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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8화 (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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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파트너가 이렇게 기죽은 낯짝으로 몬스터 때려잡으러 가는 꼴 못 본다. 그게 설령 친하지도 않고 아는 것이라곤 이름과 얼굴밖에 없는 파트너라 할지라도 말이다.

“근데 그쪽이 사람이 아니면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괴물끼리 잘 지내봅시다.”

“방 안 바꾸고요?”

“안 바꾸고요. 솔직히 채 헌터랑 잘할 자신은 없는데, 해보죠, 뭐.”

채원우의 눈이 미묘하게 밝아졌다. 분명 안하무인에 혀에는 칼 물었고 성격도 더럽고 양아치라는 소문이 가득할 것 같은 외모인데 하는 행동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동물…… 쪽에 가깝지 않나 싶다. 나는 어린애를 어르고 달래듯 채원우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그러니까 죽상하지 맙시다, 채 헌터. 그쪽이 기가 죽으면 나가서는 내가 죽어요. 모를 테니 알려주는 거예요.”

손이 미묘하게 떨렸다. 손바닥에 땀이 솟기 시작했다. 일주일간 합을 맞추는 훈련도 없이 내던져졌다. 좆같다.

이 새끼는 대체 뭘까. 헌터청에선 얘를 귀하게 쓰고 싶은 건지 막 굴리고 싶은 건지 감도 안 온다. 나한테는 정보 하나 주지 않고 그냥 액세서리처럼 딸려 나가란다.

그러니까 진짜 괴물들 속에서, 내 목숨은 이 괴물한테 달린 거다.

“나 안 죽게 할 수 있죠?”

채원우가 고갤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채 헌터도 나 믿고 마음껏 싸워봐요.”

바깥에 헬기가 도착했다. 군용 헬기의 소리는 어마어마하다. 최소 30㎜로 만든 유리로 감싸인 헌터청이 아니었다면 아수라장이었을 거다.

몸을 돌리고 나가려는데 채원우가 내 손목을 잡고 뭔가 쥐여줬다.

“잠수 몇 초 해요?”

고글과 방수 반다나였다. 채원우의 것과 매우 흡사하고 미묘하게 다른.

“……참을 만큼 참아볼게요.”

그 의미심장한 물음에 나는 폐활량이 1급 나왔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 * *

다잡은 마음은 쫄딱 젖어서 별 볼 일 없게 되었다.

“씨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래 봤자 수영장에 여덟 번은 빠졌던 꼴이고 앞으로 열두 번은 더 빠질 게 분명해서 헛수고였다. 고글은 정말로 필수품이었다. 반다나로 코 아래부터 가리긴 했으나 이게 필요한 게 아니라 산소통이 필요했다.

“장난해?”

욕을 씹어대며 대거를 고쳐 잡았다. 총이 아니라 이걸 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총이 있어도 화약이 젖어서 쓰지 못할 테니까. 그러다 보니 졸지에 원시적인 방법으로 싸우게 되었다.

한쪽 면이 톱니 모양으로 된, 미 해군이 많이 쓴다는 칼도 한쪽 손에 들었다. 양손으로 마구 휘두르는 꼴처럼 보이겠지만 아니다. 베고 찌르는 데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힘이 든다.

“악! 이 징글징글한 새끼들!”

특히 지금처럼 수로 승부하는 잡몬스터들이 몰려올 때는 더더욱 그렇다.

던전이 발발하면 그곳은 제로존이 된다. 싱크홀처럼 푹 빠지는 경우도 있고 차단막이 드리운 것처럼 침입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뭐, 더 세분화할 수 있지만 일단 지금은 후자였다. 전자막처럼 드리워진 외부 배리어가 몇 겹이냐에 따라서 던전의 급이 나뉘었다. 지금은 다행히도 B급으로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긴 한데…….

“채원우 헌터!”

던전 존은 하필 도로 위에서 발생했다. 사상자는 스물하나. 운전자가 탈출하지 못했든 탈출했든 다시는 쓰지 못할 자동차는 이미 도료가 벗겨져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차체는 아직 멀쩡하여 그 위로 기어 올라갔다. 탑처럼 세 대가 겹겹이 쌓아 올려져 있어 시간을 벌기에 좋았다.

나는 맨 꼭대기 차에 올라서 장갑을 바꿔 끼었다. 새 장갑을 끼자마자 뒤에서 물이 날아왔다. 엄청난 물이었다. 골이 띵하고 울리고 장갑은 흠뻑 젖었다.

“채 헌터!”

이 개새끼야! 하는 뒷말을 겨우 숨겼다. 능력 쓰는 방식이 어린애들이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는 것처럼 거칠고 종잡을 수 없다. 그래도 2인 2조인 스쿼드로 다니는 게 상식인데 어쩐지, 우리 둘만 따로 구역을 나눠주더라.

채원우는 내 소리에 뒤를 돌아보더니 옆에 있던 차 문을 열었다. 던전 존 안에 들어온 헌터들은 급속도로 근력이 발달한다. 존과 상성이 맞는 거다. 잠겨 있는 문을 뜯어내고는 그걸 밑에 깔아 서핑 보드처럼 올라탔다. 자세가 정말 서퍼 자세다.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건 조상님들이 이미 속담으로 남길 정도의 진리다. 채원우는 기울인 쪽 손으로 딱, 딱 소리를 내더니 밑에서 피와 살점이 섞인 파도를 일으켰다. 역겨웠다. 입맛이 똑 떨어졌다.

“불렀어요?”

“……좀 평범하게 오면 안 됩니까?”

“여기서 평범하게요?”

순식간에 내가 있는 자동차 탑까지 온 채원우가 재밌는 소리를 다 한단 표정으로 웃었다. 속이 잔뜩 꼬이는 기분이다. 애초에 싸움이 되는 애랑 말을 했어야지.

