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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25화 (2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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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갈래요.”

“그러시든지요. 다시 입 열어요. 혀 좀 뻣뻣하게 굴지 말고.”

그리고 다시 채원우의 점막을 더듬었다. 채원우의 혀가 어설프게나마 내 혀를 감쌌다. 동조하는 꼴이 우습고, 제기랄. 귀여웠다.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초를 셌다. 21, 20, 19…… 20, 19…… 19……. 아. 까먹었네. 이젠 나도…… 모르겠다.

* * *

키스 한 번 한다고 세상이 변하나? 그러면 세상은 벌써 조 단위로 변해야 했을 거다. 지금이야 인류가 3분의 2로 줄었다지만, 이전에는 80억에 가까운 인구가 매일매일 키스를 했을 테니까. 안 한 사람의 몫까지 누군가 했겠지. 그러니까 고작 키스로 우리 관계가 변하진 않는다.

신발을 툭, 툭 벗어 던지며 안으로 들어섰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피곤에 녹초가 된 몸은 거듭된 감정적 싸움까지 더해져 무게가 두 배라도 된 것만 같았다.

“저 잡니다.”

이 말도 겨우 뱉은 거다. 눈이 반쯤 감긴 채로 방으로 향하려는데 뒤에서 손목이 딱 잡혔다. 돌아보니까 채원우도 자신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죄송. 구질구질하게 굴 뻔했어요.”

“……가이딩 할 때도 아닌데 키스한 제 잘못도 있으니까 저도 사과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유가 충분히 상상이 되어서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건넸다. 채원우는 어린애라고 생각하면 대하기가 한결 쉬웠다. 잠깐, 그럼 나는 어린애랑 키스한 게 되는 거잖아. 정정. 채원우를 그냥…… 어디 별에서 뚝 떨어진 애로 생각하자.

다시 돌아가려는데 채원우의 표정이 한껏 애처로워졌다.

“아는데, 아는데요……. 사과를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

“제가 존나 멍청한 새끼 같아요.”

“채원우 씨가 그러면 나는 존나 나쁜 새끼 같습니다. 알아요?”

“솔직하지 말까요?”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나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그러곤 아주아주 무거운 몸을 끌어 채원우의 입꼬리를 꾹 눌러 위로 올렸다.

“조금만 돌려 말해 달라는 거죠. 채원우 씨는 가끔 트럭 같아서 버겁거든요.”

“이아내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나쁘진 않아요. 내가 본 적이 없는 캐릭터라.”

난이도가 꽤 까다로운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공략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습지. 난 그런 게임 같은 거 해본 적 없는데.

픽 웃고는 채원우의 볼을 가볍게 두드렸다. 애가 어려서 그런지 볼이 찰졌다.

“나 잘 테니까 채원우 씨도 좀 자요.”

돌려 말했지만, 괜히 또 이상한 연애 영상을 보거나 헛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잠이나 자란 말이었다.

채원우는 시무룩해져선 자기 방으로 향했다. 나는 손을 붕붕 흔들며 잘 자요, 하고 싱긋 웃어줬다. 채원우가 문틈 사이로 고갤 끄덕이더니 쫙 편 손가락을 접으며 인사를 했다. 손가락 인사 같았다.

문이 닫히자마자 거의 기듯 방으로 돌아왔다.

“와, 죽겠다.”

침대에 똑바로 돌아누울 수도 없었다. 대각선으로 털썩 쓰러져선 조금만 쉬자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 * *

왜 그런 날 있잖나. 누가 깨운 것도 아닌데 갑자기 헉, 하고 깨어나는 날. 오늘이 그랬다. 나는 말 그대로 헉, 하고 눈을 뜨곤 부스스 일어났다.

약빨이 떨어진 건지 팔은 물론이고 온몸이 보통 찌뿌둥한 게 아니었다. 깁스를 하지 않은 쪽의 기지개를 켜고 다시 제대로 이불 덮고 자려는데 왠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이라고밖엔 표현 못 할 게 짜르르 소름 돋게 했다. 어영부영 자리에서 일어나선 거실로 나왔다.

“채원우 헌터?”

눈을 비벼 잠기운을 마저 털어내고 불렀다. 솔직히 거실에서 채원우가 또 물을 둥둥 띄우고 잠든 모습까지는 상상했다. 상상과 달리 거실은 조용했다. 간섭하고 싶지 않은데, 특히 방처럼 개인적인 영역을 침범하고 싶지 않은데 이 불안감은 직접 확인하지 않고선 가시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진짜 싫은데.”

구시렁거리면서도 발걸음을 조심히 옮겼다. 채원우의 방문에 손을 갖다 대니 습기가 만져졌다.

“이럴 줄 알아서 싫었다고.”

얼굴을 싸매고 으아아, 하고 조용히 소릴 질렀다. 그렇게 난리를 피운 만큼 채원우는 약을 먹지 않고 잠들었을 테고 그간 약으로 억눌렀던 게 오히려 역으로 돌아올 때가 맞았다. 내 불안감은 식스센스라 불리는 육감의 힘이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머릿속에서 떠오른 경고였던 거다.

발을 돌려서 부엌으로 향했다. 여차하면 막게 냄비를 들고선. 한 손엔 냄비, 깁스를 한 손에는 깁스와 냄비 뚜껑을 방패 삼았다. 팔꿈치로 문고리를 내렸다.

아주 조용히, 아주 조심히 내리고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일단 냄비 뚜껑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손도 내렸다.

“채원우……? 헌터……?”

