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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37화 (3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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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도 않고 돌아왔네, 각설이.”

“노래 진짜 못하시네요.”

귀를 거슬리게 하는 소리에 중얼거렸다. 그러자 강 책임의 폭소가 연이었다. 깨어나자마자 듣는 목소리와 마주하게 될 얼굴이 강 책임이란 사실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나는 일부러 눈을 더 질끈 감았다.

“일어난 거 알아.”

“저 죽었습니까?”

“장난해? 내가 너 죽게 두겠니?”

로맨틱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강 책임은 그저 데이터 하나가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는 거다. 나는 강 책임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하긴. 제가 죽었다면 여기 강 책임님이 계실 리가 없죠. 전 천국 가고 강 책임님은 지옥 갈 테니까요.”

“지옥? 끝내주겠다. 피와 살이 난무하겠지.”

“진짜 변태인 거 아십니까?”

“과학 기술 발전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인류를 지키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못 하는 말이 없네. 자, 눈 떠.”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떴다. 이곳은 분명히 병동이었다.

급속 치료가 있기에 병동에 오게 되는 건 흔치 않다. 굳이 단계를 따지자면 가이드 기준, 하루 이틀 입원하면 낫는 약한 증세가 1단계, 급속 치료가 필요한 2단계, 마지막으로 치료 후에도 경과를 봐야 하는 입원이 있다. 옆구리가 터지고 머리가 깨진 상태로 피를 많이 흘린 뒤, 약빨로 움직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급속 치료는 끝냈어. 옆구리 화상도 특별히 지워줬다.”

“와. 저 기절해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네요.”

“어? 아니야. 너 중간에 한 번 깼어.”

“…….”

“엄청 아파하더라. 곧 다시 기절하긴 했지.”

사람이 기억 못 하는 일을 꼭 저렇게 말해 줘야 하나? 나는 강 책임의 사디스틱한 성격에 이가 갈렸다. 그래도 산 게 어딘가 싶다.

“며칠 입원해야 해요?”

“내상이 있어서 나흘. 어디 보자. 우리 양 가이드 최장 입원 기록이…….”

“…….”

“2주였네? 하긴. 이때는 급속 치료 도입 초창기이기도 했고. 어이구. 눈이 2주일 동안 안 보였어? 불편했겠네. 그 와중에 일도 했고.”

“그때 이야기는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데요.”

“왜? 파트너가 죽었을 때라서? 너 상담 치료 안 받았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오래가요.”

“…….”

“한 대 치게?”

끝내 욱해서 일어나고 말았다. 옆구리는 찢어지게 아픈데도 이 새끼를 한 대 패야 한단 생각만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러나 강 책임은 도리어 고갤 들이밀며 쳐 보란 태도였다.

당연했다. 내가 강 책임을 때리면 난 헌터청과 최소 5년은 계약해야 할 거다. 그것도 무급으로. 강 책임은 그런 존재였다. 설령 죽어선 지옥에 갈지 모르더라도 살아선 헌터청에 군림하는 폭군.

“너 그때 무슨 봉사로 시간을 메꿨지?”

“…….”

“‘가이드 미배정 헌터의 임시 가이딩 테스트 참여’.”

실실 웃던 강 책임은 마구잡이로 넘겼던 차트를 털어 종이를 덮었다.

“양 가이드. 혹시 운명이란 걸 믿어?”

시트를 움켜쥐고 있는 손이 하얗게 질렸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이 남자를 제발 누가 여기서 치워주면 고맙겠다.

“안 믿습니다. 강 책임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믿을 수 없는 주제네요.”

운명이란 말은 게을렀다. 그 게으름에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곤 했다. 운명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내 가족이 그렇게 죽은 것도 운명일 테니까. 우리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도 모두 정해진 운명이었고, 어쩔 수 없었다는 뜻이며, 거기서 나와 승규만 살아남은 것도 하나의 정해진 길이었다는 말이니까. 나는 그때부터 운명을 믿지 않았다.

강 책임은 크게 웃었다. 살짝 보이는 목젖을 권투할 때 치는 미트처럼 두들기고 싶었다.

“나도 안 믿어! 그런데 믿는 사람 하나는 알지.”

“병 도지게 하러 오신 겁니까? 그만 듣고 싶네요.”

결국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강 책임님의 운명론이나 그 한 명의 운명론 같은 건 하나도 안 궁금합니다. 초대받지 않은 면회객은 이만 나가주시죠.”

“양 가이드야, 원우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당장 너스콜이라도 때리려던 내 손을 멈춘 건 그 한마디였다. 강 책임은 실실 웃으며 헛소리나 지껄이는 것 같지만 그가 하는 말 중에 아무 의미도 없는 건 사실 없었다.

나는 그가 직전에 말한 우연의 집합체라는 운명과 채원우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강 책임만큼 대가리가 빠릿하게 돌아가지 않는 게 유감이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려. 그런데 넌 기억 못 할 거야. 양 가이드, 내 부탁 좀 들어줄래? 그러면 내가 채원우에 대해 가르쳐 줄게.”

“본인이 말하는 걸 듣죠.”

“이게 싫다면 부탁 하나 들어줄게. 계약서에 기록된 거 외에는 다 들어줄게. 뭐, 가능한 안에서. 그런데 나 돈 별로 없다?”

아니, 어쩌라는 거야. 영양가라고는 하나도 없는 헛소리뿐이었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 던전 한 번 들어가자는 거야. 정보도 내가 미리 다 줄게. 대가리들만 아는 정보도 준다니까?”

“싫습니다. 강 책임님 부탁 한 번 들어주다가 다음번에 누울 침대는 여기가 아니라 영안실이면 어쩝니까?”

