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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32화 (3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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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우의 손가락을 질근질근 깨물다가 키스했다. 그걸 키스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채원우의 혀는 힘이 없었고 나는 절박하게 헛짓거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안 될 것 같아.”

초조하게 중얼거리며 채원우의 어깨에 고개를 괴었다. 서로 껴안은 채로 있으니 채원우의 비정상적인 심장 박동이 잘 느껴졌다.

“안에 누구세요? 혹시 무슨 문제 있으신 거면 말씀해 주시고요! 문 좀 열어주세요!”

바깥에서 직원이 문을 흔들며 소리치는 게 들렸다. 이곳에 더는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채원우와 입을 맞추고 얼굴을 꽉 잡은 채 눈을 맞춰 중얼거렸다.

“일단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아요. 정신 붙잡고 있어요.”

“아무도 안 다치게 해요.”

채원우는 얼굴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작은지 한숨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발로 비품을 밀어내고 문을 열어 빠져나왔다.

채원우의 손을 꽉 잡고 내달렸다. 비틀거리면서도 나를 잘 따라 달리는 채원우를 챙기며 다른 손으로는 가장 가까운 호텔을 예약했다.

밖으로 나오니 예보 없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도 적당히 오는 게 아니라 상당한 양이었다. 소나기일 거다. 하지만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카페라도 들어가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오늘의 외출이 아쉬웠던 거다…….

손으로 느껴지는 체온이 무척 높다. 심장 박동도 진짜 빨랐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혈관의 어딘가가 터지고도 남았을 거다.

나는 택시를 잡으며 이를 꽉 깨물었다. 채원우가 온 이성을 동원해 버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줘야 맞았다. 가까운데 걸어가는 게 낫지 않냐고 묻는 택시 기사에게 재촉했다.

“얼마든 드릴 수 있으니까 그냥 빨리 가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 * *

호텔에 들어왔다. 가장 가까운 곳을 예약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채원우의 팔을 어깨에 감고 끌어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눕혔다. 어느덧 나보다 키가 큰 데다가 사실 몸이 근육으로 꽉 들어찬 녀석을 들고 이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채원우는 침대에 눕자마자 옆으로 굴러 몸을 웅크렸다. 이제는 이를 꽉 깨물고 덜덜 떨기까지 하고 있었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모습을 보고 안쓰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지금 채원우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한 잔의 코코아나 위로가 아니었다.

나는 입술이 터지도록 씹은 뒤 욕실로 가서 어메니티를 쓸어 왔다.

“오일. 오일.”

대부분 호텔에는 바디 크림이 있어서 반쯤 포기한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이곳에는 오일도 있었다.

나는 오일을 뺀 나머지는 손으로 쓸어 바닥으로 밀어버렸다. 그러곤 누워서 오만상을 찌푸리며 소리 없이 고통을 참고 있는 채원우의 목을 받쳐 세웠다.

“채원우 씨.”

“…….”

채원우가 겨우 눈을 떴다. 그 큰 눈이 반밖에 떠지지 않았다. 눈동자가 축축해 내 모습이 잘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채원우는 울지 않았다.

나는 헌터들이 울고 몸부림치고 부모님을 찾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만큼 헌터들의 불안정함은 엄청났다. 누군가는 내장에 불이 붙은 것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우주가 보인다고 했다. 너무 아파서 미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채원우는 울지 않았다.

“채원우…….”

나는 조용히 채원우를 불렀다. 헌터라고 붙이려다가 말았다. 흐렸던 초점이 조금 흔들려 내게 맞춰졌다.

“안 아프게 해주겠습니다.”

그 방식이 비록 아름답지도 않고 달갑지도 않더라도, 동의보단 비동의에 가깝고 애정보단 폭력에 기반한 원초적인 방식이어도 우리는 해야만 했다.

채원우의 시선과 내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시선에 이어서 곧 우리의 몸도.

“……아직도 비 와요?”

인기척에 눈도 뜨지 않고 물었다. 커튼이 걷히는 소리가 들렸다.

“네. 아직 와요.”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다시 커튼 닫히는 소리. 채원우가 발을 끌며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피곤해서 눈도 뜰 수 없었다. 체력이 고갈된 건 아닌데 그냥 피곤했다. 비가 와서 그럴 수도 있지만 고강도의 가이딩을 해서 그럴 거다. 엎드려 있는 내 옆이 푹 꺼졌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저 때문에…….”

“지금 내가 내 의무를 다한 것 때문에 사과받는 겁니까? 그런 사과면 별로 안 반가운데.”

목이 잠겼다. 신음을 내지른 것도 아닌데, 하여튼 가이딩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하긴 그냥 성관계였다고 쳐도 고강도긴 했다.

나는 몸을 굴려서 눈을 떴다. 아래쪽에 있는 채원우를 보느라 거만하게 눈을 깔아야 했다.

“나 벗고 있네요?”

“세탁 서비스 보냈어요. 다 젖었더라고요.”

“아, 그랬지. 셔츠 잘 입었어요. 다음에도 셔츠 입어요.”

“왜요? 이런 상황에 벗기기 쉽게요?”

“아니. 잘 어울리더라고요.”

나는 픽 웃고는 채원우의 샤워 가운 자락을 톡 쳤다. 그리고 찌뿌둥함을 풀기 위해 거나하게 기지개를 켰다. 뚜둑 하는 소리가 나서 조금 멋쩍었다.

