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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6화 (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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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라지 않는 나라도 이번에는 큰 소리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수석은 입을 가리고 어머, 하고 중얼거렸다.

“내가 괜히 말한 건가?”

속도 모르고, 저 앞에서 채원우가 고갤 갸웃거리며 성큼성큼 다가온다.

우리는 10m쯤 떨어진 거리에서 결과 리포트를 들고 섰다.

‘나쁘진 않네.’

매칭 수치를 89퍼센트까지 찍었던 경험이 있던 고로 채원우와의 78퍼센트는 정말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었다. 내가 곽승규의 에이전시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누구를 갖다 대도 좋은 수치를 뽑아낸다는 것.

그러나 이 숫자를 궁합 수치라고들 입방아를 찧어대긴 해도 실제로 궁합을 말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옆에 선 속 모를 파트너를 쳐다봤다. 녀석은 뭐 볼 게 그리 많다고 아직도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게 우리 궁합이에요?”

대뜸 내 쪽으로 고갤 돌려선 종이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가리키는 건 수치가 아니라 채원우의 능력 안정도였다. 적힌 수치는 34퍼센트.

“그게 결과값이면 너랑 나랑은 계약 파기해야 해요.”

“왜요? 우리 계약 파기해요?”

“아니, 그거 아니라고.”

나는 한 걸음 다가가서 맨 밑에 있는 칸을 가리켰다.

“78퍼센트. 좋은 편이죠.”

“지금까지 형이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높은 기록이에요?”

“아뇨. 89퍼센트 있었거든요.”

“그 사람하고 왜 영구 계약 안 했어요?”

“그거 너무 사적인 질문 아닌가? 우리 아직 그 정도로 안 친한데.”

아무래도 어려서 그런지 선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일부러 조금 더 재수 없게 선을 그어 말했다. 그러나 채원우는 한 수 위였다.

“사적인 질문, 그거 언제부터 할 수 있는데요? 일주일 후?”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어린애 같다. 차갑고 성격 나쁘게 잘생긴 외모와 달리, 다소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뱉는 질문들이라곤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아무리 갖다 대어도 ‘순진무구’라는 말은 채원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안 맞아서 깼습니다. 계약 기간도 끝났고 서로 상성이 안 맞았어요. 그쪽 성격이 여간 더럽지 않았거든요.”

“형은 안 더러웠는데 그쪽 성격만 더러워서요?”

아, 이게 또 핵심을 찌르네.

나는 별달리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실제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대답했다.

“그래서 싸우고 깼죠.”

“그럴 수도 있어요?!”

“어어. 무슨 그런 순진한 말을 합니까. 보아하니 신입도 아닌 거 같은데. 이게 무슨 백년가약 뭐 그런 건 줄 알았어요?”

이제는 채원우의 밑도 끝도 없는 순진무구한 질문의 근원을 이해하게 된 만큼 나는 조금 관대해졌다. 파트너가 없었으니까 아는 게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모르나 싶긴 한데, 사람들은 원래 자기가 관심 없는 분야에는 놀라울 만큼 무지하곤 하니까.

“결과 잘 나와서 어떻게 계약 잘 유지되겠네요. 잘 부탁합니다.”

“저야말로요, 형.”

“형…….”

“이렇게도 부르지 말아요?”

“아니. 괜찮네요.”

“전 파트너들은 뭐라고 불렀는데요?”

묘하게 나의 과거사에 너무 집착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첫 파트너인 만큼 제도 자체에 궁금한 게 많으려니 하고 선선히 대꾸했다.

“가장 많이 들은 걸로요?”

“네.”

“개새끼?”

다음으론 씨발새끼, 다음으론 싸가지 없는 새끼, 그다음으론 재수 없는 놈이 있다. 무난하게는 양 가이드, 정도. 지금껏 계약 연장으로 이어진 건이 한 건도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저는 형이라고 부를래요.”

“그러세요.”

“저는 원우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아니, 전 그거 별로인데요.”

“그럼 뭐라고 부르실래요?”

지금 우리 애칭 정하냐?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주 당연하고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채 헌터, 헌터님, 파트너 헌터님. 이 중에 헌터님을 제일 많이 쓰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면 저를 부르는 건지 다른 헌터를 부르는 건지 모르잖아요.”

“주로 우리끼리 붙어 다닐 텐데 헷갈릴 일이 있을까요?”

“현장에선요?”

“그땐 채 헌터로 부르죠.”

“원우야, 라고 부르면 안 돼요?”

“명령이에요?”

“명령이라고 하면 들어주는 거예요?”

고갤 끄덕였다. 아무래도 직위상으로는 네가 나보다 높으니까. 상명하복은 실력과 인품이 반비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럼 명령할게요. 원우라고 불러주세요.”

징그럽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쯤 하면 보통은 ‘그럼 편한 대로 불러요’ 이러지 않나?

“그래요…….”

“형, 이제부터 저 안 부를 거죠.”

“죽기 직전 아니면 안 부를 것 같네요.”

“형 고집 세다. 그러면 그냥 채 헌터라고 불러요.”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곤 고갤 끄덕였다. 네 고집도 만만치는 않다.

“저 그럼 먼저 어디 좀 다녀와도 될까요?”

“어디 가는데요? 같이 갈래요.”

“조금 전에 벽이 빨개지도록 피 토해서 매칭룸 개판 만든 에이전시 동료 만나러 갈 건데, 같이 가겠다고요?”

