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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아래에 숨겨져 있던 패드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리로 된 책상이라 빛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걸 확인하면, 내내 기시감을 주던 무언가의 실마리가 풀릴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다가갔을 때.
“백겸이 왔어?”
뒤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턱없이 밝은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히 강 책임이었다. 돌아본 순간 패드에서 나오던 영상은 꺼졌다. 풀릴 뻔했던 의문의 답이 코앞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바쁘게 돌아갔다.
“양 가이드, 내가 불렀지?”
강 책임은 날 밀어내고 의자에 앉았다. 회전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는 걸 보다 어깰 잡고 다그쳐 묻고 싶었다. 나 저 목소리 기억해요. 저거 채원우입니까?
하지만 강 책임은 나보다 빨랐다. 홀로그램으로 우주의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의 약만 올리고.
“우리는 모두 별의 아이들이라고 하지. 양 가이드. 그러면 헌터와 몬스터도 별의 아이들일까? 그럼 우리는 형제가 아닐까 싶은데.”
“……저는 그런 거 모릅니다.”
“괜찮아, 몰라도. 옛날부터 형제 살해는 클리셰였거든. 형제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중요한 건 형제를 다 죽인 헌터라는 존재가 그 이후에도 인류에 위협이 되지 않겠냐가 문제지.”
“그런 것까지도 생각 안 하는데요.”
“응. 난 해.”
하겠지. 강 책임이 안 하는 생각이 어디 있겠어. 강 책임은 책상에 발을 올리고 심드렁하게 홀로그램을 바꿨다. 그 정신없는 화면 전환에서 나는 COSMOS라는 여섯 글자를 읽었다. 또 화면이 바뀌며 강 책임이 슬쩍 돌아봤다. 너 저거 봤지, 하는 눈이다.
애초에 여기까지 들어오게 호기심을 유발한 것도 이 사람이 다 계획한 걸 거다. 채원우라는 생각에 나는 나답지 않게 순순히 덫에 걸린 거다.
“던전이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조사가 필요해. 던전이 지금 막 성장기에 돌입한 시기인지 아니면 ‘변성기가 끝나가는’ 성장기의 끝물인지.”
“그래서 미지수의 던전 안에 들어가란 말입니까?”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거지.”
“거절권이 있기는 한 겁니까?”
“아니. 너는 알고 들어가는 거야. 알고 들어가서 표본 좀 채취해 와. 그리고 부가 퀘스트도 좀 해결해 주고. 너희는 임무를 퀘스트라고 한다며?”
강 책임은 우리가 비꼼을 담아서 만든 명칭을 정말로 무슨 재미있는 게임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열중 쉬어 자세로 숨기고 있던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나저나 둘이 사이가 각별하다며?”
그 둘이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채원우와 나겠지.
“그런 것까지 감청하세요?”
“아니. 채 헌터 상태만 봐도 알지. 안정되었거든.”
그건 그저 파트너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안 그런 건 나 역시도 그것만이 사실이 아니란 걸 알아서였다.
기이할 정도로 오랜 시간 파트너 없이 활동했는데 정작 얼마나 활동했는지도 모르는 채원우. 궁금했다. 알고 싶었다. 채원우란 큐브의 빈 공백을 채워서 내가 맞춰보고 싶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독점욕, 영원히 내 거였으면 하는 채원우가 만들어주는 특별함.
나도 결국 존나 이기적인 인간인 거야.
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고 고갤 숙였다. 눈을 감았다. 보안 등급이라는 거대한 벽 때문에 채원우의 과거에는 가닿을 확률이 없다. 한편으론, 굳이 알아야 할까 싶다. 우리는 1년, 혹은 그 이내의 계약 기간이 지나면 헤어질 텐데.
이 일상이 지속되면 좋겠다던 멍청이는 어디 누구였지?
“다녀오면 채원우에 대해 모든 걸 알 수 있게 해줄게. 혹시 모르지. 채원우의 정보 속에서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빈틈이 있을지 없을지. 나는 모르겠더라고. 채 헌터에게 그 정도의 애정은 없어서 그런가?”
채원우와 행복하게 알콩달콩 영원히 잘 살았습니다……. 그런 메르헨을 꿈꾸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평범하게 만났더라도 그게 얼마나 헛소리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을 거다.
다만 채원우에 대해서 궁금했다. 어린 나이인데도 헌터청을 제집처럼 알고, 정작 바깥 세상에 대해선 순진무구한 내 괴물이.
“결정했어?”
“…….”
거절하기 위해 고갤 들었다. 말문을 막히게 한 건 망설임이 아니라 강 책임의 손가락 사이에 들려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 때문이었다. 일반 사진과 다르게 빳빳한 그 출력물에 어린 티가 역력한 채원우가 보였다. 어림잡아 어리면 열하나, 많으면 열넷 정도 되어 보이는 젠장 맞게 귀여운 얼굴이었다. 미친놈. 어릴 땐 더 예뻤네.
나는 입술을 꾹 물었다. 치솟는 욕심을 겨우 억누른 다음 꾸역꾸역 대답했다.
“……채원우 헌터에게 직접 물어보겠습니다.”
“에이. 말 안 해줄걸?”
“됐으니까 당사자한테 물어볼게요. 채 헌터가 보안 등급 같은 건 무시할 정도로 저를 좋아하는 거 같거든요.”
“말하겠냐고. 걔가 처음 헌터를 죽인 게 열넷 때인데. 우리 원우는 과거 같은 거 기억 안 해.”
열넷.