부드러운 호텔 침구의 감촉을 만끽하며, 내 사치에 뒤늦게 곡소리를 내려다가 눈을 찔끔 떴다.

“역시.”

“뭐가요.”

채원우가 볼멘소리를 했다. 누가 봐도 시무룩한 표정에 기까지 바짝 죽은 채원우는 그 와중에도 가슴만은 제대로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나는 어제인지 몇 시간 전인지 모를 과거가 떠올라 가볍게 혀로 입술을 축였다.

생각해 보니까, 일이 아니라 진짜로 하고 싶어서 했던 잠자리가 언제인지도 이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경험이 존재는 했나 싶다.

하지만 그래도 가이딩으로 지친 상태다. 아무리 동해도 이제 진짜 욕구를 채울 때였다. 발로 채원우를 가볍게 밀자 이리저리 휘청댄다.

“하지 마요. 나 지금 자괴감 드니까.”

“그런 것도 알아요? 채 헌터, 나 어제 돈 많이 썼으니까 채 헌터한테 빨대 좀 꽂아야겠는데. 이제 그만 시무룩하면 안 됩니까?”

“알았어요.”

“우리 뭐 시켜 먹을까요?”

채원우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을 찾기 위해 숙이는 등짝이 넓기도 하다.

언젠가 넘을 선이긴 했지만, 넘었다고 이렇게 마음가짐이 변할 줄 몰랐다. 채원우가 한결 더 편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기분이 더럽지 않은 임무 직후다. 기분이 더럽기보다 좋기까지 하다.

“미친 거지. 나이가 들었거나.”

중얼거리고 몸을 돌렸다. 내 핸드폰을 확인하니 배터리가 아슬아슬했다. 시간을 확인한 뒤 소재지를 헌터청 담당 주무관에게 보냈다. 주소만으로도 어련히 사태 파악이 되었을 거다. 그래서 자세히 보고하는 대신에 간략하게 상황 종료라고만 보냈다.

“채 헌터, 우리 맥모닝 먹어요.”

“네.”

“빨리 시켜야 해요. 곧 시간 끝나서.”

채원우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마저 보고를 끝내고 다시 벌렁 누웠다. 팔을 쫙 펴도 침대 끝까지 닿지 않았다.

‘호텔 최고다. 이래서 돈 버는 거지.’

속으로 중얼거리고 나중에 집을 구하면 반드시 이런 큰 침대와 끝장나게 보송하고 바스락대는 침구를 구하겠다고 다짐할 때였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채원우의 얼굴이 시야 속에 불쑥 들어왔다. 아니, 겨우 달래놨더니 더 시무룩해져서 왔다.

채원우가 핸드폰 화면을 내밀고 슬프게 물었다.

“형. 주문할 게 너무 많아요. 뭐 드실 거예요?”

손 진짜 많이 가는 파트너다. 나는 핸드폰을 낚아채서 이것저것 눌렀다. 내 몫을 끝내고 채원우에게 물었다.

“채 헌터는 뭐 먹을 겁니까?”

“형 먹는 걸로요.”

아마도 나만 마음가짐이 달라진 게 아닌지, 옆으로 돌아누운 내 뒤로 은근슬쩍 채원우가 들어왔다. 뒤에서 나를 꽉 껴안고서는 형이 먹는 건 다 맛있을 거예요, 하는데 그게 나쁜 기분은 아니라 그냥 뒀다.

“이러다 채 헌터 취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취향이랑 같아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전 좋은데요. 형 쓰는 향수도 가르쳐 줄래요?”

“향수 안 뿌리는데.”

“그럼 형 살냄새가 원래 이렇게 좋은 거예요?”

“미쳤다.”

“왜요? 이번 멘트 좋았어요?”

“아뇨. 구려서 미쳤다고 한 거예요. 누가 살냄새라고 해요. 아, 진짜.”

나는 터지는 웃음을 자제할 수 없어서 채원우를 밀치며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려고 했다. 채원우 팔이 내 생각보다 길지만 않았더라면 가능했을 거다.

나는 순식간에 다시 채원우에게 끌려가 졸지에 아래로 깔리게 되었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 채원우는 우수에 차 보였다.

“어제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래서 화가 나요.”

“아이구. 어떡하나. 난 기억 잘 나는데.”

“형만 기억하면 어떡해요?”

“뭐 좋은 기억이라고 굳이 기억하려고 합니까. 그냥 같은 거 달린 둘이 헌터와 가이드로 서로의 의무를 다한 거지.”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 일 해 왔어요?”

“그럼 다음 점심 메뉴 생각하면서 했겠어요? 그래서, 싫어요?”

“나한테도 그런 거라면 싫은데 이전 파트너들한테 그랬다고 하면 좋아요.”

“얼씨구.”

“나한테는 안 그러면 안 돼요, 형?”

어리광 넘치는 말을 한 채원우가 몸을 내려 날 와락 껴안았다. 나는 커다란 몸을 안고 어깰 토닥였다.

파트너 관계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고, 우리의 장르를 로맨스라고 오해하고 있는, 사회생활과 사생활의 선을 모르는 덩치 큰 괴물.

채원우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라면 질색하며 욕을 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 날 안고 있는 채원우의 몸에 절박하게 힘이 들어간 바람에 떨려서도 아니고 얘 호흡이 빨라져서도 아니었다.

그냥…… 매번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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