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그렇다. 지금까지 문이 열리면서 자기 침상까지 오는 짧은 여정 동안 이렇게 떠든 거다. 뒤에 계신 간호사분께 민망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미 해탈하셨는지 혹은 귀를 틀어막기라도 하셨는지 어렴풋이 웃고 마셨다.
“읏차.”
침상 위로 자릴 잡은 형민이 애써 쾌활하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옆에 버튼 누르시면 돼요. 아시죠?”
“네!”
간호사께서 나가시는 동안 아주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끝났지만.
“그분은 경련하시고 장난 아니었어요. 저 때문에 아픈 거죠? 저 자격 없는 거죠? 그만둬야 하는 거죠……?”
양옆으로 물음표 살인마가 둘이나 있으니까 아주 미치겠다. 나는 인내한 끝에 대꾸했다.
“종종 있는 일이야. 그리고 너보다 빨리 퇴원하실걸.”
“파트너 이름이 뭔데요?”
불쑥 채원우가 끼어들었다. 형민은 그제야 채원우와 눈을 맞췄다. 일부러 계속 시선을 피하고 있던 걸 알고 있다. 형민은 차갑게 잘생긴, 그러나 좋은 첫인상을 주긴 힘든 채원우의 얼굴을 보곤 더듬더듬 이름 석 자를 뱉었다.
“백정석이요…….”
“백정석…….”
나는 양반석, 평민석, 백정석까지 생각했다가 말았다.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뱉는다는 점과 안 뱉는다는 점에서 승규와 내가 갈리는 법이지. 그리고 그 차이가 싸구려 짭 선글라스조차 잘 어울리냐 아니냐를 결정 짓는다.
“아, 그 사람.”
채원우는 사람 찝찝하게 픽 웃었다. 당연히 형민이의 표정은 더 안 좋아졌다.
“헉. 뭐 아는 거 있으세요?”
“몸에 닿은 사물을 단단하게 강화시키는 능력 있잖아요. 본인 몸 포함.”
“네! 네네!”
“그럼 벌써 퇴원했을걸요.”
“호, 혹시 그거 말고 조언해 주실 건 없나요? 제가 알 만한 거…….”
채원우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적어도 보기로는 그랬다. 나는 옆에 비치된 작은 냉장고를 열어 허락도 없이 병 주스를 깠다. 뽕,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채원우가 대답했다.
“저 싫어해요.”
“네?”
나도, 형민이도 얼 타는 반응을 보였다.
“저 되게 싫어해요.”
“그것 참, 얘한테 도움되겠네요.”
“그러니까 제 욕 하세요. 그럼 금방 친해질걸요?”
“어……. 제 파트너님이 헌터님을 왜 싫어하세요……?”
“글쎄요?”
나는 알로에 알갱이를 오독오독 씹으며 시선을 먼 곳으로 던졌다. 나는 왠지 알 것 같다. 백정석 씨가 채원우를 싫어하는 이유를.
“그냥 대부분 절 안 좋아하던데요?”
“설마…… 잘생겨서요?”
하마터면 알로에 알갱이를 형민이의 얼굴에 분무할 뻔했다. 겨우 참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제로 보니 걱정할 일은 없겠다 싶어서.
나는 형민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측은함을 담아 덕담을 건넸다.
“너는 참 잘해 낼 거야.”
“진짜요?”
단번에 조금 전까지 했던 걱정을 잊고 활짝 웃으며 되묻는 걸 봐라. 잘할 놈이다. 나는 믿음과 확신을 담아 고갤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조언했다.
“그리고 숨 좀 쉬면서 말해…….”
그래도 다행인 건 백정석 헌터가 몸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하니 고막이 찢어질 일은 없겠다.
* * *
“진짜 이유가 뭐예요?”
“뭐가요?”
채원우가 자판기 앞에 서서 카드를 찍으며 되물었다. 나는 그 옆의 자판기에서 막대 과자 버튼을 연거푸 눌렀다.
“백정석 헌터가 왜 채 헌터를 싫어하냐고요.”
“모르겠는데요.”
“진짜 모르는 거예요,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진짜 몰라요.”
채원우가 콜라를 따며 자판기에 기대섰다.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곤 씩 웃는데 자존심이 상하게도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게 잘생겼다. 두 번째 말하지만 너도 참 시대 잘못 타고났다.
나는 채원우를 마주 보고 같은 자세로 섰다.
“저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유?”
콜라 캔 입구에서 천천히 콜라가 딸려 올라왔다. 그것은 영롱한 구슬 타래처럼 보였다. 천천히, 곧은 선을 그리며 천장으로 향하더니 무지개처럼 아치를 그리며 다시 내려와 결국 입구에서 다시 모였다. 채원우의 능력이었다.
리바운드라는 게 엄연히 존재하는 능력을 이렇게 쉽게, 고작 장난을 위해, 숨 쉬는 것처럼, 그리고 이토록 정교하고 섬세하게 사용하다니. 나는 주머니 속에 숨긴 손으로 주먹을 꾹 쥐었다.
“날 구해준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방울방울 맺힌 콜라가 이번에는 내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토성 주변을 도는 띠처럼 보였다. 나는 고갤 살짝 기울여서 짜증스럽게 주변을 도는 콜라 방울을 빨아 마셨다. 채원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낮게 웃었다.
“형, 저랑 자볼래요?”
갑자기 또 뭔 개소리야.
나는 연거푸 방울을 빨아 마셨다. 능력이 가미된 콜라는 끝맛이 더럽게 불쾌했다. 오로지 내 기분 때문에.
