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개방 훈련실로 가는 보안을 해제하며 고갤 갸웃거렸다. 처음에는 채원우의 말투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시간을 좀 두고 보니 이 정도로 적의를 사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애가 보다 보면 좀 귀여운 맛도 있긴 한…….
“형!”
막 문이 열리는 틈으로 정확히 채원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채원우가 손을 붕붕 흔들며 나에게 달려왔다. 꼬리가 크게 흔들리는 대형견 같다. 대형견은 대형견인데…….
“손! 손, 손! 손!”
손에 피가 줄줄 흐르는 뭔가가.
나는 당장에라도 나에게 뛰어들 기세인 채원우를 피해 복도로 나와 문을 닫아버렸다. 안쪽에서 쿵쿵 소리가 났다. 곧 근거리에서만 사용 가능한 단주파수 이어폰으로 채원우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거 기술력 낭비다!
―혀엉. 너무해요.
“손 그거 뭐예요!”
낑낑대는 채원우를 바깥에 둔 채로 다급히 물었다. 채원우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싱글벙글한 소리로 대꾸했다.
―훈련용 몬스터 폐요!
내가 혹시 순댓집에 왔던가? 내가 순댓집에서 내장을 시켰던가? 순간 그런 착각에 어지러울 정도로 채원우의 목소리는 밝았다. 허파 많이 주세요. 큼직하게 썰어서……는 개뿔.
“손 닦고 만납시다, 우리!”
나 원래 순대는 순대만 먹거든!
* * *
채원우에게서 비릿한 냄새가 난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그래도 열심히 지워보려 했던 흔적인지 달콤한 체리사탕 냄새도 났다. 두 향기는 더럽게 안 어울렸는데 묘하게도 채원우에게는 둘 다 어울렸다.
피비린내와 체리사탕이라. 나는 어렵지 않게 채원우가 새빨갛게 젖은 손을 하고 앙증을 떨며 ‘이거 체리사탕 녹은 거예요’ 하고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달콤한 냄새를 내는 걸어 다니는 병기 같은 거지.
“폐가 세 개래요.”
“네?”
한참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나를 채원우가 일깨웠다.
“제가 조금 전에 잡은 거요. 제가 들어갔던 던전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던 개체인데 폐가 세 개래요.”
“그래서 궁금해서 확인해 본 거였습니까?”
“네. 세 개 맞던데요.”
“…….”
농담이었는데…….
“아가미도 있었어요.”
“어떤 모습인지 상상하기 싫네요. 안 할래요. 밥 먹기 전에 그런 거 생각하는 거 아닙니다.”
점점 구체적으로 변하는 특징에 속이 미식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채원우를 말렸다.
채원우는 주머니가 많은 군용 바지에서 핸드크림을 꺼내서는 꼼꼼하게 펴 발랐다. 그것 또한 체리사탕 냄새였다. 비릿한 냄새가 한결 가셨다.
조금 전도 나름 과거라고 바로 미화되었는지. 피비린내보다 물비린내에 가까웠던 것 같다. 수륙양용 개체였던 모양이지.
나를 흘끗흘끗 보던 채원우가 갑자기 핸드크림을 쭈욱 짰다. 누가 보아도 많은 양이었다.
“형.”
채원우가 수줍게 나를 불렀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저 핸드크림 너무 많이 짰는데 덜어가 주면 안 돼요?”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요?”
“연애하는 거 배워보라 해서 핸드폰으로 봤어요.”
“채원우 씨 핸드폰 압수해야겠네요.”
“태블릿으로도 봤는데.”
“태블릿도요.”
아니면 키즈락이라도 걸어야지 원. 나는 한숨을 내쉬며 파트너가 아니라 보호자가 된 기분으로 채원우의 손에서 핸드크림을 덜어왔다. 새콤달콤한 냄새가 내게 옮겨졌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꼼꼼하게 바르고 있자니 식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니은 자로 꺾이는 복도 끝에 덩치가 큰 남자 몇이 있었다. 조금 전에 나에게 시비를 걸고 나도 시비를 털었던 녀석들이었다. 하필 채원우와 있을 때 마주치다니. 일이 귀찮아지면 안 되는데. 저녁 먹어야 한단 말이다.
“오늘 저녁에 또 라면 먹을래요?”
그러나 채원우는 사람 속도 모르고 종알댔다.
“오늘은 맵게 해도 참고 먹어볼게요.”
“채원우 씨.”
“죽기야 하겠어요.”
“채원우 씨, 우리 잠시 어색한 척해요.”
나는 빠르게 속삭이고 채원우보다 조금 멀리서 걸었다. 어색해 보이도록 표정도 굳혔다. 평소의 모습을 보이면, 분명히 채원우가 치대고 있고 나는 일방적으로 말려드는 쪽에 가까운데도 저것들이 저질 삼류 양아치처럼 그림 좋다며 비아냥댈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내 예감은 틀린 적이 별로 없다.
채원우의 등을 슬쩍 밀었다.
“먼저 들어가세요.”
채원우는 걱정과 달리 순순히 협조해 줬다. 나보다 세 걸음 정도 앞서 나가서는 남자들은 보이지도 않는단 듯이 식당 문에 카드를 갖다 댔다. 삑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는 찰나만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될 일이었는데.
“야, 괴물.”
그러면 될 일이었는데!
“나 불렀어?”
채원우는 나에게 할 때와 비슷한 사근사근한 말투로 되물었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갤 끄덕였다.
“금붕어 똥이랑 같이 오네?”
