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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81)화 (81/102)

#081

이겸은 아까의 녹음기 내용을 상기했다.

대화로 추측해 보면 관리소장과 다른 한 명이 배상우를 습격한 범인이고, 아마 관리소장이 찬성하고 다른 이가 행동에 나선 듯했다.

그 외에는…. 아담이 정보를 독식해? 무슨 정보? 그게 습격과 관련이 있는 건가?

저도 모르게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생각에 빠지자 도현이 그 행동을 막아 왔다. 이겸은 머쓱함에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그를 모른 척 애써 무시했다.

“자경단 부르자.”

그때 배상우가 단호히 말했다.

그를 습격한 범인은 김이성이 아닌 관리소장이었다. 김이성이 무슨 연유로 그날, 그 시각에 거기 있지 않았다고 거짓말한 건 줄은 몰라도 진범이 밝혀졌고, 관리소장이 블러드 헌터라는 증거는 없지만 연관되어 있다 보아도 무방했다.

우선은 습격의 범인이라는 증거가 있으니 자경단을 호출할 명분은 있었다. 현재 부산에 있는 자경단원들이 금방 도착하겠지.

배상우는 얼른 제 부하들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사이 서도현은 그간 벌어졌던 사건들을 머릿속에 나열하며 그들의 범행 동기를 추측했다.

“아저씨를 습격한 게 A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라고 했죠.”

“그래.”

아담만 정보를 독식하게 둘 수 없다. 그래서 습격을 가했다. 그렇다면 나오는 결론은 하나다.

“아담은 A의 정체를 아나 보죠.”

아담이 A의 정체를 알고 있고, 그 정보 독식이 싫었던 다른 조직의 블러드 헌터가 급한 마음에 뭐라도 찾아보고자 배상우를 습격했다. 아귀가 딱 들어맞았다.

“어, 그런 것 같아.”

제길. 나도 아직 모르는데. 배상우가 인상을 구기며 낮게 중얼거리며 도현의 추측에 찬성했다. 그거 말고는 떠오르는 범행 동기가 달리 없었다.

게다가 앞의 추측에 따라 이곳은 아담이 아닌 다른 조직의 은신처로, 크리처 사육장 역시 그 조직이 관리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근데 아담은 어떻게 안 걸까요?”

이겸이 묻자 배상우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글쎄. 그것도 이제부터 조사해 봐야지.”

A는 조심성이 많아 제 정체를 들킬 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몇 년간 알고 지낸 자신도 정체를 모르는데 대체 아담은 어떻게….

일단 혹시 모르니 A에게 기별을 넣고, 부하들한텐 인원을 꾸려 부산에 오라 하고…. 이것저것 할 일을 세우던 배상우는 돌연 눈을 찌푸리며 머리를 헤집었다.

“아아. 그냥 확 은퇴해 버리고 어디 촌구석에 들어가 쉬고 싶다.”

“그렇게 하세요.”

“이놈아! 그게 어디 쉬운 줄 알아!?”

서도현은 배상우의 꾸중을 가볍게 무시했고, 이겸이 재차 물었다.

“그럼 이 일로 자경단 불렀으니 저희 할 일은 끝난 건가요?”

처음엔 크리처 사육장을 찾는 게 목적이었지만, 습격범도 누군지 알아냈고 소장이 블러드 헌터란 증거도 녹음기에 담겨 있었다.

다른 루트로 자경단에 신고를 하긴 했지만, 어찌 됐건 그들이 이곳에 오면 배상우가 잘 진두지휘해서 사육장의 위치도 알아내지 않을까.

자신들은 이만 손을 빼도 좋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할 일을 끝냈으니 이제 서울로 돌아가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배상우가 윤이겸을 쳐다봤다.

“아, 그거 말인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지금 자경단을 부른 경위는 배상우를 습격한 범인이자 블러드 헌터로 추정되는 두 명의 체포.

그것만 해도 충분한 결과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찾던 것은 크리처 사육장의 위치와 그 증거.

범인을 체포하며 은밀히 사육장의 위치를 샅샅이 찾아본다 해도 그들이 제 동료가 붙잡힌 걸 눈치채고 발 빠르게 사육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사육장의 위치였다. 목적은 달라지지 않았다. 블러드 헌터는 그 뒤에 체포해도 늦지 않았다.

“윤이겸이, 네 능력 좀 더 쓰자.”

이틀째 되는 날 밤의 일이었다.

***

사흘째의 어느 오후.

이겸과 재우, 도아는 맞춤 제작했던 정장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착용해 보러 왔다.