“어때요? 저 잘 타죠.”

채원우가 내 뒤로 달려드는 비행형 몬스터에게 아주 빠른 속도로 물방울을 쏘며 말했다. 나는 졸지에 피를 뒤집어쓰며 채원우를 노려봤다.

“잘 타고 못 싸우네요.”

“진짜요? 제가 매번 데스 수 제일 높은데.”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내가 채원우의 뒤로 들러붙으려는 곤충형 몬스터를 찌르며 말했다. 찌른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고 단번에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끄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갑주가 깨졌다. 산이 있는 형질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녹색 피가 손에 묻기 전에 발로 차서 밀어냈다. 칼 하나 버린 셈 치지 뭐.

“아주 더럽게 싸워요. 근본도 없고요. 이렇게 싸우다가 비명횡사해도 모릅니다.”

그 때 뒤에서 새파란 불빛이 타올랐다. 에스퍼팀이 던전의 핵심인 에너지 탑에 이른 것이다. 저기를 해주해서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건 에스퍼들밖에 없다. 에스퍼들은 실제 전투에서 거의, 정말로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도 금이야 옥이야 모시고 다니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곧바로 이어폰을 통해 알람이 떴다.

“15분 남았대요.”

카운트다운이었다.

“15분 뒤에 다시 얘기하면 안 돼요?”

“그 후에도 살아 있으면요.”

“에이. 농담이죠?”

채원우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내 어깨를 잡아당겨 제 품에 넣었다. 고작 한 시간 합을 맞춰놓고 나는 이 답 없는 녀석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바로 눈치챘다. 한숨을 내쉬고 코를 틀어막았다.

곧 아래에서부터 무수한 물방울이 떠올랐다가 펑 터졌다. 순식간에 공기가 습해졌다. 아주 작은 물방울로 나뉜 것들이 일제히 총알처럼 표적을 겨누었다.

“저요, 이거 하면 진짜 아픈데.”

“그래서요.”

“꼬옥 안아달라고요.”

지랄을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내가 고용된 거 아닌가. 나는 장갑을 벗고 반다나도 내렸다. 채원우의 몸을 껴안고 고갤 내려 채원우의 볼에 내 볼을 붙였다.

“마음껏 지랄하고 날뛰세요.”

“신난다.”

넌 신나냐? 난 힘들다.

숨을 꾹 참았다. 카운트다운이 발동되면 전투의 형국이 바뀐다.

흥분 상태에 돌입한 몬스터들의 눈이 새빨갰다. 지금부터는 그냥 개싸움이다. 순수하게 생존을 위한 난투전, 에스퍼들이 제 일을 하는 동안 지키기 위한 버티기.

바로 그 개싸움 속에서 채원우의 능력은 비로소 빛을 발했다. 지금까지도 여러 의미로 대단하긴 했는데, 이 순간부터는 눈이 부셨다. 말 그대로 눈이 부셨다.

“예쁘죠.”

몬스터의 빛나는 눈과 자동으로 켜진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따라 물방울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빛났다. 새빨갛다는 점까지 딱 맞아 어울렸다.

나는 멍하니 그걸 보다가 채원우를 강하게 붙들어 안았다. 예고도 없이 채원우의 무릎이 풀린 거다. 내 정강이를 치며 흘러내리는 몸을 잡아 팔을 내 어깨에 걸게 했다. 열이 오르는 게 분명했다. 볼이 새빨갛고 눈에 실핏줄도 곤두서 있었다.

“솔직히 말해요. 이렇게까지 능력 쓸 필요 없었죠.”

“당연하죠. 다 잡몹들인데.”

“근데 왜 이랬어요?”

“첫 팀플레이니까 멋있어 보이려고?”

“다음부터는 헛수고하지 마요.”

“왜요?”

또, 또. 이 녀석의 탐구열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나는 채원우의 벨트를 풀고 상의 안에 손을 넣어 허리를 감으며 대꾸했다.

“연하가 아무리 그래 봐야 귀엽기만 하지, 멋있겠습니까.”

“왜 그런 말을 해요? 연하가 멋있을 수도 있죠.”

“내가 좀 보수적인 모양이죠.”

나는 차의 보닛을 타고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채원우처럼 차 문을 통째로 뜯을 수는 없지만 창문 정도는 깰 수 있는 터라, 쓸모없던 총으로 창문을 깨고 문을 열었다.

흠뻑 젖은 시트에 채원우를 앉혔다. 저 위에서는 별로 집중을 하지 못했다. 손바닥으로 후끈후끈한 볼을 감쌌다. 낯간지러워서 잘 하지 않기도 하고, 사이가 극악으로 치달아 보기만 해도 으르렁댔던 전 파트너에게 했다가 대뜸 처맞은 자세를 취했다. 바로 내 품으로 껴안는 거다.

이것도 시간이 걸리면 이마와 이마를 맞대야 한다. 그건 너무 민망해서 선호하지 않으니 여기서 끝나면 좋겠다. 아무래도 우리가 만난 지 며칠 안 됐잖아?

“집중해요. 2차 웨이브 올 때가 되어가니까.”

15분이면 대충 5분 간격으로 몬스터가 동시에 대량으로 소환되어 덮치니 3차까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 물불 안 가리는 또라이가 위에서 그렇게 까불지 말았어야 했다는 거다.

“열이…… 형 손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심장이 쿵, 쿵 무겁게 뛰었다. 두 명분의 심장을 가슴에 안고 있는 기분이다. 무겁고 버겁고 부담스럽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절로 입이 말라서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갤 들었다. 목으로 땀이 조르륵 흘렀다. 더럽게 습하다.

“아.”

갑자기 허벅지가 더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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