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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헌터청을 나가봤자 이로울 게 하나도 없는 걸 잘 아는 만큼 헌터들은 그 갱신이라는 존재를 아예 잊고 살았다. 나야 헌터가 아닌 프리랜서 가이드니 다르지만, 유명하지도 않은 이 제도를 아는 이유는 내 파트너 중 한 명이 헌터청 최초로 퇴사를 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죽을래.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다가 던전에 휘말려서 운 나쁘게 죽는다 하더라도 내가 그냥 사람인 것처럼 살다 죽을래.’
이유는 이거였다. 나는 한참 연상인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할 듯 이해할 수 없었다. 억지로 섞여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다른 존재란 게 잊혀지는 건 아니었다.
능력은 안 쓸수록 퇴화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안 쓰는 게 힘들었다. 채원우가 종종 물을 가져오는 대신 직접 뽑아내는 것처럼 능력은 세 번째 팔, 혹은 세 번째 발과 같았다. 고무망치로 무릎을 치면 다리가 튕겨 나오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도 나온단 말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헌터청에 남는 건데. 재채기에서 불씨가 나오든 놀라면 몸이 돌이 되든 적어도 여기선 다들 똑같은 괴물들이라 이상할 것도 없으니까.
그러니 당장 채원우가 다음 갱신 시기에 그만뒀으면 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그 애의 의사도 묻지 않았다. 그냥, 적어도 얘가 자기 인생을 새로 고민할 타이밍이 언제쯤인지만 알면 됐다. 아니면 그냥 내 희망 사항이든가.
“일단 알았어. 던전 다녀오면 알려줄게. 아주 자세하게.”
“책임님의 자세하게는 별로 안 좋던데요.”
내가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강 책임은 키들대고 웃었다. 그러곤 종이로 된 파일을 내게 던졌다. 허공에서 받고 넘겨보니 다음 던전 발발 예상 지역들이 적혀 있었다.
“그 세 군데 중 한 군데가 미지수일 거로 나는 보거든.”
“여긴…….”
“다른 곳은 몰라도 나는 그 두 번째 후보지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양 가이드는 어떻게 생각해? 어디가 좋겠어?”
강 책임은 마치 회식 장소를 묻는 말투로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결국 금연 건물 안에서 담배를 빼무는 강 책임과 똑같은 말밖엔 할 수 없었다.
“두 번째만 아니면 좋겠네요.”
하지만 말하면서도 예감이라는 게 올 때가 있잖아. 절대 아니었으면 하는 곳은 늘 맞고 제발 맞길 바라는 답은 교묘히 피해가는 게 인생이란 걸.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인생은 그런 식이었다.
나는 불안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채원우가 언제 계약서를 다시 쓸지 안 쓸지 따위에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모르는 척 1년을 보내다가 그냥 떠날 걸! 진심도 아닌 후회를 지껄이면서.
* * *
“요즘 부쩍 우리한테 출동하란 말이 없네요.”
채원우가 핸드폰으로 오목을 두며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런 채원우의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누워 책을 읽는 중이었다. 책을 가슴팍에 엎어두고 가만히 손가락으로 표지를 두드렸다. 왜 출동하란 말이 없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강 책임은 우리를 아끼고 싶은 거다. 애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최상의 컨디션에서 데이터를 최대로 뽑아 오길 기대하는 게 분명했다.
직위는 책임이어도 그가 연구 쪽을 쥐락펴락하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그의 도덕성과 별개로 이룬 혁혁한 공들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성과주의.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중시하는 더러운 세상.
“그냥 즐기죠? 이 여유를.”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초조해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채원우에게 속내를 숨기고 말하는 목소리가 내 귀로 듣기에도 덤덤해서 다행이었다.
다시 책을 보려고 했지만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엎어두고 채원우의 턱을 잡아 날 내려다보게 했다.
“원우야.”
“응.”
채원우는 이제 내가 이름만 부를 때면 가끔 반말로 받아치곤 했다.
“너 만약에 헌터청을 나갈 수 있다면 나갈래?”
채원우에게 직접 갱신 기간이 언제냐고 물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채원우는 존재도 몰랐던 외국어를 듣는 표정을 했고 나는 얘가 그런 것도 모른다는 걸 눈치챘다.
거기서부터 불안감은 시작됐다. 너 대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어, 라는 질문은 폭탄의 뇌관처럼 깊숙한 곳에 있어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고. 내가 하는 것과 내가 묻는 거라면 다 따라하고 다 대답하는 채원우조차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에둘러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확신은 약해지고 의심은 몸집을 불렸다. 내가 괜히 오지랖을 부리는 건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채원우의 의사를.
“형이랑 함께라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채원우의 말은 이리저리 돌아가는 일이 없이 언제나 내게 직격으로 꽂혔다. 나는 흰 피부에 긴 속눈썹 때문에 여느 때처럼 졸려 보이는 눈을 보다가 씩 웃었다.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야. 나가자고 종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물어보려는 것뿐이다. 채원우의 정보는 모두 내 권한 밖에 있으니.
