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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38화 (3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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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나는 안 보내줘?”

“넌 임마. 보육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이런 애새끼 돌보시는데 노고가 많으시니 보내드리는 거지.”

“내 파트너도 애새끼인데.”

“그래? 잠깐 마주쳤는데 아닌 것 같던데.”

나는 눈썹을 구겼다.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던 내 파트너를 네가 어디서 봤다고?

“어디서 봤는데.”

“병실 앞에서.”

“근데 왜 파트너는 어디 있냐고 물어본 거야.”

“너의 더러운 성격이 파트너가 복도에서 시간만 죽이게 만든 게 아닌가 싶어서 수작 좀 부려본 거지. 네 파트너한테도 굴비 보내야겠다. 얼마나 눈치를 주면 애가 병실에도 못 들어오냐?”

나는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이쑤시개로 접시를 콱 내리찍었다. 이쑤시개가 마치 버블티에 꽂히는 빨대처럼 플라스틱접시를 뚫었다. 승규는 형민에게 시선을 주며 이렇게 너스레나 떨었다.

“봤지? 이래서 내가 일회용 접시 쓰자고 한 거야.”

* * *

시끌벅적했던 초대하지 않은 면회가 끝이 났다. 나는 조용해진 병실의 흰 벽만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물대처럼 생긴 사물함을 열어봤다. 누가 챙겨줬는지 모르겠지만, 출동하기 직전에 입었던 옷과 가방이 있었다. 가방에 옷을 챙겨 넣고 첫 계약금을 탔을 때 산 가디건을 걸치고 다리를 직직 끌며 걸었다.

창문을 보니 병약해 보이고 우수에 가득 찬 잘생긴 청년이 있었다.

“병약하곤 거리가 먼데.”

내가 느낀 내 외모에 대한 감상에 시답잖은 웃음을 흘리며 복도로 나왔다. 나오기 직전에 걱정했는데 채원우는 없었다. 내가 그 사실에 실망을 한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일을 하느라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 자체가 적었다. 병원보다는 회복실의 역할이 더 큰 병동이기 때문에 당연했다.

나는 한 층 내려와서 가방에 넣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링거 바늘을 빼고 화장실 안에 숨겨둔 뒤 종이에 ‘고장’이라고 휘갈겨 써 화장실 벽에 붙였다. 애초에 사망자는 있어도 병자는 적은 곳이 병동이니 잠깐 외출하는 사이에 확인할 사람은 없을 거다.

구름다리를 건너서 행정동까지 왔다. 헌터와 가이드가 사용할 수 있는 정보실까지 겨우 도착하니 숨이 차고 옆구리가 더럽게 아팠다. 맨 끝줄 구석에서 안대까지 끼고 잠든 사람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헌터와 가이드는 단체 생활하고 잘 안 맞았다. 신기할 정도로 모인 면면의 성격을 들여다보면 그랬다.

나는 내 헌터 코드를 입력하고 별개로 달린 홍채와 손등 핏줄 인식까지 끝냈다. 홍채 인식은 그 악명답게 마지막 다섯 번째 기회에 가서야 인식이 성공했다.

“지난 이력.”

작게 중얼거리며 탭을 클릭했다. 태어날 때부터 출생신고를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등록하고 옛날부터 기록 덕후로 유명한 나라답게 내가 지금까지 무슨 활동을 했는지 바로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스크롤을 맨 위까지 올렸다가 천천히 내렸다. 그러다가 손을 멈췄다.

<파트너 헌터 사망>

‘헌터’를 클릭하니 관련 정보가 나왔다. 나는 출생년도와 사망년도가 완성된 그 사진을 잠시 보다가 묵묵히 X자를 눌렀다.

겨울에 죽었다. 계약 만료까지 두 달을 남기고. 내 앞에서 죽었고 상황은 처참했다. 굳이 묘사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보다 데이터가 훨씬 부족할 때였다. 던전이란 언제나 지뢰 찾기 게임과 같았다. 매 걸음마다 미지의 세계였다. 운 나쁘게 지뢰를 밟았을 뿐이다.

지금은 그래도 이렇게 덤덤히 넘길 수 있으나 당시에는 아니었다. 나는 거의 폐인이 되었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뒤로 넘기고 아래 목차로 적힌 활동명을 입속으로 읊조렸다.

<보조 가이드로 활동 : 헌터 간의 상호 작용 및 임시 가이딩>

‘임시 가이딩’을 클릭하니 참여했던 인원이 나왔다.

그간 착실하게 헌터청의 외거 노비 역할을 한 덕에 내 보안 등급은 꽤 높은 편이었다. 중간에 헌터청이 아니라 다른 곳과 계약을 했더라면 여기까지 접근할 수 없었을 거다. 사실 보안 등급이 있어도 대다수가 이런 정보를 알아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지만.

나는 참여 목록을 확인했다. 연구진과 이름을 보아도 누군지 알 수 없는 헌터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것을 발견했다.

<참관인 2인>

참관인? 그런 게 있었다고?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전혀 짐작도 안 되는 상자가 여기에 있었다. 나는 천천히 아래 목차를 확인했다. 강 책임의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채원우와 파트너를 맺은 이후로 더럽게 익숙해진 문장이 그곳에 있었다. 마치 그 문장이 채원우를 가리키는 다른 표현인 것처럼.

* * *

너무 많이 자서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해가 지니 또 잠이 왔다. 그러나 오늘은 약 기운에 기절하듯 잠든 게 아니라서 그런지 새벽에 눈이 떠졌다. 단순히 그냥 깬 게 아니었다.

“…….”

“…….”

“왔으면 인사라도 하지 무섭게 쳐다보고만 있어요?”

