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102)화 (102/102)

#102

‘…뭐지?’

이겸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낯선 물건을 관찰하는 고양이처럼 간이 테이블 쪽으로 기웃거리다 가까이 다가가 나무판자를 손으로 쓸어 보기도 하고 의자를 끌었다 빼 보기도 했다.

나보고 앉으라는 건가?

의자에는 푹신한 방석도 달려 있었다.

한동안 관찰하던 이겸은 뭐가 됐든 더 이상 바닥에 주저앉아 자료를 읽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전에 못 읽은 파일들을 꺼내 왔다.

자료는 마치 자경단과 블러드 헌터의 기나긴 역사와도 같았다. 예부터 있었던 사건, 사고. 블러드 헌터의 주요 인물들과 그들의 이능, 혹은 현재 수감돼 있거나 사망한 인물, 그리고 그런 그들을 잡거나 대치했던 자경단까지 모조리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겸이 읽는 자료들엔 서도현의 이름이 자주 등장했다.

블러드 헌터를 얼마나 많이 잡아넣었던 거야. 이제 그의 이름이 보이면 절로 기함할 정도였다. 만약 서도현이 자경단을 나오지 않았다면 배상우의 역할을 위임받을 이가 김형규가 아닌 그로 확정됐을 게 틀림없었다.

이겸은 계속 페이지를 넘기며 속독했다. 이렇게 굳이 시간을 소비해 가며 자료들을 읽어 두면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라는 이유로.

블러드 헌터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알고 몇몇 인물의 이능은 외워 두는 게 훨씬 마음 편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어느 소속 집단의 사람이고, 무슨 이능이 있고, 어떤 사상을 갖고 있고 주로 함께 다니는 동료는 누구인지 등, 심지어 어떤 인물들의 자료에는 식습관까지 세세히 적혀 있기도 했다.

이겸은 그 모든 걸 꾸역꾸역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읽어야 할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제 겨우 책장 한 줄에 꽂힌 파일들을 읽은 게 전부였다.

‘하아…. 이걸 언제 다 읽냐.’

이윽고 노가다는 아무 생각 없이 할 때가 제일 편한 거라며 뒷생각은 하지 않고 무작정 자료를 읽어 나갔다.

“그렇게 본다고 뭘 알긴 해요? 질리지도 않고 오시네.”

이겸은 고개를 슬쩍 들었다. 이전 자신과 서도현에게 시비를 걸었던 자. 이름이… 이주영이었다.

한두 번 시비 거는 건 무시하고 넘어가지만 이번에도 무시한다면 그건 착한 게 아니라 호구였다.

그들과 사이좋게 지낼 의향은 있지만 호구가 되려는 건 아니었다.

“그쪽도 질리지 않나 봐요. 매일 시비를 거는 걸 보니. 자경단은 한가한가? 보통 일 없는 사람이나 텃세를 부리던데….”

이겸은 일부러 중얼거리듯 말하며 읽던 자료로 눈을 돌렸다.

“…저기요!”

아, 작년에는 이런 일도 일어났었구나. 이주영의 말을 간단히 무시하며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겼다.

보다 못한 그가 재차 말을 걸었다.

“…아담에 관한 자료는 다 읽었어요?”

“아담이요? 대부분은.”

“그럼 아담의 최백길이라 하는 사람의 최신 근황은 뭔 줄 아세요? 진짜로 읽은 게 맞다면 이 정도는 알고 있겠죠.”

이겸은 빤히 그를 바라봤다. 지금 퀴즈 내는 건가? 최백길이라면 읽은 적 있다.

그를 설명하려면 먼저 아담의 정치 체제부터 알아야 했다. 단 한 명이 권력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세 명이 공평하게 권력을 나눠 갖고 무슨 일이 있을 땐 회의로 결정한다.

정확히는 아담에 세 명의 수장이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최백길은 그 셋 중 하나가 아끼는 부하였다.

“그 사람은 지금 수감되어 있지 않나요?”

“…….”

이겸이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잠시 멈칫하던 이주영이 거듭 물었다.

“수감된 날짜는요?”

“작년 6월 8일이요.”

“이능은?”

“불.”

이주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럼 이거는? 저거는? 하며 계속해서 문제를 냈다. 이겸은 그럴 때마다 머뭇거리지 않고 곧잘 말하곤 했다.

심지어는 더 들어가서 아담의 유명 인물이 아닌, 현재 수용소에 잡혀 있는 졸개들의 신상 정보도 물어봤다. 아예 맞히지 말라는 고약한 심보가 가득 담긴 질문에 이겸은 더욱 태연하고 뻔뻔하게 정답을 맞혔다.

