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거리는 통증이 온몸을 휘감아 돈다. 목이 마르고 욱신거렸다. 온몸이 불타는 것 같다...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을 때, 이원은 한동안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천장은 빙빙 돌고 바닥은 출렁였으며 공기는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이상이 있는 쪽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다시 눈을 감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응."
이원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몸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이상한 곳이 대체 어딘지 알아내기도 힘들 만큼 그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무심코 허리를 움직였던 이원은 몸 안쪽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에 그만 눈을 떴다. 뭔가가 내장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아래로 들어온 이물질이 섬세하게 안을 주무르는 사이 시야는 아까보다 밝아졌지만 온몸이 들뜨는 감각은 여전했다.
이원이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눈을 깜박이자 그의 위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깼군."
온몸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음성으로 카이사르는 입을 열었다. 자신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를 확인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가 전부 벗고 있다는 것이 이원에게는 더 충격이었다.
그러나 벗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침대에서 알몸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놀란 이원은 몇번이나 눈을 깜박여 지금의 현실을 파악하려 했다.
설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일순 현실을 도피하려 했으나 전신에 느껴지는 통증은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뒤이어 이원은 자신이 총에 맞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이게 무슨 짓이야...!"
경악에 가까운 비명이 새어나왔다. 이원은 곧바로 다리를 들어 카이사르를 걷어찼다.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몸안에서 뭔가가 빠져나갔다.
이원은 이를 악물고 급히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뒤에서 카이사르가 그의 발목을 붙잡아 그대로 끌어당겼다.
"아악ㅡ!"
처절한 비명이 목 깊은 곳에서 터져나왔다. 끔찍한 통증이 전신으로 퍼져갔다. 이원이 엎드린 채 숨을 헐떡이며 아찔한 통증을 견뎌냈다. 그의 위에서 카이사르가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한 음성으로.
"얌전히 있는 게 좋아, 평생 다리를 못 쓰게 해줄 수도 있으니까."
그 말에 이원은 황급히 몸을 돌려 자신의 다리를 확인했다. 두터운 붕대가 감겨있는 허벅지에는 벌써 벌겋게 핏물이 들고 있었다. 아픈 곳은 그곳만이 아니었다.
관통당한 배도 숨을 쉴 때마다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아팠다. 이원은 이를 악물고 숨을 헐떡이며 카이사르를 노려보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해? 이건 납치야."
"아아."
카이사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강간도 할거야."
순간 이원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남자, 진심인가? 눈을 크게 뜬채 굳어있는 그에게 카이사르가 손을 뻗었다. 반사적으로 물러나려 하자 카이사르는 곧바로 이원의 상처난 다리를 잡아 난폭하게 끌어내렸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다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원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를 악물었지만 자신의 약해진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등 뒤에서 카이사르가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원은 그나마 멀쩡한 손을 움켜쥐고 카이사르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빛나가고, 곧바로 반대쪽 어깨를 붙잡히고 말았다.
동시에 카이사르는 두터운 붕대 위로 강하게 어깨를 움켜쥐었다.
순간적으로 이원은 의식을 잃었다. 기절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해본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알지 못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는데, 아래쪽에서 다리가 갈라졌다.
곧바로 기억이 되살아난 이원은 다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당하다니 말도 안 된다. 아니, 이 상황 자체가 넌센스였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이원의 거친 음성에 카이사르는 냉소를 지었다.
"몰라서 물어?"
"몰라, 모르니까 말해!"
카이사르가 시니컬한 탄성을 내뱉었다.
"네가 날 버렸잖아."
순간 이원은 할 말을 잊었다. 버려? 누가 누굴? 머릿속이 혼란으로 뒤엉켜 버렸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이원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하고 내가 무슨 사인데?"
날카로운 질문에 카이사르가 멈칫했다. 이원은 가랑이 사이에 들어온 남자를 안간힘을 써 발로 차 밀어내며 이를 갈았다.
"키스? 애무? 그건 지나가는 거지랑도 할 수 있어. 네가 나랑 무슨 관곈데? 내가 널 버려? 하, 웃기지 마, 너랑 나는 애초에 버리고 말고 할 그런 관계도 뭣도 아니었다고!"
그 순간 단단하게 솟아오른 두껍고 뜨거운 것이 곧바로 이원의 안으로 질러왔다.
"아ㅡ...ㄱ!"
순간 비명을 지르고 만 것은 총상을 당한 곳의 아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깊은, 몸 안쪽에서 균열이 느껴졌다. 이원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시선을 내렸다.
