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워낙 단호해서 케첩을 푹 눌러버리는 바람에 과도하게 짜내고 말았다. 미안하고 민망해서 쓰지 않은 숟가락으로 덜어냈다. 이번에는 채원우가 내 돈까스 위에 케첩을 짜며 자기 나름대로 이론을 펼쳤다.
“제 앞에서가 아니면 다른 데서 마실 거란 얘기잖아요. 그건 싫은데요.”
이론은 이론인데 별로 논리적이진 못하다.
“나 혼자 마실게요. 됐죠, 그럼?”
입씨름하기 귀찮아서 바로 해결책을 내놓았다. 어차피 살갑게 술잔 나눌 사람도 없거든. 친구란 놈은 제3국의 헌터 연합들이랑도 다리를 놓느라 바쁘시다.
“그냥 제 앞에서 마셔요. 제가 한 방울도 안 마시면 되잖아요.”
“미안하니까 그렇죠. 재미없는 술자리에 껴서 뭐 합니까.”
“전 형 얼굴만 봐도 재밌어요.”
“……내 얼굴이 그렇게 코미디는 아닌데.”
“이럴 때 쓰는 말 아니에요?”
“모르겠네요. 워낙 다양하게 쓰여서. 그런데 기쁘지는 않네. 왜지.”
왜긴 왜야. 채원우한테 외모로 칭찬 듣는 건 어쩐지 칭찬 같지 않아서지.
보고만 있어도 재밌는 얼굴은 채원우에게 더 맞는 수식어가 분명했다. 그러니까 얘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해도 오히려 민망하기만 하단 거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팔꿈치로 채원우를 가볍게 쳤다.
“밥이나 먹죠. 언제 또 호출 올지 모르는데.”
“네.”
“…….”
그리고 내려다본 내 돈까스들 위에는 케첩으로 네잎클로버가 그려져 있었다. 정말 쓸데없이 잘 그린 클로버였다.
“……호출 없으면 오늘 훈련받는 날인 거 알죠?”
네잎 클로버를 세잎 클로버로 만들며 시간을 확인했다. 늦게 시작한 식사이니만큼 시간이 조금 빠듯했다. 사격 훈련하러 가야 하는데. 식사에 속도를 붙였다. 빨리 먹고 빨리 소화시켜야 했다. 사격 훈련 교관은 배부른 상태로 사격장 들어가는 걸 정말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채원우 씨는 오늘 무슨 훈련 받아요?”
각자 일에 간섭하지 말자고 해놓고 이런 말을 물어보기는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더 민망한 건 괜히 가시를 세우고 사이를 악화시키는 거다.
지금까지 채원우에게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아주 조금 하며―당연하다. 지금껏 다 채원우가 선 넘었다― 태도를 바꿔 잘 지내보기로 했다. 나사 빠진 이상한 놈이라는 오해를 걷고 보면 채원우 자체가 나쁜 애는 아니었다.
“저는 검사받으러 가려구요.”
가려 한다고? 원래 일정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무슨 검사를 받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그건, 정말 오지랖이 될 것 같아서.
나는 고갤 끄덕였다.
“잘 받고 와요.”
“넹.”
“그 말투는…… 그만하고. 내가 뭐 고기반찬을 따로 더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귀여워 보이지 않습니까용?”
“잘못 배워서 웃기기만 한데요.”
“웃기면 한 번 웃어주세요.”
나는 고갤 저으며 픽픽 웃다가 수저를 내려놓고 채원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턱을 조금 치켜 든 거만한 자세로 입꼬리를 씩 올렸다.
“됐죠?”
조금 쑥스러워서 바로 입꼬릴 내렸다. 채원우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형, 너무 귀여워요.”
그렇게 말하며 소리 내서 웃는 채원우가 훨씬 더 귀여웠다. 훨씬 더 예뻤고. ‘귀여운 건 아무래도 네 쪽이죠’라고 치받고 올라오려는 말을 꾹 참으며 몸을 돌렸다. 그래도 애가 참…… 티 없이 맑아.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 * *
사격을 좋아한다. 귀를 틀어막고 숨을 고르고 과녁에 집중하는 순간 세상이 훅 줄어들어 흰 과녁과 나만 남는 순간이 좋았다.
‘넌 좀 신경이 곤두서 있어.’
사격 교관의 평이었다. 그는 과녁뿐만 아니라 사람도 잘 보는 게 분명했다. 나는 신경이 곤두서 있다. 거의 늘 그랬다.
하나 변명을 하자면, 여기 안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냐. 능력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시야각이 넓다. 에스퍼나 가이드들은 헌터만큼은 아니어도 오감도 평범한 사람보다 발달해 있다.
한 달에 한 번 유서를 갱신한다. 나갈 때마다 생명 수당을 받는다. 운이 좋으면 제법 상성이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대부분 원치 않는 상대와 스킨십을 해야 한다.
그러니 강제로 열린 세상을 조금이라도 좁히고 다른 곳에 신경을 몰두할 수 있는 사격이 좋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잘하네.”
탄창을 교환하는 내 옆에 교관이 서서 말했다.
“피죤은?”
“쏘고 왔어요.”
“얼마나 맞췄어?”
“열 개 중 아홉 개요.”
“너는 정말 수재다.”
“천재가 아니고요?”
“천재는 헌터 애들을 말하지.”
그 애들은 스무 개 중 열아홉 개를 맞춘다고 한다. 나는 아마도 열여덟 개를 맞출 거다. 나는 쯧, 하고 혀를 차고 다시 과녁을 겨누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채원우는 어때요?”
