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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말고, 계약직 하고 싶습니다-3화 (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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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땠어?”

승규는 국에 밥을 말며 물었다. 밥을 으깨면서도 허겁지겁 입에 넣는다. 원래는 급식실에서 가장 늦게 밥 먹던 놈이었는데 분 단위로 빠듯해진 생계 일정 때문에 이렇게 바뀌었다. 나는 밥풀 하나 없이 깨끗한 식판에 수저를 내려놓고는 가슴을 들이밀었다.

<통행증>

통행증 아래로는 작게 담당하고 있는 헌터 번호가 적혀 있다. 170009. 이름 대신 번호로 적는 건 나름의 기밀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담당하게 된 어린 돈줄을 떠올리면 그다지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그 애는 진심으로, 어디를 가도 눈에 띌 게 분명한 외모였기 때문에.

“오, 대단한데?”

당연히 담당을 따 올 줄 알았던 승규는 대단치 않은 감탄사를 뱉고 다시 식판에 코를 박았다. 형민은 나를 부럽게 쳐다보았다. 외주 인력인 우리는 헌터의 선택이 곧 최종 면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통과했고, 형민이는 통과하지 못한 거다.

“어땠어? 어리다며.”

“어리지.”

별달리 하고 싶은 말은 없다.

외모 말고는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예쁘게 생겼어.”

“남자 아니야?”

“어. 예쁜 남자야.”

그게 딱 적절한 묘사였다. 졸음에 겨운 것처럼 느릿느릿 눈꺼풀을 뜨는데도 예뻤다. 흠이라고 생각했던 피딱지는 드러난 얼굴에선 일종의 콘셉트 같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피부는 창백하다 싶을 만큼 흰데 눈썹은 멋지게 뻗었고 속눈썹은 또 길어서 묘한 매력을 뿜어냈다.

내가 어디 가서 얼굴로 뒤처진 적이 없었는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그러나 너무나 잘생긴 듯 예쁜 얼굴이라 자존심을 구길 정도였다.

“잘 지내봐라.”

“뭘 잘 지내봐. 금방 헤어질 텐데. 어차피 1년짜리 계약직이야. 네가 잘하는 거잖아. 상대가 누구든 딱 1년 채우기.”

“그렇긴 한데.”

무엇인가 더 말하려는 것 같던 승규는 트림을 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녀석의 식판은 깨끗했다.

“야, 나 이만 가봐야겠다. 다음에 보자.”

몰상식하고 경우 없게 말도 끝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에 승규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말았다. 형민이만 울상이었다.

“저, 저는요? 저만 합격 목걸이 못 받았어요!”

얘는 여기가 무슨 던전 브레이크 전에 유행하던 힙합 서바이벌 대회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고용불안정 상태의 형민은 역시 불안한 기색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각박하고 정이 없는 법. 승규는 미고용 상태의 직에게는 택시 기본요금만 지원해 준다는 확고한 법칙을 가지고 있었다.

“사천오백 원 청구해.”

세상이 이 꼴이 되어도 물가는 야금야금 오르는 법이다. 택시 요금도 마찬가지다.

* * *

이제는 눈을 감고도 외울 수 있는 비밀 유지 조항과 고용 계약서에 날인하고 제출했다. 비대면 방식인지라 제공된 패드로 전자 서명만 하면 되었다.

첫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이렇듯 계약 작업만 하고 나면 일정이 끝나기 때문이다. 제공된 숙소에 누워서 깨끗한 침구의 냄새를 흠뻑 들이마셨다. 습, 하, 습, 하 거푸 숨을 쉬고 있자니 내 파트너 헌터가 생각났다.

‘잘 부탁합니다?’

내민 손이 민망하게 멀뚱멀뚱 보고만 있더니 한참 뒤에야 아, 하고 박 터지는 소리를 내던 걔.

‘저 못 만져요. 지금 가이딩 수치가 아슬아슬해서.’

‘원우야! 여기 약.’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구원 중 한 명이 서둘러 다가와선 알약을 내밀었다. 너무나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생긴 약으로, 솔직히 말하자면 LSD처럼 생겼다.

헌터 채원우는 물도 없이 그것을 녹여 먹고는 대뜸 내 앞에서 입을 쩍 벌렸다.

‘……?’

‘다 먹었다고요.’

‘오, 그래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갤 끄덕이다가 손뼉을 쳐주었다.

‘참 잘했네요.’

고갤 끄덕인 채원우가 어딘가로 향했다. 치과 의자처럼 생긴 곳이었다. 그곳에 익숙하게 눕더니 대뜸 상의를 벗는다. 나는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동에 마치 이곳에 처음 온 박형민이 된 기분으로 멀뚱멀뚱 서 있어야만 했다.

‘시작하세요.’

잠에 취한 듯 몽롱한 목소리로 채원우가 말했다. 그걸 시작으로 걔의 몸에 덕지덕지 온갖 기구들이 붙었다. 곧이어 요동치는 그래프가 화면마다 떴다. 연구원들은 채원우를 앞에 두고 저들끼리 쑥덕대기 시작했다.

채원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심상치 않은 그래프를 앞에 두고서도 하품을 했다. 그러곤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반쯤 누운 터라 나보다 낮은 자세였는데도 내리깔아 보는 시선이었다. 안 그래도 졸음에 겨웠는지 반쯤 감겨 있던 눈이 더 졸려 보였다.

‘가서 채 헌터가 하겠다고 말하세요.’

‘뭘요?’

‘가이딩 제공자 아니세요?’

‘맞죠.’

‘한다구요, 그거.’