화끈거리는 통증은 어깨부터 시작이었다. 붕대가 치밀하게 감겨있는 어깨에서 시선을 내리자 배를 감싼 붕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숨을 쉴 때마다 화끈하고 예리한 아픔이 느껴지는 복부에서 시선을 내리자 역시 붕대에 감겨 있는 자신의 허벅지가 들어왔다.
그리고.
힘없이 벌어진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남자의 몸이 들어와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이원은 눈을 크게 떴다.
"무슨 관계냐고?"
카이사르의 낮은 음성이 불길하게 이어졌다.
"다시 지껄여 봐."
그대로 카이사르가 허리를 밀어올리고, 이원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픔이 눈앞에 번지고 저절로 숨이 거칠어졌다. 이를 악물고 위로 달아나려는 이원을 카이사르가 허리를 잡아 세게 끌어당겼다.
이원은 그대로 주르륵 끌려가며 아래를 거칠게 처박혔다. 이원이 비명과 함께 크게 고개를 젖히는 모습을, 카이사르는 냉혹한 시선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아무 관계도 아냐?"
카이사르의 음성이 격하게 흩어졌다.
"내가 너한텐, 아무 것도 아니라고?"
거친 힐문과 함께 곧바로 그가 아래를 세게 쳐올렸다. 이원은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죽일 거라는 것을.
"떠나건 말건 그건 내 마음이야. 너 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카이사르의 얼굴이 무섭게 돌변했다. 그는 변명 따위는 듣지 않았다. 어금니를 갈아붙이는 예리한 소리와 함께, 그가 이원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다란 손에 힘줄이 일어서고, 그대로 숨통을 막아버렸다. 숨이 막힌 이원이 그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떼어내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목줄기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금세 이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컥컥 밭은 숨을 뱉어내며 부들부들 떠는 이원의 모습을 카이사르는 시니컬하게 내려다보았다.
목을 움켜쥔 채 카이사르가 허리를 쳤다. 넓게 벌어진 다리 사이로 남자의 분노한 성기가 안을 쑤시고 들어왔다.
"거지랑도 한다, 고."
어두운 회색 눈동자가 검게 물들어 이원을 노려보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허리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철퍽이며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이원의 귀에 들려왔다.
이원의 목을 쥔 채 허리를 움직이며 거칠게 안을 드나들던 카이사르가 분노와 격정으로 거칠어진 숨결 사이로 말했다.
"그럼 죽을 때까지 당해 봐."
드라이아이스처럼 차갑고 메마른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난 순간, 난폭하게 입술이 맞물렸다. 산소부족과 통증으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이원은 본능처럼 알아챘다.
이것은 고작 시작에 불과할 거라는 걸. 공포가 머릿속을 점령했다.
"비켜ㅡ!"
이원은 안간힘을 써 카이사르를 밀어냈다. 상체를 돌려 팔을 짚고 몸을 일으키자 곧바로 아랫도리가 쑥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면 몸에 힘이 빠졌다.
비명처럼 숨을 삼키며 다시 쓰러지고 만 이원의 뒤에서 카이사르가 허리를 잡아 끌어당겼다. 시트 위를 맥없이 끌려간 이원이 놀라 고개를 들자 카이사르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창백하게 질린 이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카이사르가 그의 다리를 활짝 열었다. 옆으로 누운 채 다리가 가위처럼 벌어지고, 드러난 약간의 틈으로 당연한 듯이 남자가 자신을 꽂아 넣었다.
"...헉...!"
난폭한 삽입에 참지 못한 비명이 다시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이원은 뒤늦게 이를 악물고 시트를 움켜쥐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통증이 번져갔다.
눈앞이 캄캄하게 내려앉는 것 같았다. 통증과 모멸감이 동시에 전신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카이사르에게 용서란 없었다. 위로 올라온 이원의 다리를 자신의 두터운 허벅지 위에 올린 채, 그는 빠르게 안을 드나들었다.
성기가 안을 쑤실 때마다 이원은 기절할 것 같았다. 달아나려 했지만 붕대에 감긴 상처가 의지를 배반했다. 허우적거리며 물러나려는 이원의 어깨를 카이사르가 붙잡았다.
커다란 손의 악력에 상처가 짓눌러지자, 이원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카이사르는 그러나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세게 어깨를 잡아누를 뿐이었다.
어느새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상처가 터져 피가 붕대와 시트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흐려진 시선을 향했을때 이원은 보았다. 자신의 피로 흠뻑 젖어 어깨를 쥐고 있는 카이사르의 강한 손을.