“네. 아, 제 등급 외 존(Zone)으로 가는 거예요?”

“그건 아니에요…….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형. 지금 에휴, 씨발, 했죠?”

알면서 왜 자꾸 물어봐.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 * *

의무실은 간단한 부상, 병동은 그 이상의 부상이다. 로비로 가면 병동과 의무실에 베드가 몇 개 남았고 누가 이용 중인지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인원 하나하나가 중요하며 소재 파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형민이는 병동에 있었다. 아마 하루에서 이틀은 입원해야 할 거다.

병동으로 향하는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채원우가 휘적휘적 쫓아왔다. 따라오는 척하다 말 줄 알았는데 정말로 여기까지 오다니. 나는 얘를 어림짐작도 할 수가 없다. 어떤 캐릭터인지 도통 파악이 되지 않는다.

“어디 가요?”

“B동이요.”

“그럼 여기가 더 빨라요.”

채원우는 오른쪽으로 트는 나를 훅 잡아끌었다. 힘이 어찌나 센지 팔이 뽑히는 줄 알았다.

“왼쪽 날개로 간다고요? 오른쪽에 있는데요?”

“네. 왼쪽에 화물용 엘리베이터 타면 F층 있거든요. 거기로 가면 빨라요.”

“모르는 게 없네요.”

“여기에 오래 살았으니까요.”

“…….”

“왜 그런지 안 물어봐요?”

“개인사잖습니까.”

정말로 관심이 없었다. 여기에 사연 있는 놈이 채원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심드렁한 반응에 채원우는 대놓고 실망한 기색이었다.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고 나를 물끄러미 보는데 어쩐지 사냥개가 꼬리를 내린 것처럼 보이긴 했다. 나는 개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가죠?”

그러니까 통할 리가 없다. 채원우가 돈다발을 부채처럼 흔들며 수표로 눈물을 훔치는 게 아니라면.

채원우의 말대로 이쪽 길이 더 빨랐다. 채원우는 거의 이곳을 제 손바닥처럼 꿰고 있는 것 같았다.

형민이가 있는 병실 문을 열자 네 개의 침대가 보였다. 그러나 네 개 모두 비어 있었다. 나는 환자 정보가 걸려 있는 침대 쪽으로 가서 멋대로 자릴 잡았다. 채원우는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서 있었다.

“뭐 해요? 앉아요.”

“되게 심플하네요.”

“중환자실도 아니잖아요.”

혹시 얘는 중환자실만 가본 걸까? 그럴 수 있다.

헌터들은 회복력이 빠르다. 주로 의무실에 있는 이유가 있다. 의무실이 아니라 병동에 있다는 건, 적어도 일주일은 출동을 못 할 정도로 부상이 심각하단 의미였다. 그것도 헌터니까 일주일이지 민간인이라면 전치 11주에서 14주까지도 진단받았을 거다. 헌터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채원우는 괜히 커튼을 모두 걷어보고 빈 침대에 앉아 몸을 위아래로 흔들며 끼익 소릴 냈다가, 한참 뒤에 내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분명 건너편에 앉을 수 있는데도.

“이 사람도 가이드예요?”

“그렇죠. 가이드 병실이니까.”

나는 채원우의 손목에 있는 인식표를 흘끗 보며 대꾸했다. 무엇인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러나 물어볼 생각은 없다. 나는 공사 구별을 신조로 삼는다. 그 누구보다 가깝고 그럴 수밖에 없는 파트너일수록 그 선을 잘 지켜야 마땅하다.

채원우가 입을 열어 또 시답잖은 소리를 하지 않길 바라는 순간 타이밍 좋게 문이 열렸다.

“어? 형!”

형민이가 손을 붕붕 흔들었다. 외상은 없어 보였다. 표정은 창백하고 입술은 하얗다 못해 파랗고 링거에 달린 팩이 세 개는 되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준수하다. 가이딩 리바운드는 무시할 게 못 되었다. 정보가 미흡했던 초기에는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바운드로 죽은 가이드와 헌터 수가 두 손가락으로 꼽아도 부족할 거다.

“형, 형. 나 입원한 거 어떻게 알고 왔어요? 저 진짜 뒤질 뻔했어요. 저 멀리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였다니까요! 진짜 내장이 뒤집어지는 것 같고 토를 미친 듯이 피를 토하는데 나는 내 몸에 피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잖아요. 피 다 토했나 싶으면 계속 나오고. 근데 그 와중에 환각이랑 환청은 계속 들리고요. 이명도 장난 아니고.”

채원우는 입을 벌리고 감탄하다가 이제는 턱을 괴고 흥미롭게 형민을 보았다. 이렇게 말이 빠르고 많은 애는 처음 보는 모양이다. 어느새 박자에 맞춰 다리도 떨고 있다.

“근데요, 아프진 않고 정신이 없다가 기절했는지 기억이 없어지는 와중에도 파트너랑 의식이 연결된 채 떨어지질 않는 거예요. 저는 분명 오른쪽으로 가는데 왼쪽으로 가는 것 같고, 형, 형. 의식을 강제로 떨어뜨리는 약 맞아봤어요? 빠따로 후리는 줄. 진짜 골이 방방 울리고 죽겠어요. 맞다, 맞다. 그 파트너분이 진짜 좋으신 분인데요…….”

형민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금세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선 천천히 침상으로 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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