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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4화 (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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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건, 마침 에이전시의 다른 놈이 와서 형민이에게 아는 척을 했다는 거다. 녀석도 커다란 덩치로는 연상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 많은 놈인지라 둘이 딱 잘 맞을 것 같다.

나는 최대한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하, 똥 밟았네.”

아홉수도 아닌데, 올해 첫 파트너가 이런 식이라니. 시작부터 좋지 않다. 나는 손목에 걸린 묵주와 염주와 어딘가에서 받은 금줄 모양의 실팔찌를 연신 만지작대며 매시드포테이토를 연거푸 입에 넣었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됐는데. 먹을 때가 아니라 아예 여기서 나갔어야 했다.

“여기 앉아도 되죠?”

이미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으면서 묻는 놈은 채원우였다.

말투가 독특한지라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잘 잤어요?”

자리 있어요, 하고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려는데 채원우가 먼저 선수를 쳤다. 간밤, 채원우는 방에 돌아오지 않았다.

“예, 뭐.”

“제가 안 들어갔는데도 잠이 잘 와요?”

“그럼 어떡합니까? 졸린데.”

“파트너를 걱정하느라 밤을 새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이가 없어서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심하게 기침하는 나를 앞에 두고 채원우는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물이라도 줄 것이지.

복장 터지는 건 나겠다 싶어서 빈 물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아.”

채원우가 내 컵을 건드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물컵 바닥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생기더니 금세 맑은 물이 차올랐다.

“마셔요. 1급수 테스트도 받았어요.”

일단…… 일단 사레가 걸린 것부터 해결하자.

물 한 컵을 모두 비운 뒤에야 물을 수 있었다.

“저기, 질문 몇 개만 해도 됩니까?”

“하세요.”

“등급이 A로 되어 있던데 맞아요?”

“아니요. 미분류 등급이고요. 아마도 S로 나올 거예요.”

하아……. 헌터청 이 사기꾼 새끼들. 나도 엄연히 국민 중 하나인데 이렇게 사기를 쳐도 돼?

나는 수많은 기밀 보장 조항과 수많은 등급별 락(Lock), 실시간으로 감찰되는 인터넷 활동 등을 떠올렸다. 이거 헌터 등급도 속여먹겠네 하던 의심이 실제로 밝혀지니 기가 막혔다.

“그런 사람에게 저 같은 외주 인력을 붙여도 됩니까?”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가이딩 파트너에 대해 아는 게 뭐예요?”

“없어요.”

채원우는 샐러드를 뒤적거리더니 훈제오리만 야금야금 먹으며 고갤 숙였다. 모양이 깨끗한 정수리가 보였다. 얘는 나사는 빠졌는데 외모는 가마마저도 예뻤다. 껍데기만 남고 가라.

“이전 가이드 누굽니까?”

이 직업은 인수인계가 절실한 자리이지만 기밀이란 게 있으니 인수인계의 공백을 이해해 왔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정말 절실하다.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물었다. 식탁 모서리까지 잡고 몸을 앞으로 쭉 빼며 제발 이름 석 자, 혹은 두 자만 말해 달라고 눈빛을 쏘았다. 그러나 채원우는 싱긋 웃으며 수저를 쪽 빨았다.

“없어요. 처음이에요, 그쪽이.”

돌아버리겠네.

나, 어쩌면 똥 밟은 걸지도.

* * *

던전이 처음으로 터진 곳은 칠레였다. 처음에는 다들 지진인 줄 알았다고 한다. 지진이 잦은 환태평양 지대에 있으니까.

그러나 땅은 지진의 형태로 벌어지지 않았고 싱크홀처럼 아래로, 아래로 흙이 꺼지기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불쑥 솟아나 하나의 동굴 같은 걸 만들었다. 동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고, 그 안에서 나온 게 박쥐 따위가 아니라 박쥐 모양을 한 몬스터였던 게 문제지만.

칠레는 위아래로 무척 긴 나라다. 중부 지방에 던전이 터진 날 최남단에 있던 작은 마을에서 첫 헌터가 발현했다는 게 하나의 설이다. 왜 설이냐 하면, 그 헌터로 추정되는 이가 바로 이어 터진 던전 브레이크로 죽었고 그 비슷한 시간대에 세계가 온통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재앙은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오지 않았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 무리가 되어 전 세계를 덮쳤고, 그때 경기도의 한 작은 도시, 재개발이 막 착수되어 건설 노동자가 아주 많이 필요했던 곳에서 나는,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에서 요란하게 재난 경보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하늘을 덮는 커다란 박쥐 모양 괴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게 벌써 6년 전이니까 1년, 한 달, 하루가 점점 더 소중해진 요즘으론 꽤 오래 지났다고 할 수 있지.

“자료 열람 가능해요?”

그리고 그 적잖은 시간 동안 헌터청을 제집처럼 들락날락하는 동안 사람들도 제법 많이 사귀게 되었고 얼굴도 터놓았고 내 특유의 넉살 좋은 성격과 외모로 호감도 많이 샀다. 즉, 정보를 얻을 건덕지가 많단 거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채원우에 한해서는 달랐다.

“보안 등급이 안 되는데요?”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파트너인데요?”

“그래도 안 돼요. 봐요, 백겸 씨.”

몇 번이나 커피 내기를 했던 등록과의 지민 씨가 돌려서 보여준 화면에는 정말로 등급 외 정보라는 알림창이 떠 있었다.

