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101)화 (101/102)

#101

김형규의 말을 시작으로 이겸과 도현에게 시비를 걸던 이도 묵묵히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도 상하 관계는 확실히 존재하는 듯싶었다.

이어서 어떤 이가 앞으로 나와 마이크에 입술을 붙인 채 말했다.

“1팀의 팀장, 최지호입니다. 저희 1팀은 최근 아담의….”

이겸은 얌전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1팀은 주로 아담을 추적하고 있는지 그들의 최근 행적, 최근 조사해 새롭게 알려진 아담의 주요 멤버들 등 여러 가지를 발표했다.

발표가 끝나면 질문들이 이어지고, 질문에 대한 답을 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라 조사를 더 해 봐야 한다는 답변을 했다.

‘대충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건가.’

그 후에도 2팀의 팀장, 3팀의 팀장이 앞으로 나와 발표했다. 자경단의 주요 팀은 총 3팀까지 있는 듯했다.

이겸은 발표 자료와 자경단들이 하는 질문을 빠짐없이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다.

그리고 회의의 마지막. 오르카의 이야기가 언급됐다. 이겸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권상혁….’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오가는 얘기를 경청했다.

현재 소재는 파악되지 않지만 크리처 사육장에 관해 밝혀낸 사실들과 이미 체포되어 수용소에 있는 델로 멤버들을 조사해 알아낸 오르카의 주요 인물과 그들의 이능, 우상시되는 크리처 등등. 수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만약 오르카를 또 한 번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때는…. 그때야말로 권상혁을.

주먹이 절로 까득 쥐어졌다.

그러던 사이 회의는 막바지로 달려갔다.

김형규가 그동안 팀장들이 발표한 내용을 요약해 재차 말해 주며, 앞으로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알려 주었다.

이런 게 원래 아저씨가 하던 일이었나. 이겸은 새삼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김형규가 말할 동안 A는 고개만 끄덕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겸도 어느 정도 진행 방식과 흐름을 파악해 갈 무렵, 회의가 막을 내렸다.

그러자 자경단원이 거듭 비아냥거리며 다가왔다.

“정작 회의하니까 한마디도 못 하네?”

이 사람은 지겹지도 않은지 회의 전이나 끝나고서나 여전히 시비였다.

“이주영. 그만해.”

그때 A와 함께 나가려던 김형규가 그를 말리더니 이겸과 도현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자리를 떴다. 이겸이 그런 김형규를 붙잡았다.

“저기요.”

“네.”

“좀 더 알고 싶은 정보가 있는데 자료실 같은 덴 없나요?”

예전에 배상우의 사무실에 갔을 땐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정리해 놓은 자료들이 있었다.

“…그건 외부인에게….”

불쑥 A가 김형규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젓고는 이겸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저요?”

끄덕. 이내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입구 쪽을 가리켰다. 눈치 빠른 이겸은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알아챘다.

“…따라오라고요?”

다시 또 끄덕.

이겸은 무의식적으로 서도현을 바라봤다. 그가 잘게 웃으며 말했다.

“다녀와.”

“…어, 응.”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A를 따라가다가 뒤를 돌아 서도현을 쳐다봤다. 김형규라는 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예전엔 함께 싸우던 동료였을 테니 회포라도 풀려나 싶었다.

A의 뒤를 따라 이동해 도착한 곳은 서류가 가득 쌓인 어느 자료실이었다. 이전에 본 배상우의 집무실보다 더 거대한 양의 서류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걸 다 봐도 돼요?”

끄덕.

그나저나 안 가나? 자신만 이곳에 데려다 주고 다른 일을 보러 갈 줄 알았던 A가 여전히 이곳에서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 봐도 된다면서 혹시나 금기시되는 자료를 보면 말리려고 하는 건가? 그럼 그전에 뭐는 안 된다고 짚어 주든가. 대화가 안 통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겸은 끄응, 눈썹을 찡그리다 진열된 목록을 훑었다. 제일 먼저 집은 건 권상혁이 있는 오르카도 아니고, 재우가 있었던 델로도 아니었다. 블러드 헌터 조직 중 가장 힘이 세고 악명이 자자한 아담이었다.

힐끔 A의 눈치를 보며 자료를 폈지만 말리는 기색은 없었다. 대체 왜 안 가고 있는 거지.

자료실에는 어색한 공기와 함께 종이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다.

***

“겸아.”

옆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A의 존재도 망각하고 한동안 자료를 살피고 있을 무렵, 자료실 문이 열리며 서도현이 들어왔다.

“여기 있었네. 이제 가자.”

아직 덜 보긴 했지만 꼭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이겸은 미련 없이 보던 자료를 덮어 제자리에 정리하며 물었다.

“너는? 그 김형규란 분이랑 할 얘기 있는 거 아니었어?”

“지루한 옛 얘기지 뭐.”

“그렇다면야. 근데 넌 자료 안 봐도 돼?”

“옛날에 봤던 거야.”

직접 겪은 일도 있고. 도현이 지금은 활자가 된 자료들을 쭉 훑으며 중얼거렸다.

이겸은 “그렇군.”이라고 짤막하게 호응하며 마지막으로 A에게 인사했다.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아직 다 못 봤는데 혹시 다음에 또 와서 읽어도 될까요?”