호옥시라도 깨어 있으면 이름으로만 불렀다고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호칭까지 덧붙였다.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냄비 뚜껑과 냄비를 모두 내리고 안으로 들어서니 전등과 창문 등에 송골송골 맺힌 물기가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채원우는 공격적인 물방울로 자기 몸을 뱅뱅 감싸고 있지도 않았고 날 공격하지도 않았다. 나는 손을 뻗어서 창문을 훔쳤다. 뽀득 하는 소리와 함께 물기가 묻어났다. 냄비 뚜껑과 냄비는 창문 앞에 있는 책상에 올려두었다.

침대와 책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책 몇 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책장도 없었다. 모두가 구색 맞추기용처럼 보였다.

빈손으로 채원우에게 다가가니 앓는 소리가 들렸다. 채원우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으…….”

대체 무슨 꿈을 그렇게 살벌하게 꾸는지 채원우가 신음을 흘릴 때마다 창문과 문고리 등 금속에서 물방울이 큼직큼직하게 솟아났다.

말도 안 되는 감상이지만…… 내게는 그게 채원우의 눈물처럼 보였다. 채원우의 얼굴과 눈가는 건조한데도 여기저기서 눈물 같은 물방울이 솟구치는 방 안에 갇힌 감상이란 그랬다.

“무슨 개꿈을 그렇게 꿔요.”

목소리를 낮춰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채원우는 깨지 않았다. 약 없이 잠드는 밤이 쉽겠냐, 그럼. 자도 개운하지 않게 온몸에 힘은 들어가고 악몽은 생생하고. 그러니까 왜 멀쩡한 파트너 가이드 두고 멋대로 약을 오용해.

말은 이렇게 해도 나는 교훈이나 주며 내가 맞았단 걸 확인하고 뿌듯해하러 여기에 온 게 아니었다. 그렇게 사이코패스 변태도 아니고.

주머니에 손을 꽂고 채원우를 내려다보다가 채원우의 옆자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어린애처럼 이불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자는 채원우 때문에 빼앗기도 여의치 않았다. 공기가 쌀쌀한데 이불 없이 자야 했다.

나는 채원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거추장스러운 깁스를 채원우의 위에 올리고 멀쩡한 팔을 채원우의 목 아래로 넣어 감싸 안았다. 맨살이 닿을수록 효과가 빠르고 좋아서 손을 채원우의 목과 볼에 갖다 댔다.

채원우의 음울하고 울적하며 절망적인 감정들이 손가락 말초 신경을 타고 오르는 것 같다. 심장 박동은 불규칙한 와중에 빠르게 뛰었다. 나도 덩달아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심장이 덜컥거렸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나는 몸을 더 채원우에게 붙이고 온기를 나눴다. 함께 불안정하고 비정상적이던 심장 박동은 점차 그래프 모양이 일치하더니 이제는 그 모양조차 정상권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내 손발은 차게 식고 머리는 띵했다.

“채원우 씨.”

잔뜩 힘이 들어갔던 미간도 풀리고 안색도 한결 나아지고, 무엇보다 숨소리가 고르게 된 채원우를 불렀다. 단단히 껴안다 못해 채원우의 머리를 내 가슴팍 쪽에 붙인 상태였다.

“잘 때라도 좀 편하게 자지, 왜 그걸 못 해서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듭니까?”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채원우가 뒤척였다. 어느새 이불도 놓은 상태였다. 채원우는 돌아누워 나를 마주 껴안았다.

별 의미는 없는 행동이다. 따뜻한 곳으로 파고드는 습성처럼 자신을 안정시키는 존재에게 들러붙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왜 한숨 푹 내쉬고 채원우의 머릴 감싸서 더 꽉 안아주는 걸까?

손을 뻗어 앞에 있는 벽지를 훑었다. 새로 올라오는 물방울은 없어 보였다. 약간 미끄덩한 게 방수 처리가 된 것 같았다. 애초에 이 방은 채원우를 위한 곳이었던 거다.

그러면 내내 채원우를 위해 사용되었을까? 채원우는 가이드도 없이 거실을 제외하고도 방이 두 개인 이곳에서 늘 혼자 지냈나? 분명 그건 내가 바라마지 않는 삶인데도 채원우한테는 그랬을 것 같지 않았다.

“사람 존나 신경 쓰이게 하는 거 알아요? 환자는 난데.”

투덜거리면서 채원우의 목을 타고 등 윗부분까지 투박하게 쓸어주었다. 채원우가 나지막하게 웃었다. 아니면 코를 골았든 잠꼬대를 했든 했겠지.

악몽은 끝난 모양이다. 몬스터를 탐구 영역처럼 대하는 채원우가 꾸는 악몽은 대체 뭘까.

“내가 이렇게 누굴 궁금해 하는 사람이 아닌데.”

잠이나 자야지. 새벽까지 깨어서 별스런 생각을 다 하는 건 채원우가 아니라 나였던 모양이다. 놀던 손으로 후드 모자를 당겨 뒤집어쓰곤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금 습한 방에서 푹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날 아주 커다란 물방울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꿈을 꿨다. 숨을 쉬기 어렵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아주 쾌적한 곳이었다.

* * *

눈이 부셔서 저절로 잠에서 깼다. 커튼이 달려 있는데 햇빛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여기가 내 방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 냈다.

“어우.”

두 손으로 얼굴을 싸맸다. 팔이 다 들리지 않았다. 분명 내가 채원우를 안고 잠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반대였다. 채원우가 팔을 내 몸 위에 툭 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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