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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22화 (2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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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꽉 깨물었다. 채원우가 천천히 흙을 밀어내며 전진하고 있었다. 나는 오감을 귀에 집중한 채로 주먹을 연거푸 쥐었다.

일단 지금 채원우가 심장 마비나 몸 혈관이 터져 죽는 일은 막을 수 있겠지.

당장에 집중하자. 당연한 말이었고 그것 말고 다른 길은 없었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길만이 유일한 활로인 것처럼.

팔이 부러진 건 순간이었다.

“아…….”

너무 큰 고통은 오히려 처음부터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하필 마지막 총알이 몬스터의 급소에서 약간 빗겨나갔다. 열 번 중 한 번의 실수가 터진 거다.

방향을 잃어 설치류과의 몬스터가 내 목으로 달려들지 못한 건 다행이었지만, 이미 너무 가까운 상태였다는 건 불행이었다. 힘을 잃고 떨어지는 주둥이가 내 몸에 박히지 않게 하기 위해 막으려 들었던 팔이 보기보다 훨씬 무거운 몬스터의 몸뚱이와 부딪혔다. 낙하 에너지는 어쩌구, 뭐랬더라. 하여튼 더 무거워지는 거 맞지?

나는 뒤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뒤꿈치에 힘을 주고 겨우 버텼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방향이 기괴하게 뒤틀린 자신의 팔을 보는 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나는 뒤늦게 이를 악물며 비명을 참았다. 그 와중에도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약 27초 전에 확인한 채원우의 바이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이번 텀에 반드시 가이딩해야 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엄호 능력이 대폭 준 내가 텀을 벌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습격으로 파악하건대 한 번 습격이 올 때마다 네 마리에서 다섯 마리였다. 내가 방금 죽인 게 네 번째였으니 운이 좋아야…….

‘8초, 9초, 10초…….’

다행히도 15초까지 세는 동안 다가오는 몬스터는 없었다. 나는 그제야 채원우를 불렀다.

“채 헌터…….”

채원우는 내 말대로 모든 집중력을 능력 운용에 쏟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만약 조금 전 내 부상 사실을 알았다면 능력 운용 자체가 뒤틀려 채원우에게도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밀어냈던 토사가 우리에게 몰려왔을지도 모르고.

“지금 돌아보지 마요. 절대로. ……좋습니다. 그렇게 잠깐 멈추고 나 좀 봐요.”

나는 지독한 통증에 눈앞이 반복적으로 깜빡이는 걸 느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약을 쓰는 건 정말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모르핀 계열 진통제를 유틸리티 벨트에서 꺼내 허벅지에 박았다. 얼얼한 통증과 함께 약이 퍼지는 게 느꼈다. 바늘을 빼는 것과 거의 동시에 옆에 기울어진 채 겨우 땅에 박혀 있는 나무에 몸을 기댔다. 마침 채원우가 능력을 거두고 나를 돌아봤다.

“혀, 형!”

채원우가 고글과 반다나를 거두며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잘 들어요.”

채원우가 고갤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벨트로 향했다. 접이식 부목과 밴드가 나왔다. 다행히도, 아니, 당연하게도 채원우도 상황이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고 갈팡질팡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우리 쉬지 않고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파악하기로 네다섯 마리의 몬스터가 2분에서 3분 간격으로 이곳으로 왔어요. 아마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몹인 것 같아요.”

“네. 그리고 제가 알아야 하는 건요?”

“윽……!”

부목이 닿았다. 채원우가 능숙하게 붕대를 물게 했다. 뭉치를 물고 버텼다. 조금이라도 모양새를 맞추는 작업은 끔찍하게 아팠다. 잠깐이지만 의식이 나갈 것처럼 고통스러워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니 채원우가 내 입에서 붕대를 빼서 둘둘 풀고 있었다. 마침 진통제도 약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내 정신이 조금 전만큼 명료하진 못할 거예요.”

“그리고?”

채원우가 붕대를 감은 뒤 내 어깨에 매듭을 지었다. 고갤 숙였다. 빌어먹을 반다나. 답답했다. 다치지 않은 쪽 손등으로 내렸다. 아슬아슬하게 칼끝이 채원우의 가슴을 스칠 뻔했지만 채원우는 조금도 방어하지 않았다.

“채원우 헌터는 이미 한계입니다.”

나는 무릎을 모아 칼을 뺐다. 어차피 이젠 총에 의지하는 게 좋다.

“저 한계…….”

“한계 맞아요.”

그러는 와중에도 머릿속에서는 카운트다운으로 분주했다. 59, 58, 57…….

“우리 시간 별로 없는 거 알죠?”

나는 모르핀 기운으로 몽롱해진 상태로 웃었다. 기괴해 보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우리는 탐조등으로 서로를 비추고 있는 꼴이었다. 조명 각도는 살벌하고 땀에 흠뻑 젖어선, 심지어 진통제 기운까지 돌았다. 더없이 완벽했다.

“그러니까 내가 평소보다 못하다는 거 알아주기입니다…….”

그리고 나는 채원우의 목을 잡아끌었다. 채원우는 혹여라도 몸끼리 붙어 내 팔에 무리를 줄까 걱정을 한 건지 다급하게 땅을 짚었다. 땅은 질척거려 거대한 스펀지 같았다. 약 기운에 나는 그 스펀지 속으로 빨려드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질척거리고 말랑거리는 혀끼리 얽혔다.

“음…….”

