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 3
연락이 온 건 오전이었고, 도착한 건 오후였다.
오전에 처음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채원우와 껴안고 늦잠을 자는 중이었다.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으면서 채원우와 자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 시작할 땐 나 혼자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서부터 깨면 채원우와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몸은 배기고 자리는 좁아서 폐소공포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나는 채원우를 밀어내며 대답했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꽉 잠겼다. 채원우는 오히려 칭얼대며 내게 엉겨 붙었다. 끈끈이 같은 몸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도 소용이 없었다. 채원우는 날이 갈수록 더 단단해지고 힘은 무식하게 세졌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아,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네……. 여보예요…….”
채원우의 잠꼬대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지 않았어도 어차피 기억도 못 했을 말이었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지직대는 기계음이 잔뜩 섞인 목소리는 어지간히 열 뻗치는 일을 전했다.
“뭐라고요?!”
“아, 아아……. 형, 아파요…….”
졸지에 내 팔꿈치에 턱이 맞은 채원우가 소파 아래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는 허둥지둥 일어나다 실수로 채원우를 밟았다. 끙끙 앓는 소릴 내긴 해도 쟤가 이 정도로 다치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안다.
“지금 갈게요. 아니, 몇 시간 후에……. 별일 없으면요.”
시계와 일지를 확인했다. 훈련은 없는 주말이었다. 외출이야 당일에도 신청 가능했다. 갑작스러운 출동만 아니라면.
“일단 끊을게요.”
통화가 다 종료되었는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한 걸 침대 위에 던지고 허둥지둥 옷부터 입었다. 양말을 신으며 콩콩 걸어서 화장실까지 가서 칫솔을 입에 물었다. 동시에 세수도 했다.
정신이 없었다. 외출 허가를 받는 데까지도 시간이 꽤 걸릴 텐데 또 내가 가야 하는 곳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니 말이다.
“형. 무슨 일 있어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수건으로 훔치는데 심각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갤 쓱 돌리니 문틀에 팔을 대고 선 채원우가 보였다.
어느새 문짝만 해진 커다란…… 애새끼는 어감이 나쁘고, 애는 아니고, 어린애는 더더욱 아니고. 커다란…… 개? 그 정도로 생각하고 채원우의 턱 아래를 손끝으로 얼러줬다. 그러자 못마땅한 표정을 한 채로 실쭉 턱을 내민다.
“집이 박살났다고 하네요.”
“네?”
잠자코 턱이나 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단 걸 깨달았는지 채원우가 눈썹을 구겼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레드존에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머물던 집이 있거든요. 임시긴 하지만.”
집보다는 장기 보관용 창고에 더 가까웠다. 월세는 레드존 안에서도 손에 꼽히게 쌌고 방음은 옆집, 윗집, 아랫집과 구구단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겉은 번드르르했다. 방음이 쓰레기인 것치고는 내부도 괜찮은 편이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없었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던전이 터지는 와중에 고작 그 이유로 레드존의 핵심 부분에서 그나마 좀 먼 곳에 있는, 나쁘지 않은 빌라의 월세가 그렇게 싸다고? 세상은 종종 내 생각보다 독특하게 돌아가곤 했다.
아무튼.
“챙겨올 짐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봐야겠습니다.”
“같이 가요.”
“그럴 필요 없는데요. 채원우 헌터, 어제도 훈련받았잖아요. 쉬죠?”
“채원우 헌터는 쉬고 원우는 가는 거로 하죠, 그럼.”
“미쳤어요? 3인칭 호칭은 뭐예요?”
내 타박에 눈 하나 깜빡 안 한 채원우는 금세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씻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우리는 어쨌든 군인이나 마찬가지라 모든 게 빨랐다.
그 와중에 나는 채원우가 외출용 시계가 아니라 출동용 시계를 차는 걸 보고 피식 웃었다. 사실 나도 제일 먼저 몸에 걸친 게 그거였다. 레드존. 언제 던전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
“외출 허가가 나올지 모르겠네요.”
“저랑 있는데, 나오겠죠.”
채원우가 장담했다. 그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서 나는 조용히 수긍했다.
그간 지켜본 결과 채원우는 A급 헌터 셋에서 다섯 정도의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에 채원우의 등급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던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을 거다. 말 그대로, 측정할 수 없으며 여전히 변동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채원우, 아니, 원우가 있는데 설마 내가 죽기야 하겠어요.”
“우리가 일단 붙어 있는 이상 죽을 일은 없어요.”
폴라로이드 사진 속의 나이로만 어림잡아도 헌터청에서 지낸 시간이 적지 않을 텐데도 채원우는 이렇게 낙관적인 구석이 있었다. 나쁜 건 아니었다. 난 좀 비관적인 구석이 있거든. 우리는 잘 맞는 파트너인 거다.
* * *
“채원우 헌터 외출 신청합니다.”
저번에 내가 외출권을 사용했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하겠다며 자신만만하게 나선 채원우는 용돈을 받았으니 문방구를 가자고 꼬드기는 초등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새침한 표정을 하면서도 솔깃하는 초등학생이 되겠고.
“동반자 있습니까?”
“양백겸 가이드 동반합니다.”
이 질문은 나한텐 안 하던 건데.