반사적으로 넘쳐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그는 대신 이를 악물었다. 분했지만 이원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다리를 벌리고 맥없이 아래를 점령당하는 것뿐.
"넌, 최악이야... 짐승 새끼."
이원은 헐떡이며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고작해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라는 것이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카이사르의 싸늘한 냉소뿐이었다. 마치 답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난폭하게 아래를 쳐올리는 허릿짓에, 이원은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피를 흘려도, 비명을 질러도, 저주를 퍼부어도 카이사르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원의 안을 드나들며 속살을 쑤셔댈 뿐이었다. 거침없이 전신을 뒤흔들며 이원의 얼굴에 드러나는 모든 오기와 분노, 좌절과 고통을 카이사르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잠깐 의식을 잃었던 모양이다. 이원은 힘겹게 눈을 떴다. 여지없이 천장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의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남자의 존재를, 그는 시선보다 몸으로 먼저 깨달았다.
이원의 안을 점령한 성기는 여전히 그대로 였다. 나가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이원은 사지를 늘어뜨린 채 극도로 쌓인 그의 분노와 욕정을 고스란히 몸 안에 받아냈다.
몇 번이나 의식을 잃었지만 눈을 떠보면 그 때마다 여전히 남자는 자신의 안에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이원은 느껴지지 않았다. 몇 시간, 아니.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그들에게 있었던 건 끝도 없는 섹스, 섹스, 섹스 뿐이었다. 이원은 몽롱한 머릿속으로 시니컬하게 생각했다. 일방적인 배설이 섹스가 될 수 있다면 말이지만.
"...후우..."
이원의 위에서 카이사르가 깊은숨을 뱉어내며 가늘게 몸을 떨었다. 동시에 이원의 뱃속도 끓어올랐다. 몇 번째인지 모를 사정이 이원의 안에서 이루어졌다. 뱃속이 모두 타인의 정액으로 차버린 것 같았다.
카이사르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온통 땀으로 흠뻑 젖은 남자의 얼굴이 이원을 응시한다. 그의 턱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이원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벌어진 입술사이로 내비치는 붉은 혀에 자신의 땀방울이 스며들자, 카이사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들뜬 한숨을 내쉬었다.
카이사르가 몸을숙이고, 동시에 몸안에서 두터운 성기가 밀려들었다. 이원이 움칠하자 입술을 맞물리며 카이사르는 키스를 했다. 매번 사정이 끝나면 카이사르는 너무나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마치 이것은 폭력이 아닌 것처럼 다정함을 위장하고 있다. 아래에 이토록 흉포한 짐승을 풀어놓고서 키스는 너무나 따뜻했다. 마치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눈썹에, 뺨에, 입술에 머물렀던 키스가 쇄골로 옮겨지고, 그는 다시 움직인다. 이원은 이미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
체념에 가까운 심정으로 다시 안을 비비며 문지르는 페니스를 내버려두자, 카이사르가 귓가에서 속삭였다.
"이제 아무도 네가 처녀라고는 못하겠지."
어딘지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은 음성이었다. 이원은 미간을 일그러뜨린채 그를 노려본 것이 전부였다. 온몸이 마비된 것 같ㄷ. 인간에게 있어 고통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극단의 상황에 처하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원은 사지를 늘어뜨린 채 욱신거리는 전신의 통증을 그저 방치할 뿐이었다. 카이사르가 이원의 허리를 잡아 자신의 위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그의 무릎 위에 누운 채로 끌려간 이원이 얼굴을 일그러뜨리자 카이사르는 반대로 허리를 젖혔다.
두 손을 뒤로 뻗어 기댄 채 그대로 상체를 흔들며 그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이원의 벌어진 틈 사이로 단단한 성기가 들락거리는 것이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왔다.
실컷 쏟아낸 자신의 체액이 이원의 안을 드나들 때마다 하얗게 거품을 일으키며 비어져 나왔다. 순간 카이사르의 미간이 일그러지며 아래쪽이 팽창했다.
"난 참고 있었어."
카이사르는 사정을 견디며 거침 숨결 사이로 내뱉었다. 이원이 누운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 웃기지도 말라는 듯이. 전신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도 그는 여전히 기가 쎘다. 카이사르의 입가에 시니컬한 냉소가 감돌았다.
"네가 날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지. 언젠가는. 그래서 개처럼 기다렸는데."
