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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12화 (1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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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작업 중이셨나 봐요.”

“지금은 무슨.”

“예?”

“지금이라고 뭐 말할 필요도 없이 항상 작업 중이구만. 와서 한번 볼려?”

“아, 아니요. 저희가 다가갔다는 역효과가 나거나 과잉 반응해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요. 제련 후까지는 다가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 아쉽네. 과정이 끝내주거든. 팔찌 형태로 만드는 중인데 모양이 아주 예뻐. 종교가 뭐야?”

“저요?”

나는 소매 덕에 온갖 부적 같은 팔찌가 안 보이는 데 안도하며 얼버무렸다.

“뭐……. 저 도와주는 신 믿습니다. 그때그때.”

“현명하네. 여기까지 온 인연으로 십자가든 부처든 조각해서 줄까 했지. 예뻐.”

솔직히, 정말 탐났다. 회복형은 진짜로 귀하니까. 내가 써도 좋고 안 쓰고 팔아도 좋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함께 출동한 헌터청 사람과 일반 군인 등을 포함해서 내가 이 호의의 선물을 받자마자 감사팀에 찌를 눈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산뜻하게 웃었다.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헌터청은 정말로 양아치가 따로 없으니까……. 사실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괜찮게 굴러가는 곳인데 내 입장에선 아니었다.

일찍이 가능성이 있는 각성자들을 모두 모아 헌터청 소속 아래에 둘 수 있게 법을 통과시켰다. 일정 이상의 손해나 상해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이능력자들은 일단 모두 등록해야 한다.

그 후 소수의 경호 자격을 부여받은 헌터들은 고위 정치인을 비롯한 이들의 경호 인력으로 일하고, 미등록자들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숨어 살거나 사실상 마을 자경단이라 할 수 있는 작은 길드로 들어가 중앙 헌터청이 출동하지 않을 정도의 작은 던전을 관리한다.

이들의 비율을 10퍼센트 이하로 추정하면 사실상 90퍼센트 이상이라는 압도적인 수가 헌터청 관리하에 있는 거다.

덕분에 사람들이 우려한 헌터 간의 싸움이나 그로 인한 민간인 피해도 없었고 지나친 이익 추구로 인한 경제……. 분명 외웠었는데 더 기억나진 않네. 아무튼 그래도 이것조차 안 된다니 엄해도 너무 엄해.

“내 거 하나 줄게요.”

그 때 시무룩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네?”

나는 하마터면 반말을 할 뻔했다. 정수리가 보이도록 고갤 푹 숙인 채원우가 제 목걸이를 풀더니 내 손을 당겨 손바닥에 올리려 했다. 그 순간 보지 않았는데도 주변의 신경이 모두 이곳에 쏠리는 게 느껴졌다. 낯 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한 시선이었다.

야야, 이거 지금…… 모양새가 이상하잖아……. 심지어 회복형에 속하는 것들은 제련 전이든 후든 프러포즈 선물로도 많이 쓰인단 말이야…….

“아니, 괜찮은데요.”

그러나 힘이 어찌나 센지 녀석의 손에서 도무지 손목을 빼낼 수 없었다. 게다가 주먹을 꽉 쥐어서 손바닥에 올라오는 일은 없게 하려 하자, 손목을 꾹 눌러 억지로 펼치게 했다. 힘이 더럽게 셌다.

“하하, 진짜 괜찮다니까…….”

이를 꽉 깨물고 중얼거렸다. 내 손은 이미 희게 질려 있었다. 장갑을 끼고 있는데도 그럴 모습이 눈에 훤했다.

“왐마야……. 학생이 총각 엄청 좋아하는갑다.”

아니요, 씨발, 그게 아니라요. 그게 아닌데.

나는 울상이 되기 직전이었다. 채원우는 내 손바닥 위에 목걸이를 올리고는 손목을 놓아줬다. 저릿저릿했다. 다른 손으로 주먹까지 쥐게 하고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채원우가 보였다.

“형, 새벽에 미안했어요.”

“…….”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제 마음대로 굴고……. 그 후로 진정이 되어서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잘못한 게 맞았어요. 상대방 동의도 없이 그러면 안 됐는데.”

“왐마야…….”

뒤에서 아주머니가 박수를 톡톡톡, 쳤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 참을 수가 없었어요…….”

저쪽에서 다들 시선을 교환하고 몸을 돌리는 게 보였다. 못 들은 척해 주자, 하는 입모양도 봤다. 야, 봤다고. 그거 아니라고.

“그만해요.”

“다음부터는 허락받고…….”

“허락이고 나발이고 이제 그만하라니까요. 알았으니까.”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혹시 헌터가 네가 아니라 난가? 그럼 얘가 가이드라는 소리인데, 가이드가 오히려 헌터를 아프게 하면 자격 박탈 아닌가요?

“그만하고…… 어제 일은 없던 거로 합시다…….”

“제 사과 받아주신 거예요?”

“그게 사과…….”

“어제 인터넷으로 배웠는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하고 사과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말하라고요.”

“다음에는 그, 화법이라는 것도 좀 봐봐요.”

“그리고 또 뭐 볼까요?”

“그리고 그냥 나한테 말 걸지 말구…….”

“네?”

진짜로 말을 걸지 말라고 하면 이번에는 아예 대자보로 써서 로비에 붙일 것만 같아서―그것도 저렇게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설명으로― 나는 웅얼거리곤 고갤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건 안 받을게요.”

“왜요?”

“너무 귀한 겁니다. 이거 마석 사이즈 보세요. 이 정도면 시가로…….”

“100억.”

옆에서 사장님이 바로 받아쳤다.

“예. 100억이래요.”

“뻥이야.”

