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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89)화 (89/102)

#089

이겸은 피가 새어 나오는 배상우의 가슴을 짚고, 서도현을 올려다봤다.

“왜….”

서도현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윤이겸과 배상우를 번갈아 쳐다봤다.

배상우의 셔츠를 헤집고 상처를 살피던 김이성은 돌연 침묵했다.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총상이었다. 이건 제 능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

“왜, 왜 멈춰요? 빨리 치료해 주세요! 아저씨 좀….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려요! 저 도아예요!”

“…이미 늦었어.”

지금이 아마 아홉 번째였지. 한 번만 더 돌리면 열 번. 그 이후는 끝이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 이 기회에 어떻게든 배상우를 살려야 한다.

이겸은 침착하게 방금 전 상황을 되짚어 봤다.

곧 입구를 나서기 직전이었고, 무언가를 확인한 배상우가 위험하다 소리쳤다. 그리고 울려 퍼진 총성.

배상우는 뭘 발견한 걸까? 제일 선두에 있었으니까.

이겸은 총알이 날아온 입구 쪽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총은 누가 쏜 걸까? 분명…. 저기 누군가 있었을 텐데.

아니, 그보다 지금은 배상우를 살리는 게 먼저….

“아….”

두서없는 계획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차분히.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자.

방금 있었던 일을 되새김하고 어떻게 배상우를 살릴지.

배상우는 고함과 함께 이겸의 앞으로 뛰어들어 치명상을 입었다. 한마디로 그는 이겸을 대신해 총을 맞은 것이다.

만약 제 앞으로 뛰어드는 배상우를 달려가 밀친다면?

이겸은 상상 회로를 돌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이 대신 총에 맞는 게 될 것이다.

총? 어디에? 팔이나 다리라면 얼마든지 배상우를 밀치고 맞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 서도현의 능력은 한 번쓸 수 있다.

그 한 번을 잘못 판단해 자신이 치명적인 부위에 총을 맞는다면?

이겸은 본능적으로 잘게 몸을 떨었다.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나는….

배상우처럼 누군가를 대신해 뛰어들 용기가 이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이겸은 무의식적으로 김이성을 쳐다봤다. 그가 배상우에게서 손을 놓았다는 건,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랐다는 의미였다.

‘나는….’

혼돈에 빠진 이겸은 다른 차선책들을 계산했다.

배상우가 총에 맞기 직전 서도현의 위치는? 서도아는? 노정규는 어디 있었지? 김이성은 후방에 있었으니 제외하고 어떻게든 배상우와 가까이 있는 자를 추려 냈다.

하지만 서도아와 노정규에게 그 짧은 시간에 명령을 내리긴 힘들었고, 서도현보다 이겸이 배상우와 더 가까이 있었다.

결국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건 이겸이 유일했다.

거기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배상우가 하는 대로 놔두거나, 혹은 그를 밀쳐 자신이 부상을 입느냐.

하지만 어디에 부상을 입을지는 랜덤이었다. 배상우를 밀치고 자신이 그 자리에 서는 거니 아마 높은 확률로 현재 그와 같은 곳.

“…….”

도현과 이겸을 제외한 일행이 배상우를 둘러쌌고, 그 혼란스러운 와중 이겸은 답을 구하듯 도현을 바라봤다.

서도현은…. 무섭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공포였다.

째깍째깍.

언제나 이겸을 살려 주었던 반복되는 시간이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나설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시간.

이겸은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피 묻은 제 손만 멍하니 응시했다.

‘나는 무엇을….’

한 사람의 생명을 결정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5분.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이겸은 신도 아니고, 전지전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모든 건 그의 결정하에 달려 있다.

서도현은 이전에도 이런 결정을 한 적이 있을까, 했다면 어떤 결정이었을까, 고민 끝에 찾게 되는 건 언제나 그였다.

그만이, 그만이 해답을 알고 있다. 알고 있고, 그래야 했다. 그래야 할 텐데….

“왜…, 왜 말이 없어?”

“…….”

왜 아까부터 말이 없는 거지? 네가 그러면 나는 어쩌라고. 어떻게 하라고.

“서도현…. 도현아. 네가 어떻게 좀 해 줘. 어떻게 좀….”

“…….”

너 원래 뭐든 잘하잖아. 항상 어떻게든 해 줬잖아. 이번에도 해 줘. 뭐라도 해 봐. 나 좀, 제발 나 좀 도와 줘.

눈물이 이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고, 울어 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윽고 시간이 돌아오고.

“…해!”

타앙-!

이겸은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대로 떠밀려 오는 배상우를 끌어안고 뒤로 넘어지는 순간. 분명히 보았다. 흐릿하지만 입구에 있는 자가. 총구를 겨눈 사람이.

‘이번에 총기류로 새로운 무기가 나왔다더라고요. 그거 보러 왔어요.’

‘제 이능으로는 총이 더 좋은 무기거든요.’

‘…권상혁.’

그리고 그는 순식간에 모습을 숨겼다. 사물 뒤로 숨거나 도망간 게 아닌, 정말로 모습이 사라졌다. 카멜레온처럼. 마치 투명화하듯.

