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뒤에서 하품을 하며 쫓아오던 또 다른 핏덩이, 이제 막 에이전시에 들어와 첫 출동을 한 꼴인 형민이가 달려들며 아는 체를 했다.
“헐, 그 안에 진품들 다 보관하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라는데? 알프스 지하에 창고 뚫어서 묻었대.”
“거기도 터지면 끝인 거지 뭐.”
나는 무척 회의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승규는 낄낄대며 그것 역시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바로 저런 대책 없는 태도에 한때 우리가 좋은 친구 사이였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의심이 든다. 정말 우리가 친구 맞나?
하여튼 던전의 시대다. 이전의 기억은 모두 전생처럼 흐릿하며 신뢰도가 떨어지기만 했다.
“어어, 양백겸이. 너는 거기 아니야.”
귓구멍을 후비며 이 바보들 곁을 떠나려는데 갑자기 승규가 나를 낚아챘다.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돌아보니 씩 웃는다. 송곳니에 박아 넣은 금니가 반짝이며 녀석의 나이를 스물여덟이 아니라 대충 여섯 살에서 쉰넷 사이로 보이게 한다.
타고 난 동안 이목구비와 통통한 볼살, 그리고 갖춰 입은 늙수그레한 패션이 사람을 불쾌한 골짜기 그 자체로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건 또 몰랐네. 혹시 이 새끼도 헌터인가? 아니지. 정신계니까 굳이 꼽자면 에스퍼일지도?
“넌 저기야. 4층.”
“4층? 여기 4층이 있어?”
“있지.”
던전이 터지고 온갖 괴물이 나와서 그런가, 사람들이 초능력을 쓰고 그래서 그런가. 헌터청은 아직도 죽을 사(死)의 불길함을 믿고 4층을 없앴다. 처음 헌터청이 생길 때 상당한 도움을 준 헬리오스는 그런 미신을 믿지 않았지만, 저 높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이런 미신을 믿는 병원도 있는데 어떠냐며 4층을 빼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헬리오스는 더 이상 한국에 없다. 사실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에서 회계 감사로 쥐어 터지는 와중에 연속으로 개봉한 고발 다큐멘터리 때문에 아주 산산조각이 났다.
회사는 다큐멘터리가 허구라고 고발 조치를 했지만, 그 내용이 워낙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이라 대부분의 거래처와 나라에서 손절했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이랬다.
‘헬리오스에서 고아들을 데리고 헌터로 만드는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에 실패는 없었다. 새로 나온 약들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니까.’
구역질 나는 이야기였다. 한국 헌터청 역시 헬리오스를 재빠르게 손절했다.
사람들은 헬리오스의 존재감이 너무 커져서 미 정부 차원에서 선을 그은 것 같다, 다큐멘터리도 CIA가 지원했고 헬리오스가 고아원을 운영하긴 했지만, 그건 순전히 자선의 의미였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것도 다 잠깐의 소문이었다. 이미 없어진 회사에 몇 년 동안이나 관심을 쏟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드라마틱했거든.
나도 마찬가지다. 헌터청에 헬리오스가 남기고 간 게 무엇이든, 아니면 결국 남기지 못한 게 무엇이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게 지금 중요한 건,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4층은 5층이라 불리고, 모두 그곳을 5층이라고 여긴단 사실이었다.
“3층에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해. ‘비정형 생물 전담부’ 옆에 있는 검체실 열면 계단이래.”
“너는 뭘 그렇게 자세하게 잘 아냐?”
“정보 아니면 이 바닥에서 이렇게 일 못 물어 와~ 넌 나한테 감사해야 한다.”
“중간에서 커미션 좀 덜 떼라.”
가기도 복잡하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남는 손으로 승규의 선글라스를 낚아챘다. 어어, 하는 소리는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었다.
이미 내 얼굴을 익힌 경비 아저씨가 바로 방문객 통로로 통과시켜 줬다. 조금 있으면 관련인에 들어갈 테니 검사도 필요 없다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잘 지냈어요?”
“어어.”
“애들은. 초등학교 갔고?”
“얼마 전에 제주도로 전학 보냈다.”
“어휴, 멀리도 보냈네.”
아무래도 세종시에서 제주도는 많이 멀지. 벌써 애들이 눈에 밟히는지 경비 아저씨는 유독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구슬프게 적시며 고갤 끄덕였다. 신파를 찍을 생각은 없어서 단번에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마침 사람이 적었다. 할 일 없이 거울에 시선을 던지고 있자니 낯설면서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거울을 자주 보는 건 아니어서 볼 때마다 낯설기도 했다. 피곤해 보였지만, 그건 어제 밤늦도록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헌터청으로 돌아오기 전날에는 도통 잠이 오지 않으니까.
턱에 손을 대고 뺨을 감싸며 고갤 이리저리 돌려봤다. 음, 오늘도 잘생겼다. 승규의 겉모습을 서른 살은 더 늙어 보이게 만드는 데 일조한 촌스러운 선글라스는 내 얼굴에서는 제법 잘 어울렸다.
‘네가 잘난 거 아는데, 너도 그걸 안다는 티를 낼 때마다 재수 없어.’
승규가 투덜거리면서 그렇게 말했었는데 맞는 말이라서 그냥 웃고 말았다. 돈 잘 벌고 잘생겼으면 됐지. 이제 불안정한 레드존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그린존에 집만 있으면 좋겠다.
“이런.”
