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92)화 (92/102)

#092

장례식이 끝나고, 배상우가 깊은 땅속에 묻혔다.

이겸은 그 장면을 묵묵히 지켜보며 가슴 깊이 배상우를 묻었다.

그리고 며칠 후, 서도현은 앓았다. 심하게 앓았다. 걱정이 된 도아가 등교하며 이겸에게 그를 부탁하기까지 했다.

이겸은 약과 죽을 사 들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도현이 이겸의 집에 온 적은 많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날 몇 번이나 한도를 넘겨 이능을 사용하고, 이련의 일을 매듭짓고, 상주로서 배상우의 장례식까지 치렀다.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되레 그동안 쓰러지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도아가 보낸 주소로 찾아가, 알려 준 비번을 치고 들어갔다. 청소도 잘 안 되어 있는 사무실에 비해 집 안은 의외로 깨끗했다.

이겸은 복도를 지나쳐 닫힌 방문을 벌컥벌컥 열었다. 여긴 화장실이고, 여긴 서도아 방, 마지막 방문을 열었을 때 침대에 누워 있는 서도현을 발견했다.

“안녕. 놀러 왔어?”

태평하게 농담이나 건네는 걸 보니 이미 도아에게 자신이 온다는 걸 들은 모양이다.

“놀러는 무슨. 병간호하러 왔지.”

“내일이면 나을 텐데.”

“됐어.”

이겸은 꿋꿋하게 포장해 온 죽을 그에게 건넸다.

“먹어.”

도현이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 식탁으로 향했다. 이겸은 그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학교는? 공강?”

“응.”

“넌 안 먹어?”

“먹고 왔어.”

“같이 먹지.”

“난 죽 별로 안 좋아해.”

“외워 둘게.”

평소 같으면 그걸 어디 써먹게 외우냐며 윽박질렀을 이겸은 조용히 침묵을 유지했다.

‘내가, 널 선택한 거야.’

그날 이후 둘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했다. 서로에게 할 말을 조금 더 주의 깊게 하며, 때로는 남들에게 하지 못할 말들을 나누기도 했다.

이겸은 수저를 챙겨 든 도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문을 열었다.

“전에 내가 자경단 권유받고 아저씨 집무실 구경했을 때 있잖아.”

“응.”

“그때 아저씨한테 차에 담근 은색 핀이 뭐냐고 물었는데….”

대부분 잊힌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이련에서 서도아를 찾아 나섰을 때, 아저씨가 환각에 당해…. 내가 아저씨 손목을….”

“그랬구나.”

이겸이 도현을 찾아 재잘거리는 일들이 늘었고, 도현은 묵묵히 그의 말에 호응했다.

사실 이전에도 몇 번이고 들었던 내용이고 이겸 또한 자신이 이 말을 몇 번이나 그에게 했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하고 또 하는 이유는 이렇게 해서라도 그 감정들을 해소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아무렇지 않게 말할 날들이 오기를 기도하며.

그럴 때마다 서도현은 이겸의 말을 끊지 않고 귀 기울여 들었다.

말이 모두 끝나면 정적이 찾아온다. 이겸은 입을 다물고 그를 응시한다. 모든 대화가 끝난 후 드는 생각은 언제나 같았다.

지겹지도 않은지. 미련하네.

똑같은 말을 계속 들으면 지루할 법도 한데 그는 늘 같은 온도였다.

“다 먹었으면 약 먹어.”

“내일이면 낫는데 굳이.”

사실 서도현은 심하게 앓은 사람치고 아파 보이지도 않았다. 숨기고 싶은 건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이마에 손을 올렸을 때 체온이 평소보다 뜨끈했다.

애도 아니고 대체 왜 약을 안 먹는다는 건지.

“그냥 좀 먹어.”

기어코 약을 앞으로 대령하니 그제야 꿀꺽 삼킨다. 그리고 이겸은 재차 말을 이었다.

“나는 더 많이 봐야 해.”

“뭐를?”

서도현이 물을 삼키며 되물었다.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권상혁이 총구를 당기기 전에 내가 봤다면 더 일찍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윤이겸.”

그는 언제든 이야기를 잘 들어 주다가도 배상우의 죽음에 대한 후회와 자책을 할 때면 이름 석 자를 부르며 그만하라고 경고했다.

“…그냥. 능력 좀 연마해야겠다고. 그게 끝이야.”

그동안은 50m 이내를 훤히 볼 수 있음에 만족했다.

능력의 부작용? 언제 또 저번과 같은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런 일이 평생 일어나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일어난다면? 이겸은 그때 가서 또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뭐가 됐든 좀 더 멀리 볼 필요가 있었고,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야 했다.

이겸은 슬쩍 서도현의 눈치를 살폈다.

“너는 나한테 할 말 없어?”

“무슨 할 말? 아, 바람 쐬고 싶어? 나가서 좀 걸을까.”

“그게 아니라…. 하아, 아니다. 아픈 놈이 나가긴 뭘 나가. 다시 눕든가.”