그는 허리를 얕게 쳐 튕기듯 이원의 안을 드나들었다. 움칠거리며 빈틈이 벌어졌다 맞물릴 때마다 이원이 미간을 일그러뜨리고, 반대로 카이사르의 숨결은 더욱 가빠졌다.
"그런데, 관계가 없다고?"
이원은 무서운 얼굴로 카이사르를노려 보았다.
"웃기지 마...! 누가 잘못했는데...!?"
이를 악물고 내뱉는 말에 카이사르의 눈가에 설핏 상처가 스쳐갔다.
"날 버리고 달아나려고 했잖아, 대가는 치러야지"
다시 카이사르가 그의 위로 몸을 기대왔다. 얼마간 빠져나갔던 성기가 다시 아랫살과 맞물리고, 이원이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을 삼켰다. 퉁퉁 부은 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카이사르가 말했다.
"해보자고, 누가 이기는지."
카이사르가 이원의 입술을 이로 지근거리며 씹었다. 아프게 문지른 입술을 떼어내며 카이사르가 말했다.
"내가 취하지 않고 끝까지 해도 네가 살아있을지 지켜봐주지."
그리고 카이사르는 다시 이원의 몸 안에 자신을 파묻었다.
"그러니까 차르, 차르를 상대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니까 섹스 상대는 나눠서 하라고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가까이에서 불평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원은 눈을 감은 채 소리를 듣고 있었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겨우 그가 카이사르 집에서 보았던 의사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때마침 머리 위에서 귀에 익은 음성이 이어졌다.
"치료나 해."
문득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이원이 무심코 미간을 찌푸리자 카이사르가 이원의 몸을 끌어안았다.
"쉬... 괜찮아."
따뜻한 입술이 메마른 관자놀이에 내려앉았다.
"울지 마, 괜찮아."
자신은 울고 있지 않았다. 이원은 그를 향해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둘러주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늘어져있는 이원의 모습에 의사는 암담해하며 대답했다.
"제발 참아주세요. 이 정도로 해대면 죽어버린다고요."
안타까워하는 음성에 카이사르는 무심히 답했다.
"이 녀석은 괜찮아."
뜻밖의 말에 의사는 당황한 듯 눈을 깜박였다가 서둘러 말했다.
"아, 물론 체력은 대단한 분이십니다. 이 정도로 차르를 받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네스북 감이죠. 하지만 그래도 상대는 사람이라는 걸 염두에 두시고 쉬엄쉬엄 하시는 게..."
카이사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원의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천천히 떼어줬을 뿐이다. 의사가 다리에 붕대를 감는 것이 느껴졌다. 이원은 욱신거리는 통증에 무심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곧바로 카이사르의 입술이 그의 좁혀진 미간에 닿았다.
"그럼 약을 두고 갈 테니까 꼭 챙겨드시고... 잊지 마세요, 항생제니까 꼭 드시게 해야 합니다."
신신당부를 한 뒤 의사는 방에서 나갔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리고, 곧 문이 닫혔다.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 이원은 눈을 번쩍 떴다.
설마,
불안했지만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원은 여전히 벗고 있었고, 온몸이 말라붙은 정액과 새로 흩뿌려진 정액투성이였다. 카이사르는 이원의 등뒤에서 그를 안고 있었지만 꼭 맞붙어있는 몸은 의심의 여지없는 알몸이었다.
정사의 흔적이 역력한 침대 위에서 나체인 채로 누워 사람을 방에 들이다니, 비록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이런 꼴로 누워있는 사람을 치료하다니 어떤 의미에선 대단한 의사였다.
이원이 눈을 떴다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카이사르가 등뒤에서 그의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이원은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봐야 듣지 않는다.
또다시 짐승처럼 박아대겠지. 조금만 움직여도 아래쪽에서 질질 흐르는 카이사르의 정액을 느끼며, 이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밤낮없이 일주일을 꼬박 해댔는데 이 남자는 아직도 스탠바이 상태였다. 이원은 아래쪽에 닿는 카이사르의 묵직한 하반신을 느끼며 각오를 새겼다. 다시 또 시작인가, 하고 그는 눈을 감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욱씬한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꼭 달라붙은 채 카이사르는 뒤에서 이원을 끌어안고 그의 맨살에 키스를 하고 있었다. 머리에, 목에, 어깨에, 반복되는 키스는 욕정보다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이원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짓을 당하고 용서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문득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날개뼈에 닿은 입술이 떨어지고, 문득 한숨이 와닿았다. 등뒤에서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가지 마."
