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나도 들어가서 먹어도 됩니까?”
“음, 아니요.”
“왜요. 채원우 헌터 것도 아닌데.”
“그건 그런데 이젠 없어요. 제가 하도 먹어서 걸렸거든요.”
“그런 걸 걸리다니. 참 조심성 없네요.”
“그쪽은 절대 안 걸릴 거란 말투네요?”
“당연하죠.”
나는 픽 웃으며 과자를 더 깠다. 까다가, 얼마 남지 않은 과자를 보고 눈이 절로 번쩍 뜨였다.
“아니, 그런데 남의 걸 이렇게 다 먹습니까?”
“성장기라.”
“저기요.”
“그것도 뜯으면 안 돼요? 매운 거.”
“이거 별로 안 매운데요.”
“전 맵던데.”
그러더니 또 멋대로 가져가선 북 뜯어버린다. 기가 막히긴 한데 일단 참았다. 계약을 했어도 한 달 내로는 매칭 기간으로 얼마든지 파기될 수 있는 관계 아닌가.
아니지. 지금 깨지는 게 낫나?
“얼른 먹는 게 좋을걸요. 저희 매칭 테스트 가야 해요.”
“그거 세 시잖아요.”
“더 빨리 하게 될 거예요.”
내가 여길 몇 번이나 왔는데. 이곳은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졌지, 당겨지는 일은 손에 꼽는다. 그래도 일단 빠르게 먹었다. 채원우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채원우가 엄청난 속도로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빨리 먹기론 뒤지지 않는데 얘는 더했다.
“채원우 헌터, 물어볼 게 있는데요. 제가 원래는 파트너한테 이렇게 궁금한 게 많지 않거든요.”
당연했다. 지금까지는 알아서 필요한 수준의 정보만큼은 채워졌으니까. 그런데 얘는……
“일단은, 지금까지 파트너 없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그 때 모든 헌터청 소속은 필수로 차는 특수 스마트 시계에서 알림이 떴다.
<양백겸 가이드 파트너 헌터와 함께 B 진단실로 오세요.>
언제까지 오라는 알람은 당장 지금으로 떠 있었다. 시간은 1시 50분, 지나치게 빠른 때였다. 나는 채원우를 향해 고갤 돌렸으나 채원우는 과자 봉지를 뾰족하게 접어선 부스러기까지 알뜰하게 털어 먹고 있었다. 곧게 뻗은 목선과 가운데의 동그란 뼈가 꼴깍꼴깍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요.”
마지막으로 손등으로 입가를 훔친 채원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한숨을 푸우우욱 내쉬며 쓰레기를 한데 모았다. 꽤 큰 덩어리가 된 걸 채원우가 잡아서는 마치 자유투를 하듯 쓰레기통에 골인시켰다.
“저 잘하죠.”
“…….”
승규네 집에 있는 고양이 뽀삐랑 대화하는 게 더 잘 통할 것 같다.
* * *
B 진단실의 다른 이름은 의무진단랩실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연구실의 형태다. 다만 우리끼리는 다른 말로 부른다. 매칭룸이라고 하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좀 달갑지 않다는 태도다. 맞선 보는 방이냐는 거다.
근데 사실, 뭐가 달라?
왜 일찍 오라고 했는지 알 만했다. 매칭룸은 난리였다. 군데군데 피가 튀어 있었다. 분명히 우리가 오기 전에 치운 걸 텐데도 남아 있으니, 전 매칭이 얼마나 어려웠고 까다로웠을지, 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최악이었어.”
가운을 갈아입으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어. 기대했는데…….”
“분명히 A급이었는데 이상해요. 둘 다 급도 맞았는데.”
“급으로만 따지는 거 대체 어느 시절에나 하던 이야기야?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날카로운 호령이 떨어졌다. 팀장님이었다. 팀장님은 잔머리 하나 안 나올 것처럼 머리를 넘기고 있었다. 그녀가 패드 위로 손짓을 하자마자 어렴풋이 떠 있던 홀로그램 화면이 바뀌었다. 채원우, 양백겸. 나와 내 파트너가 될 사람의 정보가 떴다.
“계약서 다시 쓰고 다시 수배해.”
“팀장님, 안녕하세요.”
매몰찬 목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내가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양백겸 씨 왔네. 우리 정직원들보다 더 근속하는 양백겸 씨.”
마치 내가 온 걸 지금 깨달은 듯한 말투지만 아닌 걸 알고 있다. 그녀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완벽주의자고, 실제로도 완벽한 일처리로 소문이 나 있으며, 피도 눈물도 없을 만큼 냉철했다. 아마도 나한테 하는 경고일 것이다. 너, 제대로 해. 하는.
“백겸 씨, 오늘 잘할 수 있지?”
“봐야죠.”
그러나 나도 한두 번 이 일 한 것도 아니고. 벽에 튄 핏방울들을 대놓고 쳐다보며 대꾸했다.
“그런데 전 타임은 누구였어요?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가?”
“그런 거 말해 줄 수는 없는 거 알잖아.”
“에이. 그럼 저랑 같은 회사인지만요. 다른 에이전시죠?”
“같은 에이전시야. 이제 됐지? 끝.”
“…….”
“에이전시 대표님껜 내가 알아서 잘 전할게. 알았지?”
“네.”
형민이구나.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크게 다치진 않았을 거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던전 브레이크 이전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니까.
“아, 차가.”
나는 눈가를 찡긋대며 웃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뵈었던 수석 연구원분이 아프지 않게 팔뚝을 때렸다.