“도움이 못 되어서 미안해요. 여기 알잖아요.”

그러면서 내게 등록증을 돌려준다. 여기 알잖아요, 라는 말에는 어제는 친구였던 사람이 상사가 되고 그제는 동료였던 사람이 사라지기도 하고 등급 외가 되기도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여기서 등급 외는 채원우의 등급이 아닌 정보 등급을 말했다.

나는 등록증을 돌려받으며 싱긋 웃었다. 이왕이면 어디서든 친절한 게 좋다.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만날 줄 모른다.

“아, 홍보과에서 백겸 씨 지난달부터 찾았어요.”

“저를요?”

“네. 혹시 홍보 영상 한 번 더 찍을 생각 없냐고 하시더라고요.”

“그거 파트너랑 찍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극비로 숨겨야 하는 헌터가 있는 한편 대대적으로 노출하는 헌터들도 있다. 주로 외모가 뛰어나나 능력이 엄청나게 대단치는 못한 이들이 속한다.

작년에는 B급에서 A급을 오가는 에스퍼와 파트너를 했었는데 그때 엮여서 같이 찍게 됐었다. 반응? 당연히 핫했다. 내가 더 주목을 받자 파트너는 그때부터 손바닥 바꾸듯 태도를 바꾸었고 남은 계약 기간인 한 달은 정말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싸워댔다.

“그렇긴 한데……. 백겸 씨 그냥 헌터청 들어오라니까요! 여기 대우 좋……. 나쁘지 않아요!”

“우리 에이전시도 대표가 돈을 좀 밝히긴 해도 나쁘진 않아요.”

“그래도…….”

“그리고 시험 봐야 하잖아요. 저 꼴통이에요, 지민 씨.”

나는 머리를 톡톡 건드리면서 몸을 돌렸다. 뒤에서 특합이 있다고 중얼거리다가 마는 소리가 들렸다. 특합의 조건을 기억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합의 필수 조건은 파트너와 3년 이상의 활동 및 파트너의 추천장. 일단 3년 이상이라는 조건에서부터 탈락이다.

게다가 헌터청의 대우가 좋은 것도 헌터들 한정이지 나 같은 가이드에게는 아니었다. 가이드는 매칭률에 따라 고용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직업이 아닌가.

그리고 헌터청에 등록할 수 없는 수준의 예비 발현자들을 비롯해서 세상에 내가 안정시켜 줄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공무원이 되면 부업도 못 뛴다. 쏠쏠한 부수익을 생각하면 절대, 절대 생각 없다.

나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F층으로 세 계단씩 올라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민 씨가 보여줬던 화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채원우라는 이름과 헌터과 소속이라는 텍스트가 전부였다. 화면을 보여준 건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채원우는 분명 정식으로 헌터과에 소속되어 있긴 했으나 소속팀도 안 적혀 있었고, 심지어는 담당 층도 달리 적혀 있었다.

“찝찝하게.”

중간에 우뚝 서선 층수를 확인했다. 어느새 6층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위로 오르기만 한 거다. 6층에는 휴게실이 있었다. 마침 잘됐다는 생각으로 들어섰다.

현금이나 카드로 충전할 수 있는 등록증으로 자판기를 쓸었다. 한 바퀴 돌고 나니 동그란 테이블이 꽉 찰 정도로 군것질거리를 사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건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말이 속담으로 있는 나라 아니냐.’

승규는 헌터청에 올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히죽대곤 했다. 그만큼 외주 인력에게까지도 먹을 거 하나는 아끼지 않고 지원해 줬다. 대한민국하면 어쨌든 밥심이지. 먹는 것을 이렇게 중요하게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곳이 어디 있겠어.

나는 일단 감자칩을 뜯고 동시에 막대 과자를 모두 까서 감자튀김처럼 쏟아버렸다. 그러곤 콜라를 땄다.

“제로였네.”

인공 감미료 특유의 맹맹하면서도 허무한 단맛이 났다. 잘못 샀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뭐 어때. 다음으론 페트병에 든 홍차를 까서 마시며 입에 아몬드 빼빼로를 세 개 물었다.

“단것 좋아해요?”

하마터면 꼴사납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뒤에서 불쑥 얼굴을 들이민 채원우가 허락도 없이 내 빼빼로를 가져가 입에 넣었다.

가까이서 본 채원우는 더 예뻤다. 골격이 유약한 것도 아니고 도리어 가까이서 보니 강골인데도 이런 느낌을 주다니.

화려하게 예쁜 얼굴을 보며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혀를 찼다. 시대만 잘 타고났다면 너나 나나 연예인을 했을 텐데, 여기서 몬스터나 죽이며 오늘 죽니, 내일 죽니 하고 있구나.

“어디서 나왔어요?”

“저기요. 낮잠 자기 좋아요.”

“비품실이요?”

“말만 비품실이지 여기 자판기 채울 재고 넣어두는 곳이었어요. 졸리면 자다가 뜯어 먹고 그러는 거죠.”

“진짜요?”

나는 흥미롭게 눈을 빛냈다. 채원우는 아직도 잠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내 옆에 멋대로 자릴 잡았다. 그러곤 의자를 드륵 끌어 무릎과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앉았다. 우리가 이렇게 퍼스널 스페이스가 좁을 정도로 친분이 쌓였는지는 나도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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