나는 순식간에 의심과 비관에 찬 양백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채원우는 어렵지 않게 외출 허가를 받아냈다. 오히려 내가 걱정한 외출 지역에 대한 문제는 가볍게 넘어가고 말았다. 마치 헌터청의 걱정은 채원우가 위험 지역으로 가는 것에 대한 게 아니라, 어딘가를 혼자 가는지에만 관련된 것처럼.
“갈까요?”
채원우가 레드존 한정으로 제공되는 총을 건 벨트에 걸며 말했다. 오늘 채원우는 몸에 딱 붙는 기능성 티셔츠를 입었다. 출동할 때와 별로 다른 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 위로 점퍼를 걸치니 그렇게 이질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레드존은 처음 가봐요.”
“별로 다를 거 없는 동네예요. 그저 언제 던전이 터질지 모르고 불안정할 뿐이죠.”
“그 존이라는 건 누가 정하는 걸까요? 그저 땅에서 올라오는 지수 하나로 결정한 건가.”
“나중에 강 책임한테 물어보기라도 하죠, 뭐. 대답해 줄지 모르지만.”
나는 한껏 비웃고는 손을 뻗어 택시를 잡았다. 택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잡혔지만 정작 우리가 출발한 건 30분 후였다. 레드존까진 가지 않는단 말을 몇 번이나 듣고, 결국 웃돈을 얹어준단 제안을 한 뒤에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별다르지 않죠?”
나는 좀 뻔뻔스럽게 채원우를 향해 어깰 으쓱였다.
* * *
“입구까지밖에 못 가요. 최근에 던전이 하나 더 터졌다고 해서.”
“등급은 그렇게 높지 않던데요. 요즘 D등급 정도는 그린존에서도 터지잖아요.”
“어휴, 그래도요. 그게 시작이면 어떡해요. 지진도 약한 거 먼저 온다잖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히 던전이 터지기 전에도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는데도, 그곳에 대한 편견은 공고하고 비과학적이고 그러나 보기에는 늘 말이 됐다.
정말로 칼같이 입구에 차를 세운 기사님께 약속한 웃돈을 포함한 돈을 드렸다. 지갑을 주머니에 넣으며 바깥으로 발을 빼니 펄럭거리는 소음부터 귀에 들렸다.
<생존권 보장하라!>
<레드존 지정 철회 강력 촉구!>
<주민 동의 없는 지역 분리 규탄한다!>
바람구멍을 뚫어놔도 묶어놓은 끈이 흔들리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플래카드를 묶어둔 기둥 역시 빼곡했다. 너덜너덜해져서 떨어지기 직전의 종이와 그 위에 덕지덕지 새로 붙인 종이는 모두 ‘찾습니다’로 시작했다. 그건 반려 동물이기도 했고 가족이기도 했다.
실종 일자는 천차만별이지만 난 알았다. 저것들을 모두 떼어 정리해 보면 어쨌든 날짜마다 분류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날짜는 모두 던전이 터진 날이다.
“들어가죠.”
아무도 막지 않는 개폐기를 위로 올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는 돌 잔해가 굴러다녔지만, 아포칼립스 영화 속 살풍경한 도시처럼 보이진 않았다. 비록 플래카드의 펄럭거리는 소리와 실종 전단지가 분위기를 조금 조성하긴 해도, 여긴 그저 좀 어수선한…… 사람 사는 동네였다.
“안 잡아먹으니까 들어와요.”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냥, 생각보다 더 좋아서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센스 있네요. 우리 집은 여기서 가깝습니다.”
레드존 외곽이니 그래도 이 정도인 거다.
얼마 전에 던전이 터져서 그런지 거리는 조용했다. 나는 채원우와 아주 엷게 서리 같은 눈이 내린 길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첫눈이 내렸나 보지.
“뭐 챙기러 가는 거예요?”
“그냥 남은 건 일단 다 챙겨봐야죠.”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네?”
“형은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가끔 보면 그러길 바라는 것 같아요.”
“내가요? 설마요. 내 집이 다 불타고 짐도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다고요.”
채원우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마주 본 채원우의 앞머리에 하얀 얼음 알갱이가 걸려 있는 걸 보았다. 아주, 아주 얇은 얼음이었다. 눈은 아니고 얼음이 내렸던 거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이 다시 내리려 한다. 마치 던전이 다 걷히지 않은 것처럼.
“형은 가끔 연기처럼 사라질 것 같아요.”
“그건 내가 그저 귀찮은 걸 싫어하고 약간 재수 없는 면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그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채원우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미묘한 이야기인지, 자꾸만 머뭇거렸다. 나는 소록소록 내리기 시작하는 얼음을 채원우의 머리에서 털어줬다.
“사람을 몇 달에서 1년이라는 시간과 서면 계약이라는 방식으로 만나는 걸 10년 가까이 하다 보면, 큰 애착을 형성하고 싶지 않아집니다.”
“…….”
“그리고 그쪽이 나를 볼 때처럼 상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하고. 우리는 그냥, 이 세상에…….”
“…….”
“방랑자야. 난 그렇게 생각해.”
유목민, 방랑자, 여행객. 그 어느 단어든 홀연히 왔다가 떠나는 의미라면 다 잘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