별안간 이겸의 동공이 확장됐다. 이겸은 이전에도 저것과 비슷한 능력을 만난 적이 있었다.

뮤턴트 크리처가 협회를 습격했을 당시 분명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지.

‘f5! 그 안에 b4!’

한순간 모습을 드러냈던 권상혁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아주 잠깐 사이에. 그리고 그사이 이겸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뿐이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흐읍…! 아저씨!”

“다들 비켜 봐!”

달라지는 것 또한 없었다. 착잡한 현실이다. 결국 이겸은 제 안위를 택했고, 배상우는 숭고한 희생을 맞이했다.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이 모든 건 나 때문이다.

선택할 수 없었고, 시간이 돌아간 순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은 것’조차 선택이었기에. 그렇기 때문에 이건 온전히 제 탓이었다.

“총알! 우선 총알부터 빼내야 해!”

순간 배상우의 시선이 저를 향한 기분이다. 그의 눈동자가 죽어 가고 있다.

“…윤……겸….”

이번이 마지막 차례. 이제 그만 배상우를 보내 줘야 했다.

하지만 이겸은 도무지 그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왜, 왜 멈춰요? 빨리 치료해 주세요! 아저씨 좀….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려요! 저 도아예요!”

“…이미 늦었어.”

김이성의 한탄 어린 중얼거림 뒤에 서도현은 배상우에게로 걸어가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그를 조용히 불렀다.

“아저씨.”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현….”

숨소리에 간헐적으로 섞여 나오는 공기와도 같은 자그마한 목소리.

서도현은 그의 피 묻은 손을 개의치 않고 꽉 붙잡았다.

“오빠. 오빠…. 아저씨가…. 살 수 있지? 치료하면 살 수 있는 거잖아. …맞지?”

그는 말없이 배상우의 상처 부위를 살폈다. 어지간한 상처가 아니었다. 당장 상급 힐러에게 보여 줘도 목숨을 붙일까 말까 한 상태.

자경단에 있을 적 팀원의 죽음을 자주 봐 왔기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죽음이 지척에 다가왔다.

이제는 떠나보내야 한다. 마지막 인사를….

그럼에도 또 한 번.

도현은 목구멍 너머 울컥 차오르려는 것을 눌러 삼켰다. 입 안에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다.

열한 번째.

“…해!”

타앙-!

“흐읍…! 아저씨!”

“다들 비켜 봐!”

역시나. 달라지는 건 없네.

그럼에도 또 한 번.

열두 번째, 열세 번….

“쿨럭!”

기어이 피를 토하고 말았다. 과도한 이능 사용으로 인해 속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또 한 번.

이겸은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날 얼마나 비겁하게 만들 셈이야.’

그가 반복에 반복을 할 때마다 이겸에겐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선택을.

배상우의 죽음을 몇 번이나 방관한 꼴이 된다. 그 앞에서 이겸은 겁쟁이고 비겁한 자였다.

때문에 열네 번째에선 배상우를 밀쳤다. 이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간 몇 번의 반복에도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배상우를 밀치자 정확하게도 총알은 이겸의 심장을 관통했다.

“…오빠!”

“윤이겸! 이 멍청이가!”

바닥에 뜨끈한 피가 퍼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기 힘든 거대한 양이었다. 그 위로 다급해 보이는 배상우의 얼굴이 가득 찼다.

멍청이라고요? 아저씨, 그거 알고 계세요? 아저씨는 그 멍청한 짓을 몇 번이나 했어요.

순간 이겸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때아닌 감상이 들었다. 유쾌하다. 이 작은 행동이 뭐가 어렵다고 망설였던 걸까. 죽는 건 아무것도 아닌데. 많이 죽어 봤으면서. 뭐가 무서워서. 뭐가 무섭다고…. 죽는 게, 죽는 게….

“틀렸어.”

김이성의 사망 판정과도 같은 말에 문득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죽음 따위 뭐가 무섭다고. 이딴 게 뭐가. 이딴… 이딴 게.

“……무….”

무섭다. 두렵다. 나는….

웅성거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산산이 흩어졌다.

그렇기에 열다섯 번째.

이겸은 비겁하길 택했다. 그는 제게로 쓰러진 배상우를 받치며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죄악감이 그렇게 만들었다.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겸아.”

“…….”

“이제 인사하자.”

그것이 이제 그만 배상우를 보내 주자는, 그의 마지막을 지켜 주자는 말과도 같아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서도현을 쳐다봤다.

거칠게 닦은 서도현의 얼굴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눈, 코, 입 할 것 없이 부작용으로 인해 피가 응축돼 터져 나온 것이다.

사흘 전, 크리처 사육장을 발견한 이겸의 눈에서 피가 흐른 적이 있다.

‘야, 나 혹시 실명되는 건 아니겠지?’

‘그럴 일 없어.’

‘다행이네, 근데 넌 이런 적 있나 봐? 꽤 잘 안다?’

그때 우스갯소리로 그런 대화도 했었다.

‘몇 번 있어.’

‘아팠어?’

‘그땐 좀. 아팠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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