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이거 제 사진 맞죠?”
채원우의 안색이 말도 아니었다. 사색이 되어서는 손을 떨고 있었다. 사진은 구겨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담요를 허리에 대강 묶고 다가가 사진을 빼앗았다.
“내 겁니다. 함부로 구기지 마요.”
“제 사진이에요.”
“하지만 소유권은 내게 있죠.”
“제가 싫어요.”
“왜요? 못 나와서? 아닌데. 잘 나왔어요. 예뻐. 이렇게 예쁜 애기 난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애를 별로 안 좋아하니까 빈말은 절대 아니고요.”
“형.”
얼굴을 싸매려는 채원우의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옆에 사진을 나란히 뒀다. 사실 나 역시 머릿속이 당황으로 텅 비어 즉흥적인 행동과 말로 겨우겨우 시간을 버는 꼴이었다.
“똑같이 자랐네요, 채원우 씨.”
“…….”
“지금도 예뻐요.”
“싫어.”
채원우가 붉어진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형형한 안광에 서늘한 기색이었다.
채원우라면 나 정도는 어렵지 않게 죽일 거다. 잠자리의 날개를 찢는 정도의 수고밖에 들지 않겠지.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두렵지 않았다. 채원우가 나는, 나만은 죽이지 않을 거란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다.
“난 저 때 싫어요. 끔찍해. 당신이 저 때의 나를 아는 것도 싫다고.”
“그러면 내가 가이딩 봉사할 때 들어오지 말았어야죠.”
“그걸 어떻게……!”
“얼마나 수다스럽던지. 네가 계속 나한테 말을 걸었잖아. 자꾸 말을 걸고 내일도 오냐고 묻고 또 묻고. 집요하게 내일 보자고 해서.”
“그거는, 그건…….”
채원우의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로써 연구원을 제외한 이 중 내게 말을 건 유일한 사람이 채원우라는 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내일도 와요?’
‘내일도 오면 안 돼요?’
‘주사는 아픈데 형은 안 아파요. 손만 잡아도 좋은데.’
‘아, 근데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눈이 보이지 않고, 입도 다문 내게 대답을 듣지 못하는 질문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여전히 그때 기억은 흐려서 내가 너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하긴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반년의 봉사는 밟아 누른 캔처럼, 6일의 시간처럼 여겨졌다. 점점 나아가는 시력에 따라 기억도 점점 또렷해졌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계약 기간이 끝나 곧 헌터청 바깥으로 나갈 때가 되어 있었다
근데도 그 수다쟁이 때문에.
“네가 자꾸 그렇게 물어서 내가 저녁마다 죽을 수가 없었던 거 압니까. 왜 자꾸 내일을 물어요. 오늘도 없던 사람한테.”
그다지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를 덤덤히 고했다.
던전 파악이란 기술이 없던 때였다. 내 파트너만 죽은 게 아니었다. 사상자가 많았다. 나도 눈을 크게 다쳤었고. 운이 나빴던 건 그 파트너와 내 유대감이 좋았던 거다.
나보다 한참 연상이라 삼촌에 가까웠던 그는 채원우가 내 방에 멋대로 들어왔을 때 들었던 바로 그 이름의 주인이었다. 연애 감정은 결코 아니었다. 그냥, 내 주변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어른이었다.
잔인하고 끔찍한 살육에서 살아난 건 행운이 아니었고 나는 저녁마다 이 세상이 끝나길 빌었다.
“그때부터 나를 알았으면 말을 해야지. 그래야 내가 채원우 씨를 알아보지 않습니까.”
느리게 눈을 깜빡이는 나를 향해 채원우는 입술을 달싹였다. 얼굴을 감쌌다가 고갤 이리저리 돌렸다가 겨우 중얼거리는 걸 귀 기울여 들었다.
“형은 날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했으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네.”
“그리고 날 기억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땐 뭣도 몰라서 그냥 규정도 모른 채 형한테 말을 걸었던 거고 그건 실수니까…….”
“근데 그 실수 안 했으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런 말 하지 마요.”
채원우가 흔들리는 눈을 하고 나를 덥석 잡았다. 나는 채원우의 사진을 들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시간이 한참 지나 색까지 조금 바랜 폴라로이드 사진 속 어린애보다는 확실히 지금의 채원우가 더 좋았다. 채원우가 나한테 예전에 우리가 만났었단 얘길 안 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나는 아무런 필터 없이 채원우를 눈에 담고 인화할 수 있었으니까.
내 시점이라 객관성이 없다 해도 뭐 어떠한가. 어차피 나만 만족하면 되는 일인데.
나는 채원우의 볼을 감싸고 입술을 맞붙였다. 아주 담담한 입맞춤이었다.
“원우야.”
지금껏 의식이 없을 때를 제외하곤 꼬박꼬박 채 헌터, 혹은 채원우 헌터라고 불렀던 내가 갑자기 살갑게 이름을 불러서인지 채원우의 눈이 커다래졌다. 나는 킥킥 웃고는 볼을 가볍게 두드렸다.
“왜요. 낯설어요? 처음 부른 것도 아닌데.”
“…….”
“채원우 헌터가 영화관에서 정신 놓았을 때도 이렇게 불렀었어요. 아. 영화관이 아니라 호텔에서.”
“……기억 안 나요. 아깝게.”
“솔직히 많이 기억나진 않습니다. 그때 기억은 대부분 그래요. 그 와중에 그나마 제일 선명한 게 채원우 헌터랑 있던 시간이네요. 대화도 좀 기억나고. 기억이 맞다면 채원우란 사람은 어렸을 때랑 변함없이 귀찮은 앤데 그게 나쁘지 않습니다. 의외로 나는 질척거리는 타입이 취향인가 봐요.”
