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아저씨 저….”
이겸은 미처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이걸 내가 말해도 되나?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을 그 시간대에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선상에 올려도 되나?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정황상 노정규의 말이 무척 의심스러워서 이겸은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협회에서 나온 CA 지역 리스트 중 분명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나오는 CA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길래 노정규는 거기에 있었던 거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돌고 돌았다.
“켕기는 일 있어?”
서도현의 질문에 이겸이 멈칫하다 입을 열었다.
“아닐 수도 있는데. 그때 그 장소를 지나간 헌터 몇 명을 알고 있어요.”
“그래? 누군데?”
눈을 반짝이며 물어 오는 배상우에 이겸은 우물거리다 말했다.
“예호의 김이성 마스터와 신참 노정규요.”
“…이성이?”
배상우가 친근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두 분 친하세요?”
“그럼! 이성이는 그럴 애 아니야. 다른 사람 찾아봐.”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김이성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완강하게 주장했다.
그에 이겸의 심기가 비틀렸다.
“아저씨. 정이 많은 건 좋은데, 이런 때까지 발휘하시면 안 되죠.”
“정이 많은 게 아니라, 난….”
“거봐. 내가 예호 새끼들은 다 수상하다고 했잖아.”
그럴 리 없다는 배상우와 그런 그를 설득하는 이겸, 무조건 예호가 벌인 짓이 맞다며 단언하는 서도현, 그에 아직 물증이 없다며 무조건은 아니라고 반박하는 이겸.
하나같이 자신의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는 탓에 토론은 순식간에 맞냐, 아니냐로 불타올랐다.
“아니! 걔는 내 친구라니까 그러네!”
“친구면 뭐, 범행도 제외시켜 줘요? 그게 자경단이 할 짓이에요? 공과 사는 구분해 주세요.”
일반인에게 경찰이 있듯이, 자경단은 엄연히 헌터 세계의 경찰과 비슷한 이들이었다.
“…….”
다소 거친 설득에 배상우는 자신이 흥분했단 걸 깨달았다. 이겸도 잠시 그가 마음을 삭일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싶어도 친한 친구가 엮이면 쉽지 않다. 주승태의 일 또한 그랬으니. 배상우의 마음은 이해하는 바이다.
그리고 배상우의 분노는 얼마 가지 않았다. 공과 사를 구분 못 해서야 자경단의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수 없었을 거다.
그는 빠르게 진정했고, 사과했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너무 구분 못 한 건 맞다.”
“그럼 바로 잡으러 가죠.”
“잠깐! 그렇다고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배상우는 이때다 싶어 옳다구나, 하고 움직이려는 도현을 붙잡고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았다.
“일단 그 시간에 돌아다닌 헌터들 위주로 내가 조사는 했었어.”
“그랬어요?”
“그럼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손만 빨고 있을 줄 알았냐!”
의외라며 이겸이 묻자 배상우가 또 언성을 높였다.
“아, 죄송해요.”
이겸은 사죄를 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서 예호는 아니라 한 거구나.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자신도 노정규를 괜히 의심했던 거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배상우가 말을 더했다.
“내가 이성이한테 물었을 때, 걔는 그 시간에 길드에 있었다고 말했어.”
“…….”
“그래서 네 말에 흥분했던 거야. 걔가 나한테 거짓말을 칠 리는 없는데….”
배상우가 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윤이겸이. 너 그 말 확신해? 그때 이성이하고 본 거 맞아?”
“마스터는 보지 못했지만 노정규 씨는 봤어요. 그리고 그분이 ‘마스터와 같이 일하러 왔다’고 말했고요. 못 믿으시면 그날 카페 CCTV 확인해 봐도 좋아요.”
내 기억이 잘못됐을 리는 없으니까. 이겸은 당당히 말했다.
“거짓말도 치고, 그 시간에 거기 있었다면 범인은 확실하네.”
서도현은 당장이라도 잡으러 갈 기세였지만 배상우는 신중에 신중을 가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겸이 질문했다.
“친구라서 그런 건가요?”
이전 어쩌다 협회에서 한번 마주친 적 있는 김이성은 성격이 드세고 언성도 커서 멀리서 보아도 소심한 사람은 그 앞에서 맥도 추리지 못할 정도로 거친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에 반해 배상우는 화를 내긴 해도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고, 정 많고, 다른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유형이었다.
그런 둘이 친하다니. 도무지 어떻게 친해진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잘 어울리나?’
두루두루 친한 배상우니까 친구가 된 건가? 아니면 김이성이 자경단인 그를 이용하기 위해 접근한 걸 수도.
생각의 방향은 무궁무진했다.
“친구라서… 라기보단. 확실하진 않으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용의선상에 오르긴 했죠.”
이겸도 처음엔 아니길 바랐지만, 그 시간에 다른 곳에 있었다며 거짓말을 한 것이 무척이나 의심스러웠다.
“일단 내가 만나서 대화라도 해 봐야겠어.”
어서 잡으러 가자던 도현은 한동안 그의 말을 귀담아듣다가 입술을 열었다.
“혼자 가려고요?”
이겸의 시선이 순간 도현에게 향했다. 그래도 걱정은 되는 건가.
“뭐. 그래야지. 애들도 이것저것 일로 바쁜데 고작 이런 일로 대동해 갈 순 없잖아.”
자경단의 부리더 격인 배상우가 습격을 당한 사건이 ‘고작’ 이런 일이 아니란 건 잘 안다.
