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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88)화 (88/102)
  • #088

    남쪽으로 50m 너머. 이상… 무.

    “하아.”

    이겸은 나직하게 한숨을 터트렸다. 차재우를 찾아 나서면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핍박하고 몰아세우는 중이다.

    자신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 정말? 정말 이상 없어? 사실 봤는데 네가 놓친 건 아니고? 이미 확인했던 곳도 재차 살펴봐야 한다며 자꾸만 본인을 의심하게 된다.

    “재우는 괜찮을 거야.”

    서도현의 토닥거림에도 집중력이 흩어진다. 넌 어떻게 초연할 수가 있어? 차재우를 만난 지 일 년도 안 된 자신조차 초조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넌 어떻게 침착할 수가 있어?

    이윽고 북쪽으로 50m 너머….

    이겸은 눈썹을 찌푸렸다. 수풀 사이에 물병이 홀로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하며 시야를 전환하려던 무렵, 물병의 밑바닥에 적힌 글씨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래터 사람들에겐 한 가지 습관이 있다.

    ‘여기 있던 내 제육불고기 컵밥 어디 갔어?’

    ‘형, 그거 제가 먹었어요. 마파두부 컵밥으로는 성이 안 차서.’

    ‘윤이겸, 내 거라고 이름도 번듯하게 적어 놨는데.’

    사무실에 음식을 놔두면 눈 깜짝할 사이 해치우는 재우 때문에 자신이 찜해 놓은 물건엔 이름을 적어 놓는다.

    그리고 그건 차재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겸을 따라 장난삼아 적던 게 버릇이 들어 기어코 부산까지 와서, 그것도 제 숙소에 있어 아무도 훔쳐 먹을 리 없는 물병에까지 이름 석 자를 네임펜으로 써 두었으니 말이다.

    ‘차재우>×<’.

    물병 밑바닥엔 작은 그림과 함께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찾았다.’

    찾아 헤매던 차재우의 흔적을 발견했다.

    “북쪽. 북쪽이야.”

    북쪽 어딘가에 차재우가 있다. 누가 저 물병을 버렸지? 지금 시간이…. 곧 되돌아갈 시간이다. 다음 반복에선 북쪽 위주로 조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저 물병을 버린 이도 나오면 좋을 텐데.

    그 흔적을 쫓으며 뭐라도 나오길 빌면서 이겸은 시간을 반복했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범위를 넓혀 재우를 찾는 것과 이전 전투를 포함해 오늘 하루 서도현이 이능을 사용한 횟수, 총 여섯 번.

    이제 일곱 번째로 접어든다. 이겸은 곧장 북쪽 어딘가의 물병을 쫓았다.

    기억의 궁전. 모든 이미지를 순간적으로 기억해 훑어 넘기며 차재우의 글씨체와 일치하는 장면을 찾는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좀 더 빨리. 좀 더…. 찾았다.

    ‘차재우>×<’.

    마침 누군가 물병을 땅에 버렸다. 운이 좋았다. 그가 더 일찍 물병을 버렸으면 서도현의 리셋으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을 테니.

    물병 안의 물로 비치는 사람은 안면이 있는 자였다. 숙소에서 가끔 가다 마주친 적이 있었다.

    이련에서 근무하는 사람? 저 사람이 편지에 적힌 이필진이란 사람인가? 아마 재우를 크리처 사육장으로 안내한 범인일 테다.

    그리고 이필진의 옆에 또 한 명이 있었다. 그들은 물병을 기준으로 11시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크리처 사육장의 위치는?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뒷길인가. 보이는 주변 풍경은 나무들이 많았다.

    아마 숙소 뒷편의 산. 그 어딘가에 이필진 일행과 크리처 사육장, 그리고 차재우가 있다.

    다시 또 시야를 전환하려던 찰나, 환한 빛이 눈을 감쌌다.

    “윽.”

    이겸은 제 눈을 덮고 그곳을 좀 더 살폈다. 보이는 장면은 무릎을 그러모아 웅크리고 있는 차재우와 그 앞바닥에 놓인 푸른 꽃 한 송이. 그리고 그를 둘러싼 크리처들.

    “…차재우.”

    이겸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중얼거렸다. 안구가 아프다. 누군가 맨손으로 눈알을 찌르는 듯 따갑고 쓰라렸다.

    하지만 그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이겸은 크게 충격받았다.

    크리처들이 재우를 공격하지 않는다.

    “…왜.”

    허공으로 뱉은 질문에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겸아?”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유는 나중에 알고, 우선….

    이겸은 서도현의 양팔을 붙잡았다.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했더니 눈앞이 흐릿해 조금 휘청거렸다.

    “찾았어. 북쪽. 숙소 뒷산 어딘가.”

    지금 알아낼 수 있는 건 그게 최선이고, 한계였다. 나머지는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찾아내야 한다.

    “그래.”

    서도현은 그대로 이겸의 눈을 덮고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다시 또 시간이 되돌아왔다. 바늘로 눈을 찌르는 듯한 고통마저 모두 씻겨 나간 지금.

    “움직이자.”

    서도현이 모두에게 외쳤다. 그의 시뮬을 여덟 번 쓰고 난 성과였다.

    재우에게 닥친 일을 배상우와 예호에게 알려 주던 서도아가 급히 물었다.

    “어딜? 지금 차재우…!”