“전 한 번도 안 해봐서 모르는데, 가이딩될 때 기분이 끝내준대요. 마약보다 좋다면서요.”
“그거 다 헛소리인데.”
“그래도 궁금해요. 해봐요. 형이라면 할 수 있어요. 형은 저 싫어요?”
나도 짧게 웃었다. 하하, 웃는 소리가 내 귀에도 부글부글 성질이 끓는 것처럼 들렸다.
“왜 헌터들이 채 헌터 싫어하는지 알겠네요.”
채원우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갤 기울였다. 나는 헐거워진 콜라방울 띠 아래로 내려가 막대 과자를 크게 쥐고는 뒤로 빠졌다.
“채 헌터님, 재수 없어요.”
어린놈의 새끼가, 사람 간 보고 있어.
* * *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나는 드물게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그러나 생활과 과장은 어림도 없단 표정으로 고갤 저었다.
“이미 정해진 일이에요. 빈방도 없고요.”
“빈방이 없기는!”
숨 한 번 고르자. 너무 목소리를 높이면 초조해 보이고 괜히 무례한 사람이 되어 적만 만든다. 나는 애써 미소를 띠고 다시 물었다.
“제 층만 해도 텅텅 비었을 텐데요.”
“그거 다 예약되어 있어요.”
“과장님…….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계신 거 아시죠……?”
“백겸 씨, 우리 너무 곤란하게 하지 말자…….”
몸을 낮춰 과장님이 낮게 속삭였다. 나도 덩달아 의자를 앞으로 바짝 당겨 앉으며 귀 기울였다.
“위쪽 명령이야. 파트너가 바라는 대로 해주라고.”
“아니, 전 파트너 아닙니까? 외주 인력이라고 이렇게 차별하는 거예요?”
“그런 거 아닌 거 알잖아. 오히려 에이전시가 갑, 우리가 을이라고.”
콧방귀도 안 뀔 소릴. 에이전시는 갑, 헌터청은 상황에 따라 갑, 내가 슈퍼 을이다. 나는 머리를 싸맸다.
“아니…….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은 방 쓰라고 한 적 없으셨잖아요.”
“나도 특이한 경우라 그래. 그냥 참아주자. 응? 그렇게 못 참겠어?”
“그 정도는 아니고요…….”
나는 의자 뒤로 몸을 한껏 기대고 목까지 젖혔다. 뒤집힌 세상을 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과장이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응석 부린 꼴이 되었다는 게 더 기분이 나빴다.
“그냥 없는 사람이라고 치고 살아. 힘들겠지만, 어쩌겠어. 원래 헌터란 것들이 변덕스럽고 하여튼 좀…… 특이하잖아. 아무래도 사람 같지 않으니까…….”
특이하잖아부터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끊기 위해 눈을 떴다. 뒤집힌 시야 속에 채원우가 보였다. 채원우의 청각은 일반인의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채원우가 성큼 다가왔을 때, ‘아무래도 사람 같지 않으니까’라는 과장님의 말이 이어졌고 채원우는, 그러니까 내 파트너는 다시 몸을 돌렸다.
좆 됐다.
“과장님!”
나는 벌떡 일어났다.
“으응?”
“다음에 다시 올게요. 감사했어요. 커피 살게요.”
끝까지 마음에 없는 소리, 반드르르한 입에 발린 소릴 한 뒤에 황급히 생활과를 나왔다. 순식간에 붐비는 로비에 내던져졌다.
“씨바알…….”
100퍼센트 들었다. 들은 얼굴이었다. 얼굴을 싸매고 쌍시옷 소리를 연거푸 냈다. 순식간에 내가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입장이 된 거다.
그 때였다. 로비 천장에 주렁주렁 걸린 대형 스크린의 화면이 일제히 바뀌더니 빨간색으로 빛나며 경보가 떴다. 손목에 걸린 시계도 징징 울렸다. 바로 주머니에 넣어둔 수신기를 귀에 꼈다. 담당 정보원과 연결이 되었다.
“왜 저한테까지 알림이 와요? 아직 밸런스 조정이 안 끝나서 출동 대상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한번 나가달래.
한 번만이 아니라, 한번이다. 어디 한번 내보내 보자는 뉘앙스란 말이다.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거 지금 실험하려는 거죠?”
―……미안하다, 백겸아.
“채원우랑 나 가지고 실험하는 거 맞잖아요.”
애써 존대를 유지하며 일그러진 얼굴로 웃었다.
근처에 있었는지 채원우가 금세 시야에 나타났다. 익숙하게 건 벨트를 차고 장갑을 낀 뒤 반다나와 고글을 목에 거는 게 보였다. 방수천인지 반들거렸다.
채원우도 나를 발견했다. 눈을 맞추더니 조금 시무룩한 기색으로 고갤 숙였다. 그새 얼굴이 눈에 익었는지 저게 기가 죽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었다. 채원우는 분명 기가 죽어 있었다. 그 사실이 기분을 더럽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요, 난 이번에 책임 못 져요.”
그 한마디 하고 수신기를 꺼버렸다. 채원우에게 성큼 다가갔다. 처음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처음으로 채원우가 제 나이대로 보였다. 그냥 애새끼가 아니라 스무 살, 핏덩이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난 그쪽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거짓말. 저 싫잖아요.”
“아, 씨발. 그래요. 거짓말 맞아요. 사람이라곤 생각하진 않아.”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릴 헝클어트렸다. 그러곤 채원우의 어깰 단단히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