“어떠세요? 바지 기장이 생각한 것보다 조금 길다든가 소매 단추가 떨어질 것 같다든가, 뭐든 상관없으니 편히 말씀해 주세요. 옆에 수선실 있어서 바로 수선 가능해요.”

관리소장에 대해서는 입 다물고 있었다. 배상우가 자경단이 이곳에 올 때까지 모른 척하라고 했기도 했고, 아직까지 크리처 사육장을 찾지 못했다.

어제 그 일이 있고 나서 이겸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련의 관리소장이 블러드 헌터인데 다른 곳은 어떨까 싶은 불안감이 치밀었다.

설마 숙소에는 없겠지? 여기에는? 저기에는?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능력 사용도 하며 재우와 도아의 방 앞에서 그들이 안전한지 재차 확인했다.

서도현과 배상우는 어디에 던져 놔도 잘 살아남을 것 같지만 학생들은 혹시 모르니까.

그러다 서도현이 밤중에 재우에게 할 말이 있다고 그의 방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는 일이 있었고, 이겸은 결국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전 괜찮아요. 색깔도 골랐던 대로 예쁘게 나왔고 기장도 딱 맞아요!”

하루 숙소에서 푹 쉬더니 활기차진 재우가 거울 속 비친 제 모습을 둘러보며 명랑하게 웃었다.

“저도 괜찮아요. 근데 넥타이는 어떻게 매는 거죠.”

“바보 서도아. 그것도 몰라? 이리 와 봐.”

이겸도 제 옷매무새를 확인하곤 만족스러워했다. 서도현이 다가와 물었다.

“마음에 들어?”

“나쁘진 않네.”

넥타이 뒷면에 새겨진 ‘래터’라는 문구가 거슬렸지만 보이지도 않으니 딱히 상관없었다. 회사에서 나온 유니폼도 아니고 래터는 왜 붙인 건지….

이겸은 특이한 모양으로 된 자켓의 소매 단추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윤이겸이, 네 능력 좀 더 쓰자.’

능력이라고 해 봤자 위치도 알 수 없고 그저 보는 게 전부일 뿐이다. 그걸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오늘 아침에도 이곳에 도착해 이전에 보았던 그 장면을 다시 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때는 정말 저도 모르게 우연히, 자동으로 물과 링크가 되어 버렸던 건가?

“무슨 생각 해?”

도현이 얼굴을 제게 바짝 붙이며 눈매를 가늘게 늘어트렸다.

“그냥. 일이 길어질 것 같은데 애들 먼저 서울로 보내야 하나 그런 생각.”

“걱정돼?”

“그럼 안 되냐?”

이겸은 까칠하게 대답했다. 재우가 내색하지 않아도 그의 상태가 평소와는 다르단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어제도 과도한 이능에 따른 부작용은 진작 나은 것 같은데 변명으로 하루 종일 숙소에서 보낸 듯싶었다.

지금만 해도 평소와 같이 밝고 명랑하게 굴지만, 가끔씩 수심이 짙은 얼굴을 할 때가 있었다.

도현도 재우가 걱정되니 밤중에 그의 방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거겠지.

“차라리 재우라도 먼저 올려 보내는 게….”

“형들, 무슨 얘기 해요?”

“…옷이 예쁘게 잘 나왔다고.”

이겸은 넥타이를 동여매는 척 에둘러 말했다.

“그쵸? 그보다 형은 완전 클래식 정장이네요. 쓰리피스…. 조끼도 있고!”

“어쩌다 보니.”

직원이 조끼의 유무를 물을 때, 대충 있으면 좋겠다 대답했었다. 마음에 안 들면 안 입으면 그만이니까.

“옷이 좋아서 그런가? 모델이 좋아서 그런가? 아, 역시 얼굴이구나. 흠, 볼만하네요.”

도아는 디자이너에 빙의해 이겸을 훑으며 진지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왜 저래.’

“근데 상우 아저씨는 어디 가셨지? 숙소 문 두드려도 안 계시고 아침부터 나간 것 같은데. 겸이 오빤 못 봤어요? 대낮부터 로비에 나와 있더만.”

“봤는데 따로 할 일이 있어 저녁에 들어오신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숙소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자 아침 일찍 배상우가 내려와 자신은 따로 더 조사해 보겠다고 쌩하니 나갔었다. 이련이 문 닫은 오늘 저녁, 사육장에 대해 깊이 있게 조사하기 위해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며.

물론 그때 도아와 재우는 숙소에 두고 갈 예정이다.

“정장은 입고 가실 건가요? 아니면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전 입고 갈래요!”

