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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13화 (1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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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저희가 특별히 더 예의 주시하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이상 증상을 발견 시 언제든 연락 주시고요.”

“그럼. 물론이지. 근데 아직도 반짝거리는 거로 탐지하면 안 되지. 얼른 좋은 탐지 기구가 나와야 할 텐데 말여.”

율무차를 나눠주시던 인심 좋은 동네 주민 같은 인상의 사장님 내외는 곧 손바닥을 캉캉 치며 작업실로 돌아섰다. 오랜 작업으로 손마디가 두툼하고 손톱이 짧으며 거칠고 두툼한 손이 맞부딪힐 때마다 오색 불꽃이 이리저리 튀었다가 사그라들었다.

그들의 주먹은 망치고 손바닥은 풀무며 손톱은 줄톱이 된 것이다. 그 고된 각성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새파랗게 어렸던 나도 더럽게 끔찍했는데.

갑자기 채원우에게도 마음이 누그러졌다.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끼리는 어쨌든 동질감이 생기게 마련인 거다. 아무리 채원우가 기억을 못 한다 하더라도 얘 역시 힘들었겠지. 나는 채원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유서 써야 하는데, 같이 쓸래요?”

화해의 제스처이자 친분 도모를 위한 첫 발자국으로 제안하기에는 제법 울적한 소리였다. 하지만 채원우의 표정은 활짝 피었다. 우리가 쓰는 것이 유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보내는 비밀 편지라도 되는 것처럼.

* * *

유서를 쓰는 행위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운명을 깨닫게 되어 숙연해지기 때문이 아니다. 유서라는 건 즉, 남겨진 편지일 텐데 나는 누구에게 내 마지막 말을 남겨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다. 친척도 없고 친구라곤 승규밖에 없으며 에이전시 사람들은 말 그대로 회사 동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쓸 때마다 영양가 없는 소리나 끄적이고 말기 일쑤였다. 저번에는 이렇게 썼다.

<승규야, 나다. 네가 이걸 본다는 건 내가 결국 죽었다는 거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죽었는데 네가 살아 있다는 게 배알이 좀 꼴리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둘 중 한 명은 살아 있어야 하지 않겠냐. 유산을 기대하고 펼쳤다면 미안하다. 내 유산으로는 안전한 그린존의 가장 좋은 납골당 로얄층을 사줘. 죽어서라도 로얄층 한번 살아보게. 그럼 잘 살아라. 넌 그럴 거 같지만.>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예정이다.

나는 승규야, 나다, 라고 쓰기도 귀찮아서 To. 승규, 라고 쓰고 앞을 보았다. 룸메이트가 되고 처음으로 같이 거실 겸 다이닝룸에 앉아서 하는 일이 유서 쓰기라니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채원우는 이미 펜을 내려놓고 유서도 반듯하게 접은 상태였다.

“다 썼어요?”

“네.”

채원우는 손끝으로 펜을 굴리며 끄덕였다. 고작 한 번 접은 데다가 종이가 얇아서 내용이 비쳐 보였다. 글자까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몇 줄 썼는지는 알 수 있었다. 고작 두 줄이었다. 그것조차 꽉 채운 한 줄이 아니었다.

“……정말 다 썼어요?”

“네. 보실래요?”

“아뇨. 안 볼래요.”

나는 서둘러 고갤 저었다. 어쨌든 유서였다. 채원우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란 뜻이었다. 그 무거운 걸 내가 받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단기간 맺어진 인연이고 계약이 종료되는 순간 그 인연은 끝날 테니까. 나는 채원우와 깊은 관계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지난 유서와 같은 내용을 흘려 쓰고 마지막에 추신을 덧붙였다. 이것만큼은 꾹꾹 눌러 썼다.

<이 편지는 너만 봐라. 꼭.>

남승규에게는 조금은 미안하다. 혼자  살아남은 탓에 이런 부담스러운 편지 따위를 받게 될 테니까. 나는 눈을 감고 차분하게 그 녀석이 떼어가는 수수료를 떠올렸다. 미안함은 곧 사라졌다. 음, 걔는 이런 편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사기꾼 새끼.

유서를 다 쓰고 나니 출출했다.

“라면 먹을래요?”

혼자 먹는 건 한국인으로서 상당히 매너 없는 일에 속한다. 나는 채원우에게 물어봤고 채원우는 ‘먹을래요’ 하고 대답했다. 식당에 내려가기는 귀찮고 오늘따라 뜨끈하고 매콤하고 자극적인 맛이 필요했다.

“기다려 봐요.”

화냈던 게 미안하기도 하고―목걸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좋게 지내면 좋지, 하는 마음으로 내가 베풀기로 했다.

그리고 찬장을 열어본 순간 깨달았다. 누가 사 오지 않는 이상 라면이 있을 리가 없고, 나는 사 온 기억이 없으며, 채원우가 사 올 놈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텅 빈 찬장과 냉장고. 나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냥 식당에서 먹어야겠다.

몸을 돌리자마자 채원우를 발견했다. 당연했다. 얘가 바로 내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거든.

“…….”

“라면 먹고 싶어요.”

“없어서 식당 가자고 하려 했는데…….”

“근데 라면 먹어보고 싶은데…….”

“라면 맛이 다 똑같죠, 뭐. 식당 가요.”

“라면…….”