그, 그렇지? 뻥이겠지. 어떻게 이 손톱만 한 게…….

“그냥 말해 본 거야. 그것보다 귀할 거여. 구하기도 힘들고 나와봤자 팔지도 않아. 누가 팔아. 죽기 직전인 놈도 겨우 명줄 붙여주는 건디.”

“그럼 목숨 구해주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명줄 붙여주는 정도라니께. 근데 그게 어디야. 근데 너 이거 어디서 구했어. 어디서 빼돌렸어, 이놈아. 이 정도면 가루 내어서 회복제로 쓰는 게 규정인데.”

“제가 뽑았으니까 제 거죠.”

자기들끼리 만담처럼 떠드는 채원우와 장인의 대화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받고 싶기는 한데…… 부담스럽고 근데 또 받고 싶고……. 그런데 참아야지. 얘가 준 건 쪼가리라도 먹으면 체할 것 같다.

“그냥 가지세요. 사과라고 생각하고.”

“그래, 받아, 총각. 애인이 준 거잖어.”

“아니, 저 친구는 애인이 아니구요.”

그러나 골치가 아파서 설명하기도 싫어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목에 걸었다.

“일단 받을게요. 다시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 그냥 맡겨놨다고 생각할 테니까.”

채원우의 표정이 환해졌다. 정말로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이런 애하고 아옹다옹하는 건 기운이 빠지는 일이었다. 한쪽은 자꾸만 다가오고 한쪽은 자꾸만 멀어지면 결국 서로 맞잡은 줄의 탄성은 팽팽해지지도 느슨해지지도 않는 어정쩡한 상태로 유지되기만 한단 말이다.

“30분만 더 추이를 지켜본 뒤 빠지겠습니다!”

저 앞쪽에서 팀장이 외쳤다.

인솔팀장은 일반 군 장교였다. 그들의 헌터를 대하는 반응은 대충 두 가지로 나뉜다. 나이가 조금 지긋한 이들은 채원우를 비롯한 헌터들을 잠재적 소탕 대상으로, 비교적 젊은 층은 복잡미묘한 감정이나 일단은 같은 일을 하는 존재로.

팀원이라고 생각할까? 그렇진 않을 거다. 그 전에 헌터를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조건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족 보행을 하며 사회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사고하며 소통하는 존재를 전제라고 치면 헌터들은 분명 그 범주 안에 들어가는데, 언제든지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는?

사실, 내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답이 나올 문제도 아니고.

일단 나는 내게 대뜸 값을 매길 수 없는 목걸이를 준 채원우를 바라봤다. 이족 보행을 하며 사회 공동체 속에 있고 도통 소통이 되질 않는 미스터리한 존재를.

“형.”

“네.”

“형 눈 색이 예뻐요. 알고 있었어요? 갈색인 줄 알았는데 노을색이네요.”

“알아요. 각성 부작용이에요.”

각성 부작용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 흔적을 누구나 하나씩은 지니고 있다. 대부분이 눈 색이 바뀐다. 머리카락 색이 바뀌는 사람도 있다. 그 변화는 각성 폭에 따라 달랐다.

각성 폭이 클수록 색이 많이 빠지거나 진해진다고들 한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채원우는 과연 어디가 얼마나 변했을까.

“렌즈 낀 거 아니죠?”

“네. 아니에요. 이거 제 눈이에요. 만져 볼래요?”

대뜸 자기 눈알을 만져 보라며 얼굴을 내민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바짝 다가온 채원우의 눈은 평범한 흑갈색이었다. 아마도 한국인에게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색이 아닐까.

“각성할 때 많이 아팠어요?”

왜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지금껏 한 번도 하지 않은 질문을 하고 말았다. 채원우는 고갤 갸웃하며 그때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러곤 곧 대답했다.

“잘 기억이 안 나요. 형은요?”

“나는 기억나요.”

몸이 바뀌는 거다. 기억이 안 나는 이들이 사실 태반이다. 기절했다 깨어나거나 블랙아웃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생생하게 기억났다. 운 나쁘게도.

“더럽게 아팠어요.”

그리고 날은 더럽게 추웠고 대한민국임에도 불구하고 백야가 이어졌으며 땅은 뒤집히고 사람들은 옆에서 쓰러져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운 좋게도 의식이 없었고―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었고― 나는 의식이 있었다. 의식이 있는 채로 움직일 수가 없었을 뿐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파요?”

가끔은.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역시 그 목걸이 덕일까? 나는 고갤 저었다.

“다 지난 일 아닙니까. 그런 걸 회상하며 살기에 너무 공사가 다망하여.”

“저도 그랬는데 처음으로 꿈을 꿨어요. 그것도 과거 꿈을.”

“그래요?”

사실 별로 안 궁금했다. 왠지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할 것 같았거든. 그러나 채원우의 꿈 내용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형이랑 악수한 걸 꿈으로 꿨어요. 저는 그때 손을 맞잡은 것만으로도 알았어요. 형이 내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걸.”

“아, 그거요. 원래 가벼운 접촉으로 가이딩하니까요.”

나는 빠르게 덧붙였다. 꿈 필터를 껴버리는 바람에 쟤가 그날을 일종의 운명의 순간처럼 생각하면 안 되잖아…….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럴 줄 알았다.

나는 몽롱하게 중얼거리는 채원우를 두고 성큼성큼 걸었다.

헬기가 아니라 더럽게 불편하고 승차감은 쓰레기를 겨우 면하는 군용 험비에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이고 있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을지로 일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무도 투덜거리지 않았다. 던전 브레이크는 지하수와 같아서 어디서 어떻게 흐르며 어떻게 터질지 예상하기 힘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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