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34)

간신히 조직원들의 눈을 피해 빈 방을 찾아낸 이원은 곧바로 카이사르를 그 안에 밀어넣었다. 단 둘이 남자마자 카이사르는 급히 그를 향해 돌아섰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여기,"

"어금니 꽉 깨물어."

이원은 대답 대신 조용히 말했다. 카이사르가 멈칫하자, 이원은 주먹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그의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뻑, 하고 정통으로 주먹이 맞아들어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순간 비틀거렸던 카이사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고개를 들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말을 할 기회는 없었다. 

곧바로 이원이 카이사르의 얼굴을 잡아 당겨 마구 키스를 퍼부었기 때문이다.

뜻밖의 상황에 카이사르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눈을 크게 뜨고 굳어져 있는 사이에도 그러나 이원은 연거푸 키스를 하며 입술을 더듬고 그의 체온을 확인했다.

하느님.

이원은 거의 처음으로 신을 찾았다. 정말이다. 살아있어...!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계속해 입술을 더듬는 키스에, 잠시 반응을 못하던 카이사르가 뒤늦게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강한 팔이 전신을 구속하고, 뼈가 저릴 정도로 강하게 안겼다. 이원은 행여나 카이사르를 잃어버릴까 두려운 것처럼 온힘을 다해 그를 마주 끌어안았다.

몇 번이나 입을 맞추고 확인해도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로 자신의 앞에 그의 실체가 있는 것이다. 이원은 눈가로 뜨거운 것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카이사르의 입술이 그의 관자놀이를 머뭇거리며 눈물을 가져갔다. 한참만에 이원은 간신히 떨리는 음성으로 애타게 입을 열었다.

"...사랑해."

그 순간 카이사르가 눈을 크게 떴다. 그대로 굳어진 듯 말을 하지 못하는 그에게, 이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너를 버리려고 해서, 미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원을 묵묵히 내려다본 것이 전부였다. 카잇르가 고개를 기울였다. 떨리는 입술이 닿고, 다정한 키스가 이어졌다.

그러나 얼마 안가 부드럽게 맞물렸던 입술은 이내 거칠게 뒤엉켰다. 무자비하게 입술을 연 혀가 안을 질러와 입안을 점령한다. 아프지 않게 물었던 입술을 카이사르가 다시 빨아들였다.

부드러운 혀가 다시 벌어진 입술로 들어와 자신의 혀를 두드리고, 혀의 돌기를 문지르며 안을 간질였다. 카이사르의 시선이 깊은 탄식과 함께 열망을 담고 그를 내려다보았을 때도, 이원은 그냥 내버려두었다.

희미하게 떨리는 손가락이 그의 뺨에 닿았다. 이원이 눈을 감자 카이사르는 그의 뺨에 그대로 입술을 눌렀다. 머리 뒤로 돌아간 손이 부드럽게 뒷목을 쓰다듬고, 다른 손이 허리를 잡아 끌었다.

무심히 끌려간 몸이 딱 달라붙었을 때, 이원은 다음을 예감했다. 카이사르가 이원의 바지 위로 엉덩이를 붙잡았다. 커다란 손에 잡힌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그는 몇 번이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사르의 앞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이원은 카이사르의 허리 뒤로 손을 돌려 마찬가지로 그의 엉덩이를 잡아 끌어당겼다. 묵직하게 달아오른 앞이 닿자, 카이사르는 금세 숨이 거칠어졌다.

짙게 물든 회색 눈동자에 유혹적인 연인의 얼굴이 비쳤다. 이원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해도 돼."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이사르의 손이 이원의 바지를 붙잡았다. 그대로 브리프와 함께 끌어내리는 손을 그대로 내버려두자 카이사르는 곧바로 그의 입술을 덮치며 몸을 쓰러뜨렸다.

콰당,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그들은 응접실의 카펫 위로 함께 넘어졌다. 곧바로 몸을 굴려 우위를 차지한 이원이 카이사르의 바지로 손을 가져갔다. 이미 그는 충분히 일어서 있었다.

이를 세워 문 입술을 지그시 끌어당기며 이원은 소리없이 웃었다.

카이사르가 허리를 들고, 이원은 단숨에 그의 바지를 벗겨버렸다. 다시 이원이 그의 위로 올라온 순간, 문밖에서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급히 문을 두드리는 것은 조직원의 음성이었다. 이원이 멈칫하자 그틈을 놓치지 않고 카이사르가 몸을 굴려 상위를 차지했다. 카이사르의 입술이 이원의 어깨에 내려앉고, 곧 지근거리며 자국을 남겼다.