어디서 배운 망측하고 끔찍하고 해괴한 짓거린지 모르겠지만, 채원우는 검지를 제 입술에 붙이고 울망울망한 표정을 했다. 어이없게도 이미지상으로는 그게 잘 어울려 눈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머릿속으로는 질색팔색했다. 나는 채원우를 밀어냈다.

“인터넷에 있는 거 다 믿고 따라 하는 거 아닙니다.”

강아지한테 훈육하는 것도 아니고 별 소릴 다 해야 한다. 근데 처음보단 짜증 나지 않고 좀 웃겼다. 적응이 되는 모양이다.

“보기 안 좋았어요?”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좋아할지도 모르겠네요.”

“형은 별로란 뜻이니까 이제 안 할게요.”

가만히 있다가 나는 픽 웃으며 덧붙였다.

“근데 그거요, 채원우 씨한테 시비 거는 사람들한테 하면 잘 먹힐 거 같아요.”

싸움이 더 커질 것 같기도 한데, 채원우가 설마 지겠어? 지면 어쩔 수 없고. 내 자존심도 좀 상하겠지만……. 아, 그건 싫은데.

구시렁대면서 바람막이를 챙겨 입었다. 그러곤 채원우에게 고갯짓했다.

“내가 요리하는 거니까 채원우 씨가 돈 낼 거죠?”

“돈이요?”

“라면 먹자면서요. 마트 가서 사 와야죠, 그럼.”

채원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좀 전의 그 말도 안 되는 가증스러운 짓보다 이게 훨씬 귀엽네. 나도 모르게 생각하곤 얼핏 웃다가 바로 얼굴을 굳혔다. 낫긴 뭐가 나.

채원우가 준 목걸이에 무슨 부가 효과라도 있는 게 분명하다. 채원우가 귀엽게 보이니 말이다.

* * *

당연하지만 헌터청이 있는 곳은 손에 꼽게 안정성이 높은 지역이다. 게다가 내가 알 수 없고 알아도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 기술과 헌터들의 협조로 던전이 터지지도 않고, 근처에서 몬스터를 뱉어내는 형질의 던전이 터지더라도 이곳까지 그것들이 오지 못하는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민간에도 도입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많은 재료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재료는 던전 안에서 나오고. 설령 보급형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그린존에 먼저 보급될 거다. 그러니 그린존에 대한 갈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는 거다.

나는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카트부터 밀었다. 고작 라면 하나를 위해 카트를 밀 필요는, 그래,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보다 보면 더 담게 되는 게 마트 아니야? 심지어 지금은 배가 엄청 고팠다.

아예 먹을 것 좀 사자고, 돈은 나눠 내자고 하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채원우가 과자를 산처럼 쌓아둔 매대로 가서는 묶음 과자들을 카트 안에 쏟아 넣었다. 세상에. 이게 몇 개야.

“…….”

내가 할 말을 잃고 빤히 쳐다보니 채원우가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 하고는 이런다.

“형이 싫어하는 과자 있어요? 빼도 되는데.”

“아니. 이거 다 먹게요?”

“네. 온 김에 우리 먹을 것 좀 사가요.”

“그건 좋은 생각인데…….”

“저 어차피 카드 제대로 써본 적이 없어서 괜찮아요. 돈 걱정하지 말고 사세요.”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를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괜찮아요. 나눠 삽시다.”

“저 돈 많이 벌어요.”

“아니, 채 헌터만 그러겠어요. 그래도…….”

“아뇨. 진짜, 진짜 많이 벌어요.”

자랑인지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곤 ‘그럼 채 헌터 신세 좀 지죠’ 했다. 안 그래도 헌터청 주변의 마트는 더 비싸다. 헌터청 직원이면 혜택이 있지만 아니면 아무것도 없거든.

“청양고추랑 고춧가루도 좀 사가요. 채 헌터 매운 거 잘 먹어요?”

“단것은 좋아해요.”

“확실히 그래 보이기는 하는데. 숙소에 냄비가 있던가요.”

“아마요.”

“채 헌터 뜨거운 물은 못 뽑아내죠?”

나는 정수기처럼 정수와 온수를 번갈아 뽑아내는 채원우를 상상하며 킥킥 웃었다. 채원우는 갑자기 손끝을 세웠다. 나는 대번에 정색하고 그의 손을 잡아챘다.

“설마 여기서 능력 쓰려 한 건 아니겠죠.”

“뜨거운 물을 뽑으려 했던 적은 없어서 시도해 보려 한 건데요.”

“채원우 씨, 대체 왜 이렇게 막 삽니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채원우의 손을 내렸다.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고 손을 떼려는데 채원우가 갑자기 손목을 돌려선 내 손을 움켜쥐었다. 내 손을 꽉 쥐고는 놓아주질 않는다. 당황해서 돌아봤다.

“저 어지러워요.”

“……능력도 안 썼는데요.”

“그래도 어지럽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요.”

“그런 것치곤 시계가 조용하네요.”

“제가 그렇게 느껴요.”

“개수작 부리는 거 알죠, 채 헌터.”

“이름 불러주는 거 좋았는데.”

나는 문득 각인 이론을 떠올렸다. 어디서 주워들은 거다. 억지로 수치를 안정시키는 가이딩 약은 대체품에 불과하다. 짭은 진짜를 이길 수 없다. 약은 부작용이 워낙 많아 무엇이 부작용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매칭되는 가이드를 겨우 찾았으니 내가 얼마나 좋겠어.

알아, 아는데 이건 우리 둘 모두에게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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