딱 보아도 자신이 답을 틀리면 ‘거봐, 네가 자료를 읽어 봤자지’ 하며 업신여길 게 한눈에 보였기에 줄줄이 답을 말했다.

더는 물을 게 없던 이주영의 말문이 막히자 이젠 이겸이 반박했다.

“김보성이라는 사람을 아세요? 뉴튼의 주요 멤버던데.”

“당연하죠. 이능은 회복이요. 치유계잖아요.”

“등급은?”

“중.”

“수감소에 들어간 날짜는요?”

“그건….”

이주영이 망설이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몇 달 전이라는 건 기억하는데 정확한 날짜는 알지 못했다.

이겸은 무심히 정답을 알려 주었다.

“1월 13일이요.”

“아, …잠깐 헷갈렸던 것뿐이에요.”

“그랬겠죠. 근데 그럼 헷갈리지 않도록 더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째 저보다 더 모르는 것 같네요.”

일부러 실소를 터트려 이주영을 약 올리며 말했다. 그는 쪽팔림에 흉흉한 얼굴로 이겸을 노려보다 자료실을 벗어났다.

이제야 방해꾼이 사라졌네.

다시금 정적이 찾아오고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스르륵, 문이 열리며 또 누군가 이곳에 발걸음 했다.

‘또 누구….’

A였다. 이겸은 못 본 척했지만 파일을 챙겨 제 앞 맞은편 의자에 앉는 그를 모른 척하기란 힘들었다.

뭐지? 원래도 자주 오는 건가?

그렇지만 이겸이 맨 처음 자료실에 자주 방문하기 시작했을 때 A는 잘 오지 않았다.

혹시…. 원래 자료실은 A가 죽치고 있는 공간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방문객의 출입으로 한동안 불편해서 오지 못했다가 그 방문객이 제집처럼 둥지를 틀고 나갈 생각을 안 하니 이제라도 다시 오는 건가.

A에게 방해꾼은, 불청객은 나였나?

이겸은 갑작스레 미안함이 몰려왔다. 아니 그럼 말을 해 주든가. 대화가 안 통하니 이리 답답할 수가 없었다.

우선 자리라도 비켜 주자 싶어 읽었던 자료를 정리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A가 저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전 이만 가 보려고….”

툭툭. A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뭐지? 무슨 의미지?

이내 어렵지 않게 알아챘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테이블과 의자가 생긴 이유.

‘그…. 바닥도 딱딱하고 찬 기운도 올라오고…. 계속 앉아 있다 보니 다리도 저려서요.’

그 말 때문에 신경 써 준 건가? 대놓고 그게 원인이냐고 물어봤다가 아니기라도 하면 창피함은 자신의 몫이었다. 이겸은 일단 최대한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며 얼른 인사를 건네고 자경단을 나섰다.

후우. A와 있는 건 은근히 숨 막히는 기분이었다. 말이 안 통해서 그런가? 서도현도 다른 의미로 대화가 안 통하긴 했지만 그만큼 갑갑하진 않았다. 오히려 최근엔 사이가 가까워지기도 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내일은 강태하와 아침 운동을 마치고, 차라리 일찍 자경단을 들러 A가 없는 사이 자료를 보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니…. 왜 오늘도. 일단은 무시. 자료를 열람하고 있으면 볼일을 끝낸 후 나가겠거니 생각했다. 근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 세 시간이 넘어 이겸이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까지도 A는 필요한 자료들을 찾으러 잠깐 일어날 뿐 자료실을 떠나지 않았다.

여기가 집무실도 아니고 무슨 자료실에 계속 죽치고 있는 거지? 그보다 안 바쁜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A는 어느 시간대든 있었다.

슥.

A가 근처 편의점에서 파는 것으로 추정되는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우연히도 이겸이 가장 좋아하는 샌드위치였다.

“…저 먹으라고요?”

끄덕.

“네…. 잘 먹겠습니다.”

이겸은 힐끔 그의 눈치를 보고는 봉투를 까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자료 위로 부스러기를 떨어트리진 않을까, 마치 자료실의 지박령 같은 A가 그 행태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까 아주 조심스럽게 먹었다.

하지만 이겸 역시 최근 자신이 자경단들 사이에선 자료실의 지박령이라고 불리고 있단 걸 알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이겸이 감사의 의미로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 갔다. 간식거리라 해 봤자 A는 남들 앞에서 가면을 벗지 않으니 그저 챙겨 뒀다 나중에 혼자 있을 때 드시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점점 A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며 어색함이 가라앉고 나니 함께 자료실에 있는 게 더 이상 숨막히진 않았다.

