람이 손가락으로 한 명씩 가리켰다. 수를 세는 것 같았다.
“한 명이 없어. 자기 파트너 확인해 봐.”
뭐라고……?
나는 다급히 고갤 돌렸다.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이 빌어먹을 연기가 점점 짙은 안개로 변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엄청난 화재 속에 들어온 것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채원우.”
멍하니 중얼거리는 순간 뒤에서 묵직한 무게가 텁 안겼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공격하려 했는데 상대가 더 빨랐다. 칼을 뽑고 움직이려는 손목을 잡은 상대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저예요.”
속삭일 때 부쩍 더 낮아지는 저음의 목소리. 채원우였다.
“형, 저예요.”
그 찰나에 엄청나게 긴장했던 모양인지 아득하게 기계음이 들렸다. 내 바이털 체크 문제였다. 손목시계를 두드려 신호음을 끄고 천천히 진정했다.
보이지 않으니 몇 배로 긴장되었다. 게다가, 내 예감이 맞는다면 이 던전은 이상하다. 단순히 정신계 던전이 아닌 것 같았다.
미지수. 측정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던전 속에 우리는 던져진 거다. 그것도 지하 3층 깊이 속에.
“채원우 헌터. 내 옆에 꼭 붙어 있어요.”
나는 손목을 돌려 채원우의 손을 꽉 잡고 중얼거렸다. 채원우는 아마도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그사이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조심해!
먹통이 된 것처럼 조용하던 인이어에서 갑자기 다급한 외침 소리가 들렸다. 고갤 홱 돌아보니, 어두운 안개 속에는 기이한 침묵만이 남아 있었다.
“알파?”
나는 우리 팀명을 중얼거렸다.
“알파. 대답하세요. 알파.”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채원우의 손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채원우가 있는 방향으로 고갤 돌려 중얼거렸다. 입술이 떨리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사라지지 마.”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서.
* * *
“저기요. 저기요? 괜찮으세요?”
토할 것 같아…….
“정신 좀 차려주세요!”
“괜찮아요……. 저 괜찮…….”
토할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누가 봐도 안 괜찮아 보였는지 작게 ‘어떡해. 토하려나 봐……’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술에 진탕 취했던가? 뭉텅 잘렸던 의식이 천천히 돌아왔다. 마지막에 단숨에 돌아온 기억에 벌떡 일어났다.
누가 뇌를 유리병에 담아서 엄청나게 흔들었다가 다시 머릿속에 넣은 것 같았다. 머리를 싸매려는 순간 방독면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거……!”
“벗겨뒀어요……. 숨을 못 쉬는 거 같아서.”
조심스러운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부는 익숙했다. 낯선 천장이 보인 게 아니라, 너무나 익숙한 지하철 차량 내부가 보인 것이다. 게다가 새로 들인 2호선 차량이었다.
내겐 차량까지 들어온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저……. 방독면 써야 하나요?”
혼란스러움을 좀 진정시켜 보려 하는데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갤 돌리니 핸드폰을 꼭 쥐고 있는 학생이 보였다. 교복을 입고 있었고, 당연하지만 앳되었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폼이에요.”
괜한 불안감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이골이 나도록 던전을 들락날락한 나도 무서운데, 이 사람들이야 말할 게 더 있을까.
“제가 여기 제 발로 들어왔나요?”
“아니요. 그게…….”
누가 설명을 해줄지 눈치를 보는 기색이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시는 할머님이 나섰다.
“갑자기 여기서 차가 멈췄어. 핸드폰도 안 터지는 거야. 바깥은 다 불이 꺼지고……. 기다리는데 ‘이번 역은 시청, 시청입니다’ 하더니 문이 열리고 자네가 밀려 들어온 거야. 누가 밀친 것처럼……. 나갈 순 없었어.”
“…….”
그게 무슨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란 말이야. 나는 아찔해져서 혀를 깨물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허벅지를 찔러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팀원들의 신호가 떴다. 하지만 빛만 반짝일 뿐 수신은 되지 않았고 지도 역시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