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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23화 (2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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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우는 좋은 말로도 키스를 잘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좀 무식한 방식이었다. 나는 습하기까지 한 공기에 숨을 후욱 내쉬며 고갤 저었다.

“그냥 내가 하는 거 어쭙잖게 흉내 내는 수준이죠.”

“언제쯤 되면 잘해요?”

“글쎄요. 일주일 후?”

언젠가 채원우가 사적인 대화는 언제 할 수 있냐고 대꾸하며 ‘일주일 후?’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서 인용해 봤다. 채원우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팔을 내리며 다시 채원우의 뒤로 가 섰다.

“근데 그 좋다는 목걸이를 했는데 왜 나는 회복되지 않는 겁니까?”

“그건 심장을 다시 뛰게 해주는 거예요.”

“네?”

“죽은 사람을 살려주는 능력이라고요.”

섬뜩하기까지 한 능력이었다. 기적에 가까웠다. 막연히 들었던 값어치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말 그대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능력이었다. 근데 내 목숨은 그보다 쌀 것 같은데. 값을 정할 수 없는 가치로 나를 평가한 거라면 어쩌지. 채원우가 손해 봤다.

그래도 나는 목걸이를 잘 갈무리하고 채원우를 불렀다.

“채 헌터.”

내 목소리만으로도 채원우 역시 감을 잡은 것 같았다.

“네. 다 왔어요.”

영롱한 초록빛이 눈으로 쏟아졌다. 공략 포인트였다.

“바위네.”

던전 핵은 허무할 정도로 별거 아니었다. 그냥 바위였다. 말 머리처럼 생긴 바위. 커다란 그것은 절벽 끝에 있었다. 도시 팔경쯤에 속할 법한 바위.

“에스퍼팀은 후방에 있습니다. 도착할 때까지만 버티면 돼요. 수고 많았어요, 채원우 헌터.”

채원우는 우리의 위치를 송신했다. 이제 각자 지닌 전자지도에 우리의 위치가 뜰 것이다. 빨리 와라, 느림보들아. 틈을 타서 목 좀 채우려고 수통을 빼 들었다. 옆구리에 붙이고 뚜껑을 열려는데 채원우가 갑자기 손을 뻗어 수통을 가져갔다.

“그거…….”

내 거라고 말하려는 참이었다. 채원우가 뚜껑을 열고 물을 들이켰다. 그러곤 단번에 내 머릴 잡고 당겼다. 나는 하필 채원우보다 좀 아래쪽에 있었다. 산이란 대체로 대각선으로 생겨먹었으니 당연했다. 뒤꿈치가 덜렁 들리고 목도 당겼다.

그러나 그보다, 입이 열리고 채원우가 제 입에 머금었던 미지근한 물이 쏟아지는 감각이 선명했다.

“…….”

나는 넘어오는 물을 순순히 받아 마셨다. 입가로 조금 흘러 목까지 적셨다. 채원우가 내 목에 궤적을 그리는 물을 천천히 띄워 올렸다. 그것이 우리 주변을 행성처럼 돌았다. 탐조등 주변을 돌 땐 별처럼 빛났다.

더 넘어오는 물이 없었다. 나는 멀쩡한 쪽 손으로 채원우를 밀었다.

“어때요?”

채원우가 물었다.

“일주일 필요할 거 같아요?”

시계로 바이털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채원우는 열이 높았다. 내 혀와 입술이 부르트도록 고생한 보람도 없이.

“저 키스 여전히 좆같이 못해요?”

“좆같이 못한다고는 한 적 없는데.”

“…….”

“근데 열이 높은 건 맞고. 열이 높아서 그런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고.”

“정신 안 나갔어요.”

“지금까지 가이드가 없었다고 내가 어디까지 봐줘야 하나 싶고.”

나는 채원우의 유틸리티를 잡고 당겼다. 멱살을 잡고 당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저 옆에서 불빛이 느껴졌다. 곧 사부작대는 인기척과 함께 헌터 둘과 가이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는 헉헉대다가 옆으로 고갤 돌리고 토했다.

“둘이 뭐 합니까? 싸워요?”

헌터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이속 능력이 있는 헌터가 있는 줄 몰랐는데. 에스퍼를 업고 달린 모양이다. 쫓아온 가이드가 용했다. 나는 그 셋을 흘끗 보다가 채원우의 벨트를 더욱 세게 당겼다.

“진짜 싸우는 건 아니죠?!”

여기선 아니지.

나는 채원우의 벨트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조금 전 맞았던 모르핀 계열 주사기였다. 그것을 꺼내 허벅지에 꽂고는 채원우를 놓아줬다.

“아뇨. 채원우 헌터 덕분에 살았습니다.”

채원우는 셋이 아니라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진짜 뭐 빠지게 고생했거든요. 그것도 채원우 헌터 덕에.”

살았다가 땀도 피도 뭐도 빠지고, 바빴으니까 이제 빨리 이 빌어먹을 던전에서 나가면 좋겠다. 우리는 옆으로 자리를 비켜줬다. 멀미를 했는지 가이드가 다시 한번 옆에 토하고는 비틀대며 다가왔다.

이속계 헌터가 물로 입을 헹군 가이드에게 다가갔다. 어떤 방식으로 가이드를 매칭했는지 알겠다. 헌터를 쫓아올 수 있는 능력이겠지.

“가이딩 가능하겠습니까?”

“설마 형이 해주려는 건 아니죠?”

잠자코 있던 채원우가 쏘아붙였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다시 물었다.

“상태 괜찮아요?”