나를 향한 말이었다. 억울했다. 금붕어 똥은 내가 아니라 쟨데. 그러니까 내가 금붕어고 쟤가 똥인데 졸지에 내가 똥이 됐다. 하지만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 시침을 뗐다.
“응. 내 파트너거든.”
“네가 파트너를 가질 주제가 되냐?”
“왜 안 돼?”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슬금슬금 말을 놓네?”
“왜 안 되는데.”
채원우가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나는 슬쩍 내 카드를 태그했다. 두고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내가 너보다 나이가 몇 개가 더 많은데……!”
“계급장으로 싸우자고?”
채원우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분명 체구는 상대가 더 큰데 채원우의 키가 더 커서, 올려다보는 꼴이 되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럼 내가 더 유리한데.”
씨익 웃으며 조곤조곤 말하는 투가 더욱 얄미웠다. 나는 탄식을 흘렸다. 내 편일 때 든든하고 남의 편이라고 생각하면 환장할 캐릭터구나.
“……네가 어떤 괴물인지 네 똥한테 말해 줘?”
“듣는 똥 기분 나쁘네요.”
그러니까 내가 똥이 아니라 쟤가 그 역할이라니까.
하지만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채원우가 검지를 들어 남자의 어깨를 꾹, 꾹 눌렀다. 그럴 때마다 남자의 뒤에 동그란 방울이 하나씩 생겼다.
“무슨 얘기? 내 얘기? 그럼 나 있는 데서 하지.”
“…….”
채원우의 물방울이 점점 뾰족해지고 있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채원우를 불렀다.
“채원우 헌터님.”
낮은 목소리에 채원우가 손가락을 뗐다. 동시에 물방울은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철벅거리는 소리에 남자가 그제야 제 뒤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었는지 깨닫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너 또 사고 치고 싶냐?”
다만 내 예상과 다르게 남자의 반응은 제법 이성적이었다.
채원우는 물끄러미 남자를 보다가 갑자기 검지로 자기 볼을 쿡 찔렀다.
“사고 치면 어쩔 건데?”
볼에 손가락을 찌른 채 싱글싱글 웃으니 보조개 같아 보이고 귀엽고……. 진짜 얄미운데 기가 차서 화도 안 나는 풍경이었다.
나는 잠깐의 침묵 끝에 저 행동이 내가 언젠가 채원우에게 시비 거는 사람들에게 하라고 조언했던 그 포즈인 걸 깨달았다.
“채원우, 미쳤냐?”
남자가 떨떠름하다 못해 얼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채원우는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더니 눈을 끔벅였다.
“……됐다. 미친 새끼. 너랑 대화를 시도하려 했던 게 잘못이지.”
그러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듯이 채원우의 어깰 거칠게 치고 지나갔다. 채원우의 어깨는 잠깐 밀리긴 했지만 상대의 덩치에 비해서 거의 흔들림이 없었다.
남자가 멀어지고 나서야 채원우는 센서 앞에 서 있는 나 때문에 계속 열렸다 닫히길 반복하는 유리문 안으로 들어왔다.
“형 말대로 이거 잘 통하네요.”
채원우가 검지를 빙글빙글 돌리며 웃었다. 나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그래도 또 쓰진 마요…….”
“왜요?”
너의 사회적 체면 때문에? 너의 사회적 체면과 연결되어 있는 나의 체면 때문에……? 무엇을 대도 채원우는 납득하지 못할 거다.
나는 채원우를 다루는 방법을 조금씩 깨우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작성 중이며 언젠가 채원우의 후임 파트너가 될 가이드에게 넘겨주고 싶은 매뉴얼에 따르자면 이 순간 이렇게 말해야 했다.
“나만 보고 싶으니까…….”
피눈물이 다 난다. 피눈물로 쓰는 매뉴얼이 따로 없다. 채원우가 활짝 웃으며 열렬하게 고갤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훈련 때 능력 쓰지 않았어요?”
부식으로 나온 쫀드기를 우물거리며 물었다. 갑자기 이게 떠오른 이유는 채원우가 저번과 다르게 직접 물을 떠 와서였다. 제자리에서 어느 정도의 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게다가 일상에서 능력을 쓰는 데 거침없는 사람이 보통 사람의 방법대로 구는 게 이상했다.
“저 능력 안 썼어요.”
채원우가 고갤 갸웃거리며 대꾸했다.
“안 쓰고 폐를 뜯었다고요?”
“별로 안 어려운데. 다음에 형도 해볼래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괜찮다는 말을 세 번은 했을 땐 채원우에게서 느낀 기시감 같은 건 싹 잊은 뒤였다. 채원우가 물을 내밀었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받아 마셨다. 식탁 위에 팔짱을 괴고 몸을 한껏 기댄 채원우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시원하죠.”
“네.”
“제가 뽑아낸 물이 깨끗하긴 한데 맛은 없다고들 하더라고요.”
그 때 채원우가 ‘뽑아준’ 물을 마시지 않았던 터라 나는 맛에 관해서는 동의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역시 진짜는 따라갈 수 없나 봐요.”
“진짜 가짜가 중요합니까. 성분은 똑같을 테고 언제든 상수도원이 오염될 수 있는 상황에서 채원우 씨는 존재 자체로도 귀한 몸일 텐데요.”
“그래요?”
“당연하죠. 사람은 물을 사흘인가 나흘 못 마시면 죽는대요.”
“만약 이 세상에 물이 사흘에서 나흘 동안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면 저는 형을 위한 물만 뽑아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