띵, 소리가 났을 때다. 확인을 하고 내리려 했더니 지하 2층이었다. 내려가는 걸 확인하지 않았던 거다. 신경질적으로 3층을 연타하고 있으려니 문이 열리고 모자를 푹 눌러 쓴, 온통 검은색 일색인 남자가 올라탔다.
고개를 숙인 채 계기판을 본 남자는 3층이 반짝이는 걸 보고는 다시 손을 내렸다. 3층에 가는 모양이다.
3층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남자와 나는 함께 내렸다. 얼핏 시야에 들어온 옆모습은 겨우 입술만 보였지만, 어린 듯했다.
일자로 꾹 다물린 입술이 고집스러워 보였다. 다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게 그래도 예쁜데 아깝다 싶었다. 하지만 모르는 남자 입술보다 중요한 건 통장 잔고였기 때문에 생각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는 검체실을 찾아 걸었다. 휘적휘적 걷고 있자니 뒤에서 쫓아오는 느릿한 발걸음이 느껴졌다. 걸음 속도가 다른데도 일정한 폭 이상으로 벌어지지 않았다. 고갤 푹 숙여서 정확히 어느 정도의 키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체실>
끝의 끝에서야 발견한 검체실에 괜히 헛기침을 하며 손잡이를 잡았다. 이만 그 음침한 녀석이 사라졌나 고갤 돌렸을 때.
벌컥.
옆에서 문고리를 내려버리고 그 녀석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
“허어.”
4층에서 일하는 애인가? 그래서 저렇게 캐릭터가 독특한가?
아무래도 헌터청 상주 직원은 대부분이 공무원인 터라 익히 본 적 없는 캐릭터였다. 나는 고갤 갸웃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은 성격이 급한지 두 계단씩 성큼성큼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걸음을 뗐다. 곧 비상구 문이 다시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4층이 저런 괴짜 모임이면 곤란한데.”
선글라스를 벗고 주머니에 꽂으며 고갤 저었다. 그리곤 손 갈퀴를 벌려 머리를 한 번 정리했다. 자연스럽게 흐트러지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닥닥 긁어봐야 빚밖에 없고 긁어봐야 먼지와 벌레만 나오던 집구석에서 받은 유일한, 그러나 확실한 밑천인 외모는 언제나 나를 배신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좀 긴장되네.”
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해도 아닌데, 4층은 처음이라 그런지 조금 긴장이 되었다. 문을 벌컥 열었다.
“…….”
그리고 펼쳐진 안은…… 뭐라고 해야 하나. 치과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극도의 미니멀리스트가 끝내 정리강박증과 결벽증까지 얻은 뒤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구축한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혹은 변태 사이코패스의 집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만큼 희고, 깨끗하고, 인간미 없고, 흰색 외의 색은 연한 하늘색과 약간의 은색 금속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
“저 왔어요.”
멍한 말투로 카드를 찍는, 음침해 보이던 녀석.
카드가 찍힘과 동시에 기계음이 났다.
―십삼 시 십칠 분, 등록번호 일칠공공공구, 헌터 채원우 기록 완료.
“어라?”
나는 조용히 웃었다. 채원우라는 이름을 모를 수야 없지. 둘둘 만 서류를 넣어둔 재킷 앞 포켓을 두드리며 채원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오늘부로 채원우 씨의 가이드로 근무하게 된 양백겸입니다.”
첫인상을 굳이 나쁘게 남길 필요는 없다. 이후 관계가 어떻게 되든 결국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에 불과하고 매사 원만한 게 최고니까.
내 손을 물끄러미 보던 채원우가 모자를 벗었다.
* * *
“헌터들이 원래 사회성이 좀 떨어지지.”
코를 팽 푸는 형민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형민은 아직 방문객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심심한 위로보다 더 도움이 되는 건 당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 몫으로 나온 과일을 조금 내밀었다. 통조림 과일이지만, 원래 가공된 식품이 뇌에는 더 효과적인 법이다.
“그래도 다짜고짜 꺼지라고 할 줄은…….”
“원래 그렇다니까? 나는 다짜고짜 뺨 맞은 적도 있어.”
“헐.”
“그것도 주먹으로.”
“아이고.”
형민은 금세 내게 안쓰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래도 내가 그런 시선을 받을 처지는 아닌데……. 보다 보니 애가 상태가 엄청 나쁜 건 아닌 모양인지라 건넸던 통조림은 돌려받았다. 다시 달라고 할까 봐 얼른 입에 황도 조각을 넣으며 물었다.
“그런데 꺼지란 말 한마디로 우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너 이번 일이 처음이라고 했지? 프리로도 안 뛰다가 온 거야?”
“저 생초짜예요. 애초에 여기 들어온 것도 스펙 만들자고 부모님이 추천해 주셔서 들어온 거고요.”
“흐음.”
“형은요?”
“나?”
황도 통조림의 엑기스라고 할 수 있는 국물까지 깔끔히 마시고 나서도 배가 고팠다. 더 먹을 게 있나 두리번거리면서 대꾸했다.
“나는 돈 벌려고 들어왔지.”
“짭짤해. 얘가 우리 에이전시에서 제일 잘 벌어.”
승규가 옆에 자릴 잡으면서 말을 보탰다. 그사이 또 어디서 가져왔는지 조악한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거꾸로 걸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뒤통수에 알이 가도록.
“낚시 가냐?”
“오. 가는데, 어떻게 알았어?”
묻는 내가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