가만히 귓바퀴를 입술로 머금는 행위에, 이원은 저절로 나오는 신음소리를 억지로 삼켜냈다. 카이사르가 탄식처럼 속삭였다.
"다음에는 정말로 죽일 거야."
안타까운 중얼거림에, 이원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잠든 척 고른 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카이사르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카이사르가 이를 악무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그는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달아나지 마..."
낮은 속삭임과 함께 카이사르가 가만히 이원을 끌어안았다. 이원은 그런 그에게서 몸을 돌려 누운 채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카이사르는 그 상태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원의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원이 다시 잠들때까지 그의 허리를 안은 팔은 결코 풀어지지 않았다.
외관만큼이나 넓은 저택은 복도 또한 끝도 없이 길었다. 초대를 받은 남자는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걷는 동안 복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려있는 예술품들을 하나씩 관찰했다.
꽤 취미가 고상한 주인이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로모노소프의 주인이라면 이 정도 취미는 갖고 있어야 하는 건가. 무심코 웃음을 띠었을 때였다. 앞서가던 집사가 걸음을 멈추고 응접실의 문을 열었다.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한 후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엔 노신사가 그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미하일 로모노소프. 로모노소프 조직의 늙은 사자.
노쇠했지만 사자는 사자였다. 자신을 향한 그의 날카로운 안광을 심갈하며 남자는 쓰고 있는 중절모를 벗었다. 물끄러미 남자를 탐색하던 미하일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바로 래오니드군."
조용한 음성으로 그는 물었다.
"보수만 맞는다면 어떤 일이든 해결해 준다면서?"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래오니드는 미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전문 킬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그의 친절한 미소에, 미하일은 길게 시간을 끌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찾아줄 사람이 있네."
그 말을 신호로 집사가 다가와 테이블 위에 사진을 내려놓았다. 무심코 사진을 손에 들었던 래오니드의 표정이 곧 놀람으로 바뀌었다. 미하일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 아들일세. 일주일 전에 갑자기 사라졌어. 이 나라를 떠난다고 했는데 비행기에도 선박에도 이름이 없네. 유일한 증인을 찾았는데 어떤 남자가 내 아들을 차에 태워 가는 걸 봤다고 하더군."
미하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세르게예프의 후계자가 저지른 게 분명해. 당장 내 아들을 찾아주게. 돈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네."
래오니드가 사진으로 손을 가져가는 것을 보며 그는 말했다.
"그리고 세르게예프의 후계자는 처리해 주게."
미하일의 음성에는 원한이 가득했다. 나이 든 사자의 울분에 찬 포효를. 래오니드는 공감했다. 무심히 사진을 확인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이 아들이라고요~?"
이원은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총에 맞고 끌려온 지 열흘 째. 아직도 그는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끝이 없던 섹스는 8일 만에 겨우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도 이원이 출혈과다로 긴급 수혈이 필요할 정도가 되지 않았다면 그 뒤 얼마나 더 오래 이어졌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는 역시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이원은 카이사르에게 붙잡힌 상태고, 지금으로서는 카이사르가 떠밀어도 나갈 수 없다. 아예 침대에서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이원은 간신히 옮겨진 새 침대에 누워 하릴 없이 천장의 무늬를 세고 있었다. 몽롱한 머릿속에서도 앞으로의 일은 답답하기만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미하일은 카이사르를 죽이려 할 것이다.
전쟁을 불사할지도 모른다. 카이사르 역시 수시로 미하일을 죽이려 하고 있다. 그만 두라고 말한다고 해서 들을 상대들도 아니고 자신에겐 그럴 권리도 없었다.
애초에 이 상황은 그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떠나지도 못하고 카이사르에게 잡혀 감금이 되다니.
이원은 갑갑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창밖에 눈송이가 나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꼼짝없이 누워만 있던 이원은 솜털처럼 나리는 눈송이를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한동안 창밖을 보고 있던 이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욱신거리는 아픔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간신히 일어나 앉은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아아, 알고 있어. 지금 곧 갈 거야."
카이사르는 손목의 커프스를 채우며 한 쪽 어깨에 전화기를 걸친 채 통화를 했다.
"글쎄, 한 시간 쯤?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말을 하며 창밖을 보았던 카이사르가 말을 멈췄다. 창밖에 큰 키의 남자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눈처럼 흰 셔츠에 아래로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그가 느릿느릿 눈을 밟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본 카이사르가 말했다.
"아니, 두 시간 쯤 걸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