밖에서는 계속 누군가 소리치고 있었다. 흥분과 함께 밀려드는 초조함에, 이원은 다급하게 외쳤다.

"괜찮습니다, 허억!"

그 순간 카이사르가 이원의 어깨를 세게 물어뜯어, 이원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도련님! 기다리십시오, 당장 문을 열겠습니다."

다급해진 이원이 온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됐다니까요! 아니, 됐으니까... 들어오면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손잡이를 덜컥거리던 움직임이 멈췄다. 이원은 한동안 문을 노려보다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에 카이사르는 이원의 셔츠를 밀어올려 탄탄한 복부에 입술을 문지르고 있었다.

"무슨 짓이야, 들키면 어쩌려고."

이원이 소리를 죽여 타박하자 카이사르는 웃었다.

"난 상관없어."

"여긴 적진이야. 그런 위험한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카이사르는 몸을 일으켜 이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널 안고 죽는다면 최고의 선택이지."

이원이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카이사르에게서 흘러나온 것은 기쁨의 탄식이었다.

"널 다시는 안을 수 없는 줄 알았어."

문득 이원은 시선을 내려 그의 몸을 확인했다. 크게 벌어진 셔츠 아래로 두터운 붕대가 둘러져 있는 복부가 들어왔다. 진짜였다. 상처의 크기로 이원은 그가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어다는 걸 깨달았다.

견딜 수 없이 아려오는 심장과 사랑스러움에, 이원은 다시 그의 목을 끌어안고 몸을 굴렸다. 손바닥을 쫙 펴 두 손으로 피부를 어루만지자 카이사르는 곧바로 반응했다.

그가 이원의 엉덩이를 잡고 주무르며 사이의 좁은틈을 찾았다. 망설이듯 주름진 곳을 문지르는 손가락에, 이원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해도 되는데."

이원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유혹하듯 속삭였다.

"그 전에 나한테 사과해."

갑자기 카이사르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성기는 잔뜩 부풀어 있었다. 당장 이원의 안에 들어가고 싶어 몸부림치는 페니스를 엉덩이 아래에 둔 채, 이원은 미소지었다.

"사과해, 미안하다고."

아래는 잔뜩 흥분한 상태이면서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그에게, 이원은 몸을 숙여 그의 머리칼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사과하지 않으면 섹스도 없어."

카이사르의 얼굴이 다시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이원은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다섯을 셌을 때, 카이사르가 입을 열었다.

"...사과, 할게."

이원이 원했던 형태는 아니었지만 해냈다. 이원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제 넣어."

그와 동시에 카이사르가 그를 쓰러뜨리고, 곧바로 이원의 안에 몸을 밀어넣었다. 지나치게 성급한 행위에 그만 페니스가 미끄러졌다. 카이사르는 흔치 않게 욕설을 내뱉으며 자세를 바꿨다.

누워있던 이원의 다리를 벌려 어개에 걸치고 드러난 틈에 자신을 밀어넣었다. 충분히 풀어주지 않은 상태에서 무자비하게 밀어넣어진 삽입에 이원은 미간을 모았으나 그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손을 뻗어 카이사르의 어깨를 잡고 허리를 숙여 그의 삽입을 도왔다.

"...응...!"

마침내 카이사르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원의 입에서는 진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등뒤로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가장 두꺼운 부분을 간신히 통과시키자 다음엔 긴 줄기가 밀고 들어왔다.

이원은 극심한 압박감을 느끼며 카이사르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움직인다."

마치 경고처럼 카이사르가 속삭였다. 깊숙이 들어간 페니스가 쑥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곧바로 다시 안으로 질러왔다. 상체를 일으킨 채 다리를 벌리고 그를 받아들이던 이원은 무심코 시선을 내렸다가 보고 말았다.

자신의 안을 드나드는 굵고 충혈된 페니스를.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고, 동시에 자신의 성기가 팽팽히 일어섰다. 이원은 당황했지만 드나드는 페니스를 생소한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이원의 안을 채우고 물러나던 카이사르가 그의 시선을 눈치챘다.

"뭐하는 거야?"

거친 숨결 사이로 물은 말에 그는 대답했다.

"보고 있어."

카이사르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원은 깨닫지 못했다.

굉장하다.

이원은 감탄했다.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카이사르의 페니스는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도대체 길이가 얼마일까. 자신의 안을 어디까지 채우고 있는지 문득 알고 싶어졌다.