그러자 갑자기 이 결벽을 형상화한 듯한 공간에서 작은 소요가 일었다. 곧이어 채원우에게 약을 주었던 연구원이 감격에 복받친 목소리로 ‘원우야!’ 하고 외쳤다.

‘저 이제 잠들어요.’

그러나 채원우는 그 중심에 제가 있건 없건, 알아서 손목을 벨트로 고정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나는 고용되었다.

“진짜 이상한 새끼였어.”

회상이 끝나고 중얼거릴 때였다.

“뭐가요?”

갑자기 옆에서 불쑥,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자주 놀라는 편은 아니고 놀라더라도 티 나지 않게 심장만 펄떡이는 타입인 나는 상체를 일으켜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그곳에 내가 뒷담 아닌 뒷담을 하고 있던 당사자가 서 있었다.

“저요? 이상한 새끼?”

“……여긴 무슨 일로.”

“여기 제 방이에요.”

“아……. 여기 608호 맞죠?”

“맞아요.”

“그럼 제 방인데요. 무슨 착오가…….”

“아니에요. 제 방 맞고요, 같이 쓰는 거예요.”

아니, 지금 헌터청에 예산이 없나?

유전 대신 던전이 터진 덕에 희귀한 아이템과 재료가 비처럼 쏟아지는 대한민국에 재정난이 왔을 리가 없는데…….

그러자 채원우가 자신의 가슴과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같이 쓰는 거라구요. 우리.”

“그……. 왜요?”

“제가 그러고 싶다고 했어요.”

“어……. 왜요?”

“파트너라면서요. 그러는 거 아니에요?”

순간 나는 내가 계약서를 너무 대충 읽었나 싶었다. 혹시 내가 계약한 게 가이딩 파트너가 아니라 그, 육체적 관계…… 파트너 공고문이었나 싶을 정도로 채원우는 태연했다.

하지만 나는 채원우보다 일곱 살이 더 많았고, 여기서 말릴 수도 없었다. 뭣도 모르던 초창기에 숙이고 들어갔다가 인생 꼬일 뻔한 일이 몇 번이나 있던가.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보통 헌터와 가이드는 방을 따로 써요. 임무 때만 같이 활동하고 식사도 주로 따로 하고요.”

“선배는 자기 가이드랑 잔다던데.”

“아, 되게 매칭률이 낮으신가 보다…….”

아무래도 접촉으로 헌터들의 폭주하는 능력을 진정시키다 보니, 매칭률이 너무 낮은 날에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는데…… 너 지금 나랑…….

“저랑 자고 싶어서 같은 방 쓰고 싶다고 하신 거예요?”

“아니요.”

“그럼요?”

“그쪽이 재밌어 보여서요.”

“제가요? 저 그렇게 유머러스한 남자 아니에요. 채원우 헌터, 원래 얼굴 잘난 사람들은 유머까지 겸비할 수 없습니다.”

“그래요? 난 재밌던데.”

“와우…….”

일단 말이 안 통했다. 온갖 헌터를 만났지만 이런 새끼는 또 처음이었다.

채원우는 내가 얼이 빠지든 말든 아예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 무슨 룸메이트를 하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내 동의 없이.

보통은 헌터청에서도 쌍방의 의사를 묻는데, 이런 경우 없는 경우는 또 처음이네. 나는 어디서부터 컴플레인을 걸어야 하는 건지, 먹히긴 하는 건지 막막했다.

그런 내 속을 읽은 것처럼 채원우가 손목에 달린 시계에서 시선을 뗐다.

“바꿔달라고 해도 안 바꿔줄 거예요. 제가 꼭, 그쪽이랑 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저기요.”

“저 검사 남아서 나가봐야 해요.”

“이봐요.”

“그리고 그 이불, 제가 쓰던 건데. 이런저런 일도 하고.”

돈이 없어도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라 어디 가서 기죽어서 입 다문 적 없는 양백겸의 인생 중 가장 할 말을 잃은 순간이다. 씁, 하, 씁, 하 하고 숨을 들이마시던 순간부터 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 새끼.

“농담이에요.”

그러곤 사색이 된 사람을 앞에 두고 전혀 농담 같지 않은 말투로 지껄이곤 올 때처럼 홀랑 나가버렸다.

현관문 잠금 소리에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바로 이불과 시트를 모두 거뒀다. 세탁기가 어디 있지?

* * *

둘째 날 아침.

박형민과 나의 표정은 어제와 정확히 반대였다.

“생각보다 나쁜 분이 아니시더라고요. 그때는 현장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예민하셨대요! 매칭률 보더니 만족하시고 바로 같이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가이딩 밸런스 맞추는 거, 처음에는 아프다면서요? 저는 처음부터 괜찮더라고요! 어지럽지도 않고 토하지도 않았어요! 아, 제가 들은 게 있는데요, 형이 혹시 그 예전에 토했던…….”

“형민아.”

“네?”

“좀 조용히 좀 해줄래? 좀.”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간청했다. 그러나 형민은 눈치가 없었다.

“왜요? 아프세요? 혹시 어제 가이딩하셨어요? 전 매칭률 보고 결정하신다고 해서 오전에 하고 온 건데, 형은 못 봤는데. 형 언제 거기 다녀오셨어요? 많이 안 맞아요?”

답이 없었다. 나는 그냥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다 드셨어요?”

“아니. 살인마 피해서 간다.”

“사, 사, 살인마요?”

“어. 물음표 살인마.”

“그게 뭔데요?”

“그게 너야, 형민아.”

여전히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낯짝의 형민이를 두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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