배상우의 속내가 불분명한 일에 자경단을 대동했다가 결백이 밝혀지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제 친우에 대한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상대는 대형 길드의 마스터였다.
“아저씨. 만약 맞다면 어떡하시려고요? 너무 무모하세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공과 사는….”
“이놈! 내가 나이가 몇인데!”
혹시나 있을 상황을 염려한 이겸이 갑작스러운 호통에 눈을 찡그렸다.
“여기서 나이가 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공과 사? 좋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좋지.”
배상우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말이야. 세상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일이 있는 거야.”
“…….”
“너희 눈엔 내가 호구로 보이겠지만…. 아아, 그래. 그냥 호구로 생각해라. 호구 맞네 뭐. 정 많은 호구.”
이성적. 이겸은 순간 침묵했다. 서도현과 자신이 나눈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지.’
‘이럴 때도 이성적이어서 조온나 부럽네, 시발.’
그러곤 한탄했다. 뭐야, 나 지금 서도현이랑 같은 말을 할 뻔한 거야?
배상우가 훠이훠이 손을 저었다.
“이 건은 이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이제 가 봐.”
이겸은 이런 모습들을 제 안에서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가 너무나 아찔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뱉었다.
“제가 같이 갈게요.”
“…어엉?”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배상우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우선은 ‘그’ 서도현을 품어 준 사람이고, 여러모로 됨됨이가 컸다. 한마디로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 때문에 오지랖이 넓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것조차도 배울 점일지 몰랐다.
그의 옆에 있다 보면 자신도 뭔가 배우는 게 있겠지. 이것이 이겸의 생각이었다.
“같이 가요. 가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면 좋은 거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혼자보단 둘이 낫잖아요.”
배상우는 우두커니 이겸을 쳐다보다 멍하니 물었다.
“…서도현이. 얘 왜 이러냐?”
“글쎄요.”
이내 이겸의 단단한 의지에 승낙하고 말았다.
“하아, 그래. 데리고는 가 주는데. 넌 밖에서 기다려라.”
“그럴게요.”
휴대폰을 꺼내 든 배상우는 누구에게 문자를 보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으잉? 이성이 부산이라는데?”
“부산이요?”
“어. 당분간 올라올 일 없다네, 아무래도 내가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슬쩍 이겸을 쳐다봤다. 당연히 서울인 줄 알고 같이 가자 했겠지만 부산이면 또 달라지지 않을까.
“학점이….”
역시나 이겸은 고민에 잠긴 얼굴이었다.
“주말에 가나요?”
“주말에 가서 평일에 올 수도 있고, 모르는 일이지.”
“…….”
곰곰이 생각하다 결연하게 대답했다.
“네. 전 괜찮아요.”
결석이 좀 쓰리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배움을 얻으러 가는 거니까.
“그럼 언제 출발해요?”
서도현이 스케줄을 살폈다.
“나도 여기서 하던 일은 마무리 짓고 가야 하니까, 내일 모레나…. 서도현이, 너도 가게?”
“윤이겸이 가는데 제가 왜 안 가요.”
“이것들이 쌍으로….”
이겸이 도현을 툭툭 치며 카페 유리창을 가리켰다.
“야, 서도현. 쟤네 뭐냐.”
교복을 입은 차재우와 서도아가 창밖에서 힘껏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학교 다녀오는 길인가.’
“근처라길래 불렀지. 부산까지 가야 될 텐데 애들을 두고 갈 순 없잖아.”
“나만 조용히 다녀오면….”
“안 돼. 널 어떻게 혼자 둬.”
…그냥 좀 혼자 둬. 이겸은 뚱한 얼굴로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학생들을 노려봤다.
“아저씨! 요즘 자주 뵙네요!”
“아, 안녕하세요….”
차재우는 활기찬 서도아의 옆에서 쭈뼛거리며 인사를 했다.
“어어, 그래. 하교하는 길? 너희도 먹고 싶은 거 사 와.”
배상우는 인자하게 제 카드를 쥐여 주었다.
“와! 감사합니다.”
이후 둘이 음료를 챙겨 오고, 정식으로 부산 출장에 대해 얘기했다.
케이크를 먹던 재우가 목울대를 꿀꺽 삼키며 물었다.
“저희 부산 가요? 사… 상우 아저씨랑? 저는, 어, 저는 학교 가야 하는데!?”
“그럼 넌 학교 가. 난 체험 학습 보고서 내고 따라가야지!”
“아니야! 나도 갈래!”
부산에서 놀 유혹을 이겨 내진 못했는지 차재우가 발끈했다.
“그럼 인원도 많아졌고, 혼자 슬쩍 다녀오는 건 안 되겠구먼.”
배상우가 인원이 는 게 귀찮았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때 도아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그럼 날짜를 정해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6박 7일 어때요? 재밌겠다!”
“놀러 가는 줄 알아? 아주 학교 빠지려고 애를 쓰지?”
무슨 목적으로 부산을 가는지 제대로 얘기를 안 했다지만 당연히 여행이라고 생각해 신나하는 둘을 이겸이 타박했다.
“뭐 어때요. 촉박한 것보단 넉넉한 게 좋잖아요.”
“그건 맞지만.”
이겸은 입술을 다물고 도현에게 눈치를 줬다. 너라도 말려 보라는 신호였지만 역시나 들은 척도 안 했다.
‘은근히 단체 활동 좋아한다니까.’
아니, 대놓고인가.
배상우와 래터, 6박 7일간의 부산 원정이 막을 올렸다.