A가 고개를 주억이는 걸 확인하고서야 이겸은 다행이라 여기며 서도현과 함께 자료실을 나섰다.

“자료는 좀 봤어?”

“응. 근데 양이 많아서 다 읽지는 못했어.”

“자주 가서 봐.”

“그래도 돼?”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던 이겸이 호기심에 물었다.

물론 A가 허락하긴 했지만…, 매주 있는 회의 날에만 찾아가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른 날에도 찾아가 봐도 되는 건가?

“안 될 건 또 뭐야.”

도현이 담백하게 대답했다.

아, 그렇지. 안 될 건 또 뭐겠어. 이겸은 순순히 긍정했다. 이미 공개한 자료실인데 꼭 회의가 있는 날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자료의 양이 방대하니 다 읽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고, 내일은 강태하와 아침 운동했다가 학교 수업 듣고…, 저녁엔 CA 지역 처리.

그럼 내일 자경단에 가는 건 무리고, 내일 모레라도 가야겠다.

***

“…안녕하세요.”

“네, 들어오세요.”

김형규가 기지 문을 열어 주며 이겸을 맞이했다. 이겸은 오늘 서도현 없이 홀로 자경단에 방문했다.

“출입증이랑 지문 등록은 다음 주까지 마쳐 놓을 테니 그때부턴 연락 없이 편히 들어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자료실은 왼쪽으로 가시면 되고 그 외 볼일 있으시면 제게 연락 주세요.”

“네.”

여러 유의 사항을 듣고 김형규와 헤어진 후, 자료실로 향했다.

다 좋은데 의자가 없어서 아쉽단 말이야.

자료를 보려면 무조건 서서 읽어야 했다. 아니면 그대로 바닥에 앉거나.

물론 자경단원들은 보고 싶은 자료를 꺼내 가 각자 편한 곳에서 보겠지만 현재 이겸은 몇몇에겐 그저 불청객에 지나지 않았다.

마땅히 허락받고 보고 있지만 그 몇몇은 웬 외부인이 들어와서 자기네들 자료를 훔쳐본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것도 한가로이 차나 마시며 본다고 생각하면 없던 거부감도 생길 게 뻔했다.

물론 서도현 마인드로는 ‘지들이 그래 봤자 어쩔 건데.’였고, 이겸도 조금은 동감했다.

그래도 한두 번 보고 말 사이도 아니고 매주 회의에서 마주치고, 만약 아주 만약에 일손이 필요하면 자경단의 작전에도 참여하게 될 텐데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면 좀 좋아? 처량하게라도 보이자 싶었다.

“저분은 뭔데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미는 거야?”

“냅둬. 그러다 말겠지.”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이겸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 날이 안 되면 그 후에라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해 자료를 찾아 읽었다.

“요즘 겸이 형 왜 저희랑 안 놀아 줘요?”

“자경단 일로 바쁘잖아. 오빠, 그래도 사무실엔 간간이 들러 줘요.”

재우와 도아의 칭얼거림에도 이겸은 굳건히 자경단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도서관처럼 대여가 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자료들은 자경단 기지 내에서만 읽는 게 가능했고, 외부로 유출 금지였다.

때문에 길드의 일도 CA 지역이 있으면 손을 돕고, 또 자경단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출석하느라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랐다.

어느 날은 서도현과 함께 가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혼자 갔지만….

“안녕하세요.”

혼자가 아니었다.

A는 따뜻한 커피가 든 종이컵을 건넸다.

“…제 건가요?”

말없이 들고 있는 걸 보면 어서 받으라는 행동 같은데 딱히 마시고 싶지 않았다. 뭐가 들었을 줄 알고.

“감사합니다.”

일단 받기만 한 후,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른 놓을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이겸 역시 찬 바닥에 방석도 없이 앉아 자료를 뒤적이며 읽고 있으니까.

A도 주긴 했지만 딱히 마시라고 권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할 얘기가 있나? 싶었지만 자료를 뒤적이는 걸 보니 그도 뭘 확인할 게 있어 이곳에 온 듯했다.

신경 쓰지 않고 종이를 넘기는 사이, 이겸의 맞은편에 A가 털썩 주저앉아 자료를 열람했다.

‘…왜?’

높으신 분이 자기 집무실 가서 보면 되지 굳이 왜?

이내 짧게 확인만 하고 가겠지 생각해 관심을 껐다.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A는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30분, 한 시간이 훌쩍 흐르고 슬슬 어색함에 숨이 막혀 왔다.

이쯤이면 나도 많이 버텼다, 싶어 이겸은 끝내 자료를 덮고 말았다. A의 시선이 제게로 향했다.

“그…. 바닥도 딱딱하고 찬 기운도 올라오고…. 계속 앉아 있다 보니 다리도 저려서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하루 온종일 자료실에 박혀 있던 자신이 할 소린 아니었지만 어색함에 질식할 것 같아 자리를 뜬다, 같은 소릴 앞에서 대놓고 할 정도로 막말하는 인간은 되지 못했다.

A는 가만히 이겸을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이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료실을 나섰다.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그날은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자취방에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자경단의 자료실엔 간이 의자와 테이블이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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