“으, 우욱. 우엑. 네. 어윽.”

헛구역질을 몇 번이나 한 가이드는 비틀거리며 이속계 헌터의 손을 잡았다. 헌터는 나무에 팔을 얹고 숨을 헐떡였다. 가이딩 속도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괜찮은 거 맞습니까?”

“형.”

재차 묻는 나를 채원우가 잡았다. 마침 깜빡거리던 탐조등이 푹 죽었다. 나는 그것을 다시 돌려 켰다. 어렴풋하게 켜졌다. 아마도 높은 습도 때문일 거다. 채원우가 흐린 빛 속에서 나를 노려보았다.

“다른 새끼는 안 돼요.”

“그 새끼란 소리 저기서 다 듣고 있는데.”

“안 된다고요.”

“채원우 헌터.”

나는 낮게 채원우를 불렀다. 채원우가 움찔했다.

“앞서 나가지 마세요.”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아주 작은 지퍼백을 꺼냈다. 채원우의 앞에 그걸 들이밀었다. 내 탐조등의 흐린 빛과 채원우의 탐조등의 밝은 빛 속에서 반짝였다.

“이거, 안정화 촉진제입니다. 좀 센데 일회성으론 좋을 거예요.”

나는 고갤 돌리지도 않고 그 봉투를 옆으로 던졌다. 신체 능력이 어지간한 수준을 넘는 것으로 추측되는 가이드가 탁 받는 게 느껴졌다. 나는 채원우를 향해 입꼬릴 삐딱하게 올리며 웃었다.

“여기 그거로 효과 톡톡히 보신 분이 있거든요.”

“…….”

“그렇지? 채원우.”

“그건…….”

“나머진 나가서 얘기하죠.”

나는 채원우에게서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인기척이 연이어 나더니 아마 에스퍼의 파트너로 추측되는 가이드와 에스퍼 한 명, 그리고 후방 지원팀이 도착했다.

또 다른 에스퍼가 말머리 모양 바위로 달려들었다. 후방 지원팀이 협동하여 가파른 절벽 아래쪽으로 커다란 그물을 만들었다. 탄성이 있는 물질을 뽑아내 구현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였다. 누군지 몰라도 이번 작전을 짠 사람은 영리한 데다 노련한 게 분명했다.

바위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빠른 속도로 초록색에서 주홍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역순 해방이었다. 붉은색에서 푸른 계열이 아니라 푸른 계열에서 붉은색으로 바꾸어야 풀 수 있는.

나는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하는 빛을 보며 크게 숨을 삭였다.

개새끼.

그 흰색 알약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나가서 말하려 했다고.”

난 낮게 중얼거렸다. 채원우의 귀에 안 들렸을 리 없다. 들으라고 한 거다. 물론 여기서 끝나지도 않을 거다.

* * *

던전 공략이 순조롭게 끝났다. 순조롭게 끝난 것과 다르게 우리의 파트너 사이는 순조롭지 못했다.

동이 떠오르는 것에 대한 새삼스러운 감탄도 없이 우리는 지친 상태로 헬기에 타야 했다. 또 허공에서 마구 흔들리는 사다리를 오르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이건 뭐 타라는 건지 내동댕이 치겠다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조심히 타세요…….”

채원우가 부쩍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채원우와는 할 말이 많았다. 다만 자리가 적합하지 않을 뿐이었다.

후들거리는 팔과 다리로 겨우 헬기에 올라탔다. 채원우는 힘든 기색도 없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채원우의 바이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는데. 차라리 건강하면 신경이라도 덜 쓰일 텐데 얘는 지금 몸 상태도 안 좋았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일도 채원우가 자초한 거 아닌가?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촉진제 따위를 먹어?

그것도 내가 의무 교육 시간에 마침 졸지 않았던 날 나와서 기억해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그냥 영양제나 소화제로 생각하고 넘어갔을 거다. 그래서 다음에 정말로 채원우가 폭주 직전이 되어서 내 가이딩이 먹히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좆됨을 깨달았겠지.

촉진제는 나에 대한 채원우의 배신이기도 했고, 우리 둘의 목숨을 자기 멋대로 담보로 걸어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도 모르게.

“혀엉…….”

채원우가 나를 쳐다보는 걸 알았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채원우가 있는 곳과 반대쪽을 본 채로 눈을 감았다.

피곤한데 머리는 맑았다. 5분 이상 지속되는 화는 내 뇌가 화를 내겠다고 결정한 감정이라고 했다. 결국 내가 화를 내고 싶은 거다.

채원우가 얼핏 이름을 들어 내가 보는 앞에서 뒷조사를 했던 그 헌터와는 사이가 제법 좋았고, 그는 아는 게 많아 나에게 잡다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냥 공부가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때 나는 고작 그게 꿈이냐고 물었고, 또 바로 이어서 나도 사실 고졸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헌터가 살아서 내 첫 파트너와의 결말이 그렇지만 않았다면 채원우와 만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죽었다.

가족을 잃고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은 사람이었다. 없던 친형처럼 생각했다.

그는 전투 중에 죽었지만 그렇게 된 이유는 나와 주고받던 가이딩 외에도 약물을 섭취해서 몸에 부하가 온 탓이었다. 나는 치받고 올라오는 구역질에 입을 다물었다.

곧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대화도 힘들 정도의 소음이 감사하게 여겨졌다. 허공에 몸이 둥실 떠오르는 불쾌한 부유감이 났다. 채원우도 곧 입을 닫았다. 아니면 소음에 목소리가 묻힌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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