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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크리처 (Under creature) (77)화 (77/102)

#077

“어디 아파?”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 서도현이 급하게 달려왔다. 이겸은 제 눈에서 양손을 떼며 그를 바라봤다. 뭐지? 평소보다 시야가 흐릿하고 눈앞의 얼굴이 뿌옇게 보였다.

“아니. 그건 아니고 방금….”

불쑥 도현의 큰 손에 시야가 단숨에 가로막혔다. 그가 낮게 읊조렸다.

“눈 감아.”

“…….”

“너 지금 눈 빨개.”

“…거울 좀.”

능력 사용의 부작용인가. 사용 미숙으로 눈이 달아오른 건 협회 습격 이후 몇 번 있었지만, 능력 조절에 익숙해지고 나서 이런 적은 거의 없었다.

여유롭게 볼 수 있는 거리는 대략 50m 정도. 그 정도의 시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중인데 무의식인지 뭔지 저도 모르게 그보다 더 멀리 보려 한 듯싶었다. 그리고 그 속에….

“형, 여기 거울이요. 괜찮으세요?”

앞이 보이지 않아 더듬더듬 재우에게서 거울을 건네받은 후, 제 눈을 가로막은 손을 치워 상태를 확인했다. 흰자가 빨갰고 그 여파로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쓰라림은 물론 건조함까지 찾아왔다. 제 상태를 확인한 이겸은 즉시 눈을 감았다.

이겸의 상태를 짐작한 도아가 인공 눈물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오빠, 일단 이거라도 넣으세요.”

“잠깐만.”

일회용 인공 눈물의 이물감을 느끼며 이겸은 재차 집중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배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말없이 아까의 감각에 몸을 맡겼다.

거리는 알 수 없지만 우선 제 눈 상태를 보아선 50m 이상인 곳, 빛이 세로로 들어왔다. 아마 문이 열리면 그제야 빛이 새어 들어오는 어두운 곳, 크리처들이 있는 곳, 사람이… 사람이. 어서 구해 줘야 하는데….

“아, 어디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물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장면 전환을 시도했다. 한편으론 찾아 봤자 뭐하나, 싶기도 했다. 어차피 거리 측정도 잘되지 않고 자신은 볼 뿐이다. 그 장소를 정확히 인지해 곧장 찾아갈 수도 없고 그저 ‘볼’ 뿐이다.

그럼에도 실낱 같은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집중, 또 집중하며 감각을 갈고 닦아 매진했다.

관계없는 장면들이 아스라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아까의 그 사람을 찾아 나서려니 눈의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끈거림이 느껴질 때,

“그만해.”

서도현이 이겸의 눈을 손으로 가린 상태 그대로 확 끌어당겼다. 그의 어깨에 뒤통수를 콕 박고 나서야 이겸은 능력을 멈추었다.

그에게 기댄 채로 눈을 깜빡이며 가만히 숨을 내쉬니 뜨거운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흘렀다. 건조해서 반사적으로 눈물을 흘린 듯싶었다.

제 얼굴을 덮은 손이 잠시 떨리더니 눈을 뜨지 못하게 꾹 눌러 왔다.

“감아.”

그때 도현의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본 도아가 깜짝 놀라 다가왔다.

“오빠! 피가….”

“…피?”

피가 난다고? 그런 적은 처음이라 이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내가 너무 막 사용했나, 싶은 후회가 밀려오는 와중에도 아까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걱정이 차올랐다. 크리처들이 많이 보였으니 이미…. 잔혹한 결말만 가득히 떠오르며 끝내 생각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혀…, 형. 티슈, 티슈 어디 있지?”

재우가 급히 직원에게 티슈를 챙겨 받아 이겸의 눈가를 톡톡 두드려 닦아 주었다.

“뭐야, 윤이겸이 너 어디 아파?”

당황한 배상우의 말에 서도현이 이겸을 부축하며 낯을 찌푸렸다.

“윤이겸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숙소로 이동하죠.”

***

숙소에 도착한 그들은 빈방이 많은 덕에 각자 1인실을 받았지만 서도현은 제 방에 들르지 않고 윤이겸의 방으로 직행했다. 도아와 재우도 그가 걱정되어 방에 따라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환자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배상우의 만류에 어쩔 수 없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곧장 화장실로 들어간 서도현이 이겸의 목에 아기 턱받이처럼 수건을 둘러 주었다. 눈을 감고 있어 앞을 볼 수 없는 통에 이겸은 주변을 더듬거렸다.

대충 여기는 숙소인 것 같고…. 현재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은 변기 위고, 목에 두른 천의 감촉이 수건과 비슷하다.

‘화장실인가.’

“뭐 하려고?”

이겸이 묻자 도현은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얼굴 구석구석에 닦지 못한 피가 묻어 있었다.

“세수할 거야.”

“…내가? 아님 네가?”

“네가.”

이내 물소리가 들리고 도현이 경고했다.

“눈 뜨지도, 능력 쓰지도 마.”

“아니, 잠깐…! 으븝!”

저항할 새도 없이 얼굴에 물이 묻었다. 인간적으로 사람 말 끝나기는 기다려 줘야지, 말하고 있는 틈에 물 칠하기 있냐고.

하지만 처음과 다르게 무식할 줄만 알았던 그는 나름 꼼꼼하게 얼굴을 헹구어 주었다. 그러고 보면 처음에 닿았던 물 온도도 그리 차갑지 않았다.