“얘, 말 살벌하게 하는 것 좀 봐.”

강 책임은 어머머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다리를 바꿔 꼬았다. 그러고는 정말로 무슨 흥미로운 가십이나 씹어대는 것처럼 물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자. 던전에 대해서 할 이야기 없어? 데이터 축적 중이거든.”

“……공략팀에게 물어보시죠.”

“네 시점도 들어봐야지.”

“저는 초반 기억이 날아가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이후는 공략팀과 별다른 경험이 아니고요. 채 헌터도 있을 텐데 왜 저한테 물어보십니까?”

“채 헌터는 나한테 말 잘 안 해요.”

“왜요? 강 책임께서 채 헌터에게 못된 짓이라도 하셨나 보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강 책임은 싱글싱글 웃는 눈으로 나를 쏘아봤고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죽 긴장을 했으면 옆구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낯짝이 창백해졌을 게 느껴졌다.

“좋아.”

강 책임이 먼저 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의 줄을 끊었다.

“어차피 아직 데이터가 많이 축적되지 않았을 테니 다음에 묻도록 하지. 그럼 잘 쉬도록 해, 양 가이드. 냉장고에 주스도 넣어놨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는 강 책임을 불러 세웠다. 나는 던전에서부터 내내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들어가니 던전의 등급도 달랐고 생태도 달랐습니다. 핵심 역시 이동형 몬스터였고요. 이번이 특수한 상황입니까, 아니면…….”

“던전이 변하고 있는 거지.”

강 책임은 아주 심심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정형화된 던전을 겨우 컨트롤하게 된 인류를 책임진다는 사람치고는, 책임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다.

“던전도 자라는 거야. 기대되지? 어떻게 자랄지.”

“아, 씨발. 역시 엿이나 드십시오.”

나는 고갤 마구 저으며 돌아누웠다. 내 등짝에 대고 강 책임은 최근에 아말감을 새로 해 넣어서 끈적한 걸 못 먹느니 어쩌니 주절댔다.

저 또라이를 상대한 게 문제였다. 저 사람에게 이 세상은, 헌터와 가이드는 오로지 연구 대상으로만 보일 거다. 세상이 망하는 순간에조차 새로운 데이터를 얻어냈다며 황홀하게 바라보겠지.

저런 게 진짜 괴물이지, 어떻게 우리가 괴물이겠어. 안 그래, 채원우?

강 책임이 간 뒤로 내리 잤다. 급속 치료의 부작용으로 몸은 무거웠고 머리 회전은 느렸다. 내상 치료를 위해 꾸준히 약을 맞고 있느라 손도 퉁퉁 부었다.

한참 잔 뒤에 깨어났을 때는 사과를 깎고 있는 승규와 그 옆에서 주스를 쪽쪽 빨아 먹는 형민이 보였다.

“저 얼굴 꼴 봐라. 수박이 따로 없네.”

“수박 중에서도 제일 잘생긴 수박이지. 병문안 선물은 돈으로 줘라.”

침대 등받이를 일으켜 세웠다. 다 세우기도 전에 승규가 입에 사과를 처넣었다. 말 그대로 처넣었다. 포슬포슬한 사과를 씹으며 너무 오래 자서 아픈 머리를 쥐어 싸맸다.

“네 파트너는 어디 가고 안 보이냐?”

씨앗에 붙은 과육을 먹으며 승규가 물었다. 그 모습이 갈비를 뜯는 것처럼 보였다. 못 보던 새 선글라스가 셔츠에 걸려 있다. 이번엔 진짜인가 싶어서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자랑스럽게 가슴팍을 내밀며 ‘진짜 같지?’ 하고 싱글벙글 웃었다. 물어볼 일은 줄었다.

“몰라. 알아서 바쁘겠지.”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잘라둔 사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형민이 은박지리본이 달린 이쑤시개를 내밀었다.

“제가 토끼 사과로 깎아달라고 했는데 사장님이 싫으시대요.”

“얘는 껍질 남아 있는 거 싫어해. 그렇게 안 보여도 드럽게 까탈스럽다.”

“정말요? 형은 은근히 예쁜 거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그래도 의외는 아니에요!”

“나는 어때? 나는 토끼 사과 좋아하는데.”

승규가 형민의 헛소리에 기대하는 게 선연히 보였다. 나는 조용히 사과를 씹으며 그들의 염병을 지켜봤다.

“사장님 외모 보시는 거 알아요. 백겸이 형이 잘생겼잖아요.”

“오. 형민이, 너 이거 먹어.”

나는 강 책임이 멋대로 두고 간 음료수 중에 알로에주스를 꺼내줬다. 역시 병 음료가 클래식이다.

“감사합니다! 근데 사장님은 껍질 있는 거 싫어하신다면 정말 의외일 거 같아요. 그냥 아무거나 다 드실 것 같거든요! 아! 칭찬이에요! 편식 안 하신다는 거예요!”

골 때리는 애였다. 1g의 비꼼 없이 100g의 진심일 거 같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내가 폭소하는 소리에 승규가 껍질만 벅벅 씹은 낯짝을 하고 형민의 입에 사과를 쑤셔 넣었다.

“형민아. 너는 어디 가서 입 함부로 열지 말고. 그냥 이 일도 이번만 하고 말아라……. 네가 파트너와 원만한 관계 유지를 할 수 있을지 장담이 되질 않는다, 야.”

“어? 제 파트너 형이 저한테 얼마나 잘해주시는데요. 저희 관계는 원만을 넘어서 아주 모범적이에요.”

“그러냐. 네 파트너분 방 호수 좀 알려줘라. 명절에 굴비 하나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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