이 신음 소리가 내 목에서 나는 건지 채원우의 목에서 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의 심장은 같은 속도로 뛰었고 둘 다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지독한 피곤함을 느낌과 동시에, 한계에 몰렸다고 인식한 생존 인식 때문에 정신력과 별개로 몸은 흥분한 상태였다. 채원우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아마 그랬을 거다.

“아……!”

숨 좀 쉬기 위해 물러나려는 순간 오히려 잡혀 끌려갔다.

채원우는 내 입속에 우물이 있는 것처럼 퍼 올렸다. 더럽게 서툴렀다. 얘에 비하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하는데도 내 키스가 수준 높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입술을 뗄 수 없었다.

심장 박동이 줄어들지 않는다. 씨발, 이것도 생식 본능으로 인한 흥분 때문일까? 17, 16, 15…….

“좋아.”

채원우가 으르렁거렸다.

“좋아…….”

채원우는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하는 시간도 아까워 조금 떨어진 순간에도 혀로 채원우의 입가를 핥았다. 쉬이 트고 찢어지는 입가는 겉 피부보다는 속 피부에 가깝지 않나 싶다. 그만큼 예민하고 약했다.

순간 뒤에서 묵직한 파열음이 들렸다. 3, 2, 1…….

입술을 뗐다.

“……표정 끝내주네요.”

“…….”

“마치 첫 키스라도 한 것처럼.”

“맞는데요.”

내 딴엔 농담이었다.

“맞아요. 첫 키스.”

탐조등이 채원우의 얼굴을 노란빛으로 적셨다. 번들거리는 눈빛에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는 게 첫 키스 아니에요? 그러면 형이 제 첫 키스 빼앗은 거예요.”

“그것참…… 존나 짜릿한데요.”

나는 채원우가 한 말의 반만 알아먹기로 했다. 좋아하고 어쩌고는 못 들은 척했다. 내가 약 기운에 취해 있듯 채원우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약 기운에 취하고 가이딩 여파로 몸이 진흙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사이에도 사각거리는 소리가 미친 듯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채원우가 내 멱살을 잡고 단번에 일으켜 세웠다.

바로 돌아보자 뜯어진 나무뿌리가 보였다. 잔뿌리도 아니고 구렁이 같은 큼직한 게 뜯겨 있었다. 조금 전 파열음의 정체였다.

채원우가 갈퀴 모양으로 세웠던 손을 아래로 했다가 단번에 들어 올렸다. 토벽이 생기며 막 달려들려던 몬스터들이 막혔다. 채원우는 앞이 아니라 날 보고 있었다.

나는 아래로 후루룩 꺼지며 우리 다리로 마구 흙탕물을 튀기는 토벽도 개의치 않고 바이털을 확인했다.

“멋진 척하느라 내가 가이딩으로 애써 안정시킨 보람도 없이 만드네요.”

조금 전처럼 한계에 임박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좋은 상황도 아니었다. 나쁜 것도 아니고, 이상한 상황이었다.

우리의 매칭률을 생각하면 한계에서 조금 떨어뜨린 정도로는 부족했다. 이 정도 키스를 했다면 적어도 채원우의 상태가 이것보다는 나아야 했다. 효과가 무뎠다. 벽에 부딪힌 것처럼 말이다.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형.”

채원우가 씩 웃었다. 창백한 얼굴이 곧 쓰러질 것처럼 병약해 보여야 마땅한데 지독하게 색정적이었다. 기가 찼다. 나는 헛웃음을 짓고 총을 들어 부목으로 손목을 받치고, 채원우 뒤로 달려드는 몬스터를 쐈다. 아마 귀가 좀 아플 거다.

“넌 나가서 보자.”

당연히 쥐새끼 몹이 아니라 채원우에게 하는 말이었다.

* * *

우리는 꾸준히 거리를 유지하며 앞으로 나갔다. 작전을 잘 짠 모양인지 간격을 두고 진입하는 팀으로 인해 몬스터의 공격 역시 분산되었다.

텀은 점점 길어지되 각 몬스터마다 버로우 상태로 상대하기 더욱 버거워지고 있었다. 이 상황은 다시 말해서, 던전의 공략 포인트인 ‘핵심’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채원우의 바이털을 확인하며 체온이 39도에 이를 때마다 키스했다. 텀은 짧았고 채원우는 점점 더 지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뿐만 아니라 던전 안 지형의 회복 속도 역시 빨라졌으니까. 그만큼 능력의 운용 역시 폭이 커졌다.

“여기 좀 봐요.”

약빨이 떨어지고 있다. 몸이 축축 처졌다. 뿌리를 치우기 위해 흠뻑 적신 흙이 뿌리만이 아니라 우리 발도 빨아들이는 게 문제였다.

채원우는 창백한 고개를 내게 돌렸다. 나는 채원우의 팔에 부목을 대고 당겼다. 둔하게 아팠다. 짜증이 솟구쳤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과 이 지긋지긋한 던전…….

화풀이를 하듯 채원우의 아랫입술을 물어 당겼다. 그러곤 턱을 조금 돌려 키스했다. 혀로 채원우의 혀를 감았다. 벌써 몇 번째더라. 입술이 부르틀 지경이었다. 채원우의 입술만 멀쩡했다.

“……형 키스 잘하네요.”

“당연하죠. 지금 채 헌터랑만 몇 번을 한 줄 압니까?”

“그럼 저도 잘해요?”

“아니요.”

거짓말을 할 체력도 정신력도 없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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