“혹시 수화 하세요?”

이겸이 묻자 그가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수화 공부해 왔는데 그걸로 대화해 보시겠어요?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해서…. 싫으시면 굳이 안 하셔도 돼요. 강요는 아니니까.”

그러자 A가 움직였다. 가죽 장갑을 낀 양손의 주먹을 쥔 채 고개를 숙임과 함께 양팔을 아래로 내렸다.

이겸은 전날 공부해 온 것들을 토대로 그 의미를 추정했다.

“안녕…하세요.”

이후 A가 또 다른 행동을 취했다. 이겸은 미간을 좁히며 그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사전에 공부했다지만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 행동과 뜻을 매치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다.

“자…료는. 많이 읽었나요…. 아, 네. 덕분에 많이 알게 됐어요.”

슥슥.

“불, 편한…거 있으면…. 말. 해 주세요. 불편한 점은 아직 없어요. 매주 있는 회의도 이제 익숙해졌고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그 수화를 끝으로 대화가 끊겼다. 이겸은 볼을 긁적였다. 이렇게 해석이 느릴 줄 알았으면 그냥 종이에 적어 대화하는 게 더 빠를 뻔했다. 그래도 종이와 필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알아 두면 좋긴 하니까….

그날은 또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땐 점점 다양한 인사와 수화들을 늘려 가며 대화했다. 이겸이 수화를 알아보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자료실에서 자료를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끔은 A와의 대화 시간이 주가 될 정도로 늘었다.

거기에는 주승태의 사건 때 자경단의 차 창문을 깨트렸던 적이 있는데 기억하냐, 그땐 미안했다. 수리비는 정말 괜찮냐부터 시작해 그날 있었던 회의 내용, 우리 래터 길드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등, 수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주로 이겸이 말하면 A가 수화로 호응하는 정도였지만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단 게 의외로 즐거웠다.

아직까지 이겸이 자경단에서 하는 거라곤 도현과 함께 정기적으로 회의를 나가거나 자료실에서 자료를 살피는 일밖에 없었다.

현재 자경단의 일손이 그리 부족하지도 않았고, 큰 사건이 생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겸은 서도현과 함께 래터의 일을 병행해 가며 자경단에 출석도 하고, 복싱도 다니고, 또 아침에는 강태하와 함께 운동, 틈틈이 시간이 날 때는 이능강화 훈련도 했다.

무척이나 바쁜 나날들이었다. 그사이 6개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겸이 형, 오늘도 자경단에 가게요?”

“오늘은 좀 쉬려고. 자료도 전부 다 보긴 했으니까.”

“와! 그럼 저희 오늘 일 끝나고 회식하러 가요!”

“회식은 맨날 하는 거잖아.”

“맨날 해도 맛있잖아요!”

오늘은 남궁산하의 탈영 사건 때문에 협회와 약속했던 크리처 처치 중 수수료에 오차가 생긴 구간이 있어 잠깐 협회에 들렀다.

“앗, 얘들아! 그럼 내가 살게!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니까.”

“그게 왜 형 때문이야. 숫자 놀음도 제대로 못 하는 협회 직원 탓이지. 겸이가 발견 못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서도현이 장난스레 웃으며 이겸을 칭찬했다.

“원래 돈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모자라. 너희 옛날에도 모른 척 떼인 돈 많은 거 아니야?”

“오빠. 회식 장소로 여기 어때요? 맛있어 보이는데.”

“아무거나 상관없어. 서도현한테 물어보든가.”

돈 떼인 적 없냐는 말엔 대답도 하지 않고 저녁 식사 메뉴에 푹 빠져 검색에 나선 도아를 나 몰라라 했다. 뒤에서 ‘둘은 맨날 서로한테 물어보래’ 하는 투덜거림이 들려왔지만 못 들은 척 넘겼다. 도아는 대상을 바꿔 남궁산하에게 다가가 식당을 고르는 데 열중했다.

그때였다.

“저… 저! 래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겸의 앞을 가로막고 부끄러움에 벌게진 얼굴로 고함쳤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저기요. 지금 그쪽….’

‘으아아아악!’

‘아니, 지금 당신은….’

‘오, 오지 마! 오지 마!’

6개월 전 CA 지역에서 마주친 예비 각성자였다.

…래터에? 왜? 무슨 이득이 있다고?

래터 소속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이겸은 도무지 그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래터들이 한참을 대답이 없자 그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 외쳤다.

“저! 래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들어가게 해 주세요!”

〈1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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