호기심에 뒤로 물러나며 그의 성기를 밀어내자 카이사르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난폭하게 이원을 끌어당겼다. 동시에 깊숙이 성기가 파묻히고 이원은 아쉽게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빤히 지켜보고 있는 사이 의미 없이 그에게 흔들리기만 하던 몸이 자연스레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카이사르가 들어올 때 그를 빨아들이고, 나갈 대 풀어준다. 몇 번을 반복하자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하, 아, 핫, 하,"

몸이 출렁일 때마다 입에선 끊어질 듯 거친 교성이 새어나왔다. 이원만이 아니었다. 카이사르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입에서, 맞물린 곳에서, 계속해서 소리가 이어졌다. 

정신없는 사이에도 이원은 카이사르가 움직이는 대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카이사르의 상기 된 얼굴이 더 붉게 달라올랐다. 카이사르가 빨리 움직이면 그도 빨라지고 속도를 늦추면 역시 느려졌다.

"크흐..."

카이사르의 목 안쪽에서 끓어오르듯 교성이 질러나왔다. 이원의 다리를 끌어당겨 안은 그가 이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심연과 같은 검은 눈동자가 자신을 마주 본다. 아, 하고 카이사르는 탄색했다.

동시에 입술이 맞물리고, 카이사르의 무릎 위로 올라간 이원이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며 엉덩이를 문질렀다. 미친 듯이 신음하며 뱉어내는 격한 호흡 사이로, 쌓여있던 체액이 길게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란히 벽에 기대어 앉아 숨을 고르던 이원이 말했다. 여기저기 땀이 밴 이원의 몸에 카이사르가 고개를 숙여 입술을 문질렀다. 그가 이원의 뺨에 입술을 덧그리는 동안, 이원은 가는 한숨을 뱉어냈다.

"죽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어..."

마법의 주문처럼 되뇌던 말을 속삭이자, 귓바퀴를 깨물었던 카이사르가 입을 열었다.

"연극이었다는 거, 몰랐어?"

눈을 감고 그의 체온을 느끼던 이원이 갑자기 눈을 떴다.

"...연극?"

"그래."

아무말 없이 그를 바라보는 이원에게 이번에는 카이사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히 드미트리에게..."

"드미트리는 네가 죽었다고 말했어."

이원의 말에 카이사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넌,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던 건가? 내가 죽었다고?"

"그래."

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사르는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이원을 내려다보았다. 뒤늦게 이원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내가 여기 있는 거 몰랐던 거지?"

이원의 물음에 카이사르는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왜 여기 온 거야?"

"너무나 당연한 의혹을 제시하자 카이사르는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로모노소프의 군대가 필요해서."

"군대라니?"

이원이 다시 묻는 말에 카이사르는 말했다.

"반역자들을 없애려면 내부의 조직원은 쓸 수 없어. 얘기가 새어나가면 곤란하니까."

"네가 살아있다는 거?"

"그리고."

카이사르가 고개를 돌려 이원을 바라보았다.

"다 없앨 거라는 거."

저런 말을 저렇게 해맑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건 이 남자 뿐일 것이다. 이원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저 남자를 좋아하게 된 거지.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이원은 마음을 접고 고개를 들었다. 창으로 비쳐드는 이른 석양의 빛이 응접실 안으로 도망치듯 부서져 들어왔다.

문득 이원은 눈을 가늘게 떴다. 화사한 빛의 잔영이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태양의 마지막 햇살이 카이사르의 읕빛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이고, 빛의 잔상이 그의 등뒤로 파문을 일으키며 잔잔하게 흐러내렸다.

발소리가 들리고, 응접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나란히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본 순간 모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들이지만 차르의 넥타이는 비뚤어져 있고 이원의 뒷머리칼은 뻗쳐 있었다.

주먹질이라도 했을지 몰라.

조직원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둘이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렸다.

"그래, 어떻게 됐느냐. 조건은 잘 맞춘 거냐?"

"네?"

다정한 미하일의 물음에 이원은 되레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깜박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로모노소프 쪽도 만족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원은 흘긋 카이사르에게 시선을 향하며 덧붙였다.

"아마도요."

카이사르는 걱정말라는 듯 미소를 짓더니 곧 미하일에게 말을 건넸다.

"로모노소프 씨, 잠시 단 둘이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카이사르와 미하일이 단 둘이 별도의 회의실로 향한 사이, 이원은 드미트리와 함께 또 다른 응접실에 마주 앉았다. 드미트리는 편안한 얼굴로 시가를 꺼내 입에 물더니 뻐끔거리며 연기를 삼켜댔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원을 마주 보며, 드미트리가 빙긋 웃었다.