“…….”

“설마 빈손으로 온 건 아니죠?”

채원우는 대답이 없었다. 난 그게 좀 짜증이 났다. 채원우 때문에 다친 것도 아니었다. 공략 중에 누군가 다치고 입원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해프닝 중 하나다. 세상 무너진 것처럼 굴 일이 아니란 뜻이었다. 게다가 나는 채원우의 세상도 아닐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버튼을 눌러 침대를 세웠다. 그러니 역광 탓에 보이지 않던 채원우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보였다.

“밥 잘 먹고 있습니까?”

“형은 고작 그런 게 궁금해요?”

“한국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네요. 그렇다고 다른 걸 물어볼 순 없잖아요. 우리 전에 본 적 있는지, 채원우 씨는 왜 처음부터 나를 그렇게 좋아했는지 같은 걸 말이에요.”

“…….”

채원우는 다시 입을 꾹 닫았다.

“좋아요. 말하고 싶지 않은 거면 하지 말아요.”

대신 채원우의 멱살을 당겼다. 내가 행여나 힘을 주다가 아파하기라도 할 것처럼 채원우는 순순히 끌려왔다. 웃기다. 내가 무슨 한 떨기 꽃인 줄 아는 모양이다.

나는 고갤 조금 밀어서 채원우의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키스가 워낙 뇌리에 깊게 남아서, 피라곤 한 방울도 나지 않는데도 비린 맛을 느꼈다.

“아. 미안합니다.”

입술을 떼고 보니 착각이 아니었다. 채원우의 아랫입술에 상처가 나 있었다. 내가 낸 상처였다.

“괜찮아요. 형이 낸 상처는.”

“그런 말 좀 하지 말고. 무섭거든요.”

“뭐가요? 말 잘 듣는 애 하나 생긴 것 같지 않아요?”

순간 나는 약간의 오싹함을 느꼈다. 정말 가벼운 오싹함이긴 한데, 얘의 이 맹목이 어디서 나왔나 하는 것과 대체 왜 이렇게까지 맹목적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근데 문제는 오싹함 뒤로는 약간 감미로운 느낌이 있었다는 거다. 심지어 좀 솔깃하기까지 했다. 얘랑 놀더니 나도 맛이 가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가 몬스터가 친절하고 헌터가 맛있어요, 같은 후기가 달린 곳일 리도 없고.

정신을 차린 난 채원우의 빈곤한 자아에 걱정을 느꼈다. 어디 가서 사기당하는 거 아닌가 싶다. 돈은 엄청 많을 텐데……. 아니면 이미 사기당했나?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하려고 해요? 아무리 처음 만난 파트너여도 이렇게까진 안 해요.”

“나한테는 그냥 처음 만난 가이드가 아니에요. 남에겐 당연한 게 저한테는 없었다고요. 형은 헌터가 아니라 모르죠. 파트너가 없는 헌터는 망가진 것도 고장 난 것도 아니에요. 평가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예요.”

왜 그렇게까지 말해……. 나는 머쓱해져서 턱을 긁적였다.

“그런 것치고 헌터청에선 채 헌터를 아주 아끼던데요.”

“그럼 형이 헌터청 예쁜이 하세요.”

“……왜 그런 심한 말을 해요.”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했다. 절로 말끝이 톡 잘렸다. 채원우는 킥킥 웃었다. 드물게 제 나이 또래로 보였다. 어딘가 나사 빠진 얼빠진 웃음도 아니고 던전 안에서 몬스터를 쓰레기 치우듯 쓸어낼 때 보이는 맛 간 웃음도 아니었다.

나는 조금 자란 손톱 밑을 들었다가 내렸다. 물을까 말까 하는 질문이 입속의 모래알처럼 거북했다.

너 나를 본 적이 있냐는 쉬운 말이 이토록 어려울 수가 있나. 말할 수 없는 참관인이 너였냐고 물을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채원우 몰래 뒤를 캔 게 미안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뒤를 캤다는 거창하고 불편한 표현을 쓰기에는, 내가 한 짓은 엄밀히 따지자면 내 뒤를 캔 꼴이었다. 그 뒤에, 네가 있었을 뿐이다.

“형.”

채원우가 내 생각을 끊었다. 그러곤 내 턱을 잡고 당겼다. 우리는 당연한 자리를 찾아가듯 입술끼리 맞댔다. 요철과 요철이 딱 맞아 들어가는 쾌감이 있었다. 채원우의 윗입술이 내 아랫입술을 덮었다. 채원우의 입술은 촉촉했고 반면 내 입술은 건조했다. 그러니 찰싹 들러붙을 수밖에 없었다.

“음…….”

여전히 잘한다고는 할 수 없는 솜씨였다. 그런데도 좋았다. 서툴게 입속에 고스란히 노출된 속살과 입천장의 오돌도돌한 부분을 빠짐없이 방문하는 그 행동이 귀여우면서 감질났다. 꾸준히 노크만 하는 숙맥이 놀라게 문을 열어 확 잡아끌고 싶은 서툰 키스였다.

“떼요.”

내가 고갤 떼려고 하니 채원우가 뒷목을 잡았다. 으르렁대자 채원우는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별로였어요?”

“7점.”

채원우가 거의 울 것처럼 눈꼬리를 축 내렸다.

“100점 만점에요?”

“채원우 헌터 얼굴 점수만 넣어도 70점은 될 텐데? 10점 만점에 7점이요.”

“와. 저 그렇게 늘었어요?”

“키스, 못함. 여전히 서툼. 얼굴, 잘생기고 귀엽고 예쁨. 용기, 가상함.”

“어떤 게 가장 비중이 높아요?”

“용기요.”

갑자기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결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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