“차갑긴 뭐가. 한두 번도 아닌데.”
“매번 차가우니까 그렇죠.”
“매번 차가운 만큼 매번 잘해 왔으니까 이번에도 잘할 수 있지?”
“뭐, 평소만큼?”
“잘한다는 얘기네.”
수석님은 고갤 숙여서 맥박이 뛰는 곳에 붙은 패드를 확인하며 몰래 속삭였다.
“네가 잘해야 해. 너한테 달렸어.”
“뭐가요?”
―진단실 비웁니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외부인들은 모두 나오라는 안내가 퍼졌다. 엉킨 선이 없는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연구원들이 신속히 빠져나갔다. 나는 의자에 고정된 채로 목만 들어 외쳐 물었다.
“수석님! 무슨 말이냐니까요!”
“그쪽 아니면 답이 없다는 거죠.”
그러나 대답은 오른쪽에서 들렸다. 곧 매칭룸 안의 또 다른 방이자 밀실인 진단실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그러곤 의자가 천천히 서로를 마주 보게 돌아보고는 허공에서 서 있는 것처럼 세워졌다.
이 상황이 제일 민망하다. 이제부터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면 안 된다. 눈을 깜빡일 수는 있어도, 한 번도 시선을 돌려서는 안 된다. 여기서 가장 많은 실수가 일어나고 그래서 한 조합당 두 시간은 시간을 잡는 거다.
이제 시작이었다. 팔 오금에 찔러둔 바늘로 천천히 약이 들어왔다. 차가워서 팔이 시렸다. 이것이 온몸에 퍼진다. 각성제의 일종으로 알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환했던 빛이 깜빡깜빡 점멸하기 시작했다. 동공이 바쁘게 확장되었다가 축소되었다. 그것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을까. 갑자기 발밑이 훅 꺼지며 이곳이 매칭룸이 아니라 무저갱 속이며 그 속에 파트너와 나만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마어마하게 고독하면서, 무섭고, 그리고 또 상대의 심장 소리 하나에만 의지해야 한다. 약효가 돌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채원우의 심장도 불규칙하게 뛰었다. 헌터들에게는 강제로 능력을 개방할 때처럼 만드는 약이 쓰인다고 한다.
저 소리와 내 심장 소리가 하나로 맞아가며 안정권에 들어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그리고 그 속도와 소리가 얼마나 정상 범위 내에 있는지로 가이딩 매칭 수치가 정해졌다.
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과 소음 속에서 뻣뻣하게 굳은 혀를 가까스로 움직였다.
“그쪽……이라고 부르지 마…….”
싸가지 없게, 라는 말은 먹혀서 사라졌다. 기절할 것만 같아서 이를 꽉 깨물고 턱을 쳐들었다. 진정하기 위해 모든 집중력을 동원했다. 이명이 삐이이익― 하고 요란하게 났다.
그 사이에서 형, 이라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으나 확인할 길은 없었다. 곧바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저 너머로 의식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 * *
“괜찮아?”
나는 손사래를 치며 기침을 해댔다. 500짜리 물통이 금세 비워졌다. 주먹으로 페트병을 우그러뜨리며 입에 남은 물을 다시 뱉어댔다. 다행히도 구토까지 가는 일은 없었으나 몸의 겉과 속이 뒤집어 까진 것처럼 메스꺼웠다.
“채원우는요?”
“벌써 파트너 걱정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제 고용안정성을 걱정하는 겁니다.
“원우는 너랑 비슷해.”
“토했어요?”
“그냥 어지럽대.”
“수치는 어때요?”
“증상만 들어도 알잖아.”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훔치며 씩 웃었다. 피 본 사람도 없고 중간에 뛰쳐나간 사람도 없으며 끔찍한 환각을 보지도 않았다. 안정성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분명했다. 적정 범위 안에 든 거다.
“저 잘했어요?”
“말해 뭐 해. 최고야.”
수석이 엄지를 척 치켜 들었다. 최고라는 말을 매번 듣긴 하는데, 매번 들어도 좋다. 나는 허리를 곧게 펴고 구겨진 페트병을 구석의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골인이었다. 비록 첫 만남은 아리송하고 기묘하며 괴상했지만 그래도 궁합 자체가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준비실에서 나가자 반대편의 헌터 준비실에서 나오는 채원우가 보였다. 메스껍다던 채원우는 아주 멀쩡해 보였다.
“형.”
대뜸 나를 부르는 호칭에 연구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모였다. 정확히는 채원우 쪽이다.
“형? 둘이 벌써 그렇게 친해졌어?”
안타깝게도 녹아웃되기 직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는 터라,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형, 형 하던 소리가 환청이 아니었구나. 설마 뒤끝 길게 비꼬아 말하는 건 아니겠지? 헌터라는 종족은 다들 하나같이 자존심이 대단히 세고 저밖에 모르는 인간들인지라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 천생연분이래요.”
“오…….”
옆에서 수석이 풉, 하고 웃었다. 가이딩 수치가 높을 때 천생연분……이라는 표현을 쓰긴 쓰는데, 그게 또 맞긴 한데……. 보통은 당사자들이 쓰진 않는데.
“그 정도로 결과가 좋았어요?”
“평균치 조금 웃도는 정도.”
고갤 더 기울여서 거의 복화술 수준으로 속삭여 물었다.
“그런데 쟨 왜 저런 말을 들었대요? 애 놀리는 거예요?”
“원우 입장에선 당연하지. 지금까지 쟤하고 매칭이 성사된 가이드가 없었거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