채원우와 파트너 계약을 갱신하며 기다렸다가 함께 돈을 모아 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채원우는 돈이 많고 나도 모은 돈이 조금 되니 두 명이 살 만한 그린존의 괜찮은 집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럼 됐어.”
“왜요?”
채원우가 몸을 아래로 숙여 나를 껴안으며 물었다. 나는 말해 줄까 말까 하다가 말았다. 채원우와 강 책임이 어떤 관계인지 모른다. 나불대며 푼수같이 떠드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닐 거다.
“그냥. 물어봤어.”
“하아, 좋다. 형. 그냥 이렇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채원우도 그냥 물어본 거였는지 금세 말을 돌렸다. 햇살이 아주 따뜻하게 들어오고 있는 터라 나도 노곤노곤했다.
가장 따뜻하고 졸린 시간인 3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오전에 빡세게 구르고 밥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 별일만 없다면 낮잠을 자는 게 최고의 일과일 거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좋겠다…….”
“야. 너 그런 말은…….”
응급실이나 소방서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말. 오늘따라 한가하네요. 이곳에도 그런 말이 있다. 이대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좋겠다.
아니나 다를까. 채원우의 그 말을 기다렸다가 제대로 엿을 먹이려 했단 양 방송이 울리고 코드가 발령되었다.
―블루코드 발생. 던전 등급 A 마이너스 추정. 1, 2, 3팀 출동. 발생 지역…….
“……그런 말하면 꼭 일이 터진다고.”
오늘따라 손님이 없네, 오늘따라 환자가 없네, 오늘따라 평화롭네. 이 세 문장은 정말로 금지해야 한다. 내가 얼굴을 찌푸리고 채원우를 노려보는데 상대는 오히려 헤실헤실 웃기만 했다.
“그래도 사내 커플이라 좋다. 우리 계속 붙어 있잖아요.”
그런 끔찍한 소리를……. 사내 커플인데 계속 붙어 있단 거면 퇴근을 안 한다는 뜻이잖아.
말해 봤자 채원우는 여전히 꽃밭 속 소리로 반박해 내 말문을 막히게 할 것 같아서 참았다.
―……시청역. 1분 내 준비 완료 요함.
아주 잠깐의 여유까지 완전히 끝내는 말이었다. 시청역이라니. 던전 등급은 에이 마이너스고, 세 개소 팀이나 출동하라고 했다. 시청은 이것만은 아니길 바랐던 바로 그 두 번째 후보지였다.
그런데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 불길하고 재수 없는 후보지 목록을 봤을 때부터,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한 걸지도 몰랐다.
‘대가가 너무 쌌지.’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급하게 문자를 남겼다. 오타가 나도 개의치 않았다. 만약 갱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채원우와 내 계약을 함께 끝내길 요구해도 받아줘야 한단 말이었다. 질문도 아니고 일방적 요구였다.
강 책임에게서 ‘OK’ 두 글자가 왔다. 그게 다급한 손길에 KO처럼 보였다. 재수 없는 징조. 머리를 털어내며 군화에 발을 욱여넣었다.
“채원우.”
허릴 일으켜 세우며 채원우를 불렀다. 채원우는 칼자루와 탄환이 장착된 유틸리티 벨트를 가슴을 가로지르도록 착용하고 있었다.
“우리 다음 휴가 때 또 영화 보러 갈까요?”
채원우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졌다. 내가 누군가를 안타깝게 여길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정도 건방진 짓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채원우에게는 더 보여주고 싶고, 더 잘해주고 싶었다.
이건 동정이 아니다. 애정이지. 던전이 터진 이후로 처음으로 하는 사치라고 해도 무방한.
* * *
수송차에 타서야 상황 브리핑을 받을 수 있었다. 개방형 던전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던전의 90퍼센트는 폐쇄형 던전이다. 처음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던 해를 제외하고는 열 번 중 한 번 발생하거나 안 하는 게 개방형 던전이라는 거다.
던전존이 만들어져 외부와 차단이 되고 그 안에서 생태계가 구축되는 폐쇄형과 다르게 개방형은 주변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그 속도와 규모에 따라서 코드 컬러가 정해진다. 블루라는 뜻은 침식 속도가 적고, 던전 내 불안정 지수는 높다는 의미였고.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 강 책임은 금방 다시 미지수 던전이 나올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불안한 기색을 보이긴 해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지수 던전의 이야기는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던전이 드물지만 평범한 개방형 던전일 확률은……? 평범한 개방형 던전이라면 에스퍼들과 최첨단 기술들을 통해 주변의 침식을 막고 안에서 붕괴되어 소멸하길 기다려도 되었을 거다.
하지만 코드 블루인데도 심각한 표정을 한 헌터 및 가이드 팀이 세 개나 출동하는 이유는 역시 발생 지역 때문이었다. 시청역. 개방형으로 추정되는 와중에 미지수 던전일 확률까지.
“하필. 좆같네.”
누군가 내 마음을 대변했다. 나는 천천히 고갤 들어 수송차 안을 둘러봤다. 구석에 형민이가 보였다. 몸을 스스로 강화할 수 있다는 파트너가 창백하게 질린 형민이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며 달래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