“뭐?”
“채원우 헌터는 성적이 어떠냐고요. 제 파트너.”
“음.”
갑자기 교관이 입을 닫았다. 그는 모자를 벗었다가 고쳐 썼다.
“걘 사격 훈련 안 받아.”
“왭니까?”
한 발을 맞추며 물었다.
“탄창 지급이 허용되지 않아서?”
두 번째 총알. 빗나갔다.
어쩐지 채원우에 대해서는 알수록 더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모르도록 차단되었다는 뜻이다. 내게 주어지는 정보는 알아도 무방한 정도란 거겠지. 알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도란 의미일 테고.
그러면 알면 안 되고 알면 큰일 날 정도의 정보는 대체 뭐란 말이지? 여타 헌터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는 채원우는 대체 뭐지?
세 번째 총알 역시 빗겨 나갔다. 나는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나머지는 다 맞출 겁니다.”
오차 범위는 언제나 열 발에서 한 발만 허용된다. 한 발까지는 운으로 살아남을 수도 있더라도 그 이상은 아닐 테니 실수는 더는 허락되지 않는다. 머릿속으론 알고 그걸 목표로 연습하고 있으며 연습에서는 그만큼의 양을 뽑아내는데, 실전에서도 같냐는 게 문제지.
사실 답은 알고 있다. 절대 같지 않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건 실력보다 운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르게 손이 목으로 갔다. 채원우가 준 목걸이가 온기를 품고 쇄골을 간지럽혔다.
* * *
사격 훈련은 생각보다 더 힘들고 생각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움직이는 표적을 맞추는 훈련에 VR까지 합한 3종을 모두 끝내고 나면 총을 대고 있던 부분은 시큰대고 지탱하고 있던 팔과 손가락은 얼얼했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니 벌써 오후가 다 지나고 있었다. 점심은 훈련소에서 간단하게 먹었던 만큼 허기가 강렬하게 밀려왔다.
평소 같으면 혼자 식당으로 갔을 텐데 오늘은 왠지 그러지 않았다. 아침을 채원우와 함께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 어느 때보다 채원우의 목걸이가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와서인가, 왠지 같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얘는 왜 전화를 안 받아.”
문제는 채원우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다. 파트너인데도 녀석의 일정을 아무것도 몰랐다. 설마하니 온종일 4층에 있었을 건 아니고.
나는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턱을 괴고 멍하니 있다가 한 무리의 헌터가 오는 걸 발견했다.
“아, 실례합니다.”
대외적으로 친절한 미소를 가득 띤 채 말을 걸었다. 나를 수상한 눈빛으로 보던 그들은 내가 손목을 보여주며 ‘가이드입니다’ 하고 소개하니 그제야 경계를 누그러뜨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매칭 훈련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파트너가 연락이 되질 않아서요. 오늘따라 마가 끼었는지 파트너 스케줄표도 잃어버리고 그래서……. 일정이 다 같지 않은 건 알지만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신가 해서 말입니다.”
본 적이 있냐는 질문 빼고는 모두 거짓말이었다. 나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침은 바르고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
그들은 서로를 보더니 어깰 으쓱하곤 되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채원우입니다.”
채원우의 이름 석 자를 들은 무리의 표정이 대번에 썩어들어 갔다.
이름도 거짓말을 했어야 했나. 근데 그럼 어떻게 찾아.
“채원우 파트너예요?”
“……네.”
“허어, 그 새끼가 파트너가 다 생겼네.”
비아냥대는 티가 역력했다. 나는 물었다.
“그 새끼라고요? 아무래도 절친한 사이이신 모양이네요. 저는 아직 그 새끼라고 부를 만큼 친하진 않은 만큼 행방을 도통 모르겠어서요. 잘됐네요! 채 헌터 혹시 어디 있을까요?”
“뭐? 내가 친해 보여?”
“그 새끼라고 하셨잖아요. 보통 그런 호칭은 엄청 친한 사이끼리나 가능한 거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어도 가능하지. 하지만 나는 아주 친근한 말투로 이 새끼, 저 새끼의 용례를 들었다. 점점 상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나는 저 녀석의 어깨에 팔을 감고 고갤 기울이며 웃었다.
“우리도 친해질까요? 이 새끼야……라고 부를 수 있는 친구 사귀는 게 제 꿈이었거든요.”
당연하지만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호구겠지. 하지만 그래도 참을성이 없는 놈은 아닌지 거친 숨을 쉬면서도 참는 게 보였다. 대단한데? 나도 사고를 칠 생각이 있던 건 아닌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지금까지 말씀 안 해주시는 걸 보면 모르시나 봐요. 제가 괜한 분 붙잡고 시간 끌었네요!”
“너…… 너 이 새끼……. 채원우랑 같이 두고 보자.”
“와, 저도 지금 절친 된 겁니까? 그래요. 다음에 셋이 같이 노래방이라도 가요. 일단 채 헌터를 제가 찾고!”
나는 보란 듯이 무리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뒤를 돌아보고 손까지 모은 채 고갤 꾸벅였다. 남의 가이드를 때리는 건 안 되는 걸 알면서, 남의 파트너를 그 파트너 앞에서 대놓고 이 새끼 저 새끼 욕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란 걸 몰랐나 보지? 몸을 돌리며 헛웃음을 뱉었다.
“채원우도 하여간 여기저기서 적 만들기 바쁘네.”
던전 안에서만으로도 충분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