머리가 핑 돌았다. 열네 살. 동생이 열여섯 살에 죽었다. 던전이 터져서였다. 그렇게 각별하거나 우애가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한동안 그 또래를 보기만 해도 힘들어했다. 그런데 채원우는 그것보다 어린 나이에, 살았는데도, 살아서…….
“양 가이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팔로 강 책임의 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칼도 없는데 습관처럼 강 책임 옆구리에 주먹을 갖다 대고 있었다. 실전이었다면 이미 찔렀을 거다. 양손을 번쩍 든 강 책임은 이 와중에도 실실 웃고 있었다. 머리꼭지가 돌아서, 너무 화가 나서 혀가 뻣뻣해졌다.
“미친 새끼들아.”
고작 뱉은 게 이 한마디였다. 강 책임은 손목만 아래로 내리더니 폴라로이드를 내 옷깃에 기울여 넣었다. 그것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모서리로 내 턱과 목을 찔렀다. 마치 강 책임이 내 급소를 찔러 이긴 것처럼.
“어때?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쓰레기 새끼들.”
“양 가이드가 우리 원우 같은 상황이었어도 똑같이 경험했을 일이야.”
“그러니까 그 상황이라는 게……!”
나는 복부를 처맞은 것처럼 비틀비틀 뒤로 물러났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그냥, 그냥…… 목구멍이 너무 뜨거웠다. 가슴도 홧홧하고.
“안 해, 개새끼야.”
목이 멘 채로 오기에 차 지껄였다. 안 한다고 고갤 저으며 내 목을 따갑게 찌르던 사진을 내렸다. 이게 열네 살 때의 사진이라면 강 책임을 팰 거다. 이게 열네 살보다 전의 사진이면 강 책임을 쥐어 팰 거다. 솔직히 죽이고 싶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러냐.”
“사람을 살리려 그랬지. 덕분에 몇이나 살렸는데. 기차 승객을 살릴 건지 선로에 서 있는 어린애 하나를 살릴 건지, 그런 문제는 많잖아.”
“난 옛날부터 그딴 생각을 왜 하는지부터 이해할 수 없었어. 돌대가리라서.”
“그래서 정말로 안 한다고?”
대답할 가치도 없어서 랩실을 나가려다가, 문까지 열렸는데 돌아왔다. 내가 꿈에서나 바라던 미친 짓(강 책임에게 욕하기, 삿대질하기, 반말하기)를 모두 다 했는데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해. 하는데, 묻는 건 내가 할 거야. 고작 이딴, 이딴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걸 물어볼 거라고.”
강 책임은 즐거워 보였다. 문제 중독이었다. 도파민 중독에 절어서 내가 또 무슨 돌발 행동을 할까 기대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솔직히 지금 당장으론 던전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묻고 싶은 말도 없었다. 아니, 존나 많아서 오히려 할 수 있는 질문이 없었다.
가장 하고 싶은 건 채원우를 데리고, 너한테 이 지랄 하는 곳을 떠나자고 하는 거였다. 하지만 우린 영화 속에 사는 게 아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영화관을 떠나면 끝인 삶을 사는 게 아니었다. 고작 쿠키 영상으로 조금 웃고 끝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도 기대할게, 양 가이드. 양 가이드는 옛날부터 내가 생각한 그대로라 참 마음에 들어.”
“기분 나쁘게 사람 관찰하고 있습니까? 씨발. 좀 나가서 햇빛도 쐬고 그러세요. 이제 미세 먼지도 없는데.”
“근데 사진은 돌려줄 거지? 내가 좋아하는 거라.”
“꺼져요. 이건 내가 가져갈 겁니다.”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는 사진을 팔랑거렸다. 너 같은 새끼한테 채원우 사진 안 줄 거다.
내가 강 책임을 다시 책상까지 밀어붙인 바람에 우리 위로 우주 홀로그램이 얇은 커튼처럼 드리워졌다. 나는 강 책임만을 그 우주 속에 남기고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목은 뜨겁고 가슴은 묵직했다.
나가려는 나를 강 책임이 끝까지 구질구질하게 잡았다.
“네가 보는 채 헌터는 정말로 어때? 재미없거나 좀 소름 끼치거나 하지 않아?”
소름 끼치는 건 너고.
나는 돌아보지 않고 씹어 뱉듯 말했다.
“걔는 착하고 귀여워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채원우가 나사가 빠진 것 같고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고? 당연했다. 어렸을 때부터 평범이라는 걸 모르고 자랐으니까. 나는 다만 채원우가 ‘처음부터’ 평범이란 걸 모르고 산 건 아니길 바랐다.
* * *
사진은 퇴원할 때까지 내 사물함에 처박혀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사진을 볼 수가 없었다. 채원우는 좀 더 자주 면회를 왔고 나는 ‘1. 채원우와 나는 만난 적이 있다. 2. 그 시기는 아마도 내가 멘탈이 박살났을 때다’라는 확률 높은 가설을 속에 숨겨둔 채 평소처럼 대했다.
문제는 퇴원하는 날 터졌다.
“형.”
문으로 고개가 쏙 들어왔다. 나는 창문으로 비친 실루엣을 보고 아는 척을 했다.
“머리가 작은 걸 보니까 형민이가 아니라 채 헌터네요.”
“혀엉.”
“아, 형민이도 있었구나…….”
형민이는 히잉 하는 표정이 되어 안으로 세 걸음 들어왔다. 고작 세 걸음이었다. 그사이에 사이렌이 울렸다. 출동 대기 상태로 호명된 팀에 형민과 그의 파트너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 사 왔는데!”
정작 본인은 못 먹게 된 꼴이다. 그래서 나는 병문안 갈 때 싼 거 사 간다. 이거 은근히 징크스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