"용케 살아남았네."

"덕분에."

이원이 무심히 대답하자 드미트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진심으로 했으면 넌 뼛조각도 안 남았을 거야. 고맙게 생각하라고."

"그렇게 생각하죠."

뜻밖에 선뜻 말한 그의 음성에 드미트리는 멈칫하고 이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듣자니까 이번 계획은 드미트리 씨와 카이사르가 꾸민 연극이라고요."

"그래, 반대파를 잡기 위해서."

네가 아니라 나를 선택했어, 라고 말하듯이 드미트리의 음성은 거만했다. 이원은 서늘한 얼굴로 덧붙였다. 

"그런데 완전히 엉망으로 망쳐놨다던데."

"...뭐라고?"

금세 일어서는 드미트리의 음성에, 이원은 무심히 말을 이었다.

"어쨌든 노력은 한 모양이니 저도 지나간 일은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원은 일부러 사이를 두고 덧붙였다.

"앞으로 일을 꾸밀 때는 좀 더 치밀하게 하셔야 할 겁니다. 이쪽도 마냥 당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

드미트리는 기가 찬 듯 짧게 코웃음을 쳤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음에 나온 이원의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숨겨둔 재산이 상당히 많더군요. 드미트리 씨. KGB에 재직 당시에 형성한 현금과 부동산들, 스위스는 물론이고 독일에도 은닉 재산이 있고, 프랑스와 일본에도 땅이 있으시다고요?"

이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거기다 운영하는 비밀 클럽에서 불법 약물과 매춘을 주선한다는 말까지."

"그래서?"

드미트리는 가만히 이원을 노려보았다. 알면 어쩌겠느냐는 식이었다.

이원은 감정을 배제한 채 극히 사무적으로 입을 열었다.

"왜 제가 그 날 이후로 쭉 여기에 머물렀는지 전혀 짐작이 안 가십니까?"

드미트리가 히죽 웃었다.

"넌 겁쟁이니까."

"틀렸습니다."

이원은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여기엔 제가 필요한 모든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법 자금에 대한 자료, 필요한 인물에 대한 뒷조사, 증거물."

드미트리의 웃음이 사라졌다. 이원이 덧붙였다.

"참고로 드미트리 씨가 몇 살 때 기저귀를 뗐는지까지 자료가 있더군요."

드미트리의 표정이 굳어지는 반면 이원의 얼굴은 조금씩 미소를 띠었다.

"당신이 카이사르를 배신했다고 생각해서 나름의 복수를 준비했던 셈인데, 일단은 접어두겠습니다. 일을 제대로 못했다고는 해도 열심히는 했을 테니까."

아무 말이 없는 상대에게 이원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실수없이 일을 하는 쪽이 좋겠죠."

선심이라도 쓰듯 덧붙인 말에 드미트리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눈은 전혀 웃지 않은 채.

"너, 언젠가 죽이겠어."

이원이 부드럽게 대꾸했다.

"당신, 조만간 거지가 될 겁니다."

드미트리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어지더니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드미트리가 난폭한 걸음으로 응접실을 나가고 난 뒤, 또다른 인물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나 했더니, 그런 거였습니까?"

짧게 휘파람을 부는 래오니드의 모습에, 이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적했다.

"다른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 것은 실례가 아닙니까?"

"엿든는 건 스나이퍼의 본능입니다. 난 천재거든요."

이원이 귀찮다는 듯 그를 바라보자 래오니드가 빙긋 웃었다.

"어쨌든 로모노소프 씨에게 눈치를 받아가며 머물렀던 보람이 있군요. 역시 당신은 날 실망시키지 않아요. 정말 마음에 듭니다."

"즐거우셨다니 기쁘군요."

전혀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게 분명한 반응에, 래오니드는 소리내어 웃더니 이원이 앉아있던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자요."

래오니드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원은 의아해하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최고급 펄지에 금박으로 인쇄가 되어있는 개인 명함이었다.

[래오니드. 최고의  스나이퍼.  누구든지  죽여드립니다.  전화: 1-213-XXX-XXXX     Email killukillu.yahoo.com]

아무 말 없이 명함을 보고있는 이원에게 래오니드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번호를 알려주는 건 당신이 처음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해요."

이원이 고개를 들자 그는 자신있게 덧붙였다.

"누구라도 죽여줄 테니"

빙긋 웃은 뒤 나가는 래오니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원은 찌푸린 얼굴로 생각했다.

내 주변엔 왜 이렇게 남들 죽이겠다고 안달 난 사람들이 많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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