“전 갈아입을래요. 곧 밥 먹으러 갈 건데 새 옷에 묻으면 어떡해. 차재우 너도 그냥 갈아입지?”

“난 안 묻힐 자신 있으니까.”

아웅다웅하는 둘을 뒤로 하고 이겸은 말없이 입고 왔던 옷을 챙겨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

저녁을 챙겨 먹고 이겸과 도현은 셔터가 내려간 이련으로 향했다. 뒷문을 열고 슬쩍 들어가려 할 때,

“오빠들!!”

“……!”

이겸은 몰래 작당모의를 꾸미다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서도아가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서 있었다.

“네가 왜….”

“또 저희 몰래 둘이서만 해결하려 했죠.”

언제는 사육장을 찾는다며 배상우와 토의를 해 놓고선 오늘따라 유독 숙소에서 편히 쉬라고 권유하는 이겸이 수상해 몰래 뒤를 밟은 건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왜 자꾸 빼놓아요! 저희가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저희도 엄연히 한 사람 몫을….”

이겸이 급히 캐물었다.

“재우도 왔어?”

“…아뇨. 걔는 아무것도 모르고 숙소에 있을걸요. 오빠들 뒤 밟다가 확실해지면 연락해서 부르려 했죠.”

“부르지 마.”

폰을 꺼내려는 도아에 급히 다가가 손으로 화면을 막았다.

“왜요?”

“…재우는 아프잖아.”

“다 나은 것 같은데. 멀쩡하던데요.”

서도현이 낮게 목소리를 깔며 다그쳤다.

“서도아. 얼른 숙소로 돌아가.”

“싫어!”

“왜 어린애처럼 말을 안 듣지.”

“어린애가 아니니까 말을 안 듣는 거야. 자꾸 우리만 빼놓는데 언제까지고 그럴 거야? 내가 다 큰 어른이 돼서도 오빠 그늘 아래서 살라고?”

“필요하다면 그래야지.”

도아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숨을 들이 삼켰다. 둘의 싸움이 커질 것 같자 이겸이 그녀를 살살 달랬다.

“그래. 미안한데 오늘은 이만 들어가. 나중에 까까 사 갈게.”

“제가 차재우예요? 과자에 넘어가게?”

“…….”

이걸 어쩌지. 곤란해진 이겸은 제 목을 쓸어내렸다.

따지고 보면 서도아는 원래부터 1인분을 하는 아이였다. 어쩌면 이능은 자신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고.

그리고 도아의 말처럼 언제까지고 서도현의 보호막에서 지낼 순 없는 노릇이고. 전부터 걱정해 왔던 문제였다.

이겸은 하는 수 없이 서도현에게 청했다.

“야, 그냥 데려가자.”

“윤이겸.”

순간 도아의 얼굴이 활짝 폈고, 너까지 왜 그러냐는 듯 저를 쳐다보는 도현의 시선에 이겸이 도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변명하듯 주절거렸다.

“그 뭐냐…. 네가 전에 나한테 믿고 맡긴다며.”

“…….”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챙길게. 그러니까 이번은 데려가자.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혼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뭔 일 나면 어떡하려고.”

도아는 이겸이 제 편으로 돌아섰음을 깨닫고 그의 옆에 찰싹 붙었다.

“그럼! 숙소로 돌아가다 무슨 일 생기면 나 큰일 나! 얌전히 있을 테니 데려가.”

도현은 잠시 침묵하다 이겸을 쳐다보곤 훌쩍 이련의 뒷문을 열었다.

“들어가자.”

허락이었다.

활짝, 생기 돋은 미소를 띤 도아가 얼른 달려가 들어가려다 도현에게 뒷덜미를 붙잡혔다.

“선두는 내가 서. 맨 뒤는 겸이. 서도아 넌 중간에서 따라와.”

도아가 입을 삐죽이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에.”

그들은 불 꺼진 이련 내부에 잠입해 오후의 정장 가게로 왔다. 맨 처음 사육장을 보게 된 곳이 여기였다.

안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희망을 잡을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일단은 처음의 흔적을 쫓는 데 집중해 시도라도 해보자는 배상우의 의견이었다.

때문에 이곳에서 오후 8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고요? 8시에? 지금 8시 20분인데.”

입구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난 서도아 탓에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배상우는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전에 관리소장을 감시한다고 나간 후로 연락도 한 통 없었지.

어제처럼 무언가로 변신해 잠입하느라 연락을 못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혹시? 에이 설마, 배상우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럴 리가.

“곧 오시겠지.”

이겸은 조용히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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