“……그렇게 말하면 어려워서 못 알아들어요. 그냥 말해 줘요. 나 착각하지 않게.”
“뭐라고 해줄까요. 비즈니스 사이니 어쩌니 잘난 척했던 주제에 채원우 헌터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요? 정들었다고요? 정 이상이라고 할까요? 그게 맞긴 하니까.”
“……그냥 간단하게요. 형, 저 좋아하세요?”
“우리 지금 같은 언어로 말하지 않았어요? 좋아합니다. 신기하죠? 나도 그래요.”
“전 그 정도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당황하면서도 싫은 건 아닌지 채원우의 표정이 미묘했다. 미묘하게 내려갈 듯 올라간 입꼬리나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눈동자와 눈꼬리 같은 게.
이렇게 솔직한 사람을 만난 게 얼마만이지? 표현이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감격한 것 같기도 했다. 폴라로이드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채원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빨래 끝날 때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모르겠어요. 한 시간은 더 걸릴 텐데…….”
“잘됐네. 그럼 좀 잡시다. 저 엄청 피곤하거든요.”
나보단 채원우가 더 졸릴 거란 생각에 한 말이었다. 채원우는 순순히 끌려왔다. 그러면서 조금 우물거리며 물었다.
“원우야, 하고 또 안 불러주세요?”
“자주 부르면 감동 줄어요.”
“들어도 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아닐걸요. 질릴걸요.”
“질릴 일 없어요. 약속해요.”
그 순간 내 앞에 마법이 펼쳐졌다. 언제 내리기 시작했는지 모를 비로 젖은 창문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거다. 아래로 내리그어져야 할 빗방울이 이리저리 모이며 바깥에 있는 가로등에 비춰져 예쁜 주황색 꽃이 되었다.
꽃을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아는 꽃들이 있다. 안개꽃, 장미, 그리고 튤립 정도가 그런 종류일 거다. 그래서 나는 저 꽃을 알았다. 튤립이었다.
“……그림도 잘 그리네요.”
“꽃말이 약속이래요. 약속해요. 저 안 질릴게요.”
꽃말 가지고 장난하는 거 나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런 간지럽고 말만 번드르르한 거 싫어한다. 그런데 솔직히 저 물방울꽃을 보고도 이런 소리를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있다면 나쁜 새끼가 분명하다. 나는 영웅은 아니어도 악당인 것도 아니라 고갤 끄덕였다.
“그럼 좀 자자, 원우야.”
손쉽게 깍지를 푼 채원우가 뒤에서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대로 떠밀려 우리는 소파 위로 쓰러졌다. 두 명의 장신이 눕기에는 분명히 좁은 공간에 겹쳐 누웠다.
무겁게 날 짓누르던 채원우가 옆으로 굴러 나와 눈을 마주쳤다. 듣기 좋은 빗방울 소리가 마치 채원우의 눈동자에서 나오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저 비도 채원우가 내린 게 아닐까. 능력과 더불어 채원우는 비가 잘 어울렸다.
“형이랑 있으면 가슴이 무거워요. 명치 쪽이 그래요.”
“그거 체한 거 아니에요?”
“맨날 텅 빈 것 같았거든요. 그러면 추워요. 여름이어도 춥고 겨울엔 더 추워요. 비가 오면 눅눅하고 눈이 오면 허해요. 그런데 이젠 안 그럴 것 같아요. 저는 단걸 좋아하고 매운 걸 잘 못 먹고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형이 책을 읽어서 저도 책을 읽고 싶어져요.”
“…….”
“체한 게 맞는 걸지도 몰라요. 갑자기 너무 많은 게 들어와서 내가 이걸 다 소화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런데 소화하기 싫어요. 그럼 없어지잖아요.”
채원우는 어린애처럼 말했다. 잠을 자기 싫어요. 그럼 이 재미있는 하루가 사라지잖아요. 그렇게 칭얼대는 아이 같았다.
내 동생은 자주 투정을 부리고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애였다. 부모님은 다정했고 나는 센스도 재수도 없었다. 그래도 보고 배운 게 있다고 이걸 이렇게 써먹게 되네. 눈을 감고 잠들었다가 깨면, 더 재미있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렇게 달래주던 것처럼 나는 채원우를 달랬다.
“소화가 되면 채원우, 네 몸의 일부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럼 사라질 일은 없어요.”
“…….”
“그러니까 빨리 소화하고 얼른 더 먹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숨이 막히도록 끌어안겨졌다. 당황했던 손이 천천히 채원우를 마주 안았다. 채원우는 낮게 웃었고 나는 그 소리가 정말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창밖을 두드리는 비 오는 소리가 잠들기에 얼마나 좋은지 안다. 나는 그렇게 많이 자놓고도 더 잠들 수 있겠다 싶었다.
‘좁아. 게다가 무거워.’
채원우의 팔은 내 고개 아래에 있고 내 팔은 채원우의 고개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 채원우가 구색만 갖추려 둔 화병 속의 물에서 물방울을 만들어 냈다. 허공을 떠오른 그것이 스위치로 다가가선 가볍게 터졌다. 곧 불이 꺼졌다.
비 오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나는 내일 꽃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텅 빈 화병, 두 쌍의 수저 세트, 방 두 개. 구색만 갖춰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약간 분위기를 돋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너무 비즈니스만 있는 사이는 아니니까,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