세수는 원래 눈 감고 하고, 양손을 못 쓰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는데도 도현은 세수를 끝낸 후 목에 건 수건을 풀어 이겸의 얼굴을 정성껏 닦아 주기까지 했다. 무슨 신생아라도 된 것 같았다.

이겸은 의외로 섬세한 손길에 당황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걱정이 찾아왔다.

눈에서 피가 날 정도인데 혹시….

“야, 나 혹시 실명되는 건 아니겠지?”

수건을 든 도현의 손이 멈칫하다 재차 움직였다.

“그럴 일 없어.”

헌터인 이상 이 정도는 하루 만에 나을 거라는 확신을 듣고 나서 이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다행이네. 근데 넌 이런 적 있나 봐? 꽤 잘 안다?”

나을 시간까지 정확히 알고, 마치 경험자처럼 말하는 그에게 의아했다. 서도현이 모든 고통에 통달한 듯 구는 건 익숙했다. 하지만 눈에서 피가 나는 건 조금 특별한 경우 아닌가? 그가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몇 번 있어.”

“몇 번?”

“응.”

“아팠어?”

이겸이 묻자 도현이 침묵했다.

“아팠냐고.”

“…….”

“서도현, 대답 안 해?”

이게 앞이 안 보인다고 무시하나, 냉큼 눈을 떠 노려보려 하자 도현이 기다렸단 듯 답해 왔다.

“그땐 좀. 아팠던 것 같아.”

“…그래?”

그의 답변을 들은 이겸은 얼른 제 시린 눈을 감쌌다. 그 서도현조차 아팠다는데, 응당 그래야 했다.

“왠지 네 말 들으니까 더 아픈 것 같아.”

“그러게 아플 짓을 왜 했어. 아픈 것도 싫어하는 애가.”

“그건….”

이겸이 우물거리다 대답했다.

“이상한 걸 봤어.”

“이상한 거?”

그에 이겸은 아까의 섬뜩한 장면들을 늘어놓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곳, 크리처‘들’, 살려 달라는 사람.

“확실해? 잘못 본 건 아니고?”

저를 의심하는 말에 이겸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확실해.”

이윽고 서도현이 이겸의 팔을 당겨 일으켜 세웠다. 안내를 따라 숙소에 마련된 의자에 이겸이 앉고, 그의 맞은편에 자리 잡은 도현이 운을 뗐다.

“윤이겸.”

“응.”

“뮤턴트 크리처. 알아?”

그의 말에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살며시 눈을 뜨자 곧장 타박이 들려왔다.

“눈.”

“아까보단 참을 만해.”

숙소가 이렇게 생겼구나. 계속 눈을 감고 있던 탓에 방금 확인했다. 이겸은 깔깔한 눈을 굴리며 주위를 관찰하다 대답했다.

“뮤턴트? 협회 습격한 크리처 말이야?”

다른 종의 크리처끼리 교배해서 나온 자식.

“그래.”

이겸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현이 설명을 이어 갔다. 블러드 헌터들이 숭배하는 크리처 종류는 가지각색이다. 모든 크리처를 숭배하는 조직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은 오직 한 종류의 크리처만을 섬긴다. 대표적으로 아담이라는 거대 조직이 후자였다. 백사의 형태를 한 ‘세르’라 불리는 크리처만 섬기는 집단이다.

그들은 오직 ‘세르’의 피를 탐하기 때문에 다른 크리처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세르 외에는 하찮은 생물로 취급하며 오직 병기로만 이용한다. 그런 개체들은 주로 뮤턴트 크리처를 만들기 위한 실험에 동원되곤 했다.

그리고 윤이겸의 말이 맞는다면 아마, 그가 본 곳은 뮤턴트 크리처의 배양실.

즉, 크리처 사육장이란 뜻이었다.

일반적인 크리처는 도감이 있어 공략법도 정해져 있지만 뮤턴트 크리처라면 얘기가 다르다. 서로 다른 종이 합쳐 태어난 생전 처음 보는 종이고, 돌연변이인 만큼 일반 크리처에 비하면 수명이 하루살이만큼 짧은 데다, 단점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기까지 하니 제대로 된 공략법을 만들 시간도 부족하고 이래저래 처리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현의 설명에 이겸은 통증이 심한 눈을 비비며 혼란을 달랬다.

“그러니까…. 아까 내가 본 게 그거라고? 왜? 여긴 이련이잖아.”

“그 주변에 은신처를 만들었겠지.”

“그러니까 왜?”

무기 제작하러 다른 헌터들도 자주 오고 갈 테고 심지어 자경단도 심심찮게 오는 곳인데 그 주변에 굳이 그런 사육장을 만들었다고? 블러드 헌터의 생각이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어쩌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어.”

“…뭐?”

크리처를 가둘 만한 철창이 어디 흔할까. 그런 단단한 철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이련뿐이니 말이다. 어떤 루트로 이련에서 철을 얻어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더니 이런 가까운 곳에 은신처가 있을 줄이야.

도현의 말에 이겸이 의문을 표했다.

“블러드 헌터는 기술계 없대?”

“있긴 하지만 만들 환경이 안 되겠지.”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과 공급을 받는 이련만큼 시설이 좋지 못할 테니 고작 허접한 무기나 만드는 게 전부일 것이다.

“…그럼 네가 말한 아담 짓이야? 이 근처에 대놓고 사육장을 만든 게.”

아담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었다.

단순히 김이성을 조사하기 위해 온 것뿐인데 어쩌면 이곳에 더 크고, 음습한 무언가가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글쎄. 조사하면 뭔들 나오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건만, 예상과는 다르게 위험한 여정이 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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