다 알면서 모른 척 둘러대는 건지 이겸은 작게 꿍얼댔다.

자신이야 그에게 지난날의 회포를 풀며 지친 마음을 기댄다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서도현은 그저 말을 듣기만 할 뿐 그날 자신은 이러이러했다, 이때는 좀 슬펐다, 화났다 등 어떤 감정 표현도 하지 않았다.

배상우의 죽음은 그에게도 적잖이 충격이었을 텐데. 그때 서도현이 했던 말을 잊지 않았다.

아저씨가 이루려던 걸 대신 이뤄 준다고 했나.

결국 이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네가 저번에 아저씨…. 네가 잇는다고 했잖아.”

‘배상우가 죽을 때’를 말하려다 입술을 잘근 깨물고 두루뭉술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서도현은 모두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어떻게?”

“그건 왜?”

“…나도 돕게.”

적어도 그거라도 하고 싶었다. 배상우가 이루려던 일. 자경단이니까 블러드 헌터를 잡는 일인가? 그렇다면 그것도 하고.

“그냥 자경단과 정기적으로 교류하려는 것뿐이야. 인력이 부족하면 도와 주고.”

“나도 할래.”

이겸은 거듭 외쳤다.

“나도 할게.”

“무슨 일을 할 줄 알고.”

“그게 뭐든.”

이대로 나 몰라라 지낼 순 없었다. 없었던 과거인 척하고 해맑게 지내기엔 또 양심은 있는지라 그러지 못했다. 그게 배상우가 원치 않은 일이라도 제 나름대로의 속죄를 하고 싶었다.

서도현은 잠시간 고민하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거절해 봤자 윤이겸이 들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긍정에 이겸의 표정이 조금 환해지며 식탁에서 일어났다.

“그럼 넌 이제 침대에 누워.”

“가려고?”

이겸이 머뭇거리다 우물쭈물 물었다.

“왜. 좀 더 있어 줘?”

“응. 옆에 있어.”

‘…왜 집으로 안 태워 주고?’

‘이런 날에 혼자 있으면 무섭잖아.’

협회 습격 때였나, 서도현이 했던 말이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서도현은 신도 무엇도 아니었다. 가까운 지인의 죽음 앞에선 외롭고 무섭고, 무너지는 걸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겸 본인은 실컷 그에게 위로를 받아 놓고 홀라당 가 버릴 위인이 되지 못한다.

때마침 이겸을 재촉하듯 새로 맞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며칠간 연락이 끊겼던 강태하의 전화였다. 서도현도 화면 너머 발신인을 확인하고 눈살을 구겼다.

“가려고?”

이겸은 잠자코 무음으로 바꿨다. 결코 통화를 받는 일은 없었다.

“여기 있을게.”

“뭐 이렇게 스릴러 영화가 많아?”

이겸은 그의 집 TV에 저장된 VOD를 살피다 물었다. 이건 귀신 나오는 것, 저건 살인마가 나오는 것, 재난에서 살아남는 것, 등 죄다 심장을 조이는 영화들뿐이다.

“도아가 좋아하거든.”

“넌 다 봤어?”

“몇 개는 같이 봤지.”

서도현이 제 동생이랑 소파에 앉아 이런 영화를 즐겨 봤다니 상상이 안 됐다. 하지만 현재는 자신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찾고 있으니 다소 웃기기도 했다.

“이건 봤어?”

“봤어.”

“이건?”

“봤지.”

“이건.”

“아니.”

이겸은 그와 같이 볼 리스트를 추리고 추려 영화를 틀었다. 살인마의 저택에 갇힌 사람들이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도망치는 내용이었다.

살인마의 손에 계속 죽어 나가는 탓에 마지막엔 사람이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입구만 열면 탈출인데, 열쇠는 살인마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때 남은 두 명 중 한 명인 ‘존’이라는 사람이 용기를 내 살인마와 맞서 싸우다 동귀어진(상대와 함께 죽음으로써 끝장을 냄)했다.

이럴 바엔 처음부터 탈출 말고 모두 힘을 합쳐 살인자를 쓰러트리고 탈출했으면 안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걸 보니 그리 잘 만든 영화는 아닌 듯싶었다.

‘스토리에 짜임이 없네.’

결국 마지막 남은 한 명만 탈출하고 모두 죽은 것이다.

이겸은 앞에 놓인 과자를 집으며 중얼거렸다.

“탈출을 문 앞에 두고 죽어 버리네. 존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등신, 이라며 조소할 것만 같았던 서도현은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너라도 살라는 심정 아니었을까.”

“…그렇구나.”

“그렇겠지.”

이겸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멋있는 사람이네.”

“오지랖도 넓은 분이셨지.”

“잔소리도 많이 했지.”

“가끔은 귀찮기도 했었어.”

어느새 대화의 대상이 영화 속 ‘존’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바뀌었다.

“그래도 좋은 분이셨잖아.”

“…좋은 사람이었지.”

그 말을 끝으로 도현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좀 힘드네.”

이겸은 가만히 어깨를 내어 주었다.

“응. 좀 쉬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