    “내가 알아. 차재우 어디 있는지 안다고.”

    이겸이 말하자 예호가 의아한 눈초리를 했다. 배상우야 대충 이겸의 능력을 알고 있으니 뭘 보았겠구나 하고 넘겼지만 예호는 달랐다.

    “잠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방금 막 서도아에게서 크리처 사육장에 대한 정보, 차재우의 위기를 들었건만 윤이겸은 당연하단 듯 움직인 게 수상했다.

    “…그게 제 이능이에요.”

    이겸은 서도현의 이능까지 굳이 설명해 판을 키울 이유을 느끼지 못했기에 대충 자신의 이능이 그런 유라고 뭉뚱그려 설명하고 서둘러 움직이려 했다.

    우선은 한시라도 빨리 재우를 찾는 게 급하니까.

    “그러니까 우선은 애부터…!”

    “윤이겸이. 위치가 정확히 어디야?”

    “…모르겠어요. 숙소 뒷산인 건 확실한데 정확한 건 직접 가 봐야 해요.”

    “그래. 일단 가자.”

    배상우는 자경단에게 서둘러 숙소 뒷산으로 가 보라는 연락을 넣고 소장실을 나섰다. 그 문을 열 때도 혹시나 적이 숨어 있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행들이 차재우를 찾으러 나가니 김이성과 노정규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재빨리 이련을 나서서 숙소 뒷산으로 향할 법도 한데 배상우는 이동 시에도 일행들이 지켜야 할 위치를 알려 주었다. 이련을 빠져나가는 중에 적의 기습이 있을 수도 있으니 대형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서도현은 자경단 시절 많이 겪어 봤는지 굳이 배상우가 알려 주지 않아도 제 위치에 선 후, 다른 일행들을 각자의 능력에 따라 효율적으로 배치했다.

    “겸이 넌 여기. 도아는 여기.”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이련 내부가 훤히 보이는 이겸은 적이 없단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재우를 구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짓에 시간을 뺏기고 있자니 조금 갑갑함도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논란을 유발해 봤자 시간만 지연되니 묵묵히 그들의 명령대로 진열을 맞춰 섰다.

    선두에는 배상우와 서도현. 중간에는 이겸과 도아, 노정규가 섰고, 후방에는 예상치 못한 급습에도 방어와 반격이 유리한 김이성이 섰다.

    이대로 이련을 빠져나가 차에 탑승한 뒤, 숙소의 뒷산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1층 진입.

    아직까진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단지 서도현이 처리한 2구의 블러드 헌터 시체로부터는 절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관리소장과 나름 친하다면 친하게 지냈던 배상우는 의외로 그의 시체에 무심히 굴며 제 할 일을 했다.

    이런 경험이 많다는 건가.

    이겸으로선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옆을 슬쩍 보니 서도아는 시체에 눈살을 찌푸릴 뿐 애써 피하거나 하지 않고 제 주변을 열심히 정찰했다. 그건 노정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겸도 그러기 위해 주변 시야를 확장하려는 찰나,

    “위험해!”

    타앙-!

    총성과 함께 배상우의 다급한 고함이 들려오며 시야가 빨갛게 물들었다.

    총에 맞아 쓰러지는 배상우를 바로 뒤에 있던 이겸이 받치며 함께 주저앉았다.

    “…아저씨?”

    삐이이이-.

    순간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며 귀에서 시끄러운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겸은 넋이 나가 제 품에 힘없이 쓰러진 배상우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두드렸다.

    “…아저씨.”

    그러다 그의 가슴을 짚었던 손을 들었다. 손바닥에 피가 축축히 고여 있었다. 이건 제 피가 아니다. 그럼 누구의 피인가.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려 배상우를 확인했다.

    “왜… 왜.”

    “흐읍…! 아저씨!”

    “다들 비켜 봐!”

    울음을 꾹 참고 빨갛게 물든 하얀 셔츠를 풀어 헤치며 상처를 확인하려는 서도아나, 모두를 밀치고 다가서 배상우를 치료하려는 김이성이나.

    이겸은 그 누구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직 정확히 가슴 부분에 총상을 입어 꿀렁꿀렁 차오르는 붉은 피를 멍하니 눈에 담을 뿐이다.

    “…아저씨.”

    대답없는 부름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정신… 정신 좀 차려 봐요.”

    배상우는 죽은 듯 그 자리에 누워 어항 속 붕어처럼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총알! 우선 총알부터 빼내야 해!”

    소리치는 김이성, 배상우를 주변으로 고이는 피 웅덩이, 울먹이는 서도아, 당황하며 적을 살피는 노정규, 그리고 서도현.

    어쩐지 그의 얼굴이 드물게 얼빠져 보였다.

    “…서도현. 이거…, 아, 아저씨.”

    “…….”

    “서도현? 야, 야…. 도현아….”

    잠시 멈칫하던 서도현은 시간을 되돌렸다. 그리고.

    “…해!”

    타앙-!

    이겸은 그대로 제게 떠밀려 오는 배상우를 받치며 풀썩, 뒤로 넘어졌다. 그 후 소리 없이 입술을 벙긋했다.

    …타이밍이.

    “흐읍…! 아저씨!”

    “다들 비켜 봐!”

    리셋 시점이.

    “총알! 우선 총알부터 빼내야 해!”

    리셋 시점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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