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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87)화 (87/102)

#087

이겸이 다급히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휴대폰이 없었다. 아까 싸울 때 떨어트린 모양이다.

“재우. 재우 연락되는 사람 있어?”

“차재우요? 무슨 일인데요?”

심각해 보이는 이겸의 말에 도아가 얼른 휴대폰을 켰다. 차재우에게서 몇 번의 연락이 와 있었다.

‘누군가 계속 방문을 노크한다’부터 시작해 ‘다들 어디갔냐’, 그러다가 무슨 사진을 보낸 후로 연락이 두절됐다.

“…차재우.”

도아가 재빨리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울리고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불현듯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안감에 손톱을 잘근 씹었다.

“왜? 무슨 일인데?”

어리둥절한 배상우와 예호들을 뒤로하고, 재우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서도현도 낯을 찌푸렸다.

그가 보낸 사진, 즉 이필진의 편지엔 크리처 사육장과 관련된 내용이 가득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금 윤이겸의 반응을 보면 아마도….

서도현은 앞뒤 가리지 않고 윤이겸을 불렀다.

“겸아.”

옆에서 그의 화면을 함께 보던 이겸이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찾을게.”

차재우가 어떤 연유로 그 일에 휘말리고, 크리처 사육장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찾아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차재우가 크리처들에게 먹히기 전…아, 이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차재우는 래터 중에서도 남궁산하 다음으로 크리처 사냥을 잘 나가지 않았다.

그런 그가 혼자서 열댓 마리가 넘는 크리처를 상대로 버티기란 만무했다. 어서 빨리, 몇 분이라도, 몇 초라도 빨리.

“설령 실명이 되더라도 찾을게, 그러니 넌 계속 리셋해 줘.”

이겸은 그렇게 말하며 보다 편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소장실 소파에 착석했다.

“하아….”

두 손을 모으고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사이 도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재우의 사정을 설명했고, 배상우는 재우의 위치가 드러나면 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자경단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서도현.”

“응.”

이겸은 조용히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몇 번.”

“여덟 번.”

서도현이 답했다. 두 번은 블러드 헌터와 싸울 때 사용했다.

윤이겸은 앞으로 남은 여덟 번, 그 안에 어떻게 해서라도 차재우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이겸은 여린 볼 안쪽 살을 깨물었다.

서도현이 블러드 헌터를 처리하고, 배상우의 상처도 치료하고, 이제 겨우 사건이 마무리되나 싶었건만 차재우에게…. 바람 잘 날 없이 사건에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심지어 그저 ‘볼’ 뿐인 제 능력으로 재우의 위치를 찾는 건 뜬구름 잡는 일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해야만 하는 일.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이겸은 깊게 숨을 내쉰 후 고요히 집중했다. 처음은 동, 서, 남, 북. 네 방향 중 혹시 무언가가 느껴지면 시야를 좁힌다.

고통은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잊힐 거잖아.

지금은 차재우의 안위가 훨씬 중요하다.

찾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니면 자신은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할 게 뻔했다.

동쪽으로 50m 너머, 이상 무. 서쪽으로 50m….

“…아.”

이겸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부여잡았다.

이련에 들어서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해 왔다.

관리소장과의 마찰 때도, 2층에 있을 서도아를 찾을 때도, 방금 전 차재우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도, 사실상 이미 한계를 넘어섰었다.

부작용이 찾아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건 김이성의 치유 능력으로 어떻게 못 하나, 싶었지만 어차피 사라질 통증이니….

“조급해하지 마.”

“…….”

“여덟 번이나 남은 거야.”

들려오는 서도현의 말에 이겸은 서서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렇다. ‘고작’이 아니라 ‘무려’인 셈이다.

동쪽은 살폈으니 다음 차례에 서쪽을. 총 네 방향을 네 번의 기회로 살피고, 무언가 발견하면 그때 또 세세하게 파고들면 된다.

기회는 충분했다.

천천히, 천천히. 마음을 다스리고.

이겸은 심연으로 들어갔다.

***

똑- 똑-. 규칙적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

한기가 올라오는 차가운 바닥을 느끼며 재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나 눈을 뜬 것이 무색하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그 사이 짐승의 울음소리, 철창을 들이박는 소리 등이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다.

여긴 아마….

크리처 사육장.

재우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문으로 추정되는 벽을 짚고 일어섰다. 밖에서 굳게 잠갔는지 아무리 힘을 주고,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그제야 제 현실을 파악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대폰을 찾아도 봤지만 잠시 기절한 사이 뺏긴 것 같았다.

불쑥 허탈한 웃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옛 기억으로부터 실컷 도망쳐 왔으면서 왜 또 이런 곳에 있는 걸까.

왜 순진하게 이필진의 말을 모조리 믿었던 걸까. 왜 그의 검은 속내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왜, 왜, 왜….

돌고 돌아 이곳일까.

‘흑, 흐윽…. 오, 오빠아…. 아, 아저씨이. 흑….’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깊은 어둠 속, 흐릿하고도 작은 인영이 있다. 구석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는 서도아.

‘안녕.’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자신.

‘히끅! 흡…! 누, 누구세요?’

‘괜찮아, 겁먹지 마. 내가 널 여기서 내보내 줄게.’

‘내보내요? 그럼… 저 다시 오빠 볼 수 있어요? 아, 아아…. 아줌마랑 아저씨도 봐야 하는데…. 저, 저 나갈 수 있어요?’

‘나갈 수 있어. 오빠? 아줌마랑 아저씨? 내가 만나게 해 줄게. 꼭 내보내 줄게. 넌 이름이 뭐야?’

‘흑, 오빠 이름은… 흐윽. 서도현이고요…. 히끅, 흑. 아줌마랑 아저씨는, 아까, 아까 여기 오는 길에 저 도와주려다가…. 아, 아아…. 안 돼, 안 돼…!’

어린 소녀는 제 이름을 묻는지도 모르고 횡설수설하기 바빴다. 결국에는 코를 훌쩍이며 무릎 속으로 얼굴을 깊게 파묻을 뿐이었다.

차재우는 스르륵,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고사리손으로 도아를 감쌌다.

뒤편의 크리처가 육중한 몸을 일으키는 소리였다.

하지만 몸만 일으킬 뿐 다가와 도아를 잡아먹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각성 전인가.’

각성도 하지 않은, 그것도 어린아이를 제 부모님은 대체 무슨 이유로 데려온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쪽은, 흐끕…. 그쪽은 누구예요?’

‘…차재우, 11살이야.’

‘나랑 같은 나이네. 너는 어쩌다, 흑, 잡혀 온 거야?’

같은 나이구나. 사방이 어두워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어 몰랐었다.

재우는 도아의 옆에 앉아 맞은편 크리처를 경계하며 대답했다.

‘나는 잡혀 온 게 아니야.’

‘그럼?’

‘원래부터 있었어. 내 부모님이 이쪽 사람이거든.’

‘…흡!’

낯설고 어두운 곳,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며 대화를 이어 가던 도아가 숨을 멈췄다. 그러자 재우가 변명하듯 재빨리 중얼거렸다.

‘나도! 나도 있고 싶어서 있는 게 아니야. 그 사람들은 내 부모도 아니야.’

‘부모가 아니야?’

‘아니! 부모는 맞지만…. 여튼 아니야! 그리고 여기 붙잡혀 온 사람들 다 내가 탈출시켰어. 너도 내가 나가게 해 줄 테니 너무 걱정 마!’

‘…탈출? 그 사람들은 살았어?’

‘…….’

재우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제 부모님은 자신이 각성한 이후로 언제나 자식을 시험하기 바빴다.

자신들이 데려온 사람을 탈출시키는지, 그러지 않는지. 빤히 한 방에 가두어 놓고 재우에게 출입구까지 친절히 알려 준 후에.

정작 탈출을 시켜 놓으면 아직도 같은 편이 되지 못했다며 붉은 액체를 억지로 권하곤 한다. 마시고 싶지 않음에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탈출시킨 사람들은….

재우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고 애써 웃었다. 어둠 속에선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웃음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릴 테다.

‘살 수 있어. 꼭 살려 줄게. 나만 믿어.’

그렇게 말하며 더듬더듬 손을 뻗어 도아의 손을 맞잡았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사람의 체온인지, 따스했다.

‘넌 나갈 수 있어.’

부모님이 말한 탈출구로 내보내는 건 안 된다. 그들이 덫을 설치해 놓았을 게 뻔했다. 그렇다면 다른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고심하던 재우에게, 정적이 무서웠던 도아가 맞잡은 손을 꽉 쥐며 물었다.

‘…여기는 어디야?’

‘‘델로’라고 해.’

‘위치는? 위치를 알아야 오빠가 찾으러 올 텐데….’

‘위치는…. 나도 몰라.’

부모님은 알 텐데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달리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고 어떻게 서도아를 내보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럼… 주변이라도 밝게 해 줄 수 있어? 어두우니까 너무 무서워서.’

‘미안. 여긴 전등이 없어.’

‘흑… 흐읍…. 오빠아아….’

‘우, 울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울음을 목구멍까지 꾸역꾸역 